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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98화 (198/408)

198화. 쌍괴

드넓은 호수에 도착한 준혁은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곳으로 호하를 유인한 후, 월광지력과 대라멸진으로 그를 죽이려다가 공간이동을 해온 스퀘타에게 낭패를 당했던 일.

“예전에 저와 함께 들른 곳이 아닙니까?”

“기억하시는군요. 맞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마르곤과 이런 일엔 관심 없다는 듯 오조화채를 킁킁거리는 산들바람.

두 사람을 비행법기에 남겨놓은 준혁은 곧장 호수 아래로 뛰어들었다.

첨벙-

‘그때 느낀 게 맞다면, 아마 한기를 보충해주는 무언가가 있겠지.’

체외로 배출한 월광지력이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기운이 강해졌었던 원인. 준혁은 그걸 찾기 위해 이곳에 재방문한 것이었다.

월광지력이 무엇인가? 삼대지력이라 불리는 극한의 기운이 아니었던가.

극한의 한기를 유지하거나 강화할 수 있는 무엇이라면 그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닐 터였다.

호수 바닥에 내려선 준혁은 기감을 퍼트려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흠. 특별한 게 보이진 않는군.’

기감으로 호수 전체를 살핀 준혁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이번엔 기감을 유형화시켜 범위뿐 아니라 탐색 능력도 수 배로 강화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것이 걸려들었다.

‘이건!’

여전히 한기를 품은 무언가는 찾을 수 없었지만, 땅속 깊은 곳을 향해 식검이 반응을 일으키며 진동한 것.

그 순간 준혁의 몸이 쑤욱 꺼지듯 호수 바닥을 파고들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지하 깊은 곳으로 이동한 준혁은 땅속에 화석처럼 차갑게 굳어있는 두 개의 도검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전투를 치른 후 장렬하게 전사한 것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하나의 검과 하나의 도였다.

검은 적마도처럼 타오르는 듯한 붉은 검신을 가지고 있었고, 도는 시리도록 푸른 도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붉은 검이 푸른 도의 도신을 관통한 채 얽혀있었다.

‘이것 때문이었나?’

손을 휘저어 주변 공간을 날려버린 준혁은 기감으로 두 도검을 훑고는 손안으로 가져왔다.

꿈틀-

초팔을 먹을 때처럼 강렬한 욕망은 아니었지만, 은근한 식욕을 드러내는 식검.

준혁은 식검을 달래며 두 마선을 천천히 분리했다.

스르릉-

푸른 도를 관통하고 있던 붉은 검을 꺼내자 길쭉하게 찢긴 도신 사이로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고, 준혁은 그것이 월광지력에 관여했던 기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냉기와 도. 그리고 불타는 듯한 검. 이것들이 화괴와 수괴, 바로 쌍괴로구나!”

서열로 치자면 91번째와 92번째인 화괴와 수괴.

공천귀가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둘은 형제이며 숙적인 사이였다.

공천귀가 식검과 함께 봉인되기 전부터 자취를 감추었던 두 마선은 항상 한 명의 계약자를 선택해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거로 유명한 마선이라 했다.

“설마. 계약자를 두고 싸우다 이렇게 된 건가?”

대답이 들려올 리 없었기에 준혁은 영기를 불어넣어 두 마선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니. 마치 죽은 것 같구나….”

마선들은 불멸하기에 죽을 리가 없었지만, 두 마선은 정말 죽은 듯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영기를 불어넣던 준혁은 양손에 각각 쌍괴를 쥐고 있다가 그것들을 작게 압축한 후 삼켜버렸다.

동시에 식검이 움직이지 못하게 원영으로 강하게 제어했다.

“흐음…. 흠.”

그렇게 음식을 음미하듯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낸 준혁은 이맛살을 구기며 두 마선을 뱉어냈다.

“정말 아무 반응도 없군.”

귀원패가 외부로부터 신경을 차단한 것과 달랐고, 초팔이 식검 앞에서 기능을 잃어버리고 하나의 먹이가 돼버린 것과도 반응이 달랐다.

“시간을 두고 알아봐야겠구나.”

만약 의식을 가지고 있던 마선이었다면 고민하지 않고 식검으로 흡수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마선들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기에, 의문을 해결하기 전까진 잡아먹는 걸 유보하겠다고 계획한 준혁은 그것들을 공간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기감으로 주변을 한 번 더 자세히 살펴 혹시나 놓친 것이 있나 확인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 일행에게 향했다.

***

그로부터 3년 후.

지구와 연결된 큼지막한 비경들을 한차례 둘러본 후 인도에 도착한 준혁 일행.

연형기에 오른 준혁이 버뮤다 삼각비경 다음으로 인도를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한가지였다.

바로, 인류 최초 원영기 수사라 불리는 아르나프.

원영 응결식이란 것을 만들어 고위수사의 탄생을 알림과 동시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신화를 이룩한 사람.

그리고 자신의 영지라 공표한 지역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스스로를 만신(萬神)이라 칭하며 두문불출하는 수도자.

그런 아르나프와 그가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비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자가 사신 중 현무 일족의 후손이란 말입니까?”

“정확히는 현무의 후예를 떠받들던 사람이지요.”

아르나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아마르곤이 몇 가지 의문을 드러내자, 준혁은 현무 일족의 꼬마로부터 알게 된 사실들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이제 곧 도착하겠군요. 자세한 건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인도 라자스탄이라는 지역에 도착한 준혁은 그곳 서북부에 위치한 타르 사막이란 곳으로 비행 법기의 방향을 조종했다.

잠시 후, 타르사막에 들어서자 사막의 중심으로 보이는 곳에 거대한 왕궁이 세워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마중을 나오는 자들이 있군요.”

하지만 그곳에 다가가기 직전, 준혁 일행은 흉흉한 모습으로 법기를 꺼내든 채, 위협을 가하는 자들을 만나야만 했다.

“누구냐! 이곳은 만신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천벌을 받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라!”

황금색 천으로 치장한 축기기 수사들의 등장에 준혁은 가볍게 기세를 일으켰다.

“으헉!”

그러자 앞을 가로막던 수사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비행법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왕궁이 위치한 곳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나는가 싶더니, 붉은 천과 황금색 천을 몸에 두른 스님으로 보이는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나타난 머리가 반짝거리는 자는 황급히 손을 저어, 바닥에 처박힌 수사들을 보호하더니, 정중한 자세로 준혁에게 몸을 숙였다.

“제 수하들의 불찰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준혁 수사.”

상대방의 공손한 인사에 준혁은 기세를 갈무리하며 반가운 표정을 했다.

“제가 누군지 알고 있으시군요.”

“물론입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연형기 수사를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붉은 천과 황금색 천으로 몸을 감싼 스님, 아르나프의 말에 준혁은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면면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상대방을 향해 정중하게 맞대응했다.

“저 역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르나프 수사. 아니, 완영기 수행을 지닌 후배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준혁의 입에서 완영기라는 말이 나오자 아르나프가 움찔했고, 그 모습에 준혁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면 현무 일족의 봉인지를 지키는 수문장, 아니 제사장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

조금 전까지 차분하게 준혁을 맞이한 건 거짓말이라도 되는 듯, 아르나프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현무…. 라 하심은 사신이라 불리는 고대 신수 중 하나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시침 떼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그대의 스승을 만나고 오는 길이니.”

스승이란 말에 아르나프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 알고 오셨군요. 한데 스승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조금 전까지 공손한 척 연기하던 아르나프는 스승의 존재가 거론된 후, 말투가 바뀌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살짝 숙였던 허리도 곧게 펴졌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기운도 점점 진해지며 완영기 수사다운 영기파동을 퍼트렸다.

그건 마치, ‘네가 연형기에 올랐다지만 내 스승은 아주 오래전부터 연형기셨다. 너 따위는.’ 하는 의지를 표출하는 모습.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전형적인 호가호위하는 행태였다.

고개를 빳빳이 쳐든 아르나프는 ‘그래서 무슨 일인데?’라는 표정으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은 어디에 계시고 혼자 방문하신 건지 묻지 않습니까? 혹 그분께 무슨 일…?”

그러다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자신을 주시하는 준혁의 모습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전신의 영력을 폭발시키며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파앙-

태도 변화도 빨랐지만, 그만큼 눈치도 빠른 상대의 모습에 준혁은 피식 웃고는 도망치는 아르나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쉬리리익-

그러자 허공에서 나무줄기들이 생겨나더니 그의 도망을 방해했고, 그가 주춤하는 사이 거대한 잎사귀가 나타나 그를 감싸버렸다.

거대한 잎사귀는 호하가 사용하던 술법과 비슷했는데, 준혁이 아닌 아마르곤이 끼어든 것이었다.

준혁은 아마르곤에게 살짝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 후, 손을 저어 월광지력을 뿜어낸 후에 아르나프를 끌어왔다.

잠시 후 잎사귀에 돌돌 말린 아르나프는 발버둥을 치려다 포기했는지 침울한 표정으로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갔다.

“수사.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요?”

아니, 처음보다 더 공손해져 있었다.

“태도 변화가 정말 빠르십니다. 그려.”

“하하,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무 꼬마의 기억 속에선 아르나프가 말 잘 듣는 제자이자 현무 일족을 숭배하던 인족의 대표였기에 그의 태도 변화에 의문이 생긴 준혁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그대는 스승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습니까?”

“하아…. 역시 그리되셨군요. 그런데 분노라니요?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숨 쉬는 아르나프.

그는 준혁의 의문을 풀어주는 게 일생의 목표라도 된다는 듯 곧이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 안엔 자신의 불행한 삶이 녹아 있었다.

구지대륙이 온전했을 때부터 현무 일족을 보필했던 제사장 일족. 그들은 이미 멸족했기에 현무 꼬마는 자신이 잠들어있던 유적 가까이 있던 이들을 무작위로 데려와 노예처럼 부려 먹었고, 그중 가장 특출난 재능을 나타냈던 게 아르나프였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아르나프는 현무 꼬마의 명령을 곧잘 이행했고, 그 덕분에 제사장이라는 책무와 함께 제자가 되었다.

불행이라 말한 이유는 제사장을 역임했기에 현무 유적과 봉인지가 위치한 사막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행운이라 말한 이유는 꼬마로부터 단약 및 공법을 전수 받아 누구보다 빠르게 수행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안타깝긴 하지만, 제가 분노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젠 이 유배지 같은 곳을 벗어나 봉인지를 지키던 임무를 내려놓을 수 있겠으니 어깨가 가볍습니다.”

정중하던 모습과 껄렁거리며 으스대던 모습, 그리고 처연하게 과거를 읊조리는 것까지. 종잡을 수 없는 아르나프의 변화에 준혁은 그의 과거가 간단한 설명과 달리 매우 다사다난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을 날려버리고는 자신이 이곳을 방문한 목적에 대해서만 말을 꺼냈다.

“제사장 자리를 내려놓든 다른 곳으로 떠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전에 유적과 봉인지를 열어주시겠습니까?”

현무진식에 대한 정보와 함께 꼬마로부터 얻지 못한 정보.

그건 바로 유적에 출입하는 방법과 봉인지가 위치한 정확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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