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90화 (90/408)

# 90 < 압도 >

결계의 힘을 이용해 공동 밖으로 빠져나온 다니엘은 너무 놀라 두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고 있었다.

“어찌 이리 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결단기 초기라는 정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사방이 막혀있는 공동 안이고, 너무 갑작스레 기습했다고는 하나, 결단기 초기 세 명이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죽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원래 계획은 술 안에 타 놓은, 사지를 마비시키는 약으로 준혁을 무력하게 만든 후, 손쉽게 제압할 작정이었던 것.

공동에 발동시킨 진법은 만일에 대비해, 동생들의 반대에도 설치한 것이었지, 절대 처음부터 그것을 이용해 준혁을 잡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애초에 바람과 천둥의 결계장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걸 바스러뜨리는 힘.

아마 결계의 힘에 휩쓸린 상대는 피곤죽이 되거나, 그에 가까운 처참한 상태가 되어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청혈 흡수에 성공한 육체의 실험은 날아가는 것.

“어쩔 수 없지···. 실험은 포기하고 청혈만 채취하는 수밖에···.”

쓰게 말을 내뱉은 다니엘은 죽어버린 동생들이 생각나 다시 한번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네놈의 가족들도 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마···.”

잔인한 다짐을 내뱉은 다니엘은 땅을 박차며 빠르게 동굴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빠르게 청혈을 채취하기 위해선 신전으로 이동해 미리 만반의 준비를 마쳐놔야 했으니까.

+++

귀원패를 통해 알게 된 적마의 능력은 결계의 간섭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했지만, 조건만 충족한다면 어떤 진법이나 봉인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적마의 진짜 힘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진법의 시전자보다 수행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조건으로는 각종 특수 재료에 따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귀원패의 말에 의하면 선계가 아닌 이상 두 번째 조건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이라 했었다.

즉 이곳에선 어떤 진법이라 해도 준혁을 가둬두거나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이름 모를 원영기나 그 이상급의 은거기인이 숨어있다면 얘긴 달라지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런 자가 있었다면, 애초에 준혁을 잡기 위해 꼼수를 부리진 않았을 테니까.

“잘했다. 적마.”

붉은 털을 휘날리는 적마를 탄 채 공동 밖으로 빠져나온 준혁은 적마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건넸다.

의지가 없이 명령만 따르는 인형과 다름없었지만, 엄연히 외형을 갖추고 있어서인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

그러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결계의 힘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았다.

밖에서 느껴지는 힘만으로 완벽하게 추측할 순 없지만, 공동 안의 진법은 완벽한 살상용.

“받은 게 많으니 돌려줘야 할 것도 많겠어.”

준혁은 쓰게 웃으며 공동 안에서 마셨던 선주를 전부 뱉어내고는 정혈만 회수했다.

그리곤 차갑게 웃으며 유적 어딘가에서 있을 자비에를 떠올려 보고는 허공을 향해 짧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자비에 수사. 그대가 자처한 일입니다. 아마 앞으로 그댈 구하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새삼 수도계 인심의 쓴맛을 느낀 준혁은 식검과 적마도를 분리해 붉은 말을 돌려보냈다.

그리곤 식검은 단(丹) 안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적마도만 등 뒤에 띄운 채 기감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화악-

거의 유형화 직전 수준의 기감을 퍼트린 준혁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다니엘의 기운을 느끼고는 땅을 박찼다.

하지만 동굴의 길이 너무 구불구불해서인지 속도를 낼 수 없었고, 준혁은 온몸에 광신체령투선공을 끌어올리며 무식하게 동굴의 벽면을 박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쾅! 쾅! 콰앙!

그렇게 눈앞의 모든 걸 깨부수며 나아가길 잠시, 밝은 빛과 함께 동굴을 빠져나온 준혁은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져 있는 다니엘을 볼 수 있었다.

“어디 가십니까?”

“!!!”

이제 막 3층 건물의 바람 신전으로 들어가려던 다니엘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상황인 듯, 준혁을 보며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결계를.”

“조종하는 사람이 없으니, 제대로 작동 하겠습니까?”

쾅-

말을 마친 준혁은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차며 미친 듯이 쏘아져 나아갔다.

준혁의 말에 차마 대답하지도, 그렇다고 다른 행동도 하지 못하고 당황한 채 서 있던 다니엘은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작은 풀피리를 꺼내 세차게 불었다.

삐이이이-

그리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옥대를 손으로 스치며 입김을 세차게 불었다.

그 순간, 옥대에서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튀어나오며 준혁에게 쏘아져 나갔고, 반대로 다니엘은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수에게 맡기고 도망입니까?”

준혁은 상대의 태도에 코웃음을 치고는 날아오는 영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단 한 수.

결단기 초기 수행을 가지고 있던 영수는 준혁을 상대로 단 한 번의 방어도 성공하지 못하고 피떡이 되어 날아오던 방향으로 쏘아져 처박혔다.

아무리 영수의 몸이 근접전에 적합하게 태어났다고는 하나, 압도적인 수행 차이 앞에선 의미 없는 것.

바닥에 널브러진 영수를 일별하고는 준혁은 어느새 신전 건물 앞에 내려 선후, 건물 외벽을 세차게 후려쳤다.

쾅!

하지만 이미 보호진이 발동되어버린 건물은 준혁의 거력에도 미동도 없이 버티고 있었다.

그 모습에 흥 하고 코웃음을 친 준혁은 식검과 인지경을 동시에 불러내며 공명시켰다.

순간 인지경을 잡아먹은 식검이 빛기둥을 내리며 영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원영기 중기에 이를 정도로 영력이 증폭되자 준혁은 공간대에서 청룡언월도를 꺼내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손을 빠르게 교차해 수결을 맺은 후, 검지 손가락으로 신전 건물을 가리키며 외쳤다.

“갈라져라!!”

그 순간 청룡언월도의 크기가 세배는 늘어나더니 단순 무식하게 일도양단하듯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그 결과, 건물을 보호하고 있던 보호진이 무식하게 찢어지며 주변 대기를 흔들었고, 동시에 건물 한쪽 벽면이 처참하게 박살 나 버렸다.

영력의 증폭 말고는 아무 능력도 없는 단순한 법기 청룡언월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단순히 때려 부술 용도라면 이보다 더 적합한 물건은 찾기 힘들었다.

부서진 건물 한쪽엔 다니엘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무너진 벽면을 보고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그때, 각종 빛무리가 준혁을 향해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동굴에서부터 시작한 준혁의 파괴행위와 다니엘이 피리로 불러 모은 윈드라스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

언뜻 보아도 백여 명은 돼 보였으나, 아쉽게도 전부 축기기 이하 하위 수사들 뿐이었다.

그나마 결단기급 수사라고는 수많은 축기기 연기기 수사들 틈에 서 있는 두 명의 인물이 전부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들 전부를 죽이는 게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지만, 준혁은 살인에 미친 살귀가 아니었기에,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후 짧게 영기 파동을 터트렸다.

“크아아앙!!”

그리고 준혁에게서 백호 혈맥의 힘이 터져 나온 순간, 그 많던 인원이 충격을 받고는 자리에서 허물어졌고, 날아오던 공격들은 자연스럽게 해제돼버렸다.

누군가는 피를 토하고, 누군가는 숨이 막히는지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청룡가의 수사들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은 듯 모든 이의 얼굴엔 공포와 절망이 드리워져 있었다.

+++

“백호족이 바람 일족의 최상위 계층이라더니, 이들의 공법을 억누르는 무언가가 있나 보군.”

축기기들 사이에 숨어있던 결단기 두 명과 반파된 건물에 몸을 감추고 있던 다니엘마저 무언가에 억압된듯한 모습을 보이자 준혁은 오래전 자비에가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그들이 백호의 힘을 왜 그리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백호 혈맥의 힘에 같은 부류 종족들을 억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얻어야 할 힘임에는 분명했다.

그렇다고 자신을 해하려 했던 이들의 만행이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이해해줄 문제가 아니었다.

준혁은 바위산 근처에서 전의를 상실한 채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을 훑으며 목소리에 영력을 담아 퍼트렸다.

“나는 자비에의 부탁을 받아, 윈드라스 가문에 중요한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온 손님이다!”

손님이란 말에 사람들이 움찔하며 집중하자 말을 이었다.

“허나 저기 신전에 숨어있는 가주라는 자는 가솔들을 부추겨 나를 죽이려 했다. 고작 내가 가진 무구가 탐난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람들의 눈에, ‘설마?’ 하는 놀라움과 혹은 ‘어떤 보물?’이라는 호기심이 떠오르자 준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끝맺으며 손위로 하얀빛을 끌어모았다.

“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윈드라스 가주는!”

한 호흡 쉰 준혁이 시선을 신전 건물로 돌리며 파앙! 소리와 함께 쏘아져 나갔다.

“죽는다!”

준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주변에 닿을 때쯤엔 이미 그는 부서진 건물 안으로 진입해 다니엘의 가슴에 일격을 날린 후였다.

콰앙!

사람의 주먹과 몸이 부딪쳤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의 굉음이 울려 퍼졌고, 한번 부서지기 시작한 건물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지 손쉽게 파괴되며, 다니엘은 반대편 벽면을 뚫고 튕겨 나왔다.

“괴, 괴물···.”

순간적인 충격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다니엘은 곧바로 몸을 추스르며 빠르게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그의 몸 위로 늑대 털이 자라나며 온몸을 감쌌고, 동시에 눈동자가 회색과 붉은색이 섞인 괴이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몸의 변화는 끌어냈지만, 다음 행동을 해보기도 전.

쾅!

또다시 다가온 준혁의 주먹에 복부가 가격당하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몸이 부웅 뜬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콰앙!

어느새 상공에 나타난 준혁이 발을 내리찍으며 다니엘을 땅속에 박아버렸다.

꿈틀꿈틀-

연속으로 이어진 충격에 영수화가 진행 중이던 다니엘은 몸이 풀리며, 늑대 털과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또한 땅 위에 얼굴이 처박힌 상태에서 이를 달달 떨며 고통에 몸부림 쳐야 했다.

‘급이 다르다···. 이자는 절대 결단기가 아니야···.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리고 몸속 깊이 침투해 고통과 함께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한기와 싸우며 다니엘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등을 밟고 있던 준혁에게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솔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하게 해주지.”

마지막 배려였을까?

준혁이 유언을 남기게 해준다는 말에 다니엘은 남은 힘을 쥐어짜며 온몸에 퍼져가는 한기를 겨우겨우 억눌렀다.

그리고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다들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리고, 선배님···. 죄 없는 식솔들은 살려주십시오.”

+++

툭-

다니엘의 목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지만, 윈드라스 가문의 인물 중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성을 잃고 덤빌 법도 했지만, 그런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이유는 가주의 유언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준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기운에 전부 압도돼 있었기 때문.

당장이라도 가주의 복수를 하기 위해 움직이고 싶은 자들도 많았으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인지경과 식검이 하나되 증폭된 기운은, 하급 수사들 입장에선 가까이 갈 수조차 없는 근접 불가의 힘이었으니까.

그런 윈드라스 가솔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혁은 식검과 인지경을 분리해 소환 해제시키고는 두 명밖에 남지 않은 윈드라스 가문의 결단기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두 결단기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잔뜩 긴장한 채 빠르게 날아와 준혁 앞에 멈춰 섰다.

얼굴엔 분노를 완벽히 숨기지 못했지만, 말투만은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선배님을 뵙,”

“내가 이곳에 온 정확한 이유는 알겠지?”

“그,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대답에 준혁은 가볍게 손을 저어 다니엘의 공간대를 끌어왔다. 그리고는 그의 공간대 안에서 철궤만을 꺼내 앞으로 날려 보냈다.

“자 받지. 그대들의 가주가 도리를 어겼다고는 하나, 나는 약속을 지켜주지.”

준혁이 자비에의 철궤를 건네자, 두 결단기는 참담한 표정으로 물건을 받아 갈무리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준혁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은연중 경고를 한 것이었다. ‘나는 도리를 다하고 있거늘 너희는 그렇지 않다’라고. 그러니 앞으로의 일들은 내가 아닌 너희들의 행동에 달렸다고.

준혁의 의도를 파악한 건지, 두 결단기는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억지 인사가 분명한 듯, 둘의 몸은 삐걱대고 있었다.

그때 두 수사 중 한 명이 몸을 일으키며 준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희도···. 도리를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말을 마친 결단기 수사는 파앙 소리를 내며 동굴 하나로 사라지더니,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다니 나타나 준혁에게 하급 공간대 세 개를 내밀었다.

“둘째가 물건을 가져온 은인에게 보답하라고 했단 걸 아실 겁니다. 약소하지만 저희 성의입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간대를 넘겨받아 내용물을 확인했다.

세 개의 공간대엔 영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피식-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준혁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철궤에 대한 보답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영석.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준혁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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