소설리스트

제3장 (4/29)

제3장

마혈도(魔血刀)

무림에는 수많은 무림 공적이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무림 공적이라 하면 당금 마혈도 주재구였다.

그는 단신으로 중소 문파를 멸문시킬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지닌 절정 고수였다. 거기에 살성이라는 특이 체질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은 정사를 분간하지 않고 그를 무림 공적으로 몰아넣는 데 충분했다. 그런 마혈도로 인해 지금 무림은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마혈도가 호가장으로 향한다!

그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그로 인해 수많은 무인들이 호가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림 공적인 마혈도를 잡는다면 그에 따른 명성과 함께 보상금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현상금 사냥꾼은 물론 각파의 후기지수들까지 대부분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현상금 사냥꾼인 은부 사소훈 역시 그런 일행 중 한 명이었다.

사소훈은 무인들과 함께 호가장으로 가는 도중 주루에 들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응?”

소면에 포자를 말아 먹던 사소훈은 누굴 발견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도랑 철 형 아니시오?”

“응? 아! 당신은 은부 사 형?”

사소훈의 말에 철정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함께 사냥을 하기도 했던 사이였다.

“이야! 이거 오랜만이구려! 호가장으로 가시는 거요?”

“그렇소. 사 형께서도?”

“하하! 물론이라오.”

“이거 오랜만에 사 형의 쌍도끼를 볼 수 있겠구려! 하하하!”

“무슨 말씀을! 철 형의 도야말로 무림의 으뜸 아니오?”

철정운은 머리를 긁었다. 그의 칭찬에 왠지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철정운은 사소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입을 열었다.

“자! 이렇게 만난 거 한잔합시다! 내 이번에 필히 마혈도를 잡아 내 위명을 떨칠 것이오!”

“하하하! 분명히 그리될 것이오! 그땐 내가 철 형의 옆자리에 있겠소이다!”

“이를 말이오? 사 형이 함께라면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소이다! 하하하!”

철정운이 술잔을 건넸다. 사소훈은 술잔을 받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마혈도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렇게 많은 무림 동도들이 함께하니 분명 꽁지 빠지게 도망만 칠 것이오! 하하하!”

“하하하하!”

“맞아! 아무리 마혈도라지만 우리들이 함께하지 않는가!”

철정운과 사소훈 주위에 있던 무림인들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철정운과 사소훈의 말에 동조된 것이었다.

“자! 무림 동도님들! 이 사소훈이가 한잔 드리겠소이다!”

“와하하!”

철정운과 사소훈, 그리고 주위에 있던 무림인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일제히 술잔을 들이켰다.

“크크큭, 맞아. 아무리 마혈도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머릿수에는 못 당하지.”

“응?”

“어?”

순간 음침한 목소리에 무림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괜히 기분 나쁜 목소리였던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한 흑의인이 앉아 있었다.

사소훈은 얼굴을 구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퍽!

“아?”

그 순간 뭔가 둔탁한 것이 그의 이마를 치고 나갔다.

흑의인에게 다가가던 사소훈은 난생처음 느껴 보는 이색적인 감각에 손을 들어 이마를 만졌다.

“피……?”

자신의 손에 묻은 액체를 보며 의문을 품던 사소훈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이마에 구멍이 뚫려 있던 것이다.

“사, 사 형!”

철정운이 그 모습에 칼을 뽑으며 일어섰다. 다른 이들 역시 사소훈이 이마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흑의인을 경계했다.

“하지만 네놈들은 자신의 앞날도 보지 못하면서 마혈도의 앞날을 걱정하다니. 네놈들의 명도 상당히 짧겠구나.”

“네, 네놈은 누구냐?”

철정운이 자신의 도를 빼 들며 외쳤다. 그의 손은 어느새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사소훈을 쓰러트린 공격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 출수했는지.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쿡.”

흑의인은 짧게 웃으며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그것은 악귀의 문양이 들어간 묵색의 도였다.

그 도를 본 순간 철정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 악귀가 새겨진 도집! 설마 마혈도?”

“마혈도!”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흑의인에게로 쏠렸다.

“그럼 당신은?”

“크크큭, 적의 머릿수가 많아진다면 모이기 전에 부숴야겠지. 안 그런가?”

흑의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위의 사람들이 물러났다.

흑의인은 자신의 손에 들린 도를 서서히 뽑았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엄청난 경기가 풍겨 나왔다.

“자, 한번 덤벼 봐라. 네놈들이 얼마나 잘났기에 마혈도를 입에 올리는지 시험해 주마.”

“큭! 무림 동도들! 저놈은 하나이외다! 우리의 힘을 보여… 컥!”

“싸움을 말로 하나?”

흑의인은 철정운의 입속에 박힌 도를 꺼내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자 사람들은 일제히 물러났다. 그의 기세가 너무 강대했던 것이다. 거기에 방금 철정운에게 어떻게 칼을 꽂았는지조차 보지 못했다.

“흥! 우리는 섬서삼괴다! 네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 봐야 우리 형제의 합격을 받을 수 없을 게다!”

갑자기 방립을 쓴 한 사내가 칼을 빼고 달려들었다. 그 뒤를 두 명의 사람이 따랐다.

츠캉!

정면으로 파고든 일괴의 칼이 흑의인의 도에 막혀 들었다.

“킥, 걸렸다!”

그 순간 일괴가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뒤로 빼냈다. 그와 함께 흑의인의 양옆에서 두 가닥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죽엇!”

“하압!”

이괴와 삼괴가 사내의 양옆에서 검을 찔러 왔다. 완벽한 연수합격! 하지만 그 순간 흑의인의 신형이 흔들렸다.

“헉!”

일괴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흑의인이 순식간에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일괴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내밀었다. 하지만 흑의인의 행동은 그보다 더 빨랐다. 일괴가 검을 드는 순간 흑의인이 그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비, 빌어먹을…….”

“형님!”

일괴는 허무한 눈빛으로 자신을 부르는 이괴와 삼괴를 바라보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너무나 뛰어난 솜씨에 주눅이 든 것이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일까? 흑의인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도를 들어 올렸다.

“자, 오너라. 천천히 흠뻑 즐겨 보자꾸나. 크크큭!”

흑의인은 자신의 묵도에 묻은 피를 핥으며 눈을 빛냈다.

“으아아!”

흑의인의 도발에 한 무인이 칼을 빼 들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흑의인은 비릿한 미소를 거두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 무인은 그대로 흑의인의 신형을 가르고 지나갔다.

서걱!

“끄아악!”

한 줄기의 섬광이 터졌다. 놀랍게도 흑의인이 아닌 칼을 빼 들고 달려들던 무인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무인은 두세 발 더 걸어가다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피라미들 주제에…….”

중얼거리던 흑의인이 허공에 십수 번의 도를 그었다. 그러자 수많은 무인들이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하고 사지가 갈라지며 나뒹굴었다.

그나마 간신히 흑의인의 도기를 피한 무인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했다. 그가 뿌린 도기에 십수 명이 한번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적으로는 흑의인이 상당히 불리해 보였지만, 뭉쳐 있는 무인들의 이마는 비를 맞은 듯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 악귀!”

한 무인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흑의인은 그 목소리에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크크큭! 그래, 난 악귀다. 그렇다면 네놈은 뭐냐? 이도 저도 아닌 쓰레기가 아닌가?”

“이익!”

소리쳤던 무인이 흑의인의 말에 발끈했지만 그 자리에 못이라도 박아 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달려 나가 봐야 쓰러져 있는 시체들과 같게 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호가장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놈들만 모였나 보군. 쓰레기들만 모으고 있다니. 그러고서는 감히 나 마혈도를 기다린단 말이냐? 크크큭!”

“이 자식이!”

“함만아! 안 돼!”

결국 참다 못한 함만이라는 사내가 기합을 터트리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옆에서 다급하게 외치며 손을 뻗었지만 이미 그는 앞으로 뛰쳐나간 상태였다.

“죽어 버렷!”

함만은 공포에 질려 버렸는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도약하며 일도양단의 자세로 도를 내려쳤다.

“흥!”

흑의인은 짧게 코웃음을 흘리고는 오른발로 강하게 바닥을 찍은 뒤 도를 휘둘렀다.

꽝!

“크아악!”

흑의인의 묵도와 함만의 칼이 맞닿은 순간 커다란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오르며 그 둘의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흑의인에게 달려들었던 함만이 비명과 함께 먼지구름을 뚫고 튕겨지듯 떨어져 나갔다. 그의 칼은 산산조각이 나 몸에 박혀 들었고, 두 팔은 부러져 뒤틀렸다. 그렇게 바닥을 몇 번 구르던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함만아!”

한 무인이 함만의 시체를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혼이 떠나간 그의 시체가 입을 열 리는 만무했다.

“걱정하지 마라. 곧 뒤따라 보내 줄 테니.”

순간 먼지구름이 반으로 갈라지며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함만과는 달리 아무런 생치기가 없는 것이 상당히 멀쩡해 보였다.

“큭! 이놈! 나, 수만이 네놈을 지옥에서라도 용서치 않으리라!”

“훗.”

흑의인의 입에 실소가 걸렸다. 그 순간 수만의 눈이 부릅떠졌다.

“으아아!”

수만이 함성을 터트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랏!”

순간 수만의 창이 여섯 개로 나눠지며 흑의인에게 쏟아졌다.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처럼 싸늘한 냉기를 뿜으며 날아오는 창에 흑의인은 얼어붙었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킥.”

그때 흑의인이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흑의인의 신형이 사라지듯 하더니 수만의 바로 앞에서 나타났다.

“뭣?”

갑자기 나타난 흑의인의 모습에 수만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자신이 시전한 빙환창을 무시하듯 지나치며 코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만은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

팟!

묵도를 휘두르자 도에 묻은 피가 바닥에 떨어진다.

수만의 몸에 박아 넣은 도에서 피를 털어 낸 흑의인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꺾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직 남아 있는 세 명의 무인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왜 그러나? 날 잡겠다고 모여든 것이 아닌가? 그럼 어서 오너라. 뱀 앞의 개구리처럼 덜덜 떨고만 있지 말고 말이다, 쓰레기들아.”

거침없는 흑의인의 말에 발끈할 법도 싶었지만 남은 무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들은 그의 머리카락 한 올도 벨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방금 죽은 수만이 자신들 중에서 최고수였건만 단 일 초에 죽어 버린 것이다.

-사련 님.

“음?”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인들에게 조소를 보내던 사련은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흥이 깨진 듯 미소를 거두고는 무덤덤한 눈으로 남은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깊은 눈동자. 지금까지 조소를 내비치며 도발하던 사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오랜만에 즐기고 있었는데, 흥이 깨지는군. 어이, 모조리 죽어라.”

순간 사련의 도가 또다시 십수 번 갈랐다. 그러자 핏빛의 도기가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뭐, 뭣?”

“헉!”

의미심장한 말에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기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들린 것은 잘려 버린 자신들의 팔꿈치뿐이었다.

“어, 어느새.”

눈을 커다랗게 뜬 무인들은 어이없다는 듯 허무한 음성을 내뱉으며 사지가 잘린 채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이 허무하든 어떻든 간에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사련은 그들에게서 바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무슨 일이지?”

사련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말을 걸었다. 그 순간 허공이 갈라지며 한 사내가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내는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꼬리를 잡았습니다. 현재 그가 호가장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합니다.”

“음… 거리는?”

“이곳에서 약 반나절 거리입니다.”

“좋아, 좋아. 크크큭!”

사련은 자신의 도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진짜 마혈도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늙은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중원 나부랭이 놈에게 이런 임무를 주었던 거지? 역시 늙긴 늙었나 보군. 본 궁의 일은 본 궁의 무사가 처리해야 하거늘.’

사련의 눈이 빛났다. 그러고는 도를 들어 칼날을 바라보았다. 섬뜩한 예기가 곧장 자신에게 날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사련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만 갔다.

‘내가 시험하겠다. 과연 네놈이 본 궁의 선봉장으로 이 무림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놈인지.’

***

길을 걷던 북궁아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진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혈도는 왜 잡으러 가는 거지?”

“그러는 넌 왜 가는데?”

“음… 명령이다.”

“…….”

짧게 답한 북궁아는 진철을 바라보았다.

진철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른 하늘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는 먹구름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이 먹구름을 누군가에게 퍼트리고 싶을 정도로.

진철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명성이 필요할 것 같아서.”

“어째서?”

“그래야 문파를 재건하기에 편할 것 아닌가? 그래야 돈도 벌 수 있을 테고 말이지. 야! 근데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그러면 안 되는 건가?”

북궁아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에 진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진철은 얼굴을 살짝 구기고 그녀를 바라보다 그 역시 길을 걸어 나갔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진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니 막막해 온 것이다. 멸문까지 다가간 화산파를 다시 일으킨다? 말은 쉬웠다.

“저기 객잔이 있다. 들렀다가 가도록 하지. 배가 고프다.”

“…….”

북궁아는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며 진철을 향해 말했다. 진철은 그녀의 시선을 피해 앞에 있는 객잔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배가 고파 온 것이다.

“……!”

객잔으로 들어선 진철의 눈이 부릅떠졌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어떤 이는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가 있었고 어떤 이는 목이, 어떤 이는 배가 잘려 장기들이 쏟아져 나온 상태였다.

“대체 이게 뭐지……?”

객잔 안에는 단 한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수십의 무인이 자신의 병장기를 꼬나 쥔 채 죽어 있었다.

“우웁!”

진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철은 배 속에서 역류하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뱉어 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구토한 진철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음… 시체의 상태로 봐서는 한 반나절 정도 된 듯하다. 피가 굳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굳은 것도 아니고, 시체의 상태 역시 부패하지 않고 양호하다. 그리고 이 절단면…….”

북궁아는 시체의 잘린 단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깨끗하다. 보통의 솜씨가 아니로군.”

“너…….”

진철은 구역질에 구겨진 얼굴을 펴지 못하고 북궁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북궁아가 진철의 부름에 몸을 돌렸다. 진철의 눈이 크게 떠지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우에엑!”

북궁아의 손에는 잘린 팔이 들려 있었다.

“하아…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한참 동안 구토를 하다가 이제야 속이 안정된 진철은 객잔 밖에서 서성였다. 아무리 시체를 보고 또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옛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옛날의 기억…….’

진철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자 고개를 저었다. 그때 객잔의 입구가 열리며 북궁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철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진철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그녀가 시체의 팔을 들고 이리저리 들춰 보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아마도 마혈도의 짓인 것 같다. 사인은 그의 도법과 유사하다. 잘린 뼈들을 보아하니 모두 단칼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마혈도의 도법은 일격필살의 도법이라 알려져 있고.”

“으음… 그런데 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지?”

“그게 무슨… 아아.”

그제야 진철의 말을 이해한 북궁아는 객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체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군. 하지만 나도 처음부터 멀쩡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나도 고생이었지.”

‘처음이 아니라 몇십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진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북궁아가 대단해 보였다. 그녀가 대단해 보이기는 또 처음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마혈도가 가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여기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동하도록 하지.”

“그래야겠지. 응?”

객잔의 상황을 떠올리자 다시 배 속이 요동쳤다.

진철은 가까스로 참아내고 객잔을 떠나려는 순간 고개를 돌리며 뒤를 바라보았다. 북궁아 역시 진철과 같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대략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객잔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병장기를 꼬나 쥐고 다가오는 모습이 무인인 듯했다.

그들은 객잔 앞까지 다가오고는 진철과 북궁아를 향해 살짝 시선을 주며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쩝, 가자.”

진철 역시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며 객잔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뒤에서 북궁아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객잔 문이 거칠게 열리며 들어갔던 사람들이 다시 뛰쳐나왔다.

“잠깐! 네놈들이 한 짓이냐!”

갑작스러운 물음.

진철은 자신을 향한 외침에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장기를 들어 올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장창을 들고 있는 사내가 창끝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본도 역시 이제야 이곳에 도착한 몸. 객잔 안의 상황은 본도와 전혀 관계없소.”

“이놈! 거짓말하지 마라! 그렇다면 저 여인의 도에 묻은 피는 무엇이고, 네놈의 옷자락에 묻은 피는 또 무엇이냐!”

진철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시선에 북궁아의 도에 묻어 있는 피가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옷자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옷자락 곳곳에도 혈흔이 조금씩 남겨져 있었다. 아마 아까 시체들을 살펴보다 묻은 것 같았다.

“이것은 오해라오. 객잔 안에서 시체들을 살펴보다 피가 조금 묻었나 보오.”

“그렇다면 저 여인의 칼에 묻은 혈흔은 어떻게 대답할 것이냐? 시체들은 단칼에 잘려져 있었다. 그게 네놈들의 탓이 아니라면 어찌 저 여인의 칼에 혈흔이 묻어 있는 것이지?”

그제야 북궁아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시체들을 조사하다가 바닥에 끌리면서 묻은 모양이로군. 아무튼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가도록 하지.”

북궁아는 진철을 향해 말을 내뱉고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장창을 들고 있던 사내가 진철을 향해 쏘아지듯 다가왔다.

“네놈들의 피로 이 영후가 우리 동포들의 노여움을 달래 주겠다!”

진철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고는 어느새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온 창끝을 검집으로 흘리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영후는 그가 자신의 일격을 간단히 흘리며 피해 버리자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서 있던 무인들에게 소리쳤다.

“저놈들이 바로 우리 동포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놈들이외다! 우리 다 같이 저놈들을 쳐 잡아 동포들의 원한을 줄여 줍시다!”

“죽어라!”

영후는 진철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러자 무인들이 진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북궁아는 잽싸게 진철에게서 떨어지며 멀찍이 물러났다.

진철은 수많은 무인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시팍.”

진철의 몸이 재빠르게 돌아가더니 북궁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수많은 무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를 쫓았다.

펑!

“응?”

그때 뒤에서 들려온 굉음에 발을 멈추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몰려오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하늘에 활을 재고 있었다.

그가 손을 놓자 활을 떠나간 화살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다.

펑!

또다시 굉음과 함께 하늘이 밝게 물들었다.

“뭐야? 저건?”

“화약이로군.”

“화약?”

진철의 물음에 북궁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면 신호탄일 것이다. 저것으로 상대에게 신호를 보내는 거지. 우리 집에도 상당히 많이 있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북궁아의 말에 진철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뒤에서 따라오는 이들 말고 또 있다는 건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저런 신호탄은 대부분 몇 개의 대나 조가 대상을 포위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니까. 거기에 저들은 아마도 현상금 사냥꾼들일 것이다. 그러니 저러한 물건은 몇 개씩 들고 다닐 수도 있겠지.”

진철의 몸이 갑자기 떨렸다. 왠지 불길한 기운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때 수많은 인기척과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슈슉!

“제길!”

진철은 자신을 향해 예기를 품고 날아오는 무언가를 쳐 내며 급히 머리를 숙였다. 두 발의 화살이 진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철의 얼굴을 구겨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저기에 있다!”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수십 명이 주변을 둘러싸고 활을 재고 있었다.

진철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 옆에서 북궁아가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대도를 바닥에 늘어트렸다.

“서, 설마 저거…….”

“쏴 버렷!”

진철의 말에 대답하듯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외치자 활을 재고 있던 무사들을 일제히 화살을 놓아 버렸다. 하늘을 활공하며 날아오른 화살은 그물처럼 촘촘히 그를 향해 쏘아졌다.

그때 북궁아가 앞으로 나서며 늘어트렸던 대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의 팔에서 갑자기 푸른 섬광이 터지며 주변으로 냉기가 퍼졌다.

“빙옥지벽(氷玉地壁)!”

그녀가 내리친 도가 지면과 맞닿은 순간 삼 장은 될 것 같은 냉기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높이뿐만 아니라 넓이도 넓어 두 사람을 다 가리고도 공간이 남았다.

진철은 그녀의 가공할 무공에 눈을 크게 뜨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무공이군.”

그때 그의 말을 들었을까? 북궁아가 진철을 바라보았다. 진철은 뜨끔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북궁아는 재빨리 진철의 앞으로 다가섰다.

“왜, 왜?”

“튀어.”

“응?”

파팍!

짧게 말한 북궁아가 곧바로 자리를 떴다. 가만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철은 뭔가 깨달았는지 곧바로 그녀를 뒤쫓았다.

가까스로 사냥꾼들을 피해 숲으로 달아난 진철은 나무 기둥에 숨으며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제길, 정말 무식하기 그지없군.”

자신은 그 어떤 죄도 지은 게 없었다. 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만큼 무림에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산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원한 살 일이 있단 말인가?

“확 엎어 버려?”

진철은 자하신검의 검병을 쥐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가 자신을 쫓는 이를 박살 내 버리고 싶었다.

“제길, 비싼 밥 먹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나저나…….”

진철은 앞서 걸어가고 있는 북궁아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녀가 펼친 일도는 절세의 절학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제야 왜 그녀가 저렇게 큰 도를 지니고 다니는지 이해가 갔다.

그녀가 가진 무공을 펼치려면 웬만한 검이나 도로는 무리일 것 같았다.

“음?”

북궁아는 길을 걷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진철 역시 그녀 옆에 서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매끈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진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것이다.

“비명 소리와 병장기 소리가 들린다.”

“응? 아.”

그제야 진철의 귓가에도 쇳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는 대략 삼십여 장.

진철은 얼굴을 구기며 시선을 돌렸다.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괜히 가서 부딪쳐 봐야 자신만 손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돌아…….”

“마혈도가 있는 것 같다.”

“뭐? 마혈도?”

“비명 소리와 함께 근근이 들린다. 마혈도라는 별호가. 아마도 저곳에 있는 듯하다.”

북궁아가 자신의 말소리를 끊고 말하자 진철의 눈이 한순간 빛났다. 저 마혈도라는 놈 때문에 자신이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장 잡으러 가자.”

“그건… 나도 동의한다.”

진철과 북궁아의 시선이 마주쳤다. 진철이 미소를 짓자 북궁아 역시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맞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파팟!

팟!

진철이 강하게 발을 밟자 그 뒤를 따라 북궁아가 도약했다.

삼십 장 정도를 달리자 어느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수많은 무림인들이 병장기를 꼬나 쥐고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혈인처럼 새빨간 모습을 한 사내였다.

“저놈이 마혈도야?”

“아마도.”

“그런데 뭐가 저렇게 시뻘게? 소문에는 검은 옷에 검은 도를 들고 다닌다고 했잖아?”

진철의 말대로 마혈도인 것 같은 사내, 주재구는 붉은 옷과 붉은 도를 들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주시하던 진철은 눈을 부릅떴다. 옷이 붉은 것은 붉은 옷감을 사용해서가 아닌 피로 물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도 역시 마찬가지.

“정말 나쁜 놈인가 보네. 뭐 저렇게 피로 떡칠을 하고… 윽!”

입을 열던 진철이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터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 있었던 것이다. 하나같이 멀쩡한 시체가 없었다. 어딘가 한 곳이 떨어져 있거나 배가 갈라져 장기가 쏟아져 나오는 시체가 한두 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가 정말 마혈도인 것 같다. 일도에 한 명씩, 일격필살의 도법. 그리고 저 도기들, 사악한 기운이로군.”

북궁아 역시 살짝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 때문인지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주재구가 무인들에게 파고들었다. 그 순간 그의 팔이 휘둘러지자 검은 섬광이 그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네 사람의 목이 잘려 쓰러지자 진철은 얼굴을 굳히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진철?”

북궁아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자 진철은 얼굴을 구기면서도 이를 악물며 앞으로 나섰다.

“저놈은 내가 잡는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놈이라니… 꼭 잡아야겠어.”

“잠…….”

북궁아가 미처 입을 열어 그를 잡기도 전에 앞으로 튀어나간 진철은 자하신검을 검집째 휘둘렀다. 그러자 주재구의 고개가 들리며 그를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적이라는 것을 인식했는지 무인들을 베어 가던 그의 도가 세 갈래로 찢어지며 진철을 향해 쏘아졌다.

“큭!”

진철은 내뻗던 검의 방향을 꺾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기를 튕겨 냈다. 공중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이 정도로… 응?”

도기를 공중에서 상쇄시킨 진철은 자신의 시야에서 주재구가 사라지자 혀를 차며 오른쪽을 향해 손바닥을 튕기듯 쳐 냈다. 그러자 공중에서 또다시 파공성이 들리며 주재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진철의 옆으로 돌아가 공격을 시도한 것이었다.

“크르르…….”

자신의 공격이 실패한 것에 분노한 것일까? 주재구는 이를 내밀며 진철을 경계했다. 그 모습에 진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거 사람이야, 짐승이야?”

붉은 눈동자를 중심으로 핏줄이 솟아 있는 주재구의 얼굴은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그를 감싸고 있는 사이한 기운은 온몸의 털을 쭈뼛 서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주재구는 그런 진철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지 도병을 강하게 쥐고는 진철을 향해 내달렸다.

공중에서 주재구의 도가 십여 번 그어졌다. 그와 함께 진철의 손 역시 허공을 십여 번 갈겼다. 파공성이 터지며 주변으로 먼지가 일어났다.

꽝!

진철은 이를 악물며 검병에 쥔 손에 힘을 더욱 몰아넣었다. 주재구가 내려친 도가 생각보다 더욱 큰 충격으로 그의 몸을 강타한 것이다.

“무식한 놈!”

“……!”

그때 진철의 신형이 살짝 기울어지자 주재구의 도가 진철의 검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주재구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힘을 몰아넣고 있는 시점에 도가 흘러내리자 균형을 잃고 만 것이다.

“흠!”

진철은 살짝 기운 몸을 앞으로 내보내며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자색의 기운이 맺힌 일장이었다.

하지만 주재구의 눈이 한순간 빛나며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너무나 빠른 반응에 진철은 미처 손을 회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을 쳐 버렸다.

“제길!”

진철은 바로 몸을 뒤로 빼며 주재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세를 가다듬고 있는 그의 눈이 진철의 신경을 앗아 갔다.

조금 전보다 더욱 붉어진 눈. 피가 덕지덕지 묻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이 왠지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

그때 주재구의 몸이 제자리에서 돌았다. 그와 함께 그의 도에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다.

“저, 저거!”

그의 도에 모여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탓인지 진철은 허공으로 도약하며 자하신검에 기를 몰아넣었다. 그러자 자색의 빛이 흘러나와 검집을 감쌌다.

“크앙!”

순식간에 도강을 생성한 주재구가 짐승의 소리를 내며 거칠게 도를 휘둘렀다. 공간을 찢은 도강은 모든 것을 가를 것처럼 진철을 향해 날아갔다.

“쌍!”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지는 기운에 욕지거리를 내뱉은 진철은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자하신검에 더욱 기를 몰아넣으며 내려쳤다. 그러자 자색의 기운이 더 강하게 터져 나오더니 자하신검에 순식간에 검강이 씌워졌다.

꽈앙!

검강과 도강이 공중에서 만나며 섬광이 터졌고, 그 여파로 주변에 있던 무림인들이 휩쓸려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북궁아는 간신히 대도를 바닥에 찍어 그것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진철은 그녀에게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검을 들어 자신의 앞을 막은 진철은 강력한 반발력에 혀를 차며 몸을 뒤로 뺐다.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노렸던 것일까? 주재구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더욱 빨라지며 진철에게 쏘아졌다.

채챙!

“크윽!”

일도에 하나의 목숨을 거둬 가는 일격필살의 도법이 변했다. 변초가 섞이며 진철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른쪽 어깨를 노리고 다가온 도가 중간에서 방향을 꺾어 목을 노리고 들어왔고, 단전을 노리던 도가 방향을 바꿔 팔을 노리고 들어왔다.

“응?”

진철의 허리가 순간 접히자 그 위로 검은 도가 휘젓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도를 거둬들인 주재구는 그대로 다시 몸을 돌리며 위로 들린 도를 진철을 향해 내려쳤다.

진철은 다시 이를 강하게 물며 양발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 순간 주재구의 도가 검은 구름을 토해 내며 진철의 검에 작렬했다.

꽝!

“커억!”

또다시 들리는 폭발음!

주재구의 일도에 이 장이나 뒤로 물러선 진철은 얼굴을 구기며 얼얼한 손목에 힘을 주었다. 가까스로 그의 도를 흘리며 뒤로 몸을 뺐기에 이 정도였지, 아마 그대로 받았더라면 그가 뽑아낸 도강에 몸이 두 개로 나눠졌을 것이다.

“크으으…….”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에 분노한 것일까? 주재구의 몸에서 더욱 거대한 기도가 뿜어져 나왔다.

너무나 사악하고 사이한 기에 주변에 쓰러져 있던 무인들이 몸을 떨며 그 주변에서 떨어지려 애썼다. 하지만 주재구는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적은 진철이라는 듯 그만 노려보며 기세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주재구의 기세를 느낀 것일까? 진철은 뻐근한 자신의 팔을 주물럭거리고는 혀를 차며 눈을 부릅떴다.

“적당히 하자. 응? 이러다가 그놈이 깨어나면 나도 못 말린다고.”

“크르르…….”

“허, 그놈 참 완전히 미쳐 버렸나 보네.”

주재구는 진철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인지 더욱 살기를 피워 올리며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어떻게든 진철을 죽이겠다는 모습이었다.

“좋아.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거다.”

검을 늘어트리며 가볍게 말한 진철의 표정이 굳으며 그의 몸에서 기이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따뜻하면서도 무엇이든 베어 버릴 것 같은 차가움. 마치 자연과도 같은 기운이었다.

바로 천하제일인이었던 옥린수가 말년에 자신의 무공을 재정립한 화산의 정수.

화산검결(華山劍訣)이었다.

세 가지의 장으로 나눠진 화산검결은 너무나 오묘해 진철조차도 일 장인 개화(開花)와 이 장의 만개화향(萬開花香)만 익혔을 뿐, 삼 장의 화영무(花影無)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검결이었다. 만개화향도 단지 형식만 외웠을 뿐, 그 오의는 익히지 못한 상태.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진철은 미소를 지으며 주재구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주재구 역시 달라진 진철의 기세를 느꼈는지 눈빛이 더욱 사납게 변했다.

“호오…….”

“…….”

북궁아는 자신의 귀를 울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작은 호리병을 왼손에 든 한 남자가 어느새 나타나 진철과 주재구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자의 오른손에는 하나의 장도가 들려 있었는데, 악귀의 형상이 그려진 특이한 도였다. 그자는 연신 진철과 주재구의 격돌을 지켜보며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꽤나 대단한데? 주 가 저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와 상대하고 있는 저놈은 그럭저럭 봐 줄 만한 실력이구만. 하지만… 그뿐이로군.”

꿀꺽!

고개를 내저은 사내는 호리병을 열어 자신의 입가에 가져갔다. 누런 액체가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리해라.”

술을 한 모금 삼킨 사내는 허공을 향해 말하듯 입을 열었다. 그 순간 흑색의 무복을 입은 사내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열 명 남짓한 숫자의 무인들. 하지만 그들에게서 풍겨져 오는 기세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뭐, 뭐야? 저들은?”

“글쎄, 저들도 마혈도를 잡으러 온 자들인가?”

주재구가 뿜어낸 기파에 휩쓸린 자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며 새로이 나타난 자들을 주시했다.

흑의인들은 그들의 궁금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서 있다가 한순간에 돌연 모습을 감추었다.

서걱!

“크억!”

“으악!”

무언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고 팔다리가 잘려 나간다. 몸을 감추었던 흑인들이 어느새 수 장을 이동해 무인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

갑작스런 상황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던 북궁아는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경기에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뒤로 빼며 도를 휘둘렀다. 냉기에 감싸인 도가 흑의인의 검에 맞부딪치자 흑의인의 몸이 튕겨 나갔다.

북궁아가 뿌린 도에 실린 위력은 흑의인들이 결코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호오, 제법이군.”

그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호리병을 허리춤에 매고 도를 집어 들었다.

“물러서라. 네놈들의 상대가 아니야. 다른 피라미들이나 정리해라.”

“옛!”

흑의인들은 곧바로 북궁아에게서 다른 이들에게로 검을 돌렸다.

사내는 천천히 북궁아에게 다가왔다. 북궁아는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도병에 더욱 힘을 주었다.

“긴장하지 말라고. 긴장한 것이 여기까지 느껴지는군. 난 사련이라 한다. 넌?”

“북궁아.”

“북궁아라… 북궁?”

그녀의 이름을 되뇌던 사련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무림에서 북궁의 이름을 사용하는 곳은 단 한 곳.

“북해의 혈족인가?”

“…….”

“뭐, 상관없겠지. 그럼 놀아 볼까!”

북궁아가 여자라는 것을 잊은 것인지, 아니면 무인으로 인정한 것인지 사련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진철을 향해 검은 도가 쏘아졌다. 진철은 옆으로 슬쩍 피하며 주재구의 옆구리를 훑어갔다. 주재구는 그대로 몸을 띄워 진철의 머리 위로 넘어가며 도를 휘둘렀다. 묵색의 도가 자색의 검집에 부딪치며 넘어갔다.

진철은 앞으로 쏠리는 몸을 회전시켜 팔을 휘둘렀다. 자색의 검기가 세 갈래로 나눠지며 공중에 떠 있는 주재구를 향해 날아갔다. 주재구의 눈이 부릅떠졌다.

꽝!

폭발음과 함께 주재구의 몸이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먼지가 곧 걷히자 도신으로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진철은 그 모습에 차갑게 웃으며 다시 신형을 날렸다.

카각!

자색의 검집과 묵색의 도가 허공에서 불꽃을 튀겨 냈다. 가죽으로 만들어졌어야 할 검집이 쇳소리를 낸다는 건 이상하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그때 주재구의 신형이 환상처럼 잔영을 남기며 진철의 옆으로 돌아갔다. 그런 진철의 눈가에 붉은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진철은 여유롭게 그가 향하는 곳으로 검을 찔러 넣으며 허공을 갈라 갔다.

캉!

자색의 검집을 막은 주재구는 도에 더욱 힘을 주며 검집을 잘라 버릴 것처럼 진철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진철 역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인지 양손으로 검을 쥐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 둘의 얼굴이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피가 엉겨 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 진철은 그 눈동자를 응시하며 미소 지었다.

“겨우 이거였나?”

“크앙!”

진철의 비꼼에 분노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한 것일까? 주재구는 크게 포효하며 내공을 몰아넣어 강하게 진철을 떨쳐 냈다.

이번엔 진철 역시 의외인 듯 강한 힘에 얼굴을 살짝 구겼다. 하지만 곧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주재구가 허공을 십여 번 그어 도기를 뿌려 오고 있었다.

“칫!”

자색의 검집이 순간 십여 개의 잔영을 만들어 내며 허공을 수놓았다. 곧 하나의 꽃이 만들어지자 묵색의 구름들이 그곳에 충돌했다.

“크으, 역시 무식하… 응?”

도기를 흘려버린 진철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어느새 주재구가 허공에서 그를 향해 검은 구름이 피어 있는 도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재구가 익힌 마혈도의 삼 초식, 마천령도(魔川靈導)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물줄기들! 그것은 거대한 해일과도 같았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엄청난 기운을 품고 있는 강기 다발들!

“쌍!”

진철의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저만한 내공이 실린 공격은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자색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진철의 앞에 한 송이의 꽃이 피어올랐다.

콰과쾅!

검은 물줄기가 자색의 꽃을 삼키며 진철조차 삼켜 버렸다. 곧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며 그 일대를 가렸다. 주재구는 가만히 그곳을 바라보며 도병을 쥐고 있었다.

숨을 거칠게 내쉰 주재구는 끓어오르는 기혈을 본능적으로 잠재우며 눈을 빛냈다.

그 순간 자색의 섬광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그에게 날아왔다. 주재구는 빠르게 팔을 휘둘러 검기를 잘라 버렸다.

먼지가 걷히자 진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을 꺾으며 나타난 그는 몸이 뻐근한 것인지 팔과 목을 풀고 있었다. 그러고는 주재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꽤 묵직한걸?”

이번엔 방어가 아닌 공격을 하려는지 자세를 잡은 진철은 천천히 기를 끌어 올렸다.

“꺅!”

그때 짧은 비명과 함께 한 인영이 빠르게 진철에게 다가왔다. 진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북궁아가 그에게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진철은 재빨리 몸을 날려 그녀를 받으며 주재구로부터 거리를 벌리고는 주변을 경계했다.

“대단하군. 설마하니 그 정도의 실력일 줄이야. 하지만 그만했으면 하는데. 거기 그놈은 내 먹이란 말이지.”

한 흑인이 수풀을 헤치며 다가왔다. 흑색 무복에 흑색의 도. 바로 사련이었다.

“넌 누구야?”

“글쎄? 알 필요가 있나?”

사련은 미소를 지으며 도를 들어 보였다. 이곳저곳에 살얼음이 맺혀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착한 놈은 아닌 거 같은데?”

“착한 놈이라. 과연 누가 나쁜 놈이고 착한 놈일까?”

“그야 내가 착한 놈이지.”

“크큭.”

짧게 웃음을 터트린 사련은 진철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빨리 안 가면 그 여자가 위험할 거다. 그래도 계속 입씨름만 하고 있을 텐가? 그렇다면 둘 다 죽여 줄 수밖에.”

“…….”

진철은 북궁아를 살펴보았다. 이곳저곳에 자잘한 상처가 있었지만 가장 큰 상처는 복부 쪽에 나 있는 상처였다. 다행히 내상은 그렇게 크지 않은 듯했지만 한 치 이상이나 베인 허리에서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여기 그대로 있어. 먼지 나게 두들겨 패 줄 테니까.”

“말로만?”

“말인지 아닌지 보면 알 테니까 여기 그대로 있으라고.”

“그래? 뭐, 안 가도 상관없지만 그 여자를 구하고 싶다면 빨리 가야 할 텐데?”

그제야 몸을 일으킨 진철은 사련을 노려보고는 주재구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주재구는 새로 등장한 사련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도병을 쥔 그의 손에 핏줄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사련을 적대시하는 것 같았다.

진철은 혀를 한 번 차고는 북궁아를 안고 몸을 날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진철이 사라지자 다시 미소를 지은 사련은 주재구를 바라보았다.

“불청객은 사라졌고… 한번 볼까? 과연 네놈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늙은이들이 사족을 못 쓰는지.”

“…토사구팽인가?”

“오! 각성에서 벗어나다니. 대단한데? 약발 좀 받은 건가?”

주재구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사련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조차도 붉은색이 아닌 타인과 같은 흑갈색이었다.

사련은 그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우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도집에서 서서히 도를 꺼내 들었다.

“단지 웃기더군. 네놈 따위가 감히 본 궁의 선봉장이라니. 근본도 모르는 놈 주제에 너무 큰 영광인 거 같더군. 그래서 이 몸이 직접 시험을 내려 보겠다, 이 말이다.”

“궁의 생각인가?”

“내가 곧 ‘궁’이고 궁이 곧 ‘나’이다.”

“…나에게 칼을 내밀면 죽는다.”

“그 몸으로?”

주재구의 몸을 훑어본 사련이 비웃음을 내비쳤다. 주재구는 진철과의 격돌에 꽤 무리가 와 있는 상태였다. 비틀거리지는 않지만 덜덜 떨리는 몸은 그야말로 그가 얼마나 한계에 와 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한번 해 봐라. 크큭, 네놈이 과연 그분의 진전을 잇고 본 궁의 무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보란 말이다!”

사련의 신형이 주재구를 향해 쏘아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주재구의 눈이 순간 붉게 물들었다.

***

진철은 북궁아를 들쳐 메고 한 손에는 그녀의 대도를 쥔 채 숲을 달려 나갔다. 대도의 무게는 꽤나 무거운 것이 이십 근은 족히 나가는 것 같았다. 이런 무게의 대도를 들고 휘두르는 북궁아가 대단하긴 했지만 지금에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었다.

진철은 방금 전에 나타난 사내에 대해서 생각했다. 북궁아는 무림에서 절정급의 무인. 그녀의 도는 상당히 묵직했고 날카로웠다. 그런 북궁아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는 것은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이다.

거기에 그는 마혈도를 아는 듯했다. 동시에 그만한 무인을 지닌 단체라면 과연 이 무림에 몇이나 있을까?

“…….”

상당히 많다. 하지만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단체라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무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진철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정확히 어디다! 라고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진철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수풀을 헤치며 경공을 계속 전개했다. 생각보다 북궁아의 상처가 심각했다. 비록 지혈은 했다지만 꽤 많은 피를 흘린 그녀의 얼굴은 파리해진 상태였다.

순간 진철은 어느 지점에서 발을 멈추며 북궁아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주변을 살펴보며 눈을 빛냈다. 주변에서 상당히 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분명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한 사람이 중얼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진철의 신형이 그에게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자하신검의 검집이 휘둘러졌다.

퍽!

“컥!”

사내는 그대로 뒤통수에 검집을 얻어맞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곧 머리를 만지며 일어난 그는 자신을 습격한 자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진철 역시 그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형님?”

“용수?”

모용수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진철을 바라보다 눈을 구겼다. 뒤통수를 만지던 그의 손에 큼지막한 혹이 느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