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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42화 (42/408)

# 42 < 결단기 (2) >

“후우···.”

긴 호흡과 함께 진한 영기가 숨을 통해 밖으로 나오다 다시 몸 안으로 흡수돼 사라졌다.

준혁이 천천히 눈을 뜨자 진한 핏빛 안광이 빠르게 스치다 잔잔하게 변했다.

“후기인가?”

꽤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혈단법을 운용하는 데만 시간을 보냈다.

한숨도 자지 않았고, 단 일 초도 허투루 보내질 않았다. 오직 태극단공과 영단을 먹어가며 쌓아 올린 영력을 혈단법을 통해 정혈로 바꾸는 데만 집중했다.

몸 안에 가득했던 축기기 중기수준의 영기를 정혈로 만들고 난 뒤엔, 그동안 공간대 안에 고이 모셔두었던 각종 단약을 꺼내 먹으며 수련을 계속했다.

강만학, 강만학의 제자들, 청룡가 결단기 수사까지.

그들에게서 얻은 모든 단약을 흡수하며 수련한지도 몇 날이 지났는지 가늠도 안 되는 시간. 드디어 축기기 후기에 들어선 것.

다만, 준혁은 만족감보다는 아쉬운 감정이 앞섰다.

“한걸음.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결단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

일반 공법이라면 축기기 후기에 오른 후 갖은 노력을 통해 경지를 다지고, 결단에 도전했을 테지만. 혈단법은 정혈을 만들어 강제로 결단에 이를 수 있는 공법.

거기다 결단에 이를 최소 조건에 거의 근접했기에 준혁의 아쉬움은 매우 컸다.

아쉬움을 달래던 준혁은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공간대에서 깃발과 비행법기 7개를 꺼내 들었다.

“그래. 한번 도전해 보자. 이대로 다음 기회를 노리기엔 그리 여유로운 것도 아니니.”

준혁은 마음을 굳힌 듯 비행법기 일곱 개를 허공중에 띄운 채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비행법기 들이 준혁을 중심으로 원을 이루듯 넓게 포진했다.

7개의 비행법기는 강만학의 제자들을 비롯한 지금껏 얻었던 하급 법기들.

준혁은 혈단법에 나와 있는 흡기술을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진법과 함께 혈단법을 익히던 준혁은 혈단법에서 흡수하는 원기라는 기운이 생명체에게서 얻는 것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원기는 영기처럼 천하 만물에 깃들어 있었고, 법기는 그런 기운이 집약돼 있는 물건.

여러 방면으로 살펴본 결과, 이론적으론 구역설정의 심상화 단계만 제대로 해낸다면 법기는 물론이고, 영석이나 진법 같은 것에서도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단 걸 깨달았다.

다만, 이 모든 건 혈단법을 준혁이 주관적으로 재해석 한 것이지 원래 공법의 사용 방법은 아니었다.

혈단법 공법서에 나와 있는 방법은 일정 구역을 지배해 그곳 생명체의 원기를 흡수하는 것이 중점이었다.

숙련만 되고 수행이 높다면 단번에 36방위를 점할수 있었지만, 아직 준혁에겐 머나먼 이야기.

“지금 내 수행엔 삼 방위를 점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 테지만···. 그래.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어차피 실패해도 사용하지도 않는 하급 법기를 잃을 뿐이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인 준혁이 표정을 굳히며 수결을 맺자, 작은 영기파동이 지나가며 공중에 떠 있던 깃발이 펄럭거렸다.

잠시 후 공중을 몇 회 선회한 깃발들은 스스로 의지가 있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준혁 주위에 떠 있던 7개의 비행법기를 관통하며 꽂혀 들었다.

그 순간, 준혁이 빠르게 수결을 바꾸자, 앉아있던 엉덩이 아래에서 금빛 실이 생겨나며 주변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금빛 실들은 총 7가닥이었고, 실들은 빠르게 늘어나 법기에 닿았다.

법기에 닿은 실들은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지더니 서로 교차하기 시작하며 바닥에 현란한 문양을 그려나갔다.

“합!”

모든 수결을 끝낸 준혁이 빠르게 손을 뒤집으며 두 손바닥을 합장하자, 강한 영기파동이 물결치듯 주변으로 흩어졌다.

파앙-

동시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금빛 실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치며 빛나기 시작했다.

파앗-

그리고 금빛 실들이 하나의 진법이 되어 7개의 법기를 잇는 순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운들이 진법 문양을 타고 준혁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7개의 비행법기들은 끝에서부터 부스스 무너져 내리며 형태를 잃어갔다.

+++

설악산에서 100킬로쯤 떨어진 동해 상공.

두 명의 수사가 각각의 법기 위에 올라탄 채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수사들의 수행은 축기기 초기, 벌써 3년을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양 형, 저희도 이만 포기하고 돌아가죠? 다른 팀들은 작년에 대부분 포기했답니다.”

“후우, 나도 그럴 생각이네. 이리 쓸데없는 일에 삼 년이나 낭빌 하다니.”

각각의 법기에 앉아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밝질 않았다.

“근데 그자가 도대체 무얼 훔쳐 달아난 걸까요? 소문엔 법보라는 얘기도 있던데.”

“난들 알겠나? 다만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들이 포기 못 한 걸 보면···. 보통 물건은 아니겠지.”

콰르릉!!

그때 멀리 보이는 해수면 위로 노란 번개가 내리쳤다.

그리곤 번개가 신호라도 된 듯 주변의 기운들이 요동치더니, 어느 한 지점의 상공으로 검은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 구름은 이따금 푸른빛을 내뿜는 것이 평범한 먹구름이 아닌, 밀도 높은 영기를 품고 있는 영기구름이 분명했다.

구름 주위 눈에 보일 정도로 격렬한 영기 파동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확실했다.

“양 형! 저건? 설마!”

“가보세! 이런 바다 한복판에서 누군가 수행을 올리는 것도 아닐 테고! 저건 분명 보물이 나타날 징조일세!”

양형이라 불린 사내는 급하게 방향을 선회하더니 먹구름이 모여드는 장소로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사내 역시 질세라 그 뒤를 빠르게 쫓았다.

+++

이틀 뒤.

이상 현상이 생겨난 바다 주위로 많은 수도자가 몰려들기 시작한 가운데. 하늘에 뭉쳐있던 백여 미터 가까운 검은 구름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엇이기에 저런 현상이?”

“이 정도 요란한 천지조화라면 법보가 아니겠습니까?”

하늘을 뒤덮을 듯 퍼져있던 검은 구름의 중심에서 서서히 회오리가 생겨나며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하자, 푸른빛이 번뜩이며 주변에 영기파동을 퍼트렸다.

조그마한 크기로 시작한 회오리는 이내 점점 커지더니 백여 미터에 이르는 구름 전체가 소용돌이처럼 변하며 요동쳤다.

소용돌이의 중심부는 마치 자석에 끌려가는 것처럼 바닷속으로 끌려가기 시작했고, 그에 동조하듯 주변 파도가 미친 듯이 춤추기 시작했다.

장엄한 장관에 모든 수사가 숨을 죽이고 눈앞의 일들을 놓칠세라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몇몇은 비행법기에 올라탄 자세 그대로 가부좌를 하고는 공법을 운용했다.

“막 아우! 여기 모여든 면면을 보니 우리가 저 보물을 가지긴 틀렸네. 차라리 공법을 운용해 구름 속에 농도 짙은 영기나마 조금 훔쳐 오는 거로 만족해야 하네!”

“예? 잘못하면 오히려 영기를 빼앗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그건 금기사항 중 하나일 텐데요?”

“쯧쯧, 세상에 위험 없는 이익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영기를 빼앗겨 보았자 수일 회복하면 될 뿐이지, 저걸 흡수해 얻을 이익에 비교하면 별것 아니네.”

그때 어디에선가 징 소리가 나며 강렬한 기운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뎅~~

가부좌를 한 채 검은 구름 속 영기를 훔쳐 가려던 사내는 그 소리에 안색이 핼쑥해지더니, 빠르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헉, 울릉도주!”

곧이어 징 소리가 난 곳에서 힘 있는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울릉도주 류수영이다!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면 모두 십 리 이상 떨어지거라!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살려두지 않겠다!”

류수영의 선포에 보물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여기저기 모여있던 수사들이 조금씩 거리를 두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십 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수사들의 굼뜬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류수영이 버럭 소리치며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법기를 꺼내 들자, 그제야 눈치를 보던 수사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사람들을 쫓아내 버린 울릉도주는 검은 소용돌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라. 다가오는 자들은 전부 죽여버리고.”

“예! 스승님!”

류수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멀리서 날아오고 있던 여덟 명의 수사들이 빠르게 흩어지며 이상 현상의 출현 지점을 중심으로 넓게 산개했다.

“보물? 멍청한 놈들. 이건 결단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누군가 바닷속 아래에서 결단을 맺는 것일 터···.”

혼잣말하던 류수영의 입가가 사악하게 비틀리며 텁텁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이 근방이라면 예상가는 놈이 하나 있지.”

류수영은 3년 전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한 사람을 떠올렸다. 평소 친분이 깊던 친우의 부탁으로 찾아다니던 놈.

동해 어딘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수사가 러시아, 일본, 한국을 쥐잡듯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발견되질 않았다.

그렇기에 동해 어딘가에 숨은 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시되었지만, 실질적으로 그 넓은 바다를 일일이 수색할 수는 없는 일.

3년쯤 지나자 대부분은 그놈을 찾는 일에 시들해졌고, 그건 류수영도 마찬가지였다.

“흐흐, 저놈을 잡아가면 원혼단을 구해주기로 약속했었지? 만학 그 친구가 헛말을 할 리도 없고, 오늘 수지맞았군.”

그때 바닷속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던 검은 구름이 갑자기 부피를 키워나가더니 펑 하고 터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진한 영기가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안 그래도 웃고 있던 류수영이 입을 함박만큼 벌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 결단에 실패했구나! 어서 나와라 크하하.”

만약 바닷속에 숨은 놈이 결단에 성공했다고 해도, 이제 막 경지를 올렸으니 수행을 단단하게 다지지도 못한 상황이라 류수영은 상대방을 잡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한데 이제는 도망자 놈이 결단에 실패한 것을 보았으니 말 그대로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류수영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닷물이 크게 요동치더니 누군가가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바다 밖으로 나온 사내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 눈앞에서 웃고 있는 상대방을 보고는 작게 투덜거렸다.

“남의 실패가 즐거운 모양이십니다?”

“크하하, 역시 바로 나올 줄 알았다. 결단엔 실패했지만 지금 몸 안에 들끓는 기운을 이용한다면 나에게 대적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걸 테지?”

바닷속에서 수련 중인 도망자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않고 바로 나올 거라고 류수영이 확신한 이유.

그것은 바로, 결단엔 실패했지만, 한동안 모여들었던 영기구름으로 인해 몸속의 영기는 포화상태를 넘어 이미 결단기에 가까운 상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축기기 후기 수준으로 떨어질 테지만, 당장은 결단기 초기와 비슷한 힘을 쓸 수 있기에, 상대방이 도망가지 않고 자신에게 덤벼들 거라 확신했었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도망자를 보며 류수영이 말했다.

“확인만 하지. 자네가 최준혁 맞나?”

“아니라고 하시면 보내주실 겁니까?”

“뭐? 크하하. 아주 당돌하다고 만학 그 친구가 말하더니만 아주 딱 그 말이 맞네.”

“강 수사는 잘 계십니까?”

“뭐? 크크큭. 미친놈. 그놈 제자들을 깡그리 죽여놓고 잘 지내냐고? 네놈도 정상은 아니구나.”

류수영이 웃음을 멈추지 않자, 도망자 사내. 준혁은 손발을 살짝 털면서 작게 웃음 지었다.

“사람이 더 많아지면 곤란하니. 시작하시지요?”

결단기에 도전하며 생겨난 천지 현상을 본 수사 중 분명 설악산과 관련 있는 자들이 있을 터.

준혁은 자신의 수행이 크게 늘긴 했지만, 결단기 수사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준은 아니란 걸 알기에,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좋지! 좋아! 딱 죽기 직전의 상태로 만들어주마!”

“기대하겠습니다.”

준혁과 류수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각자의 법기를 꺼내 들고 영기를 불어넣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류수영이 허리띠처럼 생긴 방어 법기를 발동하며 쌍칼처럼 생긴 법기를 꺼낸 것과 다르게,

준혁의 공간대에서 나온 것은 여인들이나 들고 다닐법한 거울 하나였다.

그리고 류수영이 쌍칼 법기에 영기를 잔뜩 주입하며 두 팔을 양옆으로 넓게 펼친 순간.

준혁이 꺼낸 거울은 그의 머리 위로 떠 오르더니 강렬한 빛기둥을 쏘아 보냈다.

그 순간, 류수영은 심장이라도 멈춘 듯 깜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마, 마, 말도 안 돼! 네놈! 결단에 실패한 것 아니었느냐!?”

준혁이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보기에 따라 실패라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 순간 준혁의 수행이 미칠 듯이 치솟더니 어느새 결단기 중기에 이르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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