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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26/29)

제25장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해가 밝자 주위가 상당히 시끌벅적해졌다. 한시라도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만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분주함은 객잔 내 방 안까지 들려왔다.

“오늘 본진에서 전서가 날아왔다.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어 이 장안을 향해 천천히 진격한다는 소식이다. 아마 내일 오후쯤이면 그들이 당도할 것이고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

황보웅이 의문을 표하자 장춘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찰도 내일로 끝날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라. 오늘도 역시 어제처럼 행동해 주길 바란다. 또다시 말하지만 언제나 주의하도록 하고 최대한 자신을 숨기도록.”

“예!”

장춘식의 말에 무인들이 낮고 힘 있게 답했다. 장춘식은 진철을 바라보았다.

“진 장문인은 당문기와 함께 행동하시오. 그게 장문께서도 편하실 터이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진철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장춘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가거라. 말했다시피 일이 생기면 그 즉시 이곳으로 와 보고를 해야 한다.”

“예!”

사내들은 각자 배낭을 등에 짊어지곤 누리끼리한 천으로 이마를 감았다. 영락없는 행상인의 모습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형님.”

“음!”

진철이 당문기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당문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짐을 지고 방을 나섰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객잔 안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운 밖의 상황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상한데…….’

당문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용하다는 것만 빼고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환경. 하지만 그 조용한 것이 이상했다.

‘기분 탓인가.’

“왜 그러십니까?”

뒤따라오던 모용수가 묻자 당문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어서 가자꾸나.”

멈췄던 발을 다시 옮겨 계단을 밟은 당문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기분 탓으로 넘기긴 했으나 이상한 감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전신을 점점 조여 오는 듯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예?”

당문기가 얼굴을 구기며 말하자 진철이 그를 바라보았다. 당문기는 다시 주변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느냐?”

“글쎄요. 배가 고픈 것 외에는…….”

“금세 먹고 또 배가 고프더냐?”

“그러게 말입니다. 요새 걸신이 들었나 봅니다.”

진철이 배를 문지르며 말하자 당문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객잔 문을 바라보니, 마침 행상인으로 변장한 무인 하나가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순간 당문기의 눈이 커졌다. 진철 역시 뭔가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려 문을 쳐다보았다.

“피해!”

당문기는 문 사이로 번쩍이는 빛을 보며 소리쳤다.

“예?”

당문기의 말에 손을 뻗던 무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가 이생에서 본 마지막이었다.

콰앙!

거대한 기운이 객잔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조금 전까지 문이었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쿠르릉!

잔해가 주변을 뒤엎었다. 얼마나 강한 일격인지 피하지 못한 자들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어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저벅!

약 삼 장의 넓이로 뚫려 버린 문으로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학사복을 갖춰 입은 학자풍의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척!

손을 흔들어 부채를 핀 그는 먼지를 털어 내듯 팔을 휘저었다.

후웅!

“크읏!”

당문기는 갑작스레 몰아치는 바람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마치 태풍이라도 부는 듯 강력한 바람이었다.

‘엄청난 기운이다!’

당문기는 전신을 휩쓸고 가는 기운에 소름이 돋아났다.

꽝!

순간 당문기의 뒤에서 소음이 터졌다. 곁눈질로 뒤를 보자 이 기운을 느꼈는지 장춘식이 검을 들고 뛰쳐나와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장춘식은 부릅뜬 눈으로 등장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돌풍이 지나가자 객잔 안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해졌다. 이 고요함을 깨기 싫은지 사람들은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중년인은 행상인으로 변장한 무인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버러지들…….”

그들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잘도 이곳까지 숨어 들어왔구나. 본래라면 한밤중에 숨통을 끊어 놓으려 했다만, 너희들의 정성을 생각해 아침까지 기다려 주었노라.”

마치 이 상황을 감사하기라도 하라는 듯 중년인은 여유 있게 입을 열었다.

“자네는 누군가?”

장춘식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중년인은 고개를 올려 그런 장춘식을 바라보고는 소리 나게 부채를 접었다.

“칠무회 일성(一星) 전소! 그러는 그대는 누군가?”

“……!”

장춘식은 눈앞이 암담해졌다. 결국 칠무회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아니, 이런 상황으로 보아 그들은 자신들이 장안에 들어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즉, 그들의 손안에서 놀아난 꼴이 된 것이다.

전소는 흑백쌍면이라고도 불리며 두 가지의 얼굴을 지닌 소유자라 알려져 있었다. 평소에는 학자처럼 얌전하지만 무언가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마치 악귀처럼 행동하는 그였다.

“무당의 장춘식이네.”

“무당이라……. 비록 세가 전보다 못하다지만 구파의 한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문파. 이거 기대가 되는군.”

전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춘식은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사도로 가득한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벅!

장춘식이 계단을 향해 걸었다.

-내가 출수하는 즉시 이 사실을 본진에 알리게!

“자, 장로님?”

장춘식이 지나가는 순간 들려오는 전음에 당문기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장춘식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전소만 바라보며 내공을 서서히 끌어 올렸다.

“힘을 좀 빼는 것이 어떻겠나? 근육이 지르는 비명이 여기까지 들리는군.”

전소가 장춘식을 향해 말했다. 순간 그 말에 응답하듯 장춘식의 발이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쿵!

“크하압!”

장춘식이 기합을 터트리며 난간을 밟고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런 그의 검은 강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흥!”

마치 유성처럼 빛나는 검극 앞에 서 있던 전소는 코웃음을 치며 부채를 들어 올렸다. 순간 그의 부채에서 흰 옷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콰앙!

검과 부채가 충돌하자 기의 여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그들의 주위로 돌풍이 일어났다.

슈확!

그때 그런 돌풍을 뚫고 전소의 미간을 향해 하얀 빛줄기가 쏘아졌다. 장춘식이 곧바로 검을 거둬 다시 뿌린 것이다. 전소는 몸을 회전시키며 부채로 검을 튕겨 내고는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어 장춘식을 향해 뻗었다.

강한 내공이 실린 공격에 감히 맞부딪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장춘식은 무당의 기본공인 태극권의 원리로 그의 주먹을 흘려버렸다.

“호오?”

놀란 듯 전소가 입술을 말았다. 그리고 또다시 날아드는 검. 물속을 헤엄치는 잉어와도 같은 움직임이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무당다운 검법이었다. 그런 무당검법의 특성상 선공에는 그렇게 큰 위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전소는 그 속에 숨어 있는 무당검법의 무서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섣불리 반격하기보다는 회피 위주로 장춘식의 검에 맞섰다.

전소가 자신의 요혈을 노리고 다가오는 검을 피해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장춘식이 눈을 빛내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부드러움으로 적을 제압한다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니고 있는 것 또한 무당검법의 특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드럽게 허공을 노닐던 장춘식의 검식이 순간적으로 변화하며 폭발적으로 앞으로 뻗어 나갔다.

탓!

물러서던 전소는 복부를 노리고 찔러 오는 검을 발견하고는 급히 몸을 틀었다.

“놓치지 않는다!”

외침과 함께 장춘식의 검이 허공에서 반달을 그리며 전소를 따라갔다. 전소는 갑작스레 진로를 바꾸는 검에 재빨리 발을 멈추고 부채를 들어 올렸다.

쾅!

검과 부채가 부딪치자 전소가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미끄러졌다. 방심도 방심이었다지만, 검에 실린 기운은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버러지가!”

장춘식이 자신을 밀어내자 전소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하며 그의 부채에 엄청난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 기운의 여파로 주위에 돌풍이 휘몰아칠 정도였다. 하지만 장춘식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기회라는 듯 진각을 밟아 재빠르게 나아갔다.

“뭣?”

장춘식의 검이 폭포를 오르는 물고기처럼 휘어지며 자신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자, 전소의 눈이 크게 떠졌다.

‘끝이다!’

이런 근거리에서 큰 내공을 필요로 하는 무공을 펼친다는 건 그만큼 큰 허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 어떤 바보도 내공을 모을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리고 장춘식은 한때 천재라 불렸던 검객. 그의 앞에서 전소의 행동은 어서 자신의 목을 취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장춘식은 당황하는 전소를 보며 검을 더욱 앞으로 뻗었다.

쩡!

“큭!”

그때 전소의 목을 찔러 들어가던 검이 번쩍이는 빛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장춘식은 손목으로 전해지는 충격에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위험할 뻔했구나.”

“……!”

언제 나타난 것인지 전소의 앞에 한 인물이 서 있었다. 그를 본 장춘식이 눈을 부릅떴다. 금실로 천(天) 자가 새겨진 붉은 장포를 걸친 사내였다.

“흡!”

장춘식은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숨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섰다.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거니와, 그가 자신의 검을 막은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주군!”

전소는 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만인지상의 기백을 품은 사내, 천무제 담덕의 등장이었다.

장내에 또다시 고요함이 감돌았다. 정파 무림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장춘식의 검극을 간단히 막은 사내 때문이었다.

“누굽니까, 저 사람은?”

진철은 옆에서 주변을 살피며 퇴로를 찾던 당문기에게 물었다. 당문기 역시 그의 기운을 느낀 것인지 주변을 훑던 눈을 그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당문기는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천 자가 새겨진 붉은 장포… 바로 천무제 담덕이다!”

“……!”

진철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드디어 찾고 찾던 인물이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다.

담덕은 주변을 훑어보고는 장춘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위험할 뻔했구나.”

“죄, 죄송합니다, 주군!”

담덕이 담담하게 입을 열자 전소가 더욱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담덕은 장춘식의 검을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장춘식, 무당파 현 장문인의 사형으로 운은폭검이라고도 불리는 검의 기재. 아무리 너라지만 결코 방심할 만한 사내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전소가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하자 담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너의 무공이라면 저자와 좋은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지체할 순 없다. 장 장로, 잘 가시오.”

“흡!”

담덕의 손으로 거대한 기가 휘몰아치듯 몰려들었다. 조금 전 전소와 같은 상황이었지만 상대가 달랐다. 무림의 절대고수 중 하나인 천무제가 아닌가. 장춘식은 자신의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려 바닥에 발을 고정시켰다.

‘피할 순 없다! 피하는 순간 목이 뜯겨 나가리라.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해!’

장춘식은 자신의 전신을 조여 오는 기운을 느끼며 담덕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담덕은 그런 장춘식의 행동에도 무심한 눈으로 손에 들린 기운을 떨쳐 냈다.

콰르릉!

담덕이 쏘아 낸 기운이 성난 용처럼 장춘식을 덮쳐 갔다. 그때 장춘식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솟아오르듯 나타났다.

쩌엉!

“크악!”

장춘식은 자신의 몸을 삼켜 버리는 기운에 비명을 내뱉으며 허공을 날았다. 견딘다고 견뎠건만 그 기운은 자신의 호신강기를 종이 구기듯 간단히 날려 버린 것이다.

‘이렇게 가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바닥을 굴러 나가떨어진 장춘식은 한 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몸 상태에 허망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간의 쓰라림 외에는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비록 내공은 바닥을 보이고 있지만 몸을 일으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 이게 어찌 된……?’

장춘식은 자신의 사지가 멀쩡히 붙어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만한 기운을 몸으로 받는다면 사지가 터져 나갔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진철!”

그때 당문기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장춘식은 고개를 들어 자신이 방금 전까지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진… 장문?”

담덕은 자신의 일격을 흘려보낸 사내를 바라보았다. 약관은 지나 보이나 어려도 한참은 어려 보이는 사내였다.

“너는… 음?”

그를 훑어보던 담덕이 그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고는 이채를 띠었다. 자색 바탕에 매화 문양의 검. 자신이 잘 아는 검이고, 얻고자 전 중원을 이 잡듯 뒤지고 다니던 검이었다.

“그 검은… 자하신검이로군.”

담덕은 시선을 들어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네가 신룡이라는 아이더냐?”

“…….”

진철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담덕은 그런 진철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차마 그냥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지옥 불에서 다시 돌아왔소.”

말을 하는 진철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언제나 장난기 가득한 눈에는 진지함만이 묻어 나왔다.

“그 검… 상당히 탐나는군.”

“모든 물건에는 임자가 있는 법. 과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오.”

“그런데 거슬리게 계속 평대를 하는군. 아무리 봐도 내가 자네보다 인생을 두 배는 더 산 것 같은데 말이야.”

“마음 같아선 온갖 욕을 하고 싶으나 그나마 참고 있는 것이오.”

“그래?”

담덕은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시선이 진철이 들고 있는 자하신검으로 쏠렸다.

“자하신검이라…….”

가히 신검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 자하신검의 자태는 아름다웠고 신비로웠다. 더구나 무림 기보 중 으뜸이라 불리는 검.

“자하신검 정도라면 없는 시간도 쪼갤 수 있지. 더군다나 신룡의 무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기도 하군. 후기지수 중 최고라 하니까 말이야.”

“주군?”

전소는 담덕의 말에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담덕은 그런 전소에게 손짓을 해 뒤로 물러서게 했다.

“내 것이다. 아무도 난입하지 마라.”

입을 여는 담덕의 눈동자가 순간 금색으로 물들었다. 진철은 그의 눈동자가 변화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에 담덕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정도 거리로 본좌의 손속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담덕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떨쳤다. 가볍게 휘두르는 듯했지만 그의 손은 바람을 가르며 진철의 목으로 향했다.

“흡!”

진철은 급히 검을 앞으로 뻗으며 몸을 뒤로 날렸다. 움직이는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의 손은 이미 자신의 목 언저리에 닿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그의 손에 목이 잡혀 버렸으리라.

“호오?”

자신의 선공을 피한 진철의 몸놀림에 담덕이 입술을 말았다. 그러고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겠지.”

순간 담덕의 신형이 진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진철은 그의 움직임에 눈을 부릅떴다.

쇄액!

“큭!”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파공성에 진철이 급히 몸을 틀었다. 그런 진철의 가슴으로 한 줄기의 금광(金光)이 스치고 지나갔다. 간신히 그것을 피한 진철은 서늘해지는 가슴 언저리를 자신도 모르게 더듬었다. 진철은 손끝으로 파헤쳐진 옷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움직임이군.”

“쳇!”

담덕의 말에 한량들처럼 침을 내뱉은 진철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런 진철이 바닥을 박차자 담덕이 보여 줬던 움직임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에게 쏘아져 갔다. 만개화향에 이어 구궁보의 진 역시 깨우쳤다는 의미였다.

“하찮다.”

담덕은 신형을 늘어트리며 다가오는 진철의 움직임에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서 금광이 터져 나오며 강기로 변했다. 담덕은 순식간에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진철의 머리를 향해 수도를 내리그었다.

파학!

금광이 진철의 정수리를 가르고 지나가자 신형이 양옆으로 쪼개지며 담덕을 스치고 지나갔다.

“얕은수를!”

담덕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틀었다. 그곳에는 검집째 휘두르고 있는 진철이 있었다.

파캉!

담덕의 강기에 진철이 튕겨 나가며 공중으로 띄워졌다. 그 틈을 타 담덕이 손에 담긴 강기를 떨쳐 냈다.

“크흡!”

진철은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자신에게 쏘아지는 강기를 향해 다시 한 번 검을 내려쳤다.

쩌엉!

“큭!”

강기와 검이 부딪치며 진철의 신형이 공중에서 뒤로 밀려 나갔다. 진철은 재빨리 공중제비를 돌아 균형을 잡으며 바닥에 착지했다.

“하지만 그 나이에 이형환위라니… 제법이로구나.”

담덕은 자신에게 검을 늘어트리고 있는 진철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자하신검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그 검은 꺼내지 않을 생각이냐?”

“안 그래도 꺼낼 참이야.”

그렇게 답한 진철은 오른손을 검병으로 가져갔다.

스르릉!

맑은 소리와 함께 자하신검의 검신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과거와 연을 받아들이기로 정한 진철에게 자하신검을 검집에서 꺼내는 일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젠 웅크리고 있지만은 않아! 이것이 나, 진철이다!’

순간 진철의 눈동자가 자색의 빛을 뿌리며 그의 몸에서 기압이 흘러나왔다. 자하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그것을 보아하니 자하신공을 익혔군. 사라져 버린 자하신공과 자하신검이라……. 과연 화산파의 장문인이라 자칭할 만 해. 하지만 실력은 어떨까?”

“흥!”

진철이 신형이 다시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자 조금 전과 똑같은 그의 움직임에 담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똑같은 방법을 쓸 만큼 내가 우스워 보이더냐!”

쿵!

담덕이 발을 들어 강하게 내려찍었다. 그러자 담덕의 근처까지 다가온 진철의 밑에서 기파가 솟구치며 그를 삼켜 버렸다.

“크읏!”

진철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느낌에 즉시 몸을 옆으로 틀곤 재빨리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진철의 검은 다시 담덕에게 막혀 들고 말았다. 담덕이 간단하게 그의 검을 강기가 둘린 수도로 막아 버린 것이다. 그런 담덕의 발이 진철을 향해 움직였다.

서걱!

담덕의 발이 진철의 신형을 갈랐다. 그러자 진철의 신형이 흔들거리며 안개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또다시 이형환위를 펼친 것이다.

“음?”

담덕은 발끝에 아무런 느낌도 없자 급히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진철의 검이 담덕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쩌엉!

진철과 담덕의 사이에 빛이 번쩍이며 진철이 담덕을 스쳐 지나갔다.

“이놈…….”

진철을 등지고 있던 담덕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진철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떻소?”

팟!

순간 담덕의 볼에 실선이 그어지며 생채기가 생겼다. 진철이 휘두른 검을 막는 순간 다른 손에 들려 있던 검집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탓이었다.

담덕은 손을 들어 볼을 매만졌다. 따끔거림이 느껴지며 머릿속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그런가.”

담덕은 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담덕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이 진철을 향하고 있었다.

“나 역시 실수를 하고 있었군. 넌 방심하면 안 될 놈이었어. 그 나이에 이 정도라니… 위험하군.”

늘어트린 담덕의 손에는 어느새 들어간 것인지 그의 애병이 잡혀 있었다. 담덕은 자신의 애병을 천도(天刀)라 불렀다. 날이 양쪽으로 붙었다면 평범한 검이었을 것 같은 도였다. 하지만 담덕의 손에 들리자 그 도는 절세의 병기로 변했다.

“으음…….”

진철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단순히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이거늘,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변했기 때문이다. 진철은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 느낌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그럼… 다시 시작할까?”

담덕의 도에서 금색의 기운이 물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대체…….”

장춘식은 진철을 바라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나이에 천무제와 검을 섞을 수 있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된다.

“괘,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다가온 당문기가 장춘식을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장춘식은 진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자가 정말로 후기지수라는 신룡이 맞단 말인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닌 무위까지 후기지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장춘식이 무슨 소리냐는 듯 당문기를 바라보았다. 그때 당문기의 눈에 진철이 담덕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냥 보아도 후기지수의 무위가 아니잖습니까?”

“…….”

장춘식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담덕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진철이 있었다. 뭔가 어수룩하게 보이기도 했으나, 지금 그의 모습은 가히 한 문파의 지존다웠다. 장춘식은 가만히 진철을 응시하다 다시 당문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하는 말 잘 듣게.”

“무슨……?”

장춘식이 당문기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기회를 봐서 이 자리를 벗어나게. 이 사실을 본영에 알려야 해!”

“하지만 저보단 장로님께서 가시는 것이 낫습니다. 이미 정체가 밝혀진 이상 무공이 높은 사람이 가야 합니다. 그리고 무공이 가장 높은 사람은 장로님이시잖습니까?”

“아니, 나는 가지 못하네.”

“예?”

장춘식이 고개를 가로젓자 당문기가 의문을 표했다.

“이미 나는 저들의 경계 대상이 되어 있네. 나를 주시하는 눈은 거두지 않을 것이야. 하지만 자넨 다르다네. 저들은 아직 자네를 몰라. 그러니 자네뿐이 없다네.”

“하지만…….”

“만약 본진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정말로 장안으로 들어온다면 전멸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겠나? 절대고수는 절대고수만이 상대할 수 있어!”

“…….”

당문기는 장춘식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장로님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장춘식은 고개를 돌려 다시 진철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남을 것이네.”

츠츳!

금색으로 빛나는 담덕의 도에서 순간 뇌전이 튀겼다. 그 모습에 진철의 눈이 커졌다. 마치 칼에 번개를 두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천무제라 불리는지 아는가?”

담덕은 천천히 도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담덕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바로 나의 무공 때문이라네.”

파직!

순간 진철은 조여 오는 주변 공기에 화들짝 놀라며 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그러자 진철이 있던 자리로 한 줄기의 벼락이 내리꽂혔다.

“후우…….”

진철은 금빛의 뇌전이 꽂힌 자리를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자신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을 뇌전이었다.

“피했나? 그럼 이건 어떤가?”

다시 한 번 담덕이 도를 휘둘렀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진철의 시야에 두 줄기의 벼락이 들어왔다.

“이까짓!”

진철은 검에 내공을 주입해 순식간에 검강을 만들어 내고는 다가오는 섬광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파치지직!

“크아악!”

놀랍게도 담덕에 뿌린 뇌전은 그대로 진철의 검을 타고 올라가며 그를 감전시켜 버렸다. 진철은 머리가 새하얗게 타오르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어리석긴. 뇌의 기운을 쇠붙이가 달린 검으로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나?”

담덕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몸을 간신히 검에 지탱하고 있는 진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악! 하악!”

진철은 뇌기가 몸 곳곳에 침투해 숨 쉬기조차 어려운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제길! 온몸이 저리다. 무슨 저따위 무공이 다 있어?’

진철은 저린 발에 힘을 주고는 숙인 상체를 일으켰다. 움직일 때마다 힘이 드는 것이 마치 마비가 된 것 같았다.

“이것도 받아 보게나.”

담덕의 오른발이 앞으로 나갔다. 진철은 그가 움직이자 바짝 긴장하며 주춤거렸다. 방어할 수 없는 공격 수단에 지레 겁먹고 만 것이다.

담덕이 도를 바닥과 평행이 되도록 들고는 휘둘렀다.

파칙!

아까와는 달리 뇌기가 튀기더니 하얀 섬광이 진철을 향해 뻗어 왔다. 진철은 갑자기 빨라진 공격에 몸을 뒤로 젖혔다.

서걱!

“큭!”

섬광이 진철의 배를 훑고 지나가자 옷깃이 잘려 나가며 공중에서 재로 변했다. 뇌기에 불이 붙어 타 버린 것이다.

“크윽!”

복부를 훑고 가는 뜨거운 느낌에 그만 균형을 일은 진철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진철의 옷깃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진철은 재빨리 손을 들어 불씨를 털어 냈다.

“그렇게 누워 나의 천도를 받아 낼 수 있을 거라 여기는가?”

“……!”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진철이 고개를 들었다. 공중에는 몸을 띄운 담덕이 진철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진철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금빛의 뇌전이 작렬했다.

콰르릉!

뇌전은 진철을 삼키는 것도 모자라 사방으로 뇌기를 뻗으며 사라졌다. 바닥에 착지한 담덕은 그곳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검을 바닥에 꽂고 무릎을 꿇고 있는 진철의 몸에서는 뇌전이 튀고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음?”

순간 담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이한 기운이 진철에게서 느껴진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철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독한 놈이군.”

매캐한 냄새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진철은, 내상도 내상이지만 외상 역시 적잖게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철은 일어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균형을 잡고 바닥에 꽂힌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조차도 힘들어 보였다.

담덕은 그런 진철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도에 내공을 주입했다.

파직!

다시 도에서 뇌전이 튀어 오르며 뇌기가 도를 감쌌다. 진철과의 거리가 일 장 가까이 되자 담덕은 도에 담긴 뇌기를 털어 내듯 도를 휘둘렀다.

파치직!

뇌전이 공기를 가르며 진철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 순간 진철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흡!”

담덕은 진철의 움직임에 급히 발을 빼고는 옆으로 도를 휘둘렀다. 그곳에는 어느새 이동한 것인지 진철이 그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카각!

“음?”

예상했던 소리가 아니었는지 담덕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렸다. 진철의 검이 뇌기가 흐르는 담덕의 도를 흘리며 타고 올라오고 있던 것이다. 진철은 뇌기가 몸에 침투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담덕의 목덜미까지 검을 내질렀다. 담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진철의 검을 피해 냈다. 그러자 진철의 검이 그대로 위로 솟구치며 붉은 실선을 만들어 냈다. 검극이 담덕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건방진!”

담덕은 허점이 드러난 진철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진철이 검집으로 그의 주먹을 막아 내며 뒤로 물러섰다. 담덕은 그런 진철에게 도를 휘둘렀다. 물러서던 진철은 섬전처럼 다가오는 뇌기를 막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죽어라!”

허공을 날아가는 진철을 향해 담덕이 또다시 도를 뿌렸다.

“크윽!”

금빛의 뇌전이 다가오자 진철은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자색의 섬광이 쏘아지며 날아오던 뇌전과 공중에서 만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터터텅!

폭발의 여파와 뇌기로 인한 마비로 진철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드는 진철의 얼굴에는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담덕이 그 미소를 보자 이를 갈았다.

“이놈……!”

“아직 죽기엔 이르다고.”

담덕이 눈에서 불똥을 튀기며 진철을 노려보자 그는 헤픈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후들거리는 팔로 바닥을 짚어 간신히 상체만 일으킨 상태였다. 그런 진철의 옷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몸 곳곳에서는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처음 접해 보는 뇌기에 그 특성조차 파악 못하고 달려든 결과였다.

“끈질기구나.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파지직!

담덕이 도를 들어 올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도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의 손길이 지나가는 곳으로 뇌전이 튀며 전과는 다른 푸른 뇌전이 일어났다.

“청뢰(靑雷)라 한다.”

말을 내뱉은 담덕이 오른발을 뻗어 진각을 밟은 후 도를 위에서 아래로 그어 내렸다. 그러자 도에 실린 푸른 뇌기가 용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진철을 향해 쏘아졌다. 진철은 여전히 후들거리는 팔로 상체를 지탱하고 있을 뿐,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헷!”

진철은 다가오는 청룡에 헛웃음을 흘렸다. 일어서야 했건만 뇌기로 인해 마비가 온 것처럼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진철은 뇌전의 모습이 마치 푸른 이무기가 자신을 삼키려는 듯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길! 이렇게 허무하게…….’

콰앙!

담덕은 휘두른 도를 거두지 않았다. 마지막 일격을 날린 것이지만 담덕의 눈은 뭐가 불쾌한지 일그러져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담덕의 시야에 검은 도를 들고 서 있는 청년이 들어왔다. 그 청년 뒤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진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청년은 뒤를 돌아 차가운 눈으로 진철을 바라보고는 다시 담덕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건 도강이었군.”

담덕은 진철에게 작렬하기 직전 자신의 무공을 막은 검은 기운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검은 기운은 뇌전을 삼키며 함께 상쇄되어 버렸다.

“그 나이에 도강이라……. 검은 도에 검은 도강. 그리고 피에 전 그 눈동자.”

파직!

담덕의 도에 담겨진 뇌전이 튀기며 불꽃을 만들어 냈다. 담덕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마혈도라는 놈인가.”

“…….”

담덕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그는 검은 도를 들어 올렸다.

“문답무용이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네가 천무제인가 아닌가다.”

“내가 천무제면 어쩔 작정이지?”

담덕의 말에 주재구가 하얀 이를 드러냈다. 담덕은 그런 주재구에게서 지독한 살기를 느꼈다.

“죽여야지.”

팟!

주재구의 신형이 일순간 쏘아지며 검은 호선이 그를 따랐다. 순식간에 도강을 만들어 내며 달려드는 진철의 모습에 담덕은 도를 들어 올렸다.

“어리석은.”

담덕의 도에서 뇌기가 튀어 오르며 주재구의 도에 맞서 갔다.

슈칵!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주재구의 도에 맞춰 담덕의 도가 허공을 갈랐다. 그에 따라 날아오른 주재구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잘려 매캐한 냄새를 내며 타올랐다. 하지만 주재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도를 그어 올렸다. 담덕은 몸을 옆으로 틀어 그의 공격을 피해 냈다. 하지만 주재구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발을 들어 그의 복부를 차올렸다.

“제법!”

담덕은 그런 주재구의 발을 왼손으로 막으며 다시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주재구는 옆으로 몸을 날리며 뇌기가 흐르는 도를 피해 냈다. 담덕은 주재구가 거리를 벌리자 그에게 한 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살성의 능력인가? 뭔가 읽히는 기분이군.”

“…….”

주재구는 아무 대꾸 없이 온몸으로 내공을 돌렸다.

‘역시 뇌기가 문제군.’

주재구는 담덕의 도에서 흐르는 뇌기를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 주재구는 본래 진철과 담덕이 격돌하는 순간부터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서지 않았던 것은 절대고수 중 하나인 천무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만한 고수를 상대하는데 특징을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들 정도로 주재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근접전은 불리하다. 그럼 남은 것은…….’

팟!

주재구가 신형을 뒤로 날리며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두 갈래의 도기가 담덕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담덕은 간단히 도기를 갈라 버렸다. 그러고는 주재구를 향해 발을 움직였다.

“음?”

담덕은 앞으로 내디디려는 발을 거두며 급히 몸을 틀고는 도를 휘둘렀다. 잘려 버린 도기 뒤에서 거대한 기운을 품은 도강이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콰앙!

담덕의 도와 검은 도강이 만나자 폭발을 일으키며 불안하게 문을 지탱하던 객잔의 문지방이 밖으로 터져 나갔다. 주재구는 그 장면을 보고서도 도를 쉼 없이 휘둘렀다. 그런 주재구의 도가 순식간에 수십 번을 허공을 가르자 수많은 도기가 앞으로 날아갔다. 그 도기는 닿는 것을 모조리 자르고 부숴 버렸다. 하지만 도기들은 금광에 막혀 도중에 소멸되었다.

쩌저정!

주재구의 도강조차 갈라 버린 담덕이 날아오는 도기들을 일일이 쳐 냈다. 수십 가닥의 도기에 기가 질릴 법도 하지만, 담덕은 신중하게 도기들을 갈라 버리며 오히려 주재구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제길!”

도기로는 결코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재구가 몸을 뒤로 날리며 도를 들어 올렸다.

우웅!

주재구의 도가 도명을 토해 내며 검은 구름에 휩싸였다. 주재구는 힘차게 바닥을 밟아 공중에 몸을 띄우고는 도를 강하게 휘둘렀다.

“마천령도(魔川靈導)!”

소름 끼칠 정도로 짙은 마기가 도에서 쏟아져 나오며 담덕을 향해 날아갔다. 그 검은 도강은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으스러트리며 무저갱에서 날아오른 악귀처럼 뻗어 나갔다.

‘저건… 위험하군.’

담덕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기운을 보고는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무리 자신이라지만 저런 기운과 부딪치고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은 악귀는 담덕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 마치 의지라도 가지고 있듯이 담덕을 따라 허공으로 솟구쳤다.

‘뭣?’

담덕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기운에 적잖게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담덕의 몸에서 금광이 폭사되듯 뿜어져 나왔다. 천뇌신공을 칠 단공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흐합!”

담덕이 기합을 터트리며 늘어트린 도를 그어 올렸다. 그 순간 검은 악귀가 담덕의 몸을 덮쳤다.

콰르릉!

담덕의 몸을 집어삼킨 검은 기운은 그대로 지붕을 뚫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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