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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5화 (5/408)

# 5 < 인지경 (1) >

준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만 몰아쉬고 있자, 다시금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 따위 할 필요 없다. 보고 듣고 행동한 그대로 말하라. 거짓이 섞여 있다 판단되면 당장 쓸데없는 그 목을 분리해주지.”

사내의 차가운 목소리에 준혁은 침을 꿀꺽 삼킨 채 눈을 돌렸다.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관리자 무리 가운데, 유난히 차가운 눈빛에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미남자가 있는걸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구나.’

광산이 굉음과 함께 진동할 때, 준혁이 우려 했던건 하나였다. 만약 밖에 관리자들이 돌아가지 않은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상 현상을 느낀 순간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들에게 연락을 할 것이고, 그들은 분명 청룡가의 후계자들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청룡가의 후계자들이 광산으로 몰려올 테고, 혼자 광산 내부에 있었던 자신을 추궁할 거라 판단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준혁이 목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검을 겨눴던 상대가 한발 물러나며 허락했다.

“좋다. 일어나라.”

준혁은 곧바로 몸을 세우려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인해 꼴사납게 주저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됐다. 자세 따위는 개의치 않을 테니 안에서 경험한 걸 전부 말하거라.”

살을 엘듯한 날카로운 눈빛에 준혁은 움찔하고는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그게 어찌 된 일이냐면···. 여기 계신 선배님들께서 제게 미납된 곡괭이를 수거해올 걸 명령하셨고, 저는 두 시간? 세 시간 가량 동안 갱도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산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에 죽어라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게 끝이더냐?”

“네. 더 말할 게 무어 있겠습니까? 물론 곡괭이를 찾지 못한 게 죄송하긴 하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갱도 내부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데···. 어휴... 정말 돌아가신 부모님을 뵈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잠깐 말없이 준혁을 바라보던 사내는 단 하나의 감정변화도 보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쓸모없는 쓰레기군. 죽어라.”

“멈춰!!”

챙-

사내가 가볍게 휘두른 검은 다행히 새롭게 나타난 얇은 창대에 가로막혔다.

“오라버니! 이게 무슨 짓이죠?! 이 사람은 제 사람이에요! 아버님께서 다른 건 전부 괜찮지만 서로 간의 상잔은 엄격히 금하신 거 모르시나요?”

갑자기 나타나 준혁을 살려준 건 여서령이었다.

물론 준혁은 멀리서 날아오고 있던 그녀를 발견했기에 별 걱정 없이 말하기도 했다.

또한 칼을 휘두른 사내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충분히 막을 수 있을법한 속도로 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사내는 냉혹한 표정 그대로 시선을 돌려 여서령을 직시했다.

“청룡패를 발급받아 갔다더니. 설마 이런 쓰레기에게 쓴 것이더냐? 서령아. 청룡패는 다섯 번밖에 쓸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

“물론이에요! 그리고 전 제 판단을 믿어요!”

여서령이 발끈하며 말하자, 처음으로 사내가 피식 웃으며 입가가 살짝 움직였다.

“그 귀엽던 막내가 이제 소리도 지를 줄 아는구나.”

“흥! 누가 누굴 보고 귀엽다는 거예요?! 언제 나를 제대로 봐준 적이나 있어요?”

“그래 그건 됐다. 허나. 나는 이자를 살려둘 생각이 없다. 광산 주위로 영환 안개가 발생할 정도로 이상 현상이 나타났는데, 광산 내부에 혼자 있었던 이자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절대 믿지 않는다. 이자는 대공자인 내게 거짓을 말했으니 죽어 마땅해. 그러니 서령아 선택해라. 내가 이자를 죽여도 되겠느냐? 아니면 청룡패를 회수해가면 되겠느냐?”

‘청룡패에 또 다른 의미가 있나 보구나.’

준혁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어물쩍거리는 여서령을 보다, 슬쩍 시선을 옮겨 대공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굳게 닫힌 일자 입술을 보고 있자면, 반드시 말한 바를 실행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했기에 준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리가 풀린 연기도 이쯤 했으면 됐으니, 엉덩이를 탈탈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여서령의 눈을 바라보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아가씨. 청룡패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나, 대공자께서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꽤 중요한 물건인 거 같습니다. 제가 아가씨께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했으니 그런 중요한 물건을 뺏기게 만들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제 목숨 또한 소중한 것이기에···.”

준혁은 천천히 몸을 돌려 대공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대공자님께 거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거래? 너 따위가?”

“대공자께서는 제 말을 믿지 못하시지만, 전 정말로 곡괭이를 찾기 위해 갱도를 살피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대공자께 잘못한 일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지나치기엔 앞으로 제 목숨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마냥 위태로울 게 뻔하니 거래를 제안하는 겁니다. 들어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제 목숨과 청룡패를 회수하려던 생각을 접어주시길 바랍니다.”

대공자는 말없이 준혁의 눈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입가를 한껏 끌어올린 준혁은 말을 꺼내기 전 여서령을 향해 다시 한번 깊게 허리를 숙였다.

“아가씨.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청룡패와 제 목숨 모두 중요하니···. 문책은 나중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옮겨 대공자와 눈을 마주했다.

“대공자께서는 혹시 아가씨가 저를 포섭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

“물론 짐작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만일 광산 내부에 신비경이 나타난다면 정보를 차단하고 아가씨께만 몰래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그럴 거라 여겼다.”

“그리고 오늘, 전 꽤나 그에 근접한···. 아니, 거의 확실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아가씨께 그 정보를 넘겼겠으나···. 여기 계신 선배님들의 장난으로 아직 아가씨께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준혁이 말을 마치자 대공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침음에 잠겼다. 결국 대공자 옆에 서 있던 여중추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설마 네 녀석이 신비경을 찾아냈다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7할의 확률입니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확인까지 했겠지만, 혹시나 정보를 통제하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선보고 후, 후 조치를 하려고 했었으니까요.”

대공자가 입을 열었다.

“말하라. 정말 신비경을 찾아낸 것이라면 그에 합당한 상을 주겠다. 원한다면 서령이를 떠나 나에게 온다 해도 청룡패를 내려주마.”

“오라버니!!”

대공자는 여서령을 슬쩍 바라보다 준혁을 직시했다.

“제안에 감사드리지만, 한번 맹세한 충성을 다시 옮길 생각은 없습니다.”

‘정확히는 옮길 수가 없지.’

준혁은 기대로 들떠있는 좌중 속에서 처음과 똑같이 신색을 유지하고 있는 대공자를 보며 광산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 안은 매우 복잡해 말로 설명 드리기 힘듭니다. 제가 그곳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대공자를 보아하니. 아가씨를 가주로 만드는 건 매우 힘든 길이 되겠구나.’

태도에 빈틈이 없다는 건 그만큼 실수가 적다는 말과 같았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매우 촘촘해 파고들 틈이 없어 보였다.

준혁이 몸을 돌려 광산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 뒤를 대공자와 여서령, 여중추가 뒤따랐다.

나머지 인원들은 여중추의 손짓에 제자리에 머물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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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이동한 일행은 어느새 조그마한 토굴 앞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쪽엔 적토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 벽에 닿지 않게 주의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준혁이 벽을 한차례 긁은 후 자신의 얼굴에 문질렀다.

그러자 새까맣게 물들어 있던 얼굴 한쪽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그 모습에 대공자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준혁이 허리를 숙이며 엉거주춤 안으로 들어서자 대공자가 그 뒤를 따랐고, 나머지도 차례대로 움직였다.

한참을 이동한 후 공동으로 나오게 되자 대공자를 제외한 두 사람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곳이 신비경···.”

“아! 너무 예뻐.”

준혁도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천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와···. 어떻게 별빛이 지하에···.”

그런 준혁을 보며 대공자가 소리 없이 눈썹만 꿈틀했다.

‘정말로 처음인가 보군. 토굴을 지나오며 온몸에 묻은 붉은 흙을 보니 흠···.’

대공자의 속마음을 들었다면, 자신의 노림수가 성공했다고 준혁이 자화자찬을 했을지 몰랐지만, 그는 지금 신비경을 처음 본 사람 행세를 하기 위해 별빛에 정신을 빼앗긴 바보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때 여중추가 어딘가를 손짓하며 빠르게 내달렸다.

“큰형님! 여기 보십시오. 법기가 분명합니다.”

여중추가 소리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던 대공자는 천천히 걸어가더니 거울 모양의 법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처음으로 무표정한 가면이 깨어져 나가며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건!! 하하하, 하늘이 날 돕는구나!”

“큰형님. 무엇인데 그리 좋아하시는 겁니까? 이런 모습 처음입니다.”

물론 어릴 땐 자주 보던 모습이지만, 가문의 후계를 잇기 위해 세력을 만든 뒤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하하하,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것은 인지경(認知鏡)이다!”

“인지경!! 설마 그 만통방(萬通牓)에 적혀있다던 법기가 아닙니까?”

“그래! 원영기(元婴期) 이하의 수도자가 수행을 올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바로 그 인지경이다.”

한참을 웃던 대공자가 시선을 돌리더니 준혁과 여서령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너에게 약속했으니 크게 상을 내리겠다. 그리고 서령이 너에게도 선물을 주겠다. 예전부터 네가 욕심내던 봉황단소(鳳凰短簫)를 주도록 하마.”

“칫! 만통방 상위에 기록된 인지경을 가져가고, 중급 법기인 봉황단소를 주겠다고요?!”

“욕심내지 말아라. 이 물건은 네가 지키기엔 힘들 것이다. 아마 소문이 난다면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이걸 뺏기 위해 달려들 텐데. 네 세력으로 막을 수나 있겠느냐?”

“칫.”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여서령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납득하고 있었다. 다만 사람 욕심이란 게 그렇게 쉽게 딱 잘라 떼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여서령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혁이 다가오더니 물었다.

“아가씨? 저 인지경이란 게 무엇입니까?”

잠시 준혁을 바라보던 여서령이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역시 내 눈이 틀리진 않았는데···. 오히려 오라버니 좋은 일만 시켜버렸네.”

“죄송합니다.”

“준혁씨도 어쩔 수 없었단 거 알아요. 괜히 투정 부려봤어요.”

머쓱한지 준혁이 머리를 긁적이자, 여서령이 설명했다.

“준혁씨도 수도자들의 경지가 어찌 되는지는 아시죠?”

“네. 처음 입문하면 연기기(煉气期)가 되고, 그 후에 영기를 몸 안에 압축하면서 축기기(築基期), 그 뒤로 단전에 단을 만들어내면 결단기(结丹期), 그리고 단안에 자신의 새로운 자아인 원영을 만들어내면 원영기(元婴期)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충은 다 아시는군요. 맞아요. 그럼 각 수련 단계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대충 축기기에 이르면 200년을 넘게 살 수 있고, 결단기에 오르면 500살까지도 살 수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꼭 그렇게 딱 들어맞진 않지만, 대충은 맞아요. 그리고 원영기에 오르면 천년을 넘게 산다고도 하지만, 아직은 수도자가 생겨난 지 500여 년 밖에 안됐으니 확인이 안 된 사실이죠.”

잠깐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축기기 이상 올라가기가 힘드니, 흔히 말하는 천재들을 예로 설명해줄게요. 주변에서 천재라고 일컫는···. 예로 들면···. 저 같은···. 사람은 연기기에 입문한 지 20, 30여 년 전후로 축기기에 들어요.

그리고 그런 천재 중에서도 일부만이 100여 년이 넘기 전에 결단기에 이르지만, 대부분은 200살이 다될 때까지 성공하지 못하죠.

그럼 결단에서 원영에 이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원영기에 이른 사람이 전 세계에 겨우 7명 뿐이란 걸 보면 대충 예상이 되죠?”

“그렇군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할 수준이군요.”

“저 인지경은 바로 그런 수행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준다는 만통방에 적힌 상위 법기 중 하나예요. 상급 법기이지만 능력으로만 보자면 보패나 다름없는 엄청난 물건이죠.”

보패라니 그건 전설 속의 무구가 아닌가?

준혁은 자신이 세 가지 중에서 놓고 온 물건이 하필 보패급 법기란 말에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런 준혁의 표정을 보고는 여서령이 짐짓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놀랐죠? 저도 아쉽네요. 한데 오라버니 말대로 제가 지키진 못했을 거예요.”

준혁이 생각해도 그런 대단한 보물을 힘없는 자가 가진다면 피바람이 불어올 듯했다.

“근데 만통방은 무슨 책 같은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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