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에 계속
목차
제20장 폭풍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다
제21장 청풍장의 바보
제22장 같은 손님이라고 목적 또한 같은 것은 아니다
제23장 굳은 의지는 천검(天劍)에 못지않다
제24장 전장 속으로
제25장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제26장 천무제
제27장 태동하는 화산
후(後)
제20장
폭풍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다
“꿀꺽!”
누군지 모르지만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주변이 너무나 조용한 탓에 그런 작은 소리조차 크게 들린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찾으려거나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눈앞의 존재는 충분히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하아아!”
추운 날도 아닌데 하얀 입김을 내뱉은 존재는 숨을 크게 들이켜듯 고개를 뒤로 젖히곤 양팔을 벌려 가슴을 부풀렸다.
“으윽!”
한도군은 어느새 흠뻑 젖은 손으로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럼에도 떨려 오는 몸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심해지고 있었다.
‘대체 저건 무슨… 응?’
그때 한도군의 눈이 크게 떠지며 그의 시야에 진철의 모습이 들어왔다.
치이익!
진철의 전신 곳곳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상처가 점점 아물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불로 지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진철의 전신에 새겨진 상처가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상처가 아물자 진철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왔다.
저벅!
진철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한도군을 비롯한 칠무회의 무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킥!”
그 모습이 웃겼는지 진철이 실소했다. 하지만 한도군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진철이 한 발 앞으로 다가온 순간 보이지 않는 벽이 다가오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 것이다.
저벅!
진철이 한 발 더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한도군의 눈이 부릅떠졌다.
퍽!
옆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에 한도군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사가 머리가 사라진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진철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킥!”
진철이 다시 웃음을 흘렸다. 한도군은 바닥을 박차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모두 피햇!”
한도군이 외치자 주변에 있던 무사들이 모두 바닥을 박차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 진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자색의 불길이 타올랐다.
화악!
자색의 불길이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한도군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양팔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서서히 눈을 떴다.
“이, 이럴 수가…….”
주변을 바라보던 한도군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수많은 무사들이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체의 어딘가가 사라진 상태였다. 순식간에 한도군이 데려온 무사들 중 반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한도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철을 찾았다. 그를 찾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철은 시체들의 중앙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가 쥔 검에서는 핏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괴, 괴물!”
한 무사가 뒷걸음쳤다. 진철은 그런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 순간 한도군이 다급하게 자신의 수하에게 외쳤다.
“피햇!”
“예?”
서걱!
한도군의 말에 고개를 돌리던 무사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은 것이다.
“크크크…….”
웃음을 내뱉은 진철의 흰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런 그의 신형이 살짝 흔들렸다.
“헉!”
진철이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숨을 들이켠 무사는 급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자색의 섬광이 그의 검과 함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쩌엉!
“컥!”
외마디 음성과 함께 무사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검과 함께 그의 몸을 갈라 버린 것이다.
“으악!”
또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한도군과 무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진철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주춤!
“으으!”
무사들이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뭉쳐 들었다. 불타올랐던 사기는 적의 절대적인 모습에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졌다.
서걱!
“크아악!”
핏방울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이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으, 으아아아!”
무사 한 명이 겁에 질려 이성을 잃었는지 괴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리를 놀렸다. 한도군은 수하의 그런 행동에 다급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자색의 섬광이 그의 등에 꽂혀 들었다.
퍽!
“컥!”
도망가던 무사는 등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다리가 엉키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러곤 천천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올라타고 있는 것처럼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히익!”
무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등에 올라탄 진철이 얼굴을 들이 내밀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진철의 얼굴 사이에는 약 한 치의 공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키키킥!”
진철이 하얀 이를 내밀며 웃자 무사는 자리를 벗어나고자 양팔을 마구 휘저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행동에 불과했다.
서걱!
눈물 콧물 다 흘리던 사내의 행동이 갑작스레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지며 바닥을 굴러갔다.
“하아아!”
무사의 목을 베고 몸을 일으킨 진철은 검을 얼굴 근처에 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치 진한 혈향을 맡듯이.
“죽어 버려!”
“으아아!”
다섯 명의 무사들이 진철에게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초식도 없는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지만 그들이 뿌리는 검에 진철이 맞을 리가 없었다.
문뜩 진철이 그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순간 진철의 팔이 잔상을 일으켰다.
쩡!
“크헉!”
검을 휘두르던 사내가 검과 함께 반 토막이 났다.
사내의 몸이 허물어진 순간 진철의 신형이 사라지며 그의 뒤에 나타났다. 뒤따라오던 무사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헉!”
무사는 갑작스레 나타난 진철의 모습에 숨을 들이켜며 검을 날렸다. 아무런 힘도 실리지 않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진철이 한 발 옆으로 옮기자 무사의 검이 그의 옆으로 지나갔다. 그것이 무사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서걱!
가볍게 휘두른 진철의 검에 무사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진철은 쓰러져 가는 그를 응시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앞에는 셋의 무사가 주춤거리며 검을 들고 서 있었다.
“키키키!”
그 모습이 웃긴지 진철에게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무사들은 주춤거릴 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팍!
그때 진철이 갑작스레 앞으로 뻗어 나왔다. 무사들은 다가오는 진철의 모습에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섬광이 날아감과 동시에 진철의 팔이 움직였다.
퍼퍼퍽!
세 개의 점이 날아 들어오는 섬광을 뚫고 날아갔다. 그 점은 무사들의 이마에 하나씩 꽂혀 들어갔다.
털썩!
무사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진철은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는 한도군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서 있었다. 언뜻 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정예라고 칭할 수 있는 자신의 수하들이 전멸당한 것이다. 절대십오인이나 그런 초절정고수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한도군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철은 한도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 마치 찌를 수 있으면 찔러 보라는 듯.
꾹!
검을 쥔 한도군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찌른다!’
한도군의 눈이 반짝이고 손에 들린 검은 광채를 발했다.
우웅!
한도군의 검강이 반 장 가까이 솟아났다. 검강의 강력한 힘에 한도군의 검이 쉴 새 없이 진동을 일으켰다. 한도군은 검에 실린 내력을 느끼며 앞으로 뻗어 나갔다.
“죽어!”
퍽!
진철의 등 뒤로 날카로운 검이 튀어나오며 피가 튀었다. 한도군은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들었다.
“쿨럭!”
“큭!”
진철의 입에서 핏덩이가 뿜어져 나와 한도군의 얼굴을 적셨다. 하지만 한도군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진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때 진철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웃어?’
한도군은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재빨리 검을 놓으며 물러섰지만, 그보다 더 빨리 자색의 불길이 그를 휘감았다.
“크아악!”
한도군은 몸이 타는 냄새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제기라알!”
한도군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타들어 가는 고통에 무릎을 꿇은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내력을 끌어 올려 자신을 태우는 불길에 저항했다. 그때 한도군의 찡그러진 눈에 진철의 모습이 들어왔다.
치이익!
진철은 자신의 배에 꽂힌 검을 서서히 뽑아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곳에서 자색의 연기가 흘러나왔다.
쨍그렁!
결국 검이 완전히 뽑혀 나오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한도군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검에 의해 구멍이 뚫린 진철의 배가 연기를 풍기며 서서히 아물어 가는 게 아닌가.
‘진짜 괴물이란 말인가?’
한도군은 천천히 걸어오는 진철을 절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검강조차 통하지 않는 상대를 어찌 이기란 말인가?
‘아니면 이것이 각성한 자하신검의 힘이라는 건가?’
한도군은 진철의 검을 바라보았다. 자색으로 물들어 검에 새겨진 무늬와 함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검.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사신의 검이었다.
그런 사신의 검이 천천히 올라갔다. 어느새 다가온 진철이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도군은 진철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진철은 마치 유언이라도 하라는 듯 검을 들어 올린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한도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넌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야, 새끼야…….”
서걱!
한도군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담겨져 있었다. 진철은 그런 한도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 머리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크크큭!”
거친 웃음소리. 진철은 검을 한도군의 머리에서 빼내며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진철의 고개가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크아아아아!”
양팔을 벌리며 고개를 젖힌 진철에게서 비명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