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8화 (8/408)

# 8 < 수련 시작 (2) >

집으로 돌아온 준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 대단한 거라···.”

분명 있을 터였다. 아니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몸 안에.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준혁은 간단하게 씻고 난 후 저녁을 차려 먹었다.

그리곤 방 가운데 앉아 태극단공과 충원단 한 병을 가져왔다.

“영근이 없어서 기를 모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고 했다. 우선 그게 선행돼야만 태극단공의 수련도 빨라지겠지.”

다시 한번 태극단공을 정독한 준혁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안정시킨 후, 충원단이 든 자기병을 열어 알약 하나를 꺼내 삼켰다.

기본적으로 손바닥만 한 자기병 하나엔 12알의 단약이 담아져 있었다.

꿀꺽-

입으로 들어간 단약은 씹기도 전에 흐믈거리며 녹아서 목구멍을 타고 사라졌다.

식도를 지나갔다는 느낌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흐음···.”

단약 한 알이 온전히 흡수되었지만 기(氣)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느껴지지 않자, 또 한 알을 집어삼켰다.

“영근만 없는 게 아니라, 기를 느끼는데도 둔감한 건가?”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이내 또 한 알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총 12알, 한 병을 온전히 먹고 나자 배꼽 아래 단전 부근이 뜨끈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기가 주변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 현상에 준혁은 화들짝 놀라며 기를 느끼기 위해 애를 쓰던 걸 멈추고 말았다.

“이게 왜?”

태극단공에 적힌 바에 의하면, 단약을 흡수해 기를 느끼게 되면 전신에 서서히 흐르는 약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온몸을 흐르다 모공을 통해 빠져나가는데, 그 기운들이 온전히 빠져나가기 전에 몸을 활성화 시켜 수련하는 게 핵심이었다.

만약 단약 없이 수련한다면, 외부에서 받아들인 기운이 영근이 없어서 뭉치지 못하고 흩어질 때, 극히 짧은 순간에만 수련이 가능했다.

하지만 준혁이 조금 전 느낀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단전에서 시작해 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현상.

그건 마치 연기기 수도자들이 공법을 운용하면서 느끼는 감각과 비슷했다.

“설마 아니겠지?”

준혁은 새로운 충원단 한 병을 가져와 한 알을 먹고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단전 부위에서 뜨끈한 느낌이 퍼져나가며 몸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놀라지 않고 흐르는 기운에 집중하며 태극단공에 나온 요결을 암송했다.

시간이 거듭해 갈수록 기운은 조금씩 선명해지더니 온몸을 천천히 돌아 다시 단전 안에 안착했다.

모공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기는커녕, 조금 전보다 미약하게나마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단전에 자리했다.

태극단공에서 말하는 순환 수련이 끝나자 준혁은 눈을 번쩍 뜨며 재빨리 책을 집어 들었다.

“왜 이러는 거지?”

책을 몇 차례나 정독해 보았지만, 어디에도 자신의 현상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아니, 전혀 다른 공법을 익힌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수련을 거듭할수록 충만해지는 기운 때문에 준혁은 계속해서 충원단을 먹으며 수련을 거듭했고, 결국 아침까지 총 3병의 자기병을 비워버렸다.

+++

광산 업무가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번엔 약초학이 아닌 기초 공법과 수련에 관한 내용을 차례대로 독파했다.

그렇게 십여 일이 지난 후에야, 준혁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처럼, 자신의 몸은 영근을 가진 사람들처럼 똑같이 수련이 가능해졌다는 걸 알았다.

거기다 더해 일반적으로 단약에서 얻는 효과보다 월등히 강한 기운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 영근이 없다는 건 어릴 때 검사를 했었는데. 이유가···. 설마? 그 식칼?”

자신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현상을 설명하자면 이유는 그것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몸속으로 파고들어 간 후 존재 여부를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중식도 모양의 식칼.

하지만 예상만 할 뿐 결론을 낼 순 없었다. 가진 정보가 너무도 적었다.

“그래 이유가 뭐가 됐든 중요한 건 나도 수도자가 되었다는 거다.”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움켜쥔 준혁은 두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내부를 관조했다.

어느새 단전에서 피어오른 약하디약한 기운이 일곱 가닥의 실처럼 변하며 온몸을 순회하는걸 느꼈다.

“벌써 연기기 7성···.”

그동안 여서령에게 받은 충원단 10병을 전부 먹어 치웠다.

누군가는 약빨로 엄청난 수행 속도를 보여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수도계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

기본적으로 단약은 먹을수록 내성이 생겨 효과가 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연기기라도 4성 이하에서는 호영단을 먹고 7성 이하에선 충원단, 그 이후엔 거력단을 섭취했다. 만약 하나만으로 해결한다면 내성 때문에 약효가 절반 혹은 그 이하로 떨어졌다.

또한 연속으로 여러 번 먹는다고 계속해서 중첩해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효과가 좋다고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야. 이유를 찾아야 해.”

준혁은 처음 충원단을 먹을 때와 마지막 10병째를 먹었을 때까지 전부 동일한 기운을 흡수했다.

흔히 말하는 내성이라는 건 전혀 느껴보질 못한 것.

수도계를 걷는 사람이라면 축복이라고 말할지 몰랐지만, 준혁이 생각하기에 이유 없는 결과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해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도서관에서 살아야겠군.”

다음날이 되자 준혁은 곧장 여서령을 찾아갔다.

광산이야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사는 곳과 도서관은 굉장히 거리가 있었기에 시간 낭비가 너무 심했다.

하지만 북한산 인근은 집값이 너무 비싸 준혁으로선 엄두도 낼 수 없는 곳.

준혁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라는 부탁을 받은 여서령은 별것 아니라고 단번에 허락했다.

“좋아요. 굳이 새로 구할 필요 있어요? 이곳으로 이사 오세요. 1층에 빈방 많으니까 유모랑 상의하시면 돼요.”

유모는 예전에 보았던 집사 아주머니를 말했다.

준혁은 잠시 고민해보다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차피 시간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보낼 테니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밥과 잠만 해결하면 되었다, 최고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되자 여서령은 준혁이 오라버니의 마수에서 벗어났다며 좋아했다.

그리곤 별일 아니라는 듯 물었다.

“수련은 어때요? 효과 좀 있나요?”

여서령의 질문에 오히려 준혁이 되물었다.

“저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신 겁니까?”

“네? 네. 예전과 똑같아요. 아! 준혁 씨가 느끼기엔 활력이 넘치니깐 수도자처럼 영기를 보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과 이건 엄연히 다르거든요. 만약 스스로 무언가 느껴진다고 생각된다면 수련을 잘하고 계신 거예요.”

“아 그렇군요.”

준혁은 친절한 여서령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수련에 관한 조언을 더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활력과 영기를 구분 못할 리는 없다. 분명 기초 공법 수련 편에 나온 현상과 동일해. 헌데 왜?”

왜?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질 못한 걸까?

일반적으로 상위등급의 수도자는 그 아래 등급 수도자의 수행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정 공법을 익힌다면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대충 어느 정도 수행을 지녔는지도 몸 주위로 흐르는 영기를 보고 판단하는 것.

그렇다면 축기 중기에 들어선 여서령의 눈에 겨우 연기기 중기인 준혁은 단번에 파악되어야 정상이었다.

“대공자도 만나봐야겠다.”

지금 준혁이 만날 수 있는 경지가 가장 높은 수도자는 여서령과 대공자뿐이었다.

만약 대공자마저 자신이 영기를 다룬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면, 준혁으로썬 엄청난 무기를 하나 가진 게 된다.

남들이 나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건, 그들과 대치 상태가 되었을 때 엄청나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것.

“확인해 보자.”

생각을 정리한 준혁은 가장 중요한 청명단을 챙겼다.

그리곤 곧바로 나머지 짐을 쌌다.

+++

여서령의 집으로 이사 온 후, 대공자를 찾아가 청명단을 연기기 수사가 먹는 단약으로 바꿔달라 요청했다.

대공자는 오랜만에 가볍게 웃더니 청명단은 받지 않고 충원단과 거력단을 각각 5병씩 챙겨주었다.

“혈색이 좋아졌군?”

“아가씨께서 태극단공이라는 기공 수련법을 구해주셨습니다.”

“태극단공? 아! 들어본 적이 있군. 일반인들이 익히는 심신 단련용이라지? 그래서 연기기 단약이. 흠. 수련에 힘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 가봐라. 단약이 떨어지면 다시 찾아와도 좋다.”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살짝 웃는 걸 보니, 진심으로 단약을 받으러 오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여서령이 아닌 자신에게 오면 그만큼 지원을 많이 해주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보였다.

그리고 대공자의 대저택을 나서며 준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대공자도 전혀 모른다.’

준혁이 무영근자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준혁의 몸에서 영기가 느껴진다면 절대 지금처럼 반응하지는 못할 터.

아무도 자신이 연기기 수도자가 되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고 준혁은 확신했다.

물론 축기기를 넘어 결단기나 원영기에 이른 수도자들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틀린 추론일 수도 있지만, 그걸 확인하자고 청룡가의 가주를 찾아가는 미친 짓을 할 순 없었다.

준혁이 알고 있는 결단기 수사는 결단 후기에 오른 청룡가의 가주가 유일했다.

+++

준혁이 여서령의 집으로 이사 온 지도 1년 6개월.

“후우···.”

깊은숨을 내뱉은 준혁은 단전에서 뻗어 나온 후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운을 느끼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번쩍-

순간 옅은 핏빛 안광이 빠르게 스치다 사라졌다.

“벌써 12성이야.”

수련을 시작한 지 고작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준혁은 연기기 12성 끝자락에 도달해 축기기에 오를 준비만 남아 있었다.

이 수련 속도는 실제 말도 안 되는 빠르기로, 청룡가에서도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여서령이 축기기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20년 정도였다.

준혁이 여서령에게 매달 받은 충원단과 대공자에게 받은 충원단, 거력단, 청명단 대부분을 먹어 치웠다고는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수련 경지가 올라가 버린 것,

준혁 스스로도 얼떨떨해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수련에만 매진한 것이 아닌, 청룡도서관을 탈탈 털다시피 이론 공부도 했기에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경지에 의구심이 들긴 했다.

“이건 마치 단약에 존재하는 기운을 단 하나의 낭비도 없이 먹어 치운 것 같은 느낌이야.”

수련 경지가 올라가고, 기에 민감해질수록 조금씩 느껴지는 것이 있긴 했다.

그건 바로 단전 어딘가로 단약의 기운이 미친 듯이 흡수되고 있다는 것.

“여전히 영근이 없는 건 확실해.”

단약을 먹지 않으면 아무리 좌선을 하고 수련을 해도 단 하나의 기운도 모이질 않았다.

오직 단약을 직접 먹어서 흡수한 기운만이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고민을 거듭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준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침대 안쪽에 숨겨둔 자기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기병 안에는 푸른빛이 맴도는 단약 세 알이 진한 영기를 풍기며 자신을 어서 먹어치우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단약을 바라보는 준혁의 입가가 모로 올라갔다.

“이제 이걸 축기단으로 바꿔야겠어.”

다 먹어치우고 싶은 욕망을 내리누르며 남겨둔 청명단 세 알. 이건 축기단으로 바꿔 복용할 생각이었다.

축기단이 청명단에 비한다면 비록 효능이 떨어지는 단약이었지만, 단하나. 다른 단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효과가 한가지 있었다.

바로 연기기에서 축기기에 오르는 과정을 쉽게 해준다는 것.

“세알이면 축기단 다섯 알은 구하겠지?”

한알이면 충분했지만, 혹시 모르니 여유분 까지 구할 생각.

만약 축기에만 성공한다면 수명이 200년까지 늘어나게 될 테고, 늘어난 시간만큼 구색초를 구해 동생을 치료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터.

준혁은 이 속도로만 꾸준히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축기기에 오르고 나면, 그녀에게만 말하자.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녀는 믿을만해. 그리고 도움도 받아야지.”

아직까지 비밀리에 몰래 기공 수련만 했기에, 준혁은 연기기 12성 끝자락에 이르는 동안 어떠한 술법이나 공법도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몸 상태만 수도자일 뿐, 실제로 수도자들이 행하는 이적은 단 하나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술법이나 법기, 공간대 같은 것들을 구할 수도 없었다.

무영근자가 수행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과 미칠듯한 수련 속도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만들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건 분명 불필요한 관심과 견제를 받게 될 것이었다. 어쩌면 청룡가의 비밀 시설에 끌려가 배가 갈라져 실험대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여서령의 도움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었다.

물론,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릴 때 조사한 바로는 영근이 없었지만, 알고 보니 있었다. 충원단을 먹으며 기공 수련을 하다 보니 연기기가 되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수행을 연기기 초기까지 낮춰서 보여준다면, 진짜 수행을 눈치챌 수 없으니 속아 넘어갈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이 사실을 밝힐 순 없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자.”

그녀는 분명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었다.

준혁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사람이 아니었다. 두들겨보는 건 당연했고, 다리 옆에 배까지 준비해 놔야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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