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6장 (27/29)

제26장

천무제

‘무찔렀나?’

바닥에 착지한 주재구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묵도로 바닥을 찍어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내공 소모가 큰 무공을 사용해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무식한 무공이군.”

주재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추켜올리곤 급히 바닥을 박차 그 자리를 벗어났다.

턱!

“……!”

뒤로 물러서던 주재구는 뒤에서 느껴지는 벽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담덕이 뇌기를 뿌리며 서 있었다. 어느새 주재구의 뒤로 돌아가 있던 것이다.

“큭!”

주재구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급히 거리를 벌리며 도를 휘둘렀다. 도는 담덕의 머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담덕의 형상이 곧 흐트러지며 사라졌다. 잔상이었다. 그 모습에 주재구의 눈이 부릅떠졌다.

“느리군.”

“흡!”

주재구는 또다시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시야에 번쩍이는 섬광이 틀어박혔다.

쩡!

담덕이 내지른 주먹에 얼굴을 맞은 주재구의 신형이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쾅!

“컥!”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을 뚫고 처박힌 주재구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강렬한 충격이 온몸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본좌가 단지 내공의 특성으로 인해 절대고수라 불리는 줄 아느냐?”

저벅저벅.

담덕은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일어서려 하는 주재구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날 이 정도까지 몰아붙이다니. 과연 한때 무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살성답군.”

“크윽!”

주재구는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담덕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왜 그런가? 자신만만하게 덤비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갔는가?”

파치직!

온몸에 뇌기를 두른 담덕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신 그 자체였다. 천뇌신공을 칠 단공 이상 끌어 올리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담덕을 천무제로 불리게 한 모습이기도 했다.

척!

주재구의 앞까지 다가간 담덕이 그를 향해 도를 내렸다. 주재구는 자신의 눈앞에서 번뜩이는 도를 바라보았다.

“영광으로 여겨라, 본좌의 손에 죽는 것을.”

담덕은 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주재구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같이 가까웠지만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주재구에게 담덕의 도가 천천히 내려왔다. 하지만 그 도에 실린 기운은 사람의 목숨을 끊고도 남을 위력이 담겨져 있었다. 그때 담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귀찮군!”

쩌엉!

도를 내려치던 담덕이 갑작스레 방향을 바꿔 옆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다가오던 자색의 검기가 갈라지며 상쇄되었다.

담덕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팔로 검을 들고 서 있는 진철이 있었다.

“그냥 도망갔으면 살 기회가 적게나마 있었을 텐데 어리석군.”

“도망갈 수는 없어.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넌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해봐야 아는 거지.”

입을 연 진철의 몸에서 은은하게 자색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담덕은 그 모습에 실소를 머금더니 다리를 들어 마치 방해라도 된다는 듯 주재구를 걷어찼다.

퍽!

“컥!”

주재구는 아무 방비도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으며 바닥을 굴렀다.

“덤벼라. 대체 무엇이 널 그렇게 일으켜 세우는지 한번 보자꾸나.”

“원한다면!”

진철이 순식간에 검을 떨치며 검기를 날렸다. 하지만 담덕은 간단히 그의 검기를 튕겨 버렸다. 그런 담덕에게 자색의 검기가 또다시 날아왔다.

쩌저정!

검기가 갈라지며 기파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철 역시 그 모습을 보았으나, 검기를 날리는 행동을 멈추진 않았다.

“어리석은!”

담덕은 계속해서 검기가 날아오자 일일이 쳐 내며 입을 열었다. 이런 검기로는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줘도 진철은 오히려 더 빠르게 검기를 날렸다.

파치직!

검기를 잘라 버린 담덕의 도에서 뇌기가 튀어 올랐다. 담덕은 거침없이 도를 휘둘렀다. 진철이 뿌리는 검기는 담덕의 도가 닿을 때마다 힘없이 소멸되었다.

쩡! 쩌엉!

‘대체 언제까지 검기를 날릴 작정이지? 비록 강기보단 약하다고는 하나 이렇게 계속 검기를 날리면 쓸데없이 내공만 소모하는 꼴이 될 것인데…….’

담덕은 검기를 쳐 내면서 진철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이렇다 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진철의 행동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슈하악!

진철의 검이 더욱 빨라지자 검기 역시 더욱 빠른 간격으로 날아들었다.

쩌저정!

‘큭! 별거 아니라지만 슬슬 손목에 무리가 오는……!’

순간 담덕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가 진철을 바라보았다. 진철은 무심한 눈으로 담덕을 노려보며 끊임없이 검기를 날리고 있었다.

‘설마… 그렇단 말인가!’

담덕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에 이를 악물었다. 강의 묘리를 살려서 날리는 것인지 검기를 쳐 낼 때마다 손목에 충격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손목에 중첩이 되고 있었다. 지금은 괜찮다지만 계속 이런 충격을 받으면 손목에 상당한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잔꾀를!’

담덕은 천천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도에 맺힌 뇌기가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흐합!”

막 다가오는 검기를 잘라 버린 담덕은 재빠르게 도를 휘둘렀다. 도에서 흘러나온 뇌전이 자색의 검기들을 삼켜 버리며 진철에게 쏘아졌다. 진철은 급히 박차 그 자리를 벗어났다.

“네 녀석의 꾀는 이미 간파했다!”

담덕은 진철의 공격이 멈춘 순간 그 자리를 벗어나며 외쳤다. 하지만 곧 다급히 도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진철이 검기를 날려 온 것이다.

“큭, 이놈!”

쩌저정!

조금 전보다 더욱 강력한 기를 실어 날린 것인지 검기를 쳐 낼 때마다 손목에 시큰함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진철이 날리는 검기는 점점 거세졌다.

‘쉴 틈을 전혀 주지 않는군! 이대로 가단 저놈의 생각대로 되고 만다.’

진철이 날리는 검기 하나하나는 분명 약했다. 하지만 수십 개의 검기가 연달아 날아오다 보니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괴물!’

진철 역시 담덕을 보며 눈살을 구겼다. 보통 이만한 검기 다발을 받고 난 후에는 손목이 저리다 못해 마비 증세가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담덕은 전혀 흔들림 없이 검기를 받아 내고 있었다. 거기에 진철은 내공이 급속히 소모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결정타도 날리지 못하고 제 풀에 지치게 될 것이다.

‘방법을 바꿔야 하나?’

불안함이 진철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 불안함은 진철의 손을 주춤거리게 했다. 그것은 담덕에게 기회였다. 아니나 다를까, 날아오는 검기의 간격이 커지자 담덕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려 검기들을 피해 냈다. 그러고는 도를 휘둘러 뇌전을 진철에게 뿌렸다.

‘칫!’

진철은 날래게 몸을 날렸고, 담덕이 뿌린 뇌기는 진철이 있던 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시 보아도 엄청난 위력이었다.

“어딜 보나?”

“……!”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진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그 옆에서 담덕이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진철은 검을 뻗어 담덕의 도에 맞부딪쳐 나갔다. 번쩍하는 뇌기가 튀어 오르며 진철의 검을 타고 올라갔다.

파치직!

“크윽!”

진절은 저릿저릿한 손목에 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대로 놓아줄 담덕이 아니었다. 바짝 따라붙은 담덕의 도가 호선을 그렸다. 쾌도는 아니었지만 진철이 나가려는 퇴로를 정확히 노리고 들어왔다. 하는 수 없이 진철은 담덕에게 맞설 수밖에 없었다.

“정말 멍청하구나. 이 뇌기가 너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냐!”

검을 뻗어 오는 진철에게 담덕이 외쳤다. 하지만 담덕은 진철의 검을 향해 도를 휘두르는 순간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진철의 검이 도와 부딪치지 않고 감싸듯 타고 올라오고 있던 것이다.

“네놈?”

“설마 내가 모든 실력을 드러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진철의 검이 꽃잎처럼 변하며 주변을 수놓았다. 검의 장점을 살린 수법이었다. 손목에 약간의 힘만 주입하는 것으로도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검이었다. 담덕이 갑작스레 변한 검격에 멈칫거리자 선기는 순식간에 진철에게 넘어갔다.

‘설마 천하의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이야!’

담덕은 마치 꽃잎에 휩싸인 것 같은 광경에 적잖게 당황했다. 섣불리 반격하다간 오히려 저 꽃잎에 자신의 몸이 난도질당할 것이었다.

‘끝인 줄 알았는데 자꾸 어디서 이런 저력이 튀어나온단 말이냐!’

슈각!

진철의 검이 담덕의 옆구리를 훑었다. 하지만 담덕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진철의 검격에 대응해 나갔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변초가 심한 검법을 펼치는 것은 허점을 찾기 위한 것. 그렇다면…….’

멈칫!

순간 담덕의 발이 멈추며 그의 옆구리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다. 그 순간 진철의 눈이 반짝였다. 진철은 그 허점을 향해 거침없이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다시 검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흡!”

진철은 숨을 들이켜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섬광이 훑고 지나갔다. 만약 검을 거둬들이지 않고 그대로 찔렀다면 분명 담덕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은 머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담덕은 진철이 자신의 도를 피하자 뒤로 몸을 날리고는 도에 내공을 주입했다.

번쩍!

담덕의 도에서 뇌기가 강렬하게 타올랐다. 너무나 강한 기운에 그 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눈이 부셔 눈이 멀 지경이었다.

“섬뢰지타( 雷地打)!”

콰르릉!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주변이 빛으로 물들었다. 무려 칠 단공의 천뇌신공으로 펼치는 도강이었다. 그 위력은 다른 절대고수들이라 할지라도 긴장해야 할 만큼 강력했다.

‘위험!’

진철은 수백 가닥의 뇌전이 꽈리를 틀며 다가오는 모습에 구궁보를 펼쳤다. 빠르기도 빠르기였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기운은 결코 정면에서 맞서지 못하게 했다.

쾅!

진철이 벗어난 자리로 뇌전이 꽂혔다. 그 순간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뇌기가 휘몰아쳤다. 그 뇌기는 주변 공기의 수분을 증발시키며 거대한 돌풍을 만들어 냈다. 돌풍은 뇌기를 뿜어내며 사정권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파괴시켰다. 그 모습에 진철은 깜짝 놀라며 몸을 둥글게 말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런 그를 돌풍이 집어삼켰다. 이런 돌풍을 예상 못한 진철은 그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끄으윽!”

진철은 온몸을 강타하는 뇌기에 신음을 흘렸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내공으로 뇌기를 몰아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마치 수많은 개미가 살결을 뜯어먹고 있는 것 같았다.

콰르릉!

잠시 후, 돌풍이 커다란 굉음과 함께 사라지자 뇌전이 꽂혔던 자리를 기준으로 삼 장 안이 초토화된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중앙, 새카맣게 그을린 진철이 검에 몸을 지탱하고 서 있었다.

“헉헉!”

진철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구기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마터면 온몸이 찢겨질 뻔했기 때문이다.

‘지독한 놈!’

담덕은 그런 진철을 보며 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쓰러질 법도 하지만 진철은 여전히 서 있었다. 방금 펼친 섬뢰지타는 자신이 받는다 해도 결코 멀쩡할 자신이 없었던 무공이었다. 그것을 진철은 견뎌 냈다.

‘하지만 이젠 몸을 가눌 힘도 없을 것이다. 이대로 끝을 내 주마.’

담덕은 양손으로 도를 쥐었다. 진철과의 거리는 약 오 장. 담덕은 이 거리에서 결정타를 날리기로 결심했다.

‘위험한 놈이야. 또 무슨 힘을 숨겨 놨을지 모를 일이니…….’

담덕은 천뇌신공의 내공을 도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마치 고통스러움을 토하듯 도명이 흘러나왔다. 그런 도의 주위로 회오리가 생성되었다. 뇌기가 주변의 공기 중에 있는 수분들을 증발시키며 일어난 현상이었다.

‘굉장한 기운이다.’

진철은 도로 몰려드는 기를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런 기가 모인 공격을 그대로 맞게 된다면 그땐 정말로 끝장이었다. 거기에 섬뢰지타의 기운이 아직도 진철의 몸을 거미줄처럼 옭아매고 있었다.

꽈드득!

담덕의 밑에 깔려 있던 나무판자가 그의 기운에 이기지 못하고 뜯겨져 올라왔다. 그럼에도 담덕은 더더욱 기운을 도에 실었다.

‘빌어먹을, 뇌기를 막을 방법이 정말 없단……. 아!’

‘이 세상에는 수많은 기운이 있다. 화기가 있고 한기가 있고 마기가 있으며, 선기 등등 셀 수가 없을 정도지. 하지만 그 여러 종류의 기운은 전부 순수한 자연의 기운에서 발생한 것이다. 만류귀종이라 했다. 끝이 같다는 것은 시작 역시 같다는 뜻이다. 자하신공의 기운 역시 다름없다. 잘 기억하거라. 결국엔 똑같은 우주의 기운이라는 것을.’

‘똑같은 우주의 기운.’

진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과거 진철이 자하신공을 익힐 때 옥린수에게 들었던 말이다. 정말로 뇌기가 다른 기운과 근본이 같다면 막지 못할 이유 따윈 없었다. 더군다나 진철에게는 최고의 방어 무공인 만개화향이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뇌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뇌기에 감전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이 각인된 것이다.

‘설령 만개화향이 저걸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할 수 없어.’

진철은 천천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런 그의 몸에서 은은한 자색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파치직!

담덕의 도에서 뇌전이 튀었다. 그 순간 진철과 담덕의 눈이 반짝였다.

쿵!

담덕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자 그 중심으로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에 맞춰 들어 올린 담덕의 도가 허공을 갈랐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단지 한 줄기의 빛이 뇌기를 흘리며 진철에게 쏘아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진철의 검 역시 들려졌다.

우웅!

진철의 앞으로 한 송이의 매화가 활짝 피었다. 그 매화는 무엇이든 뚫어 버릴 것 같은 금빛 섬광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아니, 흡수되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파앗!

매화가 섬광을 모두 집어삼키자 마치 꿈처럼 모든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진철의 만개화향이 담덕의 뇌기를 받아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이게 대체…….”

담덕은 믿지 못할 것을 보았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뇌기가 만들어 낸 여파와 진철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산들바람만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사술이냐!”

담덕이 부릅뜬 눈으로 외쳤다. 하지만 진철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비록 만개화향의 진수를 깨달았다고는 하나 담덕이 쏘아 낸 기운은 만개화향만으로도 전부 흡수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이놈!”

그때 담덕의 신형이 진철을 향해 뻗어 나갔다. 금빛의 뇌전을 두른 그의 모습은 마치 노한 천신이 달려드는 것 같았다.

“큭!”

보법을 밟아 자리를 벗어나려던 진철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의 상태에 신음을 흘렸다. 만개화향을 펼치는 순간 진철의 몸에 남아 있던 뇌기들이 전부 사라졌지만 타격을 받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죽어랏!”

담덕의 도가 공간을 가르며 진철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왔다. 진철은 섬광처럼 다가오는 도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진철과 담덕의 사이로 검은 인영이 끼어들었다.

쩡!

“네놈은!”

담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명색이 천무제이니 이 대 일도 상관없겠지?”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주재구가 입을 열었다. 담덕은 입꼬리를 들어 올린 주재구의 모습에 내공을 끌어 올렸다.

“오냐! 네놈들 모두 죽여 주마!”

팍!

담덕이 힘을 주어 도를 밀어내자 주재구는 진철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약 일 장 정도 거리를 벌린 주재구는 담덕을 향해 도를 겨눴다. 담덕이라면 이만한 거리는 지근거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시도 그에게 눈을 떼어선 안 됐다.

“정신 차려라.”

“어째서?”

진철은 주재구의 말에 몸을 일으키며 말을 걸었다. 주재구가 자신을 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죽였으면 모를까.

“난 너에게 갚을 빚이 있다. 설마 모르진 않겠지? 그런 너를 다른 이에게 죽게 둘 순 없어. 넌 내가 죽인다. 그리고.”

“그리고?”

“저자에게도 원한이 있지만, 솔직히 나 혼자는 감당하기 힘들다. 하지만 너와 함께라면 가능하겠지.”

“계획적이군.”

“난 머리가 좋거든.”

자신만만한 주재구의 말에 진철은 실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담덕을 바라보며 검을 들었다.

“좋아! 그 계획에 이용당해 주지.”

진철이 옆으로 서자 주재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철은 뇌기를 두르고 있는 담덕을 바라보며 내공을 전신으로 돌렸다. 담덕의 일격을 받아 뻐근하긴 하지만 잠깐 한숨 돌렸다고 그럭저럭 움직일 만했다. 하지만 무공을 사용하기엔 아직 무리인 것 같았다.

“몸은 괜찮나?”

“그럭저럭. 하지만 아직은 힘들군.”

“내가 시선을 끌 테니 체력을 회복해.”

“그러지.”

진철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주재구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방해가 되는 합격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했다.

“간다.”

팟!

주재구가 빠르게 담덕을 향해 달려 나갔다. 주재구의 신형은 삼 장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갔다.

저벅.

“응?”

손에 땀을 쥐며 담덕의 격전을 지켜보던 전소는 누군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자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에는 검은 천에 붉은 용이 새겨진 장포를 걸치고 있는 중년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를 확인한 전소의 눈이 점점 커졌다.

“다, 당신은?”

전소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 중년인은 전소의 반응에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뇌기를 뿌리고 있는 담덕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안 오나 해서 와 보았더니… 이거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로군.”

중년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전소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 주군께서는 전력을 다하고 계시지 않소!”

“누가 뭐라 하던가? 하지만 꽤나 힘든 것 같은데.”

“그래도 주군이 저런 애송이들에게 당할 리는 없소. 주군은 천무제이시오!”

중년인은 전소의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덕과 주재구의 도가 서로 엉켰다 떨어지길 수십 번. 그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물러서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좋다, 인정하마. 네놈들, 내 앞에 설 자격이 충분하다.”

담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었는지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진철과 주재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담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금광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담덕은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고작 내공의 특성으로 천무제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오거라! 진정한 하늘을 보여 주마!”

쿠웅!

담덕이 다시 눈을 뜨자 그의 장포가 펄럭이며 뇌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런 담덕의 이마에 한 치 정도 되는 원이 나타났다. 천뇌신공 팔 단공이었다. 천뇌신공은 십 단공까지 익힐 수 있었지만, 워낙에 오묘한 정수가 담겨 있기에 담덕도 팔 단공까지밖에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절대고수의 반열에 올라서기는 충분했다.

‘위험하군.’

주재구는 강력한 기운을 흘리는 담덕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렸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 것 같았다. 거기에 그의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뇌기 가닥가닥이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주재구는 도를 강하게 쥐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듯 흘러나왔다.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군.’

탓!

주재구가 앞으로 뛰쳐나가자 무표정의 담덕이 도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공기가 출렁이며 주재구에게 한 줄기의 섬광이 날아갔다. 주재구는 몸을 옆으로 비트는 것만으로 그의 공격을 피해 내고는 도를 휘둘러 도강을 뿌렸다.

서걱!

담덕의 앞까지 날아간 도강이 반으로 쪼개졌다. 담덕이 다시 도를 휘둘러 도강을 갈라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담덕은 숨을 들이켤 새도 없이 다시 도를 휘둘러야 했다. 주재구가 자신이 날리는 도강 뒤로 바짝 따라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쩡!

담덕의 도와 주재구의 도가 부딪치자 기의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담덕은 도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주재구를 짓눌렀다. 아예 이대로 눌러 버릴 심산이었다. 아무리 뇌기를 튕겨 낸다고는 하지만 주재구의 내공은 담덕에 비해 역부족이었다. 담덕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음?”

순간 담덕의 신형이 흔들렸다. 주재구가 담덕의 힘에 맞서지 않고 그대로 흘려버린 탓이었다. 주재구는 앞으로 쏠리는 담덕의 몸을 피해 그를 지나쳐 갔다.

“진철!”

주재구가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담덕은 주재구의 말에 그를 향했던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진철이 자색의 검강을 두르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흥!”

담덕은 그런 진철에게 바닥을 향했던 도를 그어 올렸다. 강력한 뇌전이 바닥에서 솟아오르며 진철을 향해 달려갔다. 진철은 몸을 옆으로 날려 뇌기를 피한 후 검을 뿌렸다.

콰쾅!

담덕이 있던 자리에 자색의 강기가 꽂히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탓!

진철은 발을 멈추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숨을 들이켜며 몸을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담덕이 그의 곁으로 이동에 도를 휘두른 것이다. 진철은 일순간 놓친 그의 기척에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주재구 역시 방금 담덕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는지 적잖게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담덕 역시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사각에 날린 공격이었기 때문이디.

‘마혈도란 놈은 살성이니 그렇다 쳐도, 설마 이놈이 피할 줄이야. 하지만 팔 단공을 일으킨 이상 더 시간을 끌 수는 없는 노릇.’

천뇌신공 팔 단공은 그야말로 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전자에게 엄청난 공력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전 시간은 고작 반각이었고, 반각이 흐르면 시전자에게는 혈맥이 끊기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구 단공까지만 익혀도 이런 약점은 사라졌을 테지만, 담덕은 구 단공의 벽을 뚫지 못한 상태였다.

슈팟!

담덕은 몸을 숙인 진철을 향해 다시 도를 휘둘렀다. 그때 검은 도강이 그 사이를 끼어들었다.

꽝!

담덕의 도가 검은 도강을 때리자 그 여파로 바닥이 들썩이며 뇌기가 그 주변을 물들였다. 진철은 그 덕에 구궁보를 펼쳐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몸을 빼낸 진철은 주재구의 옆으로 가 섰다. 그러자 담덕이 눈을 빛냈다. 그는 자세를 낮추며 도를 양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큐웅!

담덕의 도로 빠른 속도로 뇌기가 몰려들며 소용돌이쳤다. 진철과 주재구가 나란히 서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뒤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앞만 신경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둘 다 쓸어버린다.’

‘승부다!’

주재구는 담덕의 자세히 눈을 빛냈다. 그가 승부를 걸어온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장기전으로 이끌면 분명 담덕이 이기겠지만 오히려 그는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분명 그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해 낼 겨를이 없었다.

‘위험하다! 설마 아직도 저런 내공이 남아 있던 것인가.’

주재구는 담덕의 도에 맺힌 기운을 느끼며 자신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옆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들고 있는 진철을 힐끗거렸다.

‘제길! 저놈에게 보여 줄 기술이었는데.’

눈썹을 구긴 주재구는 다시 담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며 속으로 구결을 읊었다. 그가 익히고 있는 또 다른 무공 마천풍혈도(魔天風血刀)의 마지막 구결이었다.

‘마도(魔刀)가 하늘을 가르고 나타나니, 그것이 바로 마군(魔君)의 군림이다.’

끼이이익!

주재구의 도가 사람을 홀리는 마귀처럼 심령을 뒤흔드는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주재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내공을 주입했다. 담덕은 그런 주재구의 기운에 그 역시 이 일격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신중히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투둑!

도를 쥐고 있는 담덕의 팔이 순간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주재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둘은 누가 먼저 움직이기라도 기다리는 듯 고요한 눈빛으로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이것이 정녕 사람이 내뿜는 기운이란 말인가!’

전소는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운에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나 강대한 기운에 긴장한 것이다.

객잔은 이미 격전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지금도 담덕과 주재구가 내뿜는 기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곳곳에서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저 사이에 있었다면 갈기갈기 찢겨졌으리라.’

전소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바닥에 놓여 있던 자갈들을 건드렸다. 그 소리는 조용해진 주변에 그 어떤 소리보다도 크게 들렸다.

“아!”

전소가 눈을 부릅뜨며 입을 벌렸다. 자갈끼리 부딪친 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담덕과 주재구가 동시에 움직인 것이다.

천파단뢰(天破斷雷)

담덕은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그 빛은 공간을 가르는 것도 모자라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 버렸다. 그것은 허공에 가득한 공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기가 담덕의 몸에 닿는 순간 입자가 깨지며 뇌전이 튀었다. 그 영향으로 담덕이 지나쳐 가는 곳이 진공상태로 변하며 강렬한 돌풍이 그의 뒤를 따랐다. 담덕은 하늘마저 쪼개는 하나의 벼락이 되어 있었다.

마왕군림세(魔王君臨勢)

담덕을 향해 다가가는 주재구는 담덕에 비하면 하품이 날 정도로 느렸다. 하지만 그것은 주재구뿐만이 아니었다. 그 주변의 모든 시간이 느려진 듯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마치 주재구를 기준으로 시간이 돌아가는 듯했다. 그야말로 시간마저 조종하는 왕의 군림이었다.

꽈드득!

담덕과 주재구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공간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가까워진 둘은 서로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큭!’

소리는 없었다. 단지 두 가지의 힘이 부딪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주재구는 담덕의 도가 자신의 도에 닿는 순간 속으로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쇄되어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령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해도… 내 증오는 사라지지 않아!’

주재구는 더더욱 내공을 끌어 올려 담덕을 향해 도를 밀었다. 그 순간 담덕의 도가 약간 흔들렸다.

쾅!

커다란 소음과 함께 주재구의 신형이 빠르게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담덕이 도를 살짝 틀어 주재구의 힘이 닿는 곳을 바꿔 버린 것이다. 그 탓에 주재구는 자신이 내뿜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담덕의 힘에 튕겨져 나간 것이다.

‘크어…….’

온몸의 마디마디가 끊어지는 고통에 주재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한편, 담덕은 그런 그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눈앞의 진철을 향해 나아갔다. 진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담덕을 바라보고 있었다.

‘느리다.’

눈 깜짝할 사이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담덕이었다.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봐도 옳았다. 하지만 진철에게는 한없이 느리게 다가왔다.

‘펼칠 수 있을까?’

진철은 과거 마지막으로 옥린수가 전해 준 초식을 떠올렸다. 그나마 형은 흉내 낼 수 있으나 알맹이가 없는 형식은 사용하나 마나였다. 하지만 진철은 그 초식을 써야 했다. 그것만이 담덕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때 이 상황에 어울리기는커녕 오히려 비정상적인 산들바람이 진철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

순간 진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미성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인데, 진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음성이었다.

“꽃이 피는 것을 개화(開花)라 한다. 꽃이 활짝 펴 있는 것을 만개(滿開)라 한다. 그리고 꽃은 언젠가 꽃잎이 떨어져 사라지게 된다.”

옥린수의 목소리가 다시 진철의 머릿속을 울렸다. 진철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시간이 정지한 듯 다가오던 담덕이 멈췄다. 그뿐만이 아니라 객잔 밖, 이 모습을 보고 있는 모든 이들 역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공중에 떠오른 나무 파편들 역시 멈춰 섰다. 하지만 진철은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나는 이것을 화무(花無)라 하였다. 그리고 이 초식은 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진철의 검이 담덕의 미간을 향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담덕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인 것이다.

순식간에 진철의 앞까지 다가간 담덕은 몽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철의 모습에 도를 휘둘렀다. 그 순간 진철의 검극이 담덕의 기파에 밀린 것인지 살짝 흔들렸다.

만개화영무(滿開花影無)

“……!”

진철을 스쳐 간 담덕의 눈이 부릅떠졌다. 진철을 가르는 순간 담덕은 보았다. 자신의 도에 실린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쿨럭!”

담덕은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각혈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 냈다.

팍!

도를 바닥에 찍은 담덕은 그곳에 몸을 지탱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진철이 여전히 검을 앞으로 내밀고 가만히 서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단 말인가……. 움직이지 아니하고 마음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검, 이것이 심검(心劍)이로구나.’

팟!

담덕의 오른쪽 어깨가 붉게 물들며 핏줄기가 튀어 올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담덕의 온몸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담덕은 붉게 물든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몸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럴 리가…….’

눈앞에서 쓰러지고 있는 담덕. 전소는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자신이 아는 담덕은 무적이었다. 그의 등은 태산과도 같아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고 그의 무위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한데 그가 지금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으득!

전소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소는 고개를 돌려 진철을 바라보았다. 진철 역시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인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용서할 수 없다! 감히……!’

퍽!

“……!”

앞으로 나아가려던 전소는 몸을 뒤흔드는 충격에 발을 내딛지 못했다. 고개를 내려 밑을 보자, 그곳에는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 한 자루가 있었다.

“안 그래도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이었는데 잘되었군.”

전소의 귓가로 낮은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전소는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전소의 눈에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다, 당신……. 쿨럭!”

퍽!

중년인이 그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내자 말을 하던 전소의 입에서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안심하게나. 자네의 주군 곁으로 보내 줄 터이니.”

펑!

전소는 등을 때리는 강력한 충격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그런 전소는 쓰러진 담덕을 향해 손을 뻗더니 곧 축 늘어졌다.

“지, 진 형님!”

멀찍이 물러나 격전을 지켜보고 있던 모용수가 쓰러지는 진철을 보고는 그를 부르며 달려 나왔다. 담덕과의 격전에서 여파가 그에게도 닿았는지 모용수의 몸은 먼지투성이였다. 하지만 모용수의 눈은 진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형님! 형님!”

모용수가 진철을 안아 들었다. 하지만 진철은 눈을 감고만 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비켜 보게!”

모용수의 뒤를 따라온 장춘식이 진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용수는 다시 바닥에 진철을 눕히고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장춘식은 곧장 진철의 맥을 짚었다.

“…살았군!”

장춘식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살아 있어! 허허! 천무제를 상대로 그를 쓰러트리고 살아남다니.”

장춘식은 얼마나 기쁜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이들 역시 진철에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장춘식이 다시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잠깐! 맥이 정상이기는 하나 안정을 취해야 하네. 당장 의원으로 모셔야겠네.”

장춘식은 진철은 안아 들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 순간 장춘식의 눈이 부릅떠지며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온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느껴진 것이다.

“왜, 왜 그러십니까?”

모용수는 갑작스레 미소가 사라진 장춘식의 행동에 의문을 품으며 그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반쯤 허물어진 객잔 입구에는 한 중년인이 뒷짐을 지고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꽤 고가로 보이는 검은 장포가 돋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저 사람은…….”

“사파제일인 사도천자(邪道天子) 구… 천휘!”

“……!”

장춘식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모용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눈을 부릅떴다. 전 중원으로 뿔뿔이 흩어진 사파인들을 한곳에 모으고 정파 무림을 위협하고 있는, 사파인에게 전설로 추앙받고 있는 이가 바로 그들의 눈앞에 서 있었다.

“장 장로인가? 오랜만이군.”

“…….”

과거에 몇 번 안면식이 있어 그를 보았던 장춘식은 구천휘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구천휘 역시 그에게 딱히 다른 말을 들으려 했던 것이 아닌지 곧 시선을 돌려 그의 앞에 누워 있는 진철을 바라보았다.

“대단하군. 솔직히 말해서 천무제가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명색이 오천의 일인이니까. 하지만 고마워해야 할 일이군. 조만간 그도 처리해야 했거든.”

구천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군. 저 나이에 천무제를 누를 힘이라면 후에 어떤 인물이 될지 가히 상상이 되질 않아. 이 자리에서 처리하는 것이 옳겠지.”

“그러고도 절대고수라 할 수 있소? 의식이 없는 사람을 습격하려 하다니!”

구천휘의 말에 장춘식이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습격?”

구천휘는 실소를 머금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은 사파의 영역이다. 그대들은 그 영역에 침범한 정파의 무인이고. 습격을 당한 것은 그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지.”

“그, 그건…….”

장춘식은 말을 더듬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몰살을 당한다 할지라도 할 말이 없었다.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원하는 건 신룡, 그의 목숨 하나다. 그를 건네주면 그대들은 그냥 보내 주도록 하지.”

“지금 동료의 목숨을 팔아 자신의 안위를 챙기란 말이오?”

“왜? 싫은가?”

구천휘가 되묻자 장춘식은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자신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서늘한 소리와 함께 뽑혀 나온 시퍼런 검에 구천휘가 비쳤다.

“난 대무당의 장로인 장춘식이오. 아무리 당신이 사마련주이자 사파의 전설이라곤 하나 그러한 모독은 참을 수 없소.”

“…….”

구천휘는 자신을 가리키는 검을 바라보고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검이 나에게 닿을 것이라 여기는가?”

“분명 나는 필패할 것이오. 지금 느껴지는 위압감으로도 그대가 어느 정도의 인간인지 알 수 있으니. 하지만 나의 혼은 패하지 않을 것이오.”

굳건하게 서서 외치는 장춘식의 몸에서 청량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뒤에서 진철을 지키고 있던 정파 무인들이 일제히 일어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곳에는 모용수도 있었다.

비록 여섯의 인원이었지만 그들이 내뿜는 기개(氣槪)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과도 같았다.

“그런가… 그러한가. 그것이 바로 정파의 자존심이라는 건가.”

가만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구천휘는 그들이 내뿜는 기개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적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개는 존중받아 마땅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뒷짐을 지고 있던 구천휘의 발이 앞으로 뻗어 나왔다.

“거기까지!”

순간 대중을 울리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내공이 약한 자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몸을 숙였다. 장춘식도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얼굴을 구겼다. 심령을 뒤흔드는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구천휘 역시 목소리에 실린 힘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한 중년인이 무너지다가 만 이 층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당신은?”

“오랜만이군, 구천휘.”

난간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구천휘는 그 순간 눈을 부릅뜨며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섰다. 난간에 앉아 있어야 할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바로 옆에 서 있던 것이다.

“긴장하기는……. 날세, 철영.”

“……!”

구천휘의 동공이 흔들렸다. 결코 들어선 안 될 사람의 이름이라도 들은 듯.

“어떻게 당신이?”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무림의 균형이 깨지려 하고 있거든. 그래서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왔다네.”

“당신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왜? 못할 것 같나?”

“나는 그때 그 애송이가 아니라오.”

“한번 해보겠나?”

철영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순간 구천휘는 숨이 막히는 느꼈다. 그것은 벽이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절대고수의 경지에 올랐건만 당신의 벽은 아직도 그대로구려.”

“새삼스럽게.”

철영은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소. 당신도 알지 않소?”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왔다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사파는 이 전쟁에서 빠지게.”

“그럴 순 없소.”

“어째서?”

철영이 되묻자 구천휘는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신 같으면 여기서 발을 빼겠소?”

“물론.”

“…….”

철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천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예나 지금이나 당신은 말이 통하지 않는군.”

“그런가? 하지만 잘 생각해 보게나. 이미 사파는 산서, 녕하, 감숙을 비롯해 내몽고의 일부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 전쟁에서 꽤 큰 이득을 본 것으로 아는데.”

“부족하오.”

“부족하다라…….”

구천휘의 말에 철영이 미소를 지웠다. 그런 그의 눈이 날카로운 검처럼 번뜩였다.

“자신이 삼킬 수 없는 먹이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법이지. 좋게 말로 할 때 물러나게나. 내 비록 명교에 몸을 담고는 있다만, 내가 누군지 잊은 것은 아니겠지?”

“…….”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무림에서 유일하게 오천을 짓밟을 수 있고 전 무림을 파멸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자들, 칠성(七星)을.

“후우… 이것 보게나.”

구천휘가 머뭇거리자 철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송, 그 늙은이가 오겠다는 걸 내가 억지로 막아서고 온 것이라네.”

“우송… 복마검천(伏魔劍天)?”

구천휘가 되묻자 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에도 칠성이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우송 그 늙은이라니…….”

“그가 왔다면 이곳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야. 꽤나 다혈질이거든. 그러니 물러나게나. 모든 것을 전부 잃고 싶은 건가?”

“…….”

구천휘는 입을 닫았다. 그의 말대로 칠성이 움직인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현재 존재하는 사파의 모든 무인이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구천휘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칠성이란 그런 존재들이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무림 속에 숨어 무림의 균형이 깨질 때마다 나타나 분란을 저지해 주는. 어떻게 보면 영웅이고, 어떻게 보면 독재자였다.

구천휘는 눈을 감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 앞에서 인간이란 그만큼 무력한 존재였으니까.

“…일단은 물러서도록 하겠소.”

“잘 생각했군.”

“하지만 정파에도 잘 말해 두시구려. 그들이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다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이미 그쪽으로는 다른 ‘이’가 갔으니까.”

구천휘는 철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진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간 그를 바라보고 있던 구천휘는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진철과 담덕의 격전으로 인해 몰려들었던 사파 무인들도 구천휘를 따라 그 자리를 벗어났다.

철영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손바닥을 치며 몸을 돌렸다.

“자! 이것으로 하나는 끝났고.”

철영은 바닥에 누워 있는 진철을 향해 걸어갔다. 장춘식과 정파 무인들은 다가오는 철영을 감히 저지하지 못했다. 철영은 그런 그들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몸을 숙여 진철의 복부에 손을 대었다.

“자, 잠깐!”

그때 철영의 행동을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영이 목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주재구가 꿈틀거리며 기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곧 힘이 다했는지 숨을 몰아쉬며 철영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자넨…….”

“그는 내가 처리한다. 그에게 손대는 자는 나부터 넘어야 할 것이야!”

주재구가 피를 토하며 외쳤다. 철영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분명 너는 이자를 도왔다. 그런데 이번엔 이자를 죽이겠다니. 뭔가 이상하군.”

“나는 그에게 빚이 있어. 그 빚을 갚기 전까지 그가 다른 이에게 죽는 건 결코 볼 수 없다.”

“호…….”

단호한 주재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철영은 다시 진철을 바라보았다. 화산에서 처음 만난 진철이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단순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인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성장해 있었다.

‘너라면…….’

철영은 진철의 복부에 댄 손으로 내공을 흘려 넣었다. 그러자 진철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잘 듣게나.”

철영이 고개를 들어 장춘식을 바라보았다. 장춘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이였지만 그가 하는 말에 기분 상하진 않았다. 무림의 고수라면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을 구해 주지 않았던가.

“마궁이 화산을 점령했다네.”

“……!”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 생각했던 장춘식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궁이라면 마귀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문파가 아니던가.

“마궁은 허위 속의 문파요!”

“아니, 그렇지 않아. 지금 일어난 이 전쟁 역시 마궁 때문에 벌어진 것이거든.”

“…….”

장춘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장춘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 가지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래, 그들이 가지고 논 것이지, 이 중원을.”

“…….”

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장춘식이 주먹을 쥐었다. 힘줄이 튀어나온 그의 주먹은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잘 알려 주고 있었다.

“이들을 데리고 화산으로 가게나.”

철영은 진철과 주재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함께 가면 안 되겠소? 잘 듣지는 못했지만 사마련주를 몇 마디 말로 보낸 당신이오. 당신이라면 이 전쟁은 금방 끝낼 수 있지 않소?”

“아니.”

철영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 전쟁에 참여할 수 없네. 인과율을 넘어선 이들의 족쇄라고 생각하게나. 단순히 약간의 도움과 조언을 해 줄 수는 있다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네.”

장춘식은 철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겠소.”

장춘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철을 안아 들었다. 철영은 몸을 일으켜 바닥에 누워 있는 주재구에게 다가갔다.

“일어설 수 있겠나?”

“물… 론!”

주재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은 주인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주재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코 지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자신이 경험해 온 무림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숨통이 끊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호기롭군. 하지만 시간이 없다네.”

철영은 몸을 숙여 주재구의 복부에 손을 댔는데, 내공을 일으키자 주재구의 온몸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열지 말게.”

주재구가 철영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자 철영이 재빨리 말하고 그의 온몸을 주물렀다. 추궁과혈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궁과혈과는 달랐다. 혈맥을 타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끊어졌던 근육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달라붙기 시작했다. 어긋났던 뼈들 역시 제자리를 찾았다.

‘으으윽!’

주재구는 온몸이 지르는 비명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결코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입을 벌리는 순간 자신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주재구는 추궁과혈이 끝날 때까지 몸을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음…….”

추궁과혈이 끝나자 철영은 주재구에게서 손을 떼었다. 주재구는 녹초가 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반쯤 감긴 눈으로 철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가게나. 시간이 없다네.”

철영이 장춘식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장춘식은 모용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수는 몸을 날려 주재구를 안아 들었다. 장춘식은 그 모습을 본 후 철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은혜, 잊지 않겠소.”

“훗.”

철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춘식과 정파 무인들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