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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77화 (77/408)

# 77 < 약속, 그리고 인연 실 >

타닥- 타닥-

구슬프게 타오르던 불꽃이 잦아들자, 준혁은 수결을 맺어 잿가루를 날려버린 후, 화장 후 남은 뼈를 가루로 만들어 모았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곁에 다가온 나설헌이 묻자, 준혁은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겠습니다.”

준혁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서령은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녀가 죽기 전 준혁에게 부탁한 건 세 가지.

그중 첫 번째는 자신의 흔적을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뿌려주라는 것.

평생을 청룡가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야 했던 삶을 벗어나 죽어서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릴게요.”

준혁은 나설헌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보이지도 않은 하늘의 한점을 응시했다.

쾅!

그리곤 하늘로 치솟았다.

+++

얼마나 올라왔을까.

구름을 지나 한참을 오르자, 주변의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준혁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그러던 것이 어느 선을 지나자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생겨났다. 하지만 강체공으로 이미 결단기 영수급의 신체를 가지게 된 준혁에게 그리 고통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그 후로도 준혁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왔고, 어느 순간 압력과 더불어 자신을 밀어내는 힘에 저항해야 했다.

이미 숨을 멈춘 지는 한참 오래. 온몸에선 달빛이 뿜어져 나오며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제야 준혁은 자리에 멈춰 서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구름도 저 멀리 보였다.

한참 동안 그렇게 추억을 되새기며 떠 있던 준혁은 목함에서 뼛가루를 꺼내 천천히 흩뿌렸다.

“늦어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가루를 뿌리는 손이 떨려왔다.

“다음 생에선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납시다. 당신 말대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땐···.”

애달픈 눈으로 가루가 날리는 걸 한참 바라보던 준혁의 입이 열렸다.

“그땐···. 이리 허망하게 보내지 않겠습니다.”

천천히 가루를 흩날리는 준혁의 손목엔 빨간 실이 매어져 있었다.

+++

지상으로 내려온 준혁은 화령이 숨어있다는 북극을 향해 이동했다. 그의 곁엔 나설헌이 함께하고 있었다.

“저는 정말 괜찮으니 가셔도 됩니다.”

“아니요. 그 아이와 약속했으니 지킬 거예요.”

여서령이 죽기 전 준혁에게 부탁한 것 세 가지 외에도, 그녀는 나설헌에게도 다른 부탁을 했다.

그 첫째가 준혁의 동생이 치료될 때까지 그를 지켜주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자신이 부탁한 두 번째 약속을 준혁이 지키는지 확인해 주라는 것.

하지만 준혁이나 나설헌이나, 그녀의 부탁 두 가지 전부 준혁을 걱정했기에 했단 걸 알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비행 법기에 앉아있는 준혁을 보며 나설헌이 물었다.

“정말 그 아이와 약속한 대로 여 가주 한 사람만 죽일 건가요?”

여서령은 준혁이 청룡가와 맺은 악연을 끝맺을 때, 되도록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했다.

자신의 친인척, 지인, 친구들이 죽는 게 싫기도 했지만, 준혁의 손에 필요 이상의 피가 묻는 게 싫었기 때문.

“제가 약속한 건 그게 아닌 걸 알지 않습니까?”

“살생을 최소화한다. 그게 그 말 아닌가요?”

준혁은 침묵으로 대답하며 왼 손목에 묶인 빨간 실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세 번째 약속은 바로 그녀에게 받은 실을 평생 차고 있겠다는 것.

-준혁 씨 이 실이 뭔지 알아요? 오래전 대력불문(大力佛門)의 선사께 받은 물건이에요. 죽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이 실로 묶여있으면, 후생에 다시 만나게 된다네요.

-다음 생에 다시 나를 만날 때까지 이걸 차고 있어 줘요. 해줄 거죠?

애틋한 눈빛으로 다음을 약속하는 여서령의 말에 준혁은 가슴 한쪽이 아려옴을 느꼈었다.

평소 환생이니 다음 생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았던 준혁이었지만, 죽어가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와 같은 실로 하나 되었다가, 그녀가 죽고 난 후 자신의 손목에 실을 칭칭 감아두었다.

“인연 실···.”

손목에 감긴 실을 바라보다 보니, 또다시 감정의 동요가 올 것 같았기에, 준혁은 급히 시선을 옮겼다.

어느새 시선은 비행 법기에 탄 채 날아가는 나설헌에게 향해 있었다.

“나 수사는 어쩌다 중국에 오신 겁니까?”

준혁의 질문에 마침 잘됐다는 듯 나설헌이 말문을 열었다.

“그게 흠···. 제가 비경을···.”

북극까지 가는 시간 동안 잠시나마 생각을 돌리기엔 적당한 이야기였다.

+++

화령이 숨어있다는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온통 하얀 얼음 대지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이글루가 있었고, 그 안에서 미약하게나마 영기의 흔적이 느껴지고 있었던 것.

준혁은 나설헌과 함께 그곳으로 다가갔다.

“화 수사.”

준혁의 부름에 안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지다, 이글루에 난 조그만 문에서 오래전 본 적 있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 준혁 씨! 설마. 돌아온 겁니까?”

질문을 하던 화령은 준혁 너머에 시선을 두었다가 빠르게 나설헌을 훑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어디에?”

화령의 질문에 준혁이 곧바로 답하지 못하자, 나설헌이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화령의 얼굴엔 비통함이 가득했다.

“준혁 씨. 아니 최준혁 수사. 정말 당신이 결단기 후기 수사가 있는 청룡가를 징치할수 있단 말입니까?”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럼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주세요. 아가씨가 청룡가를 얼마나 아꼈는데···. 어찌 피붙이를 그리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준혁은 화령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여서령이 자신에게 한 부탁에 대해 말해주었다.

부탁에 대한 얘길 들은 화령은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아, 어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가씨···.”

화령의 분이 가라앉길 기다린 준혁은 자신이 이곳까지 온 목적을 밝혔다.

“제 동생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준혁의 말에 화령은 아차 하는 표정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결을 맺었다.

잠시 후 수결이 끝나자 세찬 바람이 몰아치더니 어느새 회오리바람을 형성했고, 회오리가 사라지자 그곳엔 조금 파인 공간과 함께 옥으로 만든 관이 나타났다.

준혁은 기감으로 관과 주변을 한번 훑고는 손을 뻗어 관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그 모습에 화령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준혁이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그녀도 여서령처럼 준혁이 고위 수사가 되었다는 말을 완전히 믿진 않았던 것.

손으로 영기를 발출해 관에 걸려있는 진법을 전부 파악한 준혁은 수결을 맺어 몇 가지 진법을 해제해 버렸다.

그러자 옥관의 뚜껑이 열리며 앙상한 뼈만 남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연아···.”

준혁은 동생의 몸을 꼼꼼히 살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수결을 맺어 재봉인 시켰다.

그리고는 진법 깃발을 꺼내 화령이 숨겨두었던 것보다 더 깊숙이, 누구도 찾을 수 없게 진법으로 또 한 번 봉인해 버렸다.

+++

“최준혁 수사. 그럼 지금 서울로 가실 겁니까?”

화령이 당장이라도 복수하러 가기 위해 움직이려 하자 준혁은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왜입니까?”

“동생의 안전을 확인했으니,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 생각입니다.”

준혁의 말에 화령이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가씨와의 약속을 저버리실 겁니까?”

이 갈리는 소리를 내는 화령에게 준혁은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반댑니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섭니다.”

“그게 무슨···.”

“지금 간다면 그녀와의 약속대로 살생을 최소화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머물며 마음을 다스린 후, 스스로 됐다고 생각할 때 가겠습니다.”

자신과 동생을 보호하려다 목숨을 잃은 여서령. 준혁은 그녀가 죽기 전 부탁했던 세 가지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고문하고, 피붙이를 죽이라 명령한 여공천을 때려잡으러 가고 싶었지만, 만약 여공천의 명으로 청룡가 수사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면 그들의 안전을 생각하며 싸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준혁의 다짐을 들은 화령은 어느 정도 수긍하더니 가까운 곳에 머물겠다고 자리를 떠났다. 대신 청룡가를 징치하러 갈 때 자신을 꼭 데려가라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나 수사는 어쩌실 겁니까?”

준혁의 질문에 나설헌도 한쪽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 역시 수련 시간이 필요했으니, 크게 상관없어요. 준비가 끝나면 불러주세요.”

나설헌은 전음부를 꺼내 자신의 흔적을 새겨넣었다. 그리곤 준혁에게 건네고 하얀 얼음대지 너머로 날아갔다.

두 사람이 떠나가자 준혁은 기감으로 주변을 살펴 동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는, 화령이 머물던 이글루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공기가 자신의 머리 역시 식혀주길 바라면서.

+++

며칠간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을 보낸 준혁은 기억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정리했다.

정리를 끝낸 후 며칠간 묵상을 하며 마음을 차분히 다듬었다.

마음 정리가 끝나자 그제야 식검과 삼청조를 소환했다.

“삼청조.”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손바닥만 하게 줄어든 분홍새가 튀어나왔다.

새는 목각으로 만든 것처럼 나무 특유의 기운이 흘렀는데, 주둥이 부분만 말랑말랑한 재질로 되어있었다.

삼청조의 능력은 장거리 통신.

하지만 당장 확인할 수가 없기에, 잠시 살펴보다 식검과 공명을 일으켰다.

삼청조를 집어삼킨 식검은 어느새 외형이 변하며 처음 보았던 분홍새로 돌아와 있었다.

“흠. 인지경을 제외하곤 특별하게 변하는 게 없나.”

결국 또 다른 변화를 찾아내지 못한 준혁은 삼청조를 식검과 분리한 후 공간대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식검을 단(丹) 안으로 불러들인 후 영력으로 꽁꽁 싸매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이번에 확인할 건 귀원패였기에, 혹시나 식검이 제멋대로 먹어버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공간대에서 귀원패를 꺼낸 준혁이 영기를 불어넣으며 수결을 맺자, 귀원패를 중심으로 육각 모양의 보호막이 생겨났다.

하지만 예전 경매장에서와 다르게 거북이 환영이 나타나진 않았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준혁은 재수결을 맺고 영기를 강력하게 발출했다.

그제서야 귀원패의 반응에 무언가를 눈치챈 준혁이 차갑게 조소하며 법보에 쏟아붓던 영기를 회수했다.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귀원패 수사? 아니면 백팔마선 수사? 숨어계신다고 모를 것 같습니까?”

잠시 후 준혁의 말에 반응하듯 귀원패가 공중에 혼자 떠오르더니, 그 뒤로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수사께선 우리에 대해 알고 있으시군요.”

드디어 백팔마선이라는 존재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준혁은, 거북이가 경계하지 않게 영력 발출을 낮추면서, 한편으론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 식검을 발동할 준비를 마쳤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아끼자, 거북이가 귀찮다는 표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계약을 진행할 생각이 없습니다.”

거북이의 말에 삼청조가 했던 말들을 떠올린 준혁이 말을 받았다.

“그대들은 인족과 하나 되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닙니까? 왜 계약을 피하는 겁니까?”

준혁의 말에 거북이가 의문 섞인 눈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피곤합니다. 세상일에 끼어들기도 싫고, 새로운 계약자의 기억을 받아들이기도 싫습니다. 그리고 잘못 알고 계시는데, 인족과 하나되야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계약을 맺는 이유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섭니다.”

“한계?”

“...수사는 우리의 존재는 알지만, 정체는 모르시군요?”

거북이가 단번에 핵심을 집자, 준혁은 순순히 수긍했다.

괜히 부족한 지식으로 상대를 기만하기보다는 진실한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습니다.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흠···. 어려울 건 없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궁금한걸 알려드릴 테니 저를 귀찮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준혁이 단번에 수락하자 거북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걸 아시지요? 그럼 믿고 말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마선기 속에서 스스로 의지를 가진 채 태어났습니다.”

“마선기(魔仙氣)가 무엇입니까?”

“그 말은 저에게 영기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아···. 알겠으니 계속하시지요.”

준혁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자, 거북이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태어난 순서로 가진 힘이 정해지는데···.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천신라(天神羅)와 마지막에 태어난 식아(食兒)는 수천만 배가 넘는 힘의 격차가 있을 정돕니다.”

‘식아?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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