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 공법 시험 (1) >
정보를 파는 통이문.
그들은 정보 수급의 난이도에 따라 가격책정을 달리했는데, 조건만 맞춘다면 못 알아내는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다만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선 의뢰자의 신분도 확실히 해야 했기에, 함부로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저희 통이문이 다른 건 몰라도 의뢰자분의 신분은 철저하게 지켜주는데···. 철두철미하시군요?”
“얼굴이 흉해서 쓰는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통이문의 사내가 살짝 웃는 게 느껴졌으나 준혁은 신경 쓰지 않고, 공간대에서 영석 10개를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정보가 필요하실 땐 이번처럼 언제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말을 마친 사내가 절벽을 뛰어내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지자, 준혁도 천천히 걸어 산에서 내려갔다.
잠시 후. 절벽으로 뛰어내렸던 사내가 비행법기에 앉은 채, 천천히 허공으로 떠 올랐다.
“흠···. 연기기 4성이라. 청룡가에서 수배를 내린 그자는 아닐 테고. 다른 세가의 심부름꾼인가?”
대략 1년 전부터 청룡가에선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수행은 축기기 초기와 중기쯤, 사용하는 법기는 단검과 거울.
꽤 보수가 높았기에 청룡가에서 찾는 그자라면 의뢰자 보호조약을 무시하고 잡아갈까도 고민했지만, 수행을 보니 자신이 잘못 짐작한 듯했다.
“심부름꾼이 맞겠지.”
간혹 세가에서 다른 세가의 정보를 얻을 때 자신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이용하는 심부름꾼.
방금 그자는 분명 그런 자가 맞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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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를 추적을 대비해 준혁은 천천히 걸어 시내로 들어선 후 모텔로 들어갔다.
정보를 사고파는 이들은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 됐다. 그들은 정보를 사는 사람의 신분조차 정보로 팔아먹는 놈들이었으니까.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절대 의뢰자의 신분을 발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발설하진 않지만, 빙 둘러 알아차리게끔 정보를 파는 것.
그랬기에 준혁은 얼굴도 가리고 수행도 숨긴 채 비행법기마저 사용하지 않고 행동했다.
“청룡가에서 가만 있었을 리는 없으니까.”
사내에게서 받은 옥간을 이용하기 전, 준혁은 공간대에서 깃발 세 개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그리곤 수결을 맺자 깃발이 삼각형으로 흩어지며 바닥에 꽂혀 들어갔다.
“결!”
마지막 수결을 끝마치자 바람도 없는 방안에서 깃발이 펄럭 움직이더니 잠시 후 잠잠해졌다.
그걸 확인한 후에야 준혁은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 대며 그 안의 정보를 확인했다.
정보를 사기전 수염 사내에게서 얻은 기초 부적술과 진법에 관한 걸 확인하고, 그중 가장 요긴하게 쓰일 방음진을 먼저 익혔다.
방음진은 소리와 기척, 영기 파동 같은 걸 막아주었기에 모든 방어 진법의 가장 기초 중의 기초였다.
“흠. 구색초라···.”
옥간 속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준혁이 원하는 정보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청룡가 최근 근황]
-청룡가 소유의 영석 광산에 영환 안개 출현.
-지진과 굉음 동반.
-가주 여공천과 첫째 대공자를 비롯한 직계와 관련된 자들이 그 이유를 알고 있으나, 정보 획득 불가능. (차후 상담 요망)
-넷째 후계자인 여서령은 후계 지위 박탈.
-본가와 하부세력을 위시한 모든 곳에 최가라는 인물의 수배령이 내려짐.
-최가 인물 특. 축기기 초기~중기 수행으로 단검과 거울 법기를 주 무기로 사용함.
반듯한 외모로 진중하고 바른 듯 보이나 전국 수배령이 내려진 걸 보면 위험인물일 가능성이 큼. (인물 사진 부록)
-가주의 명령으로 본가의 축기기 이상 모든 인원은 구색초를 구하기 위해 움직임.
-구색초는 여공천이 이미 혼원단을 가지고 있기에 원영기에 도전하기 위함은 아닌걸로 판단(작성자의 사견임으로 감안 바람)
-여공천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세 번째 호법이 빙제소 관리자로 좌천됨.
-진주 출신 진법 대가인 결단기 가심악이 청룡가 빈객으로 합류.
-둘째 공자 여동수가 폐관에 들어감.
-분가했던 막내 여서령이 본가로 들어간 후 9개월째 칩거 상태. ( 간혹 본가 정원 산책을 하는 걸 보면 폐관 수련은 아닐 듯)
....
...
그 뒤로도 자잘한 정보들이 꽤 많이 나와 있었지만, 준혁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수배령이야 예상했지만, 구색초와 빙제소라.”
아마 여공천은 구색초로 동생을 치료한 뒤, 진짜 인질로 잡을 셈인 듯했다.
혹시나 준혁이 그걸 막기 위해 움직일까 봐 빙제소에 호법까지 배치한 걸로 보였다.
옥간을 한 번 더 읽어본 준혁은 공간대에 갈무리하고는 장고에 들어갔다.
“흐음.”
만약 정말로 청룡가에서 구색초를 구하게 된다면, 준혁으로썬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 돼버리는 셈.
“헌데 그걸 구할 수 있을까?”
준혁 역시 그 후로 알아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구색초는 비경 깊은 곳에서만 발견됐는데, 그 수량이 너무 적어 수십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할 정도였다.
반대로 결단기에서 원영기에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쳐났으니, 공급과 비교해 수요가 너무나 많은 것.
혼원단을 먹는다고 단번에 원영기에 오르는 건 아니었기에 더욱 공급이 부족했다.
아마 청룡가에서 직접 구하지 않는 이상, 구해지는 족족 원영기 수도자의 손에 들어간 후 그들의 후인들에게 전해질 가능성이 훨씬 농후했다.
그렇다고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수십 년 후에는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는 것.
그걸 알고 있으니 청룡가도 본가의 힘을 총동원해 구색초를 구하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여기엔 크나큰 돌발변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미칠듯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준혁의 수행.
고작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축기기 초기에서 중기로 들어섰으니 만약 구색초가 구해지기 전 결단기에만 이를 수 있다면, 모든 게 달라질 수도 있었다.
“방법은 하나다. 어떻게든 강해지면 된다.”
마음 같아서는 청룡가에 세작이라도 심어놓고 싶었으나, 그럴 능력이 안됐기에 준혁은 곧바로 발길을 돌려 다시 영산들이 모여있는 강원도 심처로 이동하기로 했다.
역시 처음의 계획대로 일본의 비경으로 넘어가는 게 청룡가의 마수를 피해 수련하기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은 내렸다.
하지만 그전에 설악산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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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늙은 노괴의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는 말이지?”
준혁은 바삐 발걸음을 옮기며 산을 넘어 춘천으로 향하며 듣게 된 정보를 떠올렸다.
강원도의 산수들이 수련하는 방법.
예전부터 궁금했던 그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원영기 수사인 도율은 매해 1월 1일이 되면 저급 수사들을 상대로 시험을 냈다.
그 시험이란 게 다른 말로는 임무이기도 했는데, 그걸 통과하면 그 수행에 맞는 상을 내린다고 했다.
그중 축기기 이상의 수도자가 받을 수 있는 상에는 중급으로 분류되는 수도공법도 있었기에 준혁은 그걸 얻기 위해 강원도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준혁이 익히고 있는 건, 일반인들이나 익히는 기공 수련법.
공법으로 치자면 하급, 최하급을 넘어 그냥 쓰레기 같은 공법으로 분류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곳으로 가, 효율이 좋은 공법을 얻고 그다음에 일본 비경으로 이동해 수련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침, 2주 후가 바로 1월 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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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명산 중의 명산이라 불리는 설악산.
그곳엔 대한민국 최고 강자이며 유일한 원영기 수사인 명왕 도율이 기거하고 있었다.
설악산 중청봉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지어진 휘황찬란한 5층의 대리석 건물은 그의 위엄과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명왕 도율을 모시는 제자 중 한 명이 중청봉 아래로 끝없이 이어진 수사들의 줄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끌어올리고 말았다.
“이번에도 많이들 몰려오는구나.”
매년 1월 1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시작되는 ‘명왕의 시험’.
수많은 수사가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해, 좌절과 절망을 맛보고 돌아가는 시기였다.
물론 개중에는 엄청난 행운을 쥐어 잡는 자도 있으나,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애초에 명왕 도율이 이런 풍습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고 여러 가지 재료들을 수급하기가 불편해, 가진 것 중 필요 없는 것들을 베풀고 새로운 것들을 구해오게 하려고 시작한 것.
도율 역시 산수 출신이었기에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자신만의 재료 수급 방안을 만든 것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하나의 축제처럼 자리매김하는 와중에 수많은 수도자가 도율의 제자가 되었고 그 규모는 점점 커져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럼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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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던 준혁은 끝도 없이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영근을 가지고 태어나 수도자가 되는 건 1%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 많은 사람이 이곳에 전부 모여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와 정말 많구나.”
“형씨, 여기 처음이요?”
준혁이 막힌 행렬 때문에 멈추어 선 채 감탄하자, 뒤따르던 중년 사내가 말을 걸었다.
“네. 그러는 그쪽은 경험이 있으신 겁니까?”
“흐흐, 올해로 세 번째요.”
“제가 형님을 못알아 뵙군요.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사내는 준혁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존대하자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음을 흘렸다.
“헌데, 그쪽 동생은 수행이···. 흠.”
“형님께선 연기기 후기 시군요. 저는 중기입니다. 얼마 전에 겨우 8성이 되었습니다.”
준혁은 말을 하며 몸에 흐르는 기운을 살짝 바꿔 연기기 8성의 경지를 내비쳤다.
“아! 역시 나보다 하수였구먼, 흐, 내 감이 틀리지 않았어.”
“근데, 위로 올라가면 뭘 하는 겁니까? 소문으론 무슨 임무를 맡긴다던데?”
“임무는 무슨. 그건 축기기 이상 선배님들이나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연기기는 거기서 내는 시험을 통과하면 그 성적에 따라 영석이나 영단 같은걸 얻을 수 있는걸세.”
“아~ 그렇군요.”
사내가 에헴 하며 헛기침하자, 준혁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연기기는 공법 같은 건 얻지 못하는 겁니까?”
“자네 공법을 구하러 왔나? 연기기라도 성적이 매우 뛰어난 자는 수행에 상관없이 관문 제자로 받아들여지고 공법과 수련에 필요한 약을 내린다고는 들었네. 근데 어려워.”
사내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관문 제자? 도율 스스로 강원도 내에선 세력 형성을 금지한 거 아니었나?’
“관문 제자라니? 설마 도율님의 의발을 전수 받는 것입니까?”
“흐, 그럴 리 있겠나? 말이 제자지. 여기가 어딘가? 산수의 땅 아닌가? 그저 중대한 일이 있을 때 불려가 일을 수행하거나 일을 하고 수당을 받는...뭐 계약직 같은 거랄까? 평소처럼 혼자 수련하는걸세. 그저 미약한 끈 하나 연결된 정도고.”
“아···.”
그때 사내가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어 준혁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동생이 싹싹하게 예의를 아는 게 맘에 들어 말해주는 건데, 연기기 시험 중에 공법을 익히는 시험도 있네. 거긴 절대 지원하지 말게. 절대.”
준혁 역시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법이요? 그럼 잘된 거 아닙니까? 제가 산에 오르는 이유가 그것인데?”
“땍! 이 형 말을 듣게! 거기서 배우는 공법은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그동안 도율님을 포함해 수많은 선배들이 모아온 공법서 중에서 아무도 익히지 못한 것들만 모아놓은 것이지.”
‘아무도 익히지 못한 것?’
“그러니 아무리 발악을 해봐도 시험을 통과할 수 없고 보상도 받을 수가 없네. 나도 처음 올라왔을 때 그곳에 도전했다가 빈손으로 내려갔어.”
그리곤 숨을 한번 내쉬며 비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형의 육감으론 그건 욕심 많은 자를 걸러내기 위한 함정이네. 어중이떠중이들을 솎아내기 위한.”
“그렇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준혁이 말을 알아듣는 듯 보이자, 사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줄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다시 산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사내는 준혁이 마음에 들었는지 산을 오르는 동안 이것저것 조언해주더니 시험을 고르는 갈림길이 오자 가장 왼쪽의 깃발이 그려진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 참, 난 오태식이라고 하는데. 자넨 이름이 뭔가? 우리 같은 산수는 이런 인연도 소중히 해야 하는 법이야. 나중에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 알겠어?”
“전 최가입니다.”
“이름은?”
“...최···.”
“아니 됐네. 뭐 말 못 할 이유라도 있나 보네. 그럼 그냥 최수사라고 부르겠네.”
“네. 편하게 그렇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오태식은 준혁의 어깨를 탁탁 치더니 같이 힘내자는 듯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동생 그럼 다음엔 더 발전된 모습으로 만나자고?”
오태식이 손을 흔들며 사라진 후 준혁은 눈앞의 표지판을 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눈앞엔 화살표 모양의 표지판이 다섯 군데를 나눠 가리키고 있었는데,
각각 표지판에 깃발, 약초, 검, 부적, 옥간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말했던 함정은 바로 옥간이 그려져 있는 시험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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