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 신비경 (2) >
흡사 광산이 무너질 것 같이 흔들리던 지진이 사라지자, 여중추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밀려와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일반인인 다른 관리자들은 모르겠지만, 영근을 가지고 있어 수련을 하고 있던 여중추는 주변의 기운이 확실히 변했다는 걸 느꼈다.
매우 묵직하며 선명해져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이 현상은 비경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가면 볼 수 있다는 현상.
영기가 육안에 보일 정도로 짙어져서 안개처럼 보인다는 그것과 일맥상통했다.
여중추는 망설이지 않고 품속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주변에서 놀라는 눈으로 바라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곧장 부적을 허공에 띄운 채 빠르게 손가락을 교차하며 수결을 맺었다.
그리곤 수결이 끝남과 동시에 부적을 잡아채 입 앞으로 가져왔다.
“큰형님! 광산에 이상이 발생했습니다. 거대한 진동과 함께 영환(靈奐) 안개가 나타났어요.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끝마친 여중추는 부적을 양손으로 잡더니 찌익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좌중을 향해 말했다.
“다들 휴대폰 내려놓지? 움직이는 순간 목을 베어버릴 테니까.”
“히끅!”
여중추의 말이 끝나자, 총 일곱 명 중 세 명이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꺼내 들던 휴대전화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우리가 서로 누구 밑에 있는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괜히 얼굴 붉힐 필요 없겠지? 어차피 큰형님이 아시면 둘째 형님도 곧 알아챌 테니. 너희들이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못해도 크게 상관없을 터.”
여중추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들먹거리는 망나니 같은 모습에서 완전히 탈바꿈해, 누구보다 진중하게 주변을 살피며 영기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옆에서 연신 딸꾹질을 하던 염소수염 사내가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히끅. 서, 선배님. 수도자셨습니까? 그런데 저희에겐 왜?”
그동안 방계 가문에서 버려진 망나니 중 하나인 줄 알았던 여중추가 돌변하자 염소수염 사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 내가 너 따위에게 허락이라도 맡고 위장을 해야 했단 말이냐?”
“히끅. 아, 아, 아닙니다요. 죄, 죄송합니다.”
어느새 염소수염 사내는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
시간은 전으로 돌아가, 준혁이 곡괭이를 찾아 헤매던 때.
“하아. 어디서 찾나? 또 하루가 가겠구나.”
곡괭이를 찾고 나가면 분명 한 명만 남아있거나 전부 사라져 있을 터.
시답잖은 괴롭힘이 가소롭기 그지없었으나,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쓱쓱 토굴들을 둘러보며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던 준혁은 두 시간 가량이 지나도 곡괭이 비슷한 물건도 찾지 못하고 결국 점점 사람들이 가지 않는 안쪽으로 향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곳도 확인해 봐야겠네. 그놈들이 당장은 뭘 할 것 같진 않지만, 신비경이라도 발견된 거라면···.”
큰 공을 세워 여서령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준혁은 기억을 더듬거리며 비슷하게 생긴 토굴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잠시 후 삼인방을 만났던 토굴 앞에 이르자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확실히 이상하긴 해. 이 좁은 데서 세 명이.”
만약 안에서 발견되는 게 신비경이라면 당장 여서령에게 알리고, 평범한 재료나 고급 영석이라면 모른 체 다시 나올 생각이었다.
어차피 하늘로 솟아나거나 땅으로 꺼지지 않는 이상, 정보를 제외한 물질적인 재화는 출입구에 설치된 장치를 통과할 수가 없었으니까.
“꽤 기네.”
한참을 걸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허리를 숙이고 있어 이동속도가 느렸지만, 생각보다 안이 깊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무언가 울렁거린다는 느낌과 함께 주위가 환해지자 준혁은 깜짝 놀라 허리를 펴고 말았다.
머리가 토굴 천장에 부딪칠 거란 걱정과는 다르게 주변은 꽤 넓은 공동으로 변해있었다.
준혁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짜 신비경이었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신비경을 확인한 준혁은 삼인방이 가소로워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재화를 어떻게든 빼돌린 후 아마 입구를 막아 버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신비경은 자동으로 사라질 테니.
하지만 그들이 무슨 수로 이곳에서 물건을 빼돌린단 말인가?
아마 준혁이 이곳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방법만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신비경을 날려버렸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니. 준혁이 생각하기엔 분명 그렇게 되었을 터였다.
“신비경, 신비경 하더니···. 정말 신기하구나.”
대략 50여 평 정도 될 것 같은 공동은 지하 깊은 곳 땅속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어디선가 별빛이 떨어지며 시야가 확보되었다.
별빛이라고 단정 짓는 이유는 공동에 내리쬐는 빛이 이따금씩 반짝거리며, 머릿속에 저절로 별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준혁은 신비로운 별빛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공동 내부를 살폈다.
텅 비어있는 공동의 한쪽엔 제단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총 세 개의 법기가 제단의 단상 위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신기하게도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 분명했는데, 단상이나 제단, 심지어는 바닥에까지 먼지 하나 쌓여있지 않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법기인가?”
준혁은 법기중 단검 모양을 한 물건을 집어 들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단검처럼 보였다. 이런 물건들이 영기를 다루는 수사들 손에 들어가면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위를 부순다고 하니 신기해 보이긴 했다.
“나도 영근만 있었다면 욕심을 내 볼 텐데.”
잠시 헛 웃음을 흘리다 고개를 저었다.
구경은 어느 정도 했으니 빠르게 여서령에게 보고해,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아야 했다.
준혁은 피식 웃으며 단검을 내려놓았다.
스악-
그 순간 단검 칼날에 닿지도 않았는데 손끝이 살짝 베어지며 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어? 뭐야? 닿지도 않았는데 왜?”
피는 손끝을 타고 살짝 흐르다 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퉁-
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공동이 살짝 진동하는가 싶더니 허공을 수놓던 별빛들이 움직여 공동의 중앙을 비추었다.
그리곤 잠시 후, 중앙의 바닥에 금빛 진법이 나타나더니 진법의 주위로 금빛 문자들이 요동치며 솟아올랐다.
금빛 문자들은 공동의 천장까지 치솟다가 별빛들을 잡아먹으며 다시 하강했다.
그리고는 진법의 기둥이 된 것처럼 공중에 둥둥 떠다니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뭐, 뭐야?”
준혁은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황하다가, 주춤거리며 중앙의 금빛 진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진법 바로 앞까지 다가간 준혁은 유심히 그것을 관찰하면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비경과 수많은 신비경이 나타났었고, 그에 관한 책과 이야기들은 일반인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준혁도 다른 사람들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산을 가르는 수도자들을 동경했기에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었다.
하지만 단연코 이런 현상을 듣지 못했었다.
문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진법 위에서 움직이다니.
넋 놓고 금빛 진법을 관찰하던 준혁은 손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 살짝 베어졌던 손끝 상처에서 어느샌가 피가 방울방울 져 흘러가고 있었다.
그랬다.
그건 흘러간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손가락 끝에서 방울져 모인 핏방울들이 마치 길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공을 날아가 금빛 진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상 현상에 준혁은 두 눈이 동그래진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의 핏방울이 금빛 진법에 도달한 순간.
콰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공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굉음과 진동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준혁은 이를 악물며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만약 이곳이 무너진다면 자신은 끝이었다.
무너진 갱도에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거의 영에 수렴했다.
게다가 이곳은 영석이 대부분 채굴돼 더는 개발하지 않는 구역이니, 준혁을 구출하고자 다시 길을 내지도 않을 터.
준혁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다 자신이 들어선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진동이 멈춰 섰다.
동시에 준혁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평소 같았으면 무조건 죽어라 달렸겠지만, 이곳이 신비경이란 게 중요했다. 만약 갱도가 무너진다면 신비경이 사라지기 전에 이곳에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일.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제단을 향해 뛰었다.
단검과 작은 옥팔찌를 집어 든 준혁은 거울 모양의 법기는 단상 위에 그대로 둔 채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해. 만약 무너지지 않는다면 분명 안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에 대해 캐물을 게 분명해.’
빠르게 계산하며 공동의 중앙에 있는 금빛 진법을 막 지나치려던 준혁은 놀란 얼굴을 한 채 우뚝 서고 말았다.
한시가 급하게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릴 만큼 놀라고 말았다.
신비로운 빛을 뿜어대는 금빛 진법과 그 위로 기둥처럼 떠서 흘러 다니는 금빛 문자들.
그 문자들의 색이 점점 붉게 변해 핏빛으로 변하더니 갑작스레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곤 몇 호흡 하기도 전, 하나로 뭉쳐진 문자들은 어느새 짤막한 중식도로 변해있었다. 그 모양은 마치 거대한 도가 손잡이와 끝부분만 남은 것 같기도 했고, 중화요리를 할 때 자주 쓰는 네모난 식칼 같기도 했다.
허공에 떠 있는 중식도를 본 순간 준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 신비경의 진짜 보물은 이 세 가지 법기가 아니라 눈앞의 식칼 이란걸.
준혁은 곧바로 손을 뻗어 중식도를 잡아챘다.
그 순간, 준혁의 손에 잡힌 중식도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더니 손바닥을 뚫고 몸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마치 생살을 송곳으로 뚫어내는 것처럼 손바닥에서 시작된 통증이 팔목을 지나 팔뚝을 지나갔다.
어깨 어림을 지나갈 땐 숨이 멎을듯했고, 명치까지 통증이 다다랐을 땐 진짜로 잠시간 숨이 멎었다.
“허어어억!”
멎었던 숨이 돌아오자 명치에 머물던 통증이 배를 찢어내며 아래로 치닫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배꼽 아래 단전이라 불리는 위치를 끝으로 통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손바닥을 타고 들어온 중식도가 단전까지 몸을 꿰뚫고 지나간 것 같았다.
“으···. 이게 무슨···.”
잠시 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자 마치 중식도를 손에 잡았던 게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금빛 진법도, 문자들도, 심지어 자신의 손바닥에도 아무 흔적이 남아있질 않았다.
“우선은 나가고 생각하자.”
조금 전 마치 꿈처럼 지나가 버린 통증에 대해 자세히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진동이 멈춘 후로, 아무런 여진도, 징조도 보이질 않는다.
만약 이대로 갱도가 무너지지 않고 시간이 지난다면 분명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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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경에서 빠져나온 준혁은 빠르게 토굴을 빠져나와 더 깊은 안쪽으로 치달렸다.
그리곤 적당한 토굴을 발견하고는 안쪽으로 들어가 신비경에서 꺼낸 법기 두 가지를 냅다 안쪽 깊이 내 던졌다.
다시 토굴을 빠져나온 준혁은 주변 위치를 기억하고는 출입구가 있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셔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지만 준혁은 쉬지 않았다.
오히려 달려가며 벽을 손으로 쓱쓱 문지른 후 자신의 얼굴에 문질렀다.
한참을 달려가자 출입구가 보였다.
준혁은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라도 만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출구를 빠져나왔다.
“으아악! 살았다!!”
가까스로 광산 입구를 빠져나온 준혁은 자리에 철퍼덕 쓰러지며 하늘을 향해 깊은숨을 내뱉었다.
“허어억, 흐헉, 살았다. 살았어.”
준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주변으로 그림자가 하나둘씩 에워싸기 시작했다.
동시에 날카로운 쇠의 촉감이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누워있던 준혁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네놈이 한 일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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