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면교만 (1)
“이게 무엇이랍니까?! 설명하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화신기 수사들은 갑작스레 자신들을 둘러싼 원통형 결계를 보며 소란을 피웠다.
하지만 면교만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차분하게 타일렀다.
“걱정들 마시게. 혹여나 오해할까 말하지 않은 것이었어. 그대들 발밑에서 올라오는 화염은 십이진식에 발맞춰 증폭을 시작할걸세, 증폭된 기운이 밖으로 발산되지 않게 막는 역할일 뿐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이야기에 수사들은 면교만이 거짓을 말하는 거로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의심해도 소용없으니 믿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자신을 둘러싼 결계를 툭툭 건드려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기운의 발산을 막는다? 이건 기운뿐 아니라 생명체의 근원을 막는 방식인데 거짓을.’
아무도 십이진식에 숨은 수법을 파악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지, 면교만은 대놓고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말뿐인 상황에, 강진단과 반초단 때문에 반신반의했지만, 결계를 보는 순간 모든 게 명확해졌다.
‘가장 아끼는 제자를 구해줬다며 앞에서는 감사 인사를 하고, 뒤로는 이런 일을 벌이다니.’
그동안 걸리는 것들이 많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모든 걸 주관하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남모르는 사연과 일은 얼마든지 있었고, 이번 일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역시, 수도계는 비정이라 이건가?’
하지만, 결계가 움직임을 제한하자, 지금껏 설명했던 모든 게 거짓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다만, 당장이라도 적마도를 이용해 수상한 결계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나, 준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안에서 발생한 화염이 어떤 식으로 결계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아보고 탈출해도 늦지 않다 판단했다.
거기다, 위선경 수사인 면교만이 진의 중추 역할에 완전히 집중할 때가, 도망갈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었기에 기다리는 것이기도 했다.
우웅-
잠시 후, 십이진식이 온전하게 발동하자, 수사들 발아래 구덩이에서 엄청난 화염이 폭발하듯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허업!”
하지만 면교만의 말대로 화염은 수사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다만 그때부터 엄청난 양의 영력이 빠져나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수행이 낮은 수사들부터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어댔다.
“이, 이거, 너무 급작스러운 것 아닙니까?”
영력 소비가 상상을 초월했는지, 초승달 형태로 나열된 진법의 가장 바깥에 있던 수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제 면교만은 진법을 조종하는 데 집중해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외곽을 지키던 소천경 수사가 답을 주었다.
“그럴 때 쓰라고 강진단을 준 것 아닌가?! 어서 복용하게! 그대의 영력이 부족해 진의 발동이 멈춘다면 모든 건 그대 책임이야!”
걱정해주는 것 같았지만, 명백한 협박.
비명을 질렀던 수사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강진단을 꺼내더니 재빨리 삼켰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
수사들이 강진단을 먹으며 수행이 급증하자, 십이진식이 더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준혁은 강진단을 먹는 척하며, 자신의 원래 영력만 조금 더 풀어내고는 주위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저자는 안 먹을 작정인가 보군.’
전원 얼굴이 조금 빨개진 것 말고는 호흡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긴 것에 비해, 준혁에게 강진단의 이상을 알려왔던 수사는 눈알이 터질 듯이 부풀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게 확연히 티가 났다.
“자네는 왜 강진단을 먹지 않는가?”
그 모습에 소천경 수사 하나가 지적하자, 사내는 간신히 입을 열며 대답했다.
“버티는 데까지는 버텨보겠습, 니, 다.”
“허, 미련한지고. 알아서 하게.”
소천경 수사는 한 번 더 권유하다 혀를 차고는 신경을 꺼버렸다.
그때, 십이진식이 완성되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진동했다.
콰르르릉- 쿠쿠궁-
그리고는 굉음과 함께 초승달 모양의 진식을 마주 앉아, 중추 역할을 하고 있던 면교만 뒤로 거대한 금색 문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오!”
강진단 덕분에 여유를 되찾은 수사들은 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준혁 역시 신기한 광경에 관심을 집중했다.
면교만 뒤로 모습을 드러낸 금색 문은 완전히 지상으로 나타나자, 붉은 광채와 금색 광채를 번갈아 내비치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리고는 그 순간.
“으어어억!”
강진단을 먹은 수사들이 다시 한번 비명을 질러야 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영기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강진단을 먹지 않던 사내도, 더는 견딜 수 없었는지 재빨리 단약을 삼켰다.
‘이건!’
그때, 십이진식의 진이 변화를 일으키며 미묘한 기파가 퍼져나가자 준혁은 익숙한 파동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십이진식의 진의(眞意)가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소천경에 이른 준혁마저도 긴장해야 할 정도로 영기 흐름이 강했는데, 그 안에서 익숙한 흐름을 읽은 것이었다.
그리고 준혁이 흐름을 읽어내는 사이, 면교만이 눈을 번쩍 뜨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모두 반초단을 복용하라!”
꿀꺽-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사들은 반초단을 꺼내 삼켰고, 그 순간 수사들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 이, 이게!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갑자기 화기가 몸속에 침입합니다!”
지금껏 수사들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않았던 화염들이 지렁이가 땅을 파고들 듯 반초단을 먹은 수사들의 몸속으로 슬며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 역시 그것이었구나!’
그 순간, 준혁은 완벽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십이진식의 진짜 용도와 자신을 비롯한 화신기 수사들의 역할을.
“마정!!”
***
‘아니지, 화염의 근원을 빨아들이고 있으니 화정(火精)이라 불러야 하나?’
누구보다 마정과 진마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겪은 준혁.
준혁은 지금 결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과정이 마정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똑같은 순서로 진행됨을 깨달았다.
다만 암흑기가 압축된 암흑마기 대신, 화염 속에서 피어난 근원에 가까운 화기가 대신 자리한다는 것만 다르게.
강진단과 반초단에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강진단을 먹은 후 수사들은 화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몸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그 후, 반초단이 융화의 힘 역할을 하며 화기를 몸 안에 안착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즉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십이진식 자리에 위치한 수사들은 천천히 결계와 한 몸이 되면서 화기를 품은 화정으로 변해갈 것이 분명했다.
혹 자신이 모르는 수가 존재하여, 목숨을 건진다 해도, 그건 사람이라기보다는 물체에 가까운 상태가 되고 말 것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법기처럼….
‘아! 그랬구나! 그래서 영수족만 골랐던 거였어! 몸이 화기에 버틸 수 있게, 강체술로 강화된 수사가 필요했던 거야!’
준혁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준혁의 외침에 면교만이 그를 주시했다.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상대방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한 준혁은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하하하, 면교만 수사,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작정입니까?”
결계에 갇힌 준혁이 다른 이들처럼 붉게 변하지도 않고, 존대도 하지 않으며 여유롭게 말을 걸자, 면교만은 말없이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침묵에 어깨가 저릿할 때쯤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거짓을 말하다니?”
“기만도 그 정도면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혹, 수사들이 중간에 겁을 먹고 강진단이나 반초단을 먹지 않을까 봐 그렇게 연기를 해오신 겁니까?”
면교만은 어느새 온화한 표정은 사라진 채, 섬뜩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정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렇습니까?”
준혁과 면교만의 대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화기 침식에 당황하던 이들도 전부 시선을 집중했다.
“추측해 보자면, 유적의 문을 열기 위해선 12개의 화정? 화기의 근원이 집약된 물건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물건이 쉽게 구해질 리 없으니, 수사는 화신기 수사들을 꼬드겨 화기로 물든 물건을 대신하게 한 것 아닙니까?”
“흐음….”
“강진단의 도움으로 수행이 상승할 수도 있다? 어찌 그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화기에 몸이 침식당하면 그동안 익힌 공법이 무용지물이 될 텐데.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정말입니까?!”
“그게 사실이란 말입니까? 선배님!”
준혁의 발언에 갸우뚱하던 수사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때, 지금껏 가면을 쓰고 있던 면교만이 입술을 비죽이며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동급 수사들을 손쉽게 죽였다며 제자 놈이 칭찬할 때는 믿지 않았는데…. 네놈. 생각보다 머리가 뛰어나구나. 그럼 나도 하나만 묻겠다.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지지?”
면교만에 입에서 긍정이나 마찬가지인 발언이 나오자, 화기에 침식당하던 수사들이 힘없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야 자신들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전부 희망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개중 몇은 그때부터 결계를 깨기 위해 각종 수단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화기 침식과정과 결계 동화 작용이 시작된 바. 그들의 행동은 가엾은 발버둥에 불과했다.
그때,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좌중을 갈랐다.
“서, 선배님! 살려주십시오! 저를 이대로 죽게 하신다면 필히 후회하실 겁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호소.
면교만은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준혁을 응시하며 빨리 대답해 보란 듯 턱 끝을 까딱거렸다.
“저를 죽이신다면! 저희 조부께서 절대 좌시하지 않으실 겁니다!”
조부를 언급하며 호소하는 사내, 그자는 마지막까지 강진단 섭취를 참았던 사내였다.
이번엔 사내의 발언이 먹혀들었는지, 면교만이 싸늘하게 비소 지으며 말했다.
“조부? 그대 조부가 누구길래 그러지? 여기 모인 자들은 전부 작은 부락 출신만 고르고 골랐거늘?”
‘역시, 그런 것이었구나.’
이제 대놓고 계획을 노출하는 면교만의 말에 준혁의 의심 하나가 해소되려는 찰나.
“대평원의 왕이신 태백랑(太白狼)!! 대황대륙의 팔왕이신 태백랑 교천묘이십니다!”
사내의 말이 면교만의 동공을 확장시켰다.
***
대황대륙의 팔왕.
끝이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는 대황대륙. 그 넓은 곳의 영수족 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여덟 선인.
그중 태백랑이라 불리는 백랑족의 왕은 규선(窺仙)에 올라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최강자 중 하나였다.
‘허어, 어쩐지…. 혈맥의 힘이 비슷하다 했더니.’
그리고 준혁에게 호감을 보였던 조호랑. 그녀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우리 일족은 차별이 없어. 너도 맘에 들 거야. 운이 좋으며 할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고.
-수사의 할아버지면?
-몰라? 아 참 너 비승 수사지? 에헴. 잘 들으라고. 우리 할아버지는 말이야! 규선경에 이르신 진정한 선인! 기회만 된다면 신선의 자리에 오르실 분이라고!
수련 기간에 나눈 잡담이 떠오른 준혁은 얄궂은 인연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저자는 자신의 누이에 비해 정말 어리숙하구나.’
만약 살고 싶었다면 절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생각에 동조하듯, 면교만 눈빛에 살기가 맴돌았다.
“진심으로 목숨은 살려주려고 했더니. 이젠 그럴 수가 없겠어.”
“수사! 저희 조부께서! 절대!”
협박인지 호소인지 모를 사내의 목소리에 면교만은 차갑게 대꾸했다.
“그래. 그러니 죽어줘야겠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말이야? 안 그래?”
어느새 면교만의 시선은 화신기 수사 전원을 훑고 있었다.
그때, 면교만을 중심으로 십이진식의 발동이 끝물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준혁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전에 저와 대화를 마저 끝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
면교만이 가소롭다는 듯 눈빛으로 돌아보자, 준혁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손안에 마정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마정을 화염이 분출되는 입구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아까 물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뭐가 달라지냐고? 이게 답이 되겠습니까?”
그 순간, 면교만이 소리 질렀다.
“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