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습격
구염은 호가장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십 년이 넘은 무사였다. 그는 호가장에 들어와 십 년 동안 문지기의 역할을 착실하게 맡고 있었다. 장주조차 구염을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구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전방을 주시했다. 낯선 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칠흑 같은 옷에 도병을 움켜쥐고 다가오는 사내의 모습에 구염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축이 들었던 것이다.
“당신은 누구요?”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흑색의 사내에게 구염이 물었다. 그러자 흑색의 사내는 주변을 훑어보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가 호가장인가?”
“그, 그렇소만?”
“그렇군.”
구염이 수긍하자 흑색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구염이 이 세상에서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검은 선이 그어짐과 함께 뿌려지는 붉은 피.
구염은 눈을 부릅뜨며 천천히 지면에 쓰러졌다. 그 주위에 있던 무인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려라. 나 주재구가 호가장에 피의 갈채를 받으러 왔음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무인들이 제각기 병장기를 빼 들며 주재구를 경계했다.
“구, 구염 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난동을 부린단 말인가!”
“이 자식!”
호가 문도들이 검을 빼 들며 자신을 포위하자 주재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돌풍이 몰아치며 주재구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퍽!
순식간에 이동해 자신의 앞에 있는 무인의 목에 도를 쑤셔 넣은 주재구는 쓰러진 시체를 밟으며 고개를 들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서 알려라. 나 마혈도가 왔음을.”
“마, 마혈도!”
“어서 장주님께 알려!”
“이런!”
호가 문도 한 명이 내원으로 급히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재구는 시체에서 도를 뽑으며 입을 열었다.
“전령은 한 명이면 충분하겠지.”
“뭐?”
주재구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돌았다. 그는 손에 들린 마혈도에 원심력을 실으며 도를 뿌리듯 공간을 갈랐다. 그러자 도에서 검은 줄기가 악귀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의 도기에 호가 문도들은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몸이 갈라졌다.
그렇게 주재구는 사방으로 날뛰며 눈에 보이는 대로 무인들을 가르고 찔렀다.
일각. 고작 일각이 지났을 뿐인데 호가장 정문 앞에 멀쩡히 서 있는 무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 아…….”
주재구의 입에서 긴 숨이 흘러나왔다.
심장이 뛴다.
가슴이 뛴다.
머릿속은 희열로 가득 찼다.
그의 시야에 굳건하게 서 있는 호가장의 정문이 보였다. 마혈도가 검은 구름으로 휩싸였다. 주재구는 강하게 팔을 휘둘러 도에 맺힌 구름을 뿌렸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정문이 기둥에서 떨어져 나갔다. 주재구는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꽝!
“응?”
“어?”
갑작스러운 폭음에 진철 일행은 상체를 일으켰다. 기태천은 귀찮은 눈빛으로 당문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진철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진철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무슨 소리지?”
“마혈도가 왔나 보군.”
“예? 아직 자정이 되려면 시간이 좀 있잖습니까?”
모용수가 창밖을 내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문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긴 한데, 그렇다면 이 소리는 뭐겠어?”
“음…….”
진철이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뭘 고민해? 쳐 잡으면 되지.”
“아, 그렇지.”
모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자 당문기 역시 몸을 일으키며 기태천을 바라보았다. 기태천은 당문기의 시선에 다시 몸을 눕히며 눈을 감았다.
“형님께서도 함께 가시지 그러십니까?”
“싫어, 귀찮아. 자다 일어나니까 더 졸린 것 같다.”
“쩝.”
당문기가 살짝 얼굴을 구기며 입맛을 다셨다.
당문기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고는 모용수를 따라 방을 나섰다.
그렇게 당문기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기태천의 눈이 슬쩍 떠졌다. 그는 시선을 돌려 방구석을 바라보았다.
“음…….”
기태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곳에는 남궁휘가 미소를 지으며 자고 있었다.
쪼그리고 자고 있는 그의 모습에 몸을 일으킨 기태천은 자신의 머리 위에 놓인 베개를 집어 들고 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강하게 베개를 남궁휘에게 집어던지고는 재빨리 문밖으로 나갔다.
그때 기태천의 귓가로 방 안에서 터진 비명이 흘러들어왔다.
“훗, 그럼 가볍게 가 볼까.”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기태천은 당문기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누구냐!”
“마혈도.”
“뭣!”
퍽!
한 사람의 머리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자신의 이름은 밝혔고, 또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 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진 마혈도와 자신의 무위뿐!
주재구의 앞에서 두 명의 사내가 그의 허리와 가슴을 노리고 검을 그어 왔다. 주재구는 몸을 회전시키며 아래에서 위로 도를 그어 올렸다. 그러자 두 사내의 검이 반발력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퍼퍽!
마혈도가 또다시 검은 선을 허공에 그려 넣자 두 사람의 목이 떠올랐다.
“크아아악! 아, 악마!”
누군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주재구의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아… 저 얼마나 추잡한 모습이란 말인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모습이란 말인가?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이 아닌가? 저렇게 나약한 존재들이 자신을 만들었단 말인가? 자신을 일깨웠단 말인가?
주재구가 팔을 휘두르자 검과 함께 사내의 상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주재구는 도를 슬그머니 내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광소였다.
너무나 애처로웠다. 강한 바람 앞의 호롱불 같은 존재들 같았다.
“네놈들도 그땐 이렇게 생각했겠지?”
웃음을 거둔 주재구가 도를 들며 입을 열었다.
“뭐?”
슈악!
“커억!”
쓰러져 있던 무인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주재구는 도를 뻗은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약하구나. 하지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구나. 마치 바퀴벌레처럼.”
“끄아악!”
주재구의 일도에 한 명씩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이미 싸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도륙이었다.
보이는 대로 도를 긋고, 찌르고, 갈랐다. 어떤 이는 잘린 자신의 어깻죽지를 잡고 있다가 목이 날아갔고, 어떤 이는 쏘아져 오는 강기에 배가 뚫려 목숨을 잃었다.
주재구는 한 마리의 상처 입은 짐승과도 같았다.
배덕한 짐승!
소름 끼치는 악마!
“그런 네놈들이 날 악마라 부른다면! 난 악마가 되겠노라!”
그의 묵도가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갔다. 그 순간 강대한 기가 몰려들었다. 주재구의 눈이 순간 부릅떠지며 도에 맺힌 기운을 떨쳐 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물줄기. 거대한 흑룡과도 같았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엄청난 기운을 품고 있는 강기 줄기!
“마, 막아!”
“아니! 피해라! 피해야 돼!”
“끄아악!”
꽈르릉!
무인들을 집어삼킨 강기 덩어리가 지면과 충돌했다. 흙먼지와 돌풍이 흩날렸다. 오 장 넓이의 구덩이가 생겨 버린 것이다.
수많은 시체가 주변에 널려 있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광경이었다. 백여 명의 무인은 어느새 열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때 수많은 무인들이 전각에서 쏟아져 나왔다.
“후우…….”
그들을 바라보던 주재구는 들끓는 기혈을 진정시키며 숨을 내쉬었다. 너무나 강력한 공격을 연달아 펼친 것이다. 거기에 사련이 준 상처 역시 아물지 않은 상태.
체력적으로는 최악의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다. 마치 하늘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뜩 그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거대한 보름달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피식.
실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잠시 후 하늘을 바라보던 주재구의 고개가 다시 내려오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느새 수백의 무인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주재구의 발이 천천히 움직였다. 혈향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그 냄새에 모든 걱정이 날아가듯 사라진다.
아니, 걱정? 걱정 따위가 있던가?
주재구의 눈이 빛났다. 그는 묵도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자 도신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강하게 쥐었기에 손바닥이 찢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지 그의 입에 걸린 미소는 더더욱 짙어졌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감히 단신으로 호가장을 노리다니!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놈이로구나!”
주재구의 눈이 그곳을 향했다. 그러자 소리친 이가 주재구의 눈빛에 주눅이 들었는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주재구는 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이미 죽었다.”
슈악!
주재구의 눈이 붉어지며 그를 중심으로 돌풍이 몰아쳤다.
***
찻잔을 들어 올리던 금석천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벌써 찻잔을 몇 잔째 비우는 것일까? 차향이 머리를 맑게 해 준다는 차이지만 왠지 속이 나빠지는 것을 느끼는 그였다.
“한잔 더 하시겠습니까?”
제갈야가 찻주전자를 들어 올리자 금석천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제갈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
“으음… 조금 늦는군요.”
“예?”
제갈야가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금석천이 되물었다. 하지만 제갈야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장주.”
“말씀하시지요, 제갈 선생.”
떨떠름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은 금석천은 고개를 들어 제갈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금석천의 머리를 멍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장주님께서 오래전 많은 중소 문파를 모아 살겁을 행한 사실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말씀하셨잖습니까? 십오 년 전의…….”
금석천은 등 뒤로 다른 의미의 식은땀을 느꼈다. 그때의 전쟁은 분명 사파와 내통한 정파들을 멸문한다는 명분으로 알려졌었다.
“살겁이라니! 어찌 제갈 선생께서는 그것을 살겁이라 칭하는 것이오?”
금석천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그럼 살겁이 아니라면 무엇인지요?”
“그것은…….”
“훗, 좋습니다. 살겁이 아니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 일을 행한 원인이 어떤 물건을 얻기 위해서였다고요?”
제갈야는 금석천의 말을 끊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금석천의 눈이 하염없이 흔들렸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본인은 모르겠소이다. 그런데 왜 지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오? 이미 말씀드렸잖소? 그 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생긴다면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뭐, 그러셨지요. 그럼 그냥 제 혼잣말로 여기시고 들어 주시지요.”
제갈야는 차를 마셔 입을 축인 후 말을 이었다.
“마궁라는 곳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신비 문파라는 곳이지요.”
“마, 마궁!”
금석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급히 막아 갔다.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악마들의 소굴을 어찌 모르겠는가! 천궁을 인정 못하는 마인과 사파 무인들이 만들어 낸 마물들의 소굴!
“그 마궁 안에는 하나의 귀중한 보물이 있지요. 너무나 귀중해 그 보물을 탐내는 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궁 내에서 그 보물로 인해 내분이 생겨났지요.”
“그것을 어찌?”
금석천이 입을 열어 물었지만 제갈야는 미소만 보인 후 말을 이어 나갔다.
“긴 내분 끝에 그 보물은 마궁을 벗어나 이 중원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길었던 내분이 사그라지자 마궁은 다시 그 보물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제갈야는 차갑고도 짙은 미소를 지으며 금석천을 바라보았다. 금석천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장검을 향해 손을 뻗어 갔다.
“그 보물을 이 중원에서는 팔대 신기 중 하나인 마령환이라 부른다지요?”
챙!
거칠게 뽑힌 검이 제갈야의 목에 가 닿았다. 금석천은 그를 죽일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누구냐? 어찌 그 사실을 아는 것인가!”
“제가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설마… 제갈세가가 마궁에게?”
제갈야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을 살짝 매만졌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금석천의 신형이 허공에 떠오르며 벽으로 튕겨 나갔다.
꽝!
“컥!”
벽에 박힌 금석천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강력한 충격에 기혈이 뒤틀린 것이다. 그는 경악에 찬 눈으로 제갈야를 바라보았다.
“설마 제가 무공을 모를 줄 아셨습니까?”
제갈야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리 몰랐다지만 제가 시키는 대로 아군을 배치하다니. 거기에 동료가 되었다고 진과 지리에 대해서도 친절해 알려 주시더군요. 정말 우리 편이었다면 절망했겠습니다. 하하! 설마 외부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줄이야.”
“쿨럭! 이런 위력은…….”
금석천이 바람에 맞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눈으로 제갈야를 바라보았다. 믿겨지지가 않았다. 이런 무공 실력을 감추고, 또 제갈세가가 마궁에 붙었다는 사실이.
“네놈이… 이런 짓을 하고 본 장을 무사히… 빠져나가리라 여기느냐!”
금석천이 피를 토하며 제갈야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제갈야가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십수 개의 인영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장주실을 지키는 호위 무사들이었다.
금석천의 눈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살짝 벌어진 입과 부릅떠진 눈이 한순간에 절명한 모습들이었다.
툭!
천장에서 또 다른 인영이 떨어졌다.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착지한 그는 비웃음이 걸린 얼굴로 금석천을 내려다보았다.
“흐흐, 얼이 빠져 있는 모습이군. 저런 자가 성지의 보물을 지닌 자라니. 광삼 여기 도착했습니다, 제갈 선생.”
“오, 광삼! 오셨구려. 먼 길을 오느라 수고 많으셨소.”
“수고는 제갈 선생께서 더 하셨지요.”
광삼이 제갈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금석천이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힘겹게 일어났다. 검을 꼭 쥐고 그들을 경계하는 금석천의 얼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저자는?”
“마혈도지요. 정확히 말하면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마혈도.”
“뭣!”
금석천이 놀라자 광삼은 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호가장주요? 잘 부탁하오. 마혈도 광삼이라 하오. 흐흐.”
명백한 비웃음. 현재 무능력한 그를 비웃는 것이었다. 그 비웃음에도 금석천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금석천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원군인 줄 알았던 제갈세가가 마혈도와 한패고, 마궁과도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혈도가 세 명이라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군요. 하긴, 그러니까 이 계획이 성공한 것이겠지만.”
“크윽!”
제갈야의 말에 금석천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눈빛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제갈야는 이미 수십 번 찢겨져 죽었으리라.
“마혈도는 본래 셋이었습니다. 물론 그 무공을 배운 자는 더욱더 많지만, 그것은 본 궁과 관련된 일이니 여기까지만 밝히도록 하지요. 아무튼 그 세 명이 이번 중원에 이름을 떨친 마혈도들이지요. 그들은 각자 따로 행동하면서 총 일곱 개의 문파를 멸문시켰습니다. 이 호가장을 중심으로 말이죠.”
“우리를 멸문하기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문파들을 멸문시켰단 말이냐!”
“아무런 죄가 없다고요? 하하! 이제 와서 협객 놀이입니까?”
금석천과 호가장의 행적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제갈야는 그의 말을 비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나 알려 드리자면 중원에 알려진 마혈도 주재구, 그는 정말로 이 호가장과 나머지 일곱 개의 문파에 큰 원한을 지닌 무사입니다. 그는 우리 마궁으로 들어와 십오 년간 무공을 배웠지요. 그때 그를 본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어린아이의 눈에는 절망과 원한만이 담겨 있더군요. 그것도 지독한 살기로 변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크윽!”
“그를 통해 마령환의 위치를 알아낸 저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주재구에게는 자신의 원한을 갚도록 했지요. 전 제갈야의 이름을 얻고 명성을 떨쳤지요. 그리고 주재구가 복수를 하며 이 호가장으로 향할 때 이곳으로 들어와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결과가 이렇지요.”
“아무리 마궁이라 하지만 이런 일을 벌이고 무사하리라 생각하는가? 곧 무림첩이 돌아 마궁을 정벌할 것이다!”
“하하하! 무림첩입니까?”
제갈야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금석천을 가리켰다.
“이런 중소 문파 한두 개가 사라진다 해도 무림첩이 돌 것 같습니까? 하루에 수십 개의 문파가 사라지고 만들어지는 이 중원에서 말입니다.”
“으득!”
금석천은 이를 강하게 물었다. 제갈야의 말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호가장이 어떻게 해서 이 위치에 설 수 있었는지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문파를 위해 타 문파가 과연 마궁과 싸우려 할까? 이 호가장을 위해서?
“자, 이제 알고 싶으신 건 없으십니까? 마지막 가시는 길 궁금증을 풀어 드리도록 하지요.”
“동정인가?”
“물론입니다. 이 호가장을 멸문시킴으로써 저희 마궁은 다시 중원에서 날개를 펴게 될 것입니다.”
“…….”
금석천은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런 소란이 발생했음에도 아무도 장주실로 오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미 이 주위에 아군은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거기에 밖에서 울리던 소음들, 그리고 고요함. 밖의 상황은 보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죽엇!”
금석천이 갑작스레 도약하며 제갈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순간 그의 몸에서 거대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의 검끝이 허공에서 세 번의 변화를 일으켰다. 태호천강검의 오의, 태호살파검이었다.
세 가닥으로 나뉜 붉은 빛이 제갈야의 급소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 순간 금석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손으로 그 어떤 감각도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콰쾅!
제갈야가 앉아 있던 자리가 초토화되며 집무실의 문짝이 갈기갈기 찢겨져 날아갔다.
“우웩!”
금석천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후우, 엄청나군요.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설마하니 동귀어진이라도 할 생각이었습니까?”
어느새 금석천의 뒤로 피한 제갈야는 실소를 머금었다.
“이, 이놈! 커헉!”
몸을 돌리던 금석천의 입에서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기혈이 뒤틀린 상태에서 한 번에 모든 기를 끌어 올려 심각한 내상을 입고 만 것이었다.
“이런, 무리하지 마시지요. 곧 편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제갈야는 웃음을 흘리며 금석천의 머리를 잡아 갔다. 금석천은 그런 제갈야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지만 그것에 눈 하나 깜짝할 제갈야가 아니었다.
“잠깐, 제갈 선생. 이놈을 제 손으로 죽여도 되겠습니까?”
“음… 뭐, 딱히 상관없겠지요. 좋습니다.”
제갈야는 금석천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광삼이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도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내가 비록 무림에 나와서 수많은 쓰레기들을 치워 봤다지만 한 문파의 우두머리는 치워 본 적이 없어. 과연 그 맛이 어떠할지 기대가 되는군. 크크크!”
광삼은 도를 늘어트리고 금석천에게 속삭였다. 그러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금석천의 머리 위로 도를 거꾸로 치켜들었다.
“지옥에서 누가 묻거든 이 광삼 님께서 보내 주셨다고 해라.”
광삼의 팔이 크게 올라갔다. 그리고 벼락같이 내리꽂았다.
땅!
그 순간 쇠가 부딪치는 맑은 소리와 함께 광삼의 신형이 뒤틀렸다. 그로 인해 금석천의 백회혈을 노리던 칼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말았다.
광삼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내려치는 순간 무언가가 자신의 도를 훑고 지나간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 외에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누구냐!”
제갈야와 광삼의 시선이 집무실 문으로 쏠렸다. 그때 너덜너덜해진 문지방으로 하나의 손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그 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웬만해서는 그냥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밥은 얻어먹었으니 밥값이라도 해야겠지. 쯧!”
산적같이 부스스한 수염을 지닌 중년인이 머리를 긁으며 문턱을 넘어왔다.
“누구십니까?”
“나?”
제갈야가 묻자 사내는 크게 하품하고는 거만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기태천.”
“검왕?”
제갈야의 눈이 살짝 빛났다. 설마 이런 문파에 기태천까지 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니, 이곳에 검왕이 왔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사실이었다.
“네놈이 삼왕 중 하나라는 검왕이냐!”
그때 광삼이 기태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도에 검은 구름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광삼은 강하게 휘둘러 떨쳐 냈다.
“흥!”
코웃음을 내뱉은 기태천의 손에 어느새 한 자루의 검이 들렸다. 그의 검이 하단전을 향해 내려갔을 때 기태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서걱!
하얀 섬광이 공간을 자르며 지나갔다. 그것은 날아오는 검은 도기조차 잘라 버리며 광삼을 스치듯 지나갔다. 찰나의 시간이었다.
“이, 이게 무슨?”
광삼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기태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기태천은 그에게 슬쩍 시선을 주더니 곧 거둬 버렸다.
“무엇입니까?”
제갈야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분광검.”
“…하하! 곤륜파의 기본 공입니까?”
제갈야의 말에 광삼의 눈이 부릅떠졌다. 곤륜파의 기본 무공에 자신의 도기와 도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광삼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기태천의 검은 그의 몸조차 갈라 놨던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갈야가 다시 기태천을 바라보았다.
“무공을 펼치는 건 사람이란 겁니까? 이거 소문이 잘못 퍼진 것 같군요. 이 정도면 삼왕의 수준을 넘어 칠성의 수준이 아닙니까?”
“그런가? 뭐, 상관없겠지.”
기태천은 천천히 검을 내려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제갈야를 가리켰다.
“선배 대접은 기대도 마라. 배신자 따위에게 줄 예의는 없으니까. 그럼 후딱 끝내자고.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올래?”
기태천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입을 열자 제갈야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어째서 검왕이 이곳에 왔다는 정보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은 거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정말 왜 검왕이 이곳에 있는 거란 말인가? 설마 마령환을 노리고? 마령환의 존재를 이미 팔파가 알아차렸단 말인가?’
제갈야의 시선이 살짝 광삼의 시체를 스쳐 갔다. 분명 명성을 뛰어넘는 실력이었다. 거기에 장소도 좋지 않았다. 제갈야는 빨리 마령환을 확보하고 몸을 빼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빨리 끝내고 자자고. 에잉, 뭔가 재밌는 일이 있을 줄 알고 따라왔더니만 피만 보네.”
기태천은 얼굴을 구기며 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검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안 온다면 내가 먼저 가도록 하지.”
기태천이 내공을 끌어 올리자 그의 주위로 미풍이 몰아쳤다. 그 모습에 제갈야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잠…….”
벼락을 자르고 바람을 가르는 하나의 빛줄기가 제갈야의 말을 끊고 공간을 가로질렀다. 순간 제갈야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그의 양손에 거대한 기가 모여들었다.
‘피하면 죽는다!’
콰앙!
***
“크르르…….”
춥지도 않은 날씨건만 주재구의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그의 붉은 눈이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그의 시선이 닿은 무인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소문이 사실이었던가!”
“사, 살성이라니!”
무인들은 경악을 하면서도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그때 한 사내가 이를 악물며 진열에서 뛰쳐나왔다.
“사형의 원수!”
사내가 주재구를 향해 달려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하나의 섬광이 되어 주재구의 목을 노리고 허공에 선을 그렸다.
카각!
거친 소리와 함께 사내의 검이 도중에 멈춰 섰다. 주재구가 도를 들어 그의 검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내는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주재구를 압박했다. 하지만 주재구의 주위에 무슨 벽이라도 쳐진 듯 그의 검은 불꽃을 튀겨 내며 튕겨 나갔다.
자신의 검이 계속하여 막히자 사내는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는 주재구를 향해 내려쳤다.
“크아!”
그때 주재구의 입에서 기합이 터지며 그의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 순간 검은 섬광이 사내의 검을 부러트리며 그의 몸도 함께 갈라 버렸다. 그리고 그 주위로 돌풍이 몰아쳤다.
그 돌풍으로 인해 먼지바람이 주재구와 무인들의 사이에서 몰아치며 시야를 가렸다.
슈각!
주재구의 몸이 먼지바람을 뚫고 질풍처럼 몰아쳤다. 그의 도가 한 번씩 허공을 그을 때마다 무인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를 막을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파훼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알려진 살성의 눈앞에 그들의 무공은 의미 없는 칼부림에 불과했다.
거기에 한번 각성한 살성은 무자비한 살심과 함께 강력한 힘을 뿜어내는 존재.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존재였다. 마치 양들 속에서 뛰어다니는 늑대와도 같았다.
“크아!”
또다시 주재구가 괴성을 내지르며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의 도에서 검은 바람이 쏘아져 가며 수 명의 무인들을 난도질했다.
“마, 막아! 막으란 말이다!”
한 사내가 외쳤다. 그는 호가장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자인 듯, 가장 멀리서 다른 이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무인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점점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그때 어느 한 인영이 그들을 스치듯 지나가며 주재구를 향해 달려갔다.
주재구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 역시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런 주재구의 붉은 눈에 자색의 강기가 들어왔다.
콰광!
자색의 강기를 주재구에게 날린 인영은 장 안에 내려서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 미친놈!”
진철은 이를 갈며 욕을 내뱉고는 또다시 몸을 움직였다. 먼지 속에서 붉은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주재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진철의 신형이 순간 두 개로 나눠지며 그를 압박했다. 강기 덩어리를 날리며 주변을 초토화시키던 진철이지만 주재구의 몸에 닿기는커녕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고 있었다.
“맞아라. 좀!”
진철의 자하신검이 일순간 강하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주재구의 붉은 눈이 이채를 발했다.
“헛!”
서걱!
다급하게 몸을 숙인 진철의 머리 위로 검은 섬광이 뻗어 나갔다. 그 섬광은 진철을 지나쳐 그 뒤에 서 있는 무인들에게 쇄도했다.
“커억!”
“아악!”
비명 소리에 주재구의 시선이 돌아갔다. 주재구의 강기에 몸이 터지는 무인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비규환!
주재구의 도에서 강기가 쏟아질 때마다 무인들은 비명을 질렀고, 피가 튀었다. 각성한 주재구의 강기를 온전히 막아 낼 실력자가 그들 사이에는 없었다.
“응?”
순간 진철의 시선이 다시 주재구를 향했다. 진철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느새 그의 지척으로 다가와 가슴을 향해 갈라 오는 검은 도를 본 것이다.
진철은 급하게 몸을 뒤로 눕히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러고는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강하게 차 내 주재구를 향해 다가갔다.
자색의 강기에 둘린 검집이 턱에 자리 잡은 염천(鹽泉)혈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검집이 턱에 닿는 순간 진철은 급히 검집을 거두며 오른발을 축으로 회전했다. 주재구의 도가 공격을 무시하며 진철의 허리를 갈라 왔던 탓이다.
‘뭐 저런 놈이!’
얼굴을 구긴 진철의 눈이 또 한 번 부릅떠졌다. 그가 옆으로 돌아가자 주재구가 도를 꺾어 다시 그의 허리를 갈라 왔다. 진철은 이를 악물며 급히 자신의 왼팔에 검집을 대며 그 도를 받았다.
펑!
가죽 주머니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주재구의 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회전하며 검은 구름에 휩싸였다. 그러고는 강하게 검은 구름을 떨쳐 냈다.
순간 진철의 신형이 갑작스레 바닥으로 꺼졌다. 극성의 천근추를 펼쳐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대상을 잃은 강기 덩어리는 허공을 가르며 또다시 무인들에게 작렬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비명이 터지며 피와 살점이 허공을 수놓았다.
‘너무 피해가 커!’
귓가에 들리는 비명 소리에 진철은 강하게 발을 차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주재구를 향해 강기를 날렸다. 하지만 주재구는 가뿐하게 강기를 흘려버렸다. 그러고는 진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진철은 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급히 몸을 돌리며 장내를 벗어났다. 그를 유인해 다른 곳에서 싸우기 위함이었다.
“엄청나군.”
한숨처럼 말을 내뱉은 당문기는 고개를 내저으며 오른팔을 주물렀다. 간간이 자신들을 향해 쏘아져 오는 강기를 흘려버린 팔이 찌릿하게 저려 오다 못해, 한기에 노출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마혈도를 쫓을까 생각했지만,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그를 따라간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다.
“후우…….”
그 옆의 모용수 역시 납검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여기서 격전을 벌였다면 과연 살아 있는 이가 몇이나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홀로 떠돌아다니며 살생을 행하는 마혈도의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닐까 했지만, 이건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가 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진철 형님의 무공이 저 정도였다니. 미처 몰랐습니다.”
“그건 나도 그래.”
모용수의 말에 대답한 당문기는 어느새 지붕을 넘어 저 멀리 사라지는 진철의 등을 바라보았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더니. 과연 천하제일이라 불리던 화산파란 말인가?”
‘내가 저 자식 잡으면 삼대를 부려 먹어 주마!’
진철은 속으로 소리를 질러 대며 급히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가며 흙더미가 솟구쳤다.
진철의 시선이 슬쩍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광기에 휩싸인 주재구가 마혈도를 휘두르면서 연신 도기를 날리며 쫓아오고 있었다.
‘저 자식은 지치지도 않나!’
진철은 이를 악물며 강하게 발을 차 더욱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약 일각을 달린 진철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바로 앞에 절벽이 자리 잡고 있어 더 이상 달리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이 정도까지 달려왔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그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응?”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예기에 급히 몸을 숙인 진철의 머리 위로 두 갈래의 검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진철은 혀를 차며 몸을 돌림과 동시에 검기가 덮인 검을 휘둘렀다. 도기의 뒤에 거대한 기운이 따라온 것을 느낀 것이다.
꽝!
강렬한 폭음과 함께 진철의 신형이 뒤로 물러섰다. 주재구가 달려온 속도 그대로 도를 휘두른 탓이다.
진철은 손목이 저려 오는 것을 느끼며 눈살을 구겼다. 그런 진철에게 주재구가 또다시 달려들었다.
훙!
가공할 파공성과 함께 진철의 신형으로 세 개의 도가 떨어졌다. 진철은 도에 실린 강력한 기세에 보법을 밟아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애꿎게 바닥을 내려친 주재구의 눈에 기광이 서렸다. 다시 바닥을 박찬 그의 신형이 갑작스레 빨라지며 진철을 향해 쇄도했다.
팟!
그 순간 뒤로 물러날 줄 알았던 진철이 주재구에게 달려 나가며 팔을 뻗었다. 비록 검집이라지만 검기가 둘려져 있는 상태.
주재구는 흠칫 놀라며 황급히 도를 그었다. 그러자 진철의 신형이 주재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검로를 바꿔 주재구의 도를 흘리고 그의 뒤를 점했다.
슈악!
주재구의 등 뒤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의 등 뒤로 검기를 날린 것이다.
주재구는 몸을 돌리며 도에 내공을 실어 넣고는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진철이 뿌린 검기가 주재구의 도에 맞아 공중에서 소멸되었다.
“흡!”
검기를 소멸시키고 그를 찾던 주재구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눈앞에 거대한 강기 줄기가 떨어져 내린 것이다.
주재구는 이를 악물며 강하게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강기 줄기는 주재구가 아닌 그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먼지가 피어오르며 주재구의 시야가 가려졌다.
주재구는 뒤로 몸을 날리며 거칠게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먼지가 도풍에 휩쓸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재구는 황급히 진철을 찾았다. 그런 그의 시야에 허공에 떠 있는 진철의 모습이 잡혔다.
주재구는 급히 내공을 끌어 올리며 팔을 휘둘렀다. 진철의 검에 자색의 기운이 중첩되며 뭉치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결코 평범한 기운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를 한껏 끌어 올린 진철은 날아오는 도기와 주재구를 바라보며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후웅!
강기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과 같이 밝은 빛을 뿜어내며 검은 도기를 깨트리고 주재구에게 작렬했다.
콰과광!
강기 덩어리가 작렬한 곳을 중심으로 삼 장의 구덩이가 파일 정도로 강력한 공격에,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들썩이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후우…….”
바닥에 착지한 진철은 요동치는 내공을 다스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천천히 눈을 뜨는 그를 중심으로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화산검결의 개화였다.
“어두운 밤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본 적이 있는가?”
검집에서 나오고 싶은지 자하신검이 검명을 토해 냈다. 진철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쓰다듬듯 자하신검을 만졌다.
“그런 안개 속에서 피어오르는 자색의 꽃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던 진철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그곳에는 꽤나 강한 충격을 받은 듯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주재구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더욱더 불타오르듯 붉은빛을 토해 내고 있었다.
“오게나. 자네에게 생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도록 하지.”
팟!
진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주재구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하지만 진철은 당황하기는커녕 부드럽게 자하신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칵!
검은 도와 자색의 검집이 부딪치며 거친 소음을 만들어 냈다. 어느새 주재구가 진철의 지척으로 다가와 도를 휘두른 것이었다.
한 번의 공격이 막히자 주재구의 신형이 또다시 사라졌다.
카각! 끼익!
자하신검이 흐름을 타듯 부드럽게 허공을 가르자 어김없이 주재구의 도가 튕겨 나갔다. 마치 검막과도 같았지만 그렇게 거칠지도 날카롭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온몸을 가리며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엔 자하신검이 진철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러자 검은색의 도가 나타나 자하신검에 부딪치며 사라졌다. 그렇게 수십 번의 부딪침 끝에 주재구의 도에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우웅!
주재구의 마혈도가 도명을 토해 내며 거칠게 떨었다.
사련과의 격돌부터 쉬지 않고 내공을 뿜어내어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어느새 선천지기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껏 기를 끌어 올린 주재구의 도가 더욱 날카롭고 거칠게 진철의 전신을 베어 갔다. 하지만 주변만 황폐해질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주재구의 몸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다.
점점 신체의 한계가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도에 맺힌 강렬한 기운은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개화.”
주재구의 도에 맺힌 도강이 일 장의 길이로 길어지자 진철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으며 팔을 허공에 부드럽게 그었다. 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은 움직임.
그런 그의 움직임은 어느새 하나의 꽃봉오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크앙!”
주재구의 입에서 포효가 터져 나오면서 도를 눕히며 베어 왔다. 쏜살같은 빠르기!
진철은 부드럽게 검을 휘두르며 도강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꽃봉오리가 활짝 피었다.
번쩍!
빛.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단지 강한 빛만이 마혈도와 자하신검 사이에서 터져 나오며 주변을 물들였다. 그리고 그 빛이 서서히 사그라지며 맞닿은 진철과 주재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
“…….”
진철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주재구의 신형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쿨럭!”
무릎을 꿇은 주재구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각혈하던 주재구는 고개를 들어 진철을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은 어느새 평범하게 되돌아온 상태였다.
“어… 떻게 한 거지? 왜 파훼법이 보이지 않는 거지?”
주재구의 눈이 흔들거렸다. 비록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몸의 제어가 되지 않았을 뿐.
주재구의 물음에 진철이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비롭고도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의 입이 열렸다.
“네가 도를 알아?”
“…….”
“도를 알면 돼, 도를.”
“…….”
주재구는 목에서 터져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키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지만 선천지기까지 태워 가며 날뛰었던 몸치고는 너무나 가뿐했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주재구는 진철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네놈이 한 건가?”
“왜? 그럼 안 돼?”
“어떻게 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짓을 했군.”
“어째서?”
“내가 돌아갈 곳은 없다. 마궁에서조차 버림받은 몸. 내가 살아갈 의미는 오로지 복수뿐이었다. 호가장 그놈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네놈 때문에 이루지 못했지. 이런 내가 살아갈 의미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말을 듣던 진철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신음성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끙… 지랄 옆차기 하고 있네.”
“뭐?”
“살아갈 의미가 없긴 왜 없어?”
진철의 눈이 주재구를 향했다. 주재구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그에게 완전히 발가벗겨져 버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 살아 있다는 자체가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걸 모르겠나?”
“…….”
“네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었다면 넌 이미 죽었어.”
진철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넌 살았지. 왠지 아나?”
“……?”
“네놈이 허무하게 죽어 버리면 너에게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 네놈이 그들을 죽였으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 할 것 아냐?”
“그들은 나의 원수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을 위해 살아가야 하지?”
“원수? 원수 좋아하네!”
진철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다가오자 주재구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듣기에는 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고 했다. 그럼 꼬맹이나 가축들도 네놈의 원수냐?”
“다, 당연하다.”
“그래? 그럼 그들이 너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했나?”
“그건…….”
“그들이 직접 해를 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가문, 혹은 같은 단체에 속해 있기에 죽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거냐?”
“…….”
“이야~ 너 진짜 비겁한 놈이구나?”
“뭣!”
주재구가 발끈하며 진철을 노려보았다. 그에 진철은 콧방귀를 뀌고 사납게 그를 마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누구도 죽을 이유는 없었어! 같은 가문이기에 죽을 이유가 있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네놈이 그들을 죽였던 것은 단지 너의 힘이 부족하여 약한 사람을 노린 것이거나, 너의 분노를 참을 수 없기 때문에 타인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겠지!”
“그게 무슨!”
“잘 들어라! 이 피에 미친놈아! 시골에서 밭을 갈고 있는 노인도, 객잔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점소이도, 하물며 그들에게 구걸을 하는 거지들도 살아갈 의미는 충분히 있어! 결코 자신을 제어하지도 못하는 미친놈에게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단 말이다! 넌 단지 복수라는 변명으로 피를 갈구한 살인마에 불과해!”
“뭐… 라고?”
진철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주재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살인마라고? 아니야. 난 복수를 한 것뿐이다!’
십수 년간 오로지 복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뜯겨 나가도 오로지 복수를 위해 견디고 살아남았다. 그런 자신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자신에게 단순한 살인마라 칭하고 있다.
주재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억울하다. 왜 살인마라 불려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정정당당한 복수가 아니었던가? 내 부모를! 내 동생을! 내 삶을 앗아 간 자들에게 내려진 복수의 철퇴가 아니었단 말인가!
“네놈이 대체 뭘 안다는 것이냐!”
“물론 아무것도 모르지. 하지만!”
숨을 크게 들이쉰 진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적어도 이 사실만은 알고 있어! 넌 지금까지 복수를 해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의미 없는 살생만 해 왔다는 것을!”
“괴변이다!”
“괴변 좋아하네! 그렇다면 네 복수의 대상과 지금 너의 차이가 대체 뭐지? 똑같이 당했으니 똑같이 돌려주겠다는 건가?”
“…….”
“그리고 그렇게 복수를 이뤄 낸 널 보며 너희 부모님들이 좋아라 하실 것 같나?”
“그들은…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 갔다. 내 부모는 물론 나의 동생, 그리고 내 가문의 식솔들까지. 심지어 살아 있는 짐승들까지 죽였다. 그런데 내가 그들과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건가?”
“물론!”
“어째서?”
“그들에게 복수하려면 그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
진철의 말에 주재구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치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말을 잃은 주재구는 고개를 숙였다. 왠지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가슴이 답답해져 마혈도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주재구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는 대체 무엇이지? 살성이라 불리는 내가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면 복수를 하면 되지 않나? 지금처럼 이런 미친 짓이 아니라 진정한 복수를 말이다.”
“…….”
“물론 그 전에 죗값을 치러야겠지. 너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어 간 사람들에게 말이지.”
진철의 말에 주재구는 뭔가 고민하듯 고개를 숙이더니 곧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바닥에 박혀 있는 마혈도를 빼 들었다.
“네 이름은?”
“진철. 화산파 장문인이다.”
“화산? 훗, 그들에 대한 죗값은 내가 갚도록 하겠다. 그리고 나의 복수 역시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에는 호가장주를 직접 노리도록 하지. 전해 주도록.”
“네가 직접 전해.”
그렇게 말한 진철이 주재구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 순간 눈을 부릅뜨며 몸을 뒤로 젖혔다. 주재구가 갑자기 팔을 휘둘러 도기를 날려 온 것이다.
“이 자식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네 말, 기억하도록 하지. 그리고 너 역시 나의 복수를 막은 적이다.”
“뭐?”
의문을 품는 진철의 눈에 땅을 박차고 뒤로 몸을 날리는 주재구의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진철이 재빨리 절벽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의 눈에 천천히, 하지만 아주 빠르게 하강하는 주재구의 모습이 잡혔다.
주재구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다가 하나의 점으로 변해 곧 사라졌다. 진철은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길! 뭐, 이런 게 다 있어!”
울분에 찬 목소리가 절벽으로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다.
***
“쯧, 도망갔나?”
기태천은 얼굴을 구기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먼지들이 그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주변을 훑어본 기태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금석천을 바라보았다. 금석천은 내상이 심각하게 도졌는지 연신 검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 당신은… 컥!”
금석천은 입을 열다 다시 피를 뿜어냈다. 그 모습에 기태천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내상이 너무 심해 보였다.
“얼굴을 보니 죽겠나 보군.”
짧게 말한 기태천은 금석천에게 다가갔다. 금석천의 고개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많이 아픈가? 내가 도와주겠네. 어서 운기를 하게나.”
금석천은 기태천이 자신의 뒤로 돌아가자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취했다. 양손을 모아 내공을 끌어 올려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운기조식을 시행했다.
그때 금석천의 귓불이 꿈틀거렸다. 기태천의 말이 들려온 것이다.
“사람의 운은 천명이라고 하지. 하지만 내가 자네를 위해서 그 천명을 조금 늦춰 주겠네. 어떤가?”
“…….”
“딱 열 냥만 주게나.”
“……!”
기태천의 신형이 살짝 흔들렸다. 열 냥이라는 말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은자 열 냥이겠는가?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정파의 기둥이라는 곤륜파의 제자가 재물을 탐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검왕이라면 인덕과 명망이 높은 도사 중의 도사라 소문나지 않았던가?
‘도사는 다 말코 도사라더니.’
금석천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몸만 떨고 있었다.
기태천이 금석천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재빨리 그의 등 뒤로 손을 갖다 붙이며 말을 이었다.
“내상이 생각보다 심각한가 보군! 이대로라면 잘못하면 폐인이 될 수도 있겠어! 어쩔 수 없지. 열닷 냥으로 올리겠네. 그래도 되겠나? 응? 몸이 더 강하게 떨리는군! 그럼 그렇게 허락한 것으로 알겠네.”
기태천의 손에서 거대한 기가 몰아치며 금석천의 몸으로 들어왔다. 금석천은 거대한 기가 자신의 내공을 이끄는 것을 느끼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 기태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 그리고 조금 전 그 이야기는 이따가 자세히 들어야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