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07화 (307/408)

307화. 라후지의 욕심 (2)

굳이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던 준혁은 적당한 속도로 비행 법기를 조종하며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중괴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상태가 안 좋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말없이 회복에만 전념했다.

그러길 며칠.

두 사람은 대화성 인근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기하고 있던 택요를 마주할 수 있었다.

택요는 황금 마차를 가지고 나타났는데, 마부석엔 황금갑옷을 입은 인형이 앉아 있었다.

바퀴가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 매미의 날개와 비슷한 것이 달려있어, 척 보기에도 속도가 뛰어나 보였다.

“택요 수사?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일이라뇨. 두 분을 모시러 온 것이지요. 성주께서 귀빈으로 여기고 한 치의 실수도 하지 말라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앞장서시지요.”

“크흐흐, 그놈이 바짝 군기가 들었나 보구만.”

다른 이의 접근을 눈치챈 중괴가 눈을 뜨며 비아냥거렸지만 준혁과 택요 둘 다 못 들은 척 흘려 넘겼다.

잠시 후, 조각배 모양의 비행 법기를 회수한 준혁이 황금마차에 오르자, 중괴 역시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택요는 그런 둘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마부석에 오르며 샛노란 부적 한 장을 꺼내 은밀하게 마차에 붙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

대화성 성문 앞.

누군가를 환영하기 위함인지, 수많은 수사가 깃발을 든 채 나열해 있었다.

그중 가장 앞엔 라후지가 비장한 얼굴을 한 채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한 손에 샛노란 깃발을 들고 있었다.

“성주님, 저기!”

수하의 외침에 라후지는 품에서 노란 부적 하나를 꺼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예상대로 둘 다 정상이 아니구나.”

택요가 마차에 붙인 것과 똑같이 생긴 노란 부적은 일정 공간의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부적.

부적을 통해 마차 안 두 사람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파악한 라후지는 준비하고 있던 바를 실행하기 위해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모두 준비하라.

라후지의 신호에 깃발을 든 수사 전원이 침을 꿀꺽 삼키며 살짝 긴장한 기색을 내비쳤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지금 자신들이 사냥하려고 하는 자는 진선급 강자를 순식간에 처리한 수사,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초월 강자였다.

주군이자 터전의 주인인 라후지가 명령했기에 어쩔 수 없이 사냥에 참여한 것이지, 진심은 멀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 한가득이었다.

다만 성주가 미리 언질 주기로, 목표 인물의 몸 상태가 요양이 필요할 정도로 나쁘다고 한 게 그나마 안심이 될 뿐이었다.

“인질들은?”

라후지의 말에 점처럼 보이는 마차를 응시하고 있던 수하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안전하게 잡아두었습니다. 아마 자신들이 인질인지도 아직 모를 겁니다.”

준혁을 사냥하기로 도모한 라후지는 몇 가지 안전장치를 해놓았는데, 그중 첫째가 택요를 미리 보내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준혁이 거느린 영수들과 소화여를 인질로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준혁이 도착하기 전 어떤 방식으로든 소식이 빠져나갈 수 있었기에, 그들 중 놀기 좋아하는 영수족 출신 수사 두 명은 놀이를 빙자해 은밀한 곳으로 빼돌린 상태였고, 소화여와 나머지 두 수사는 수련을 핑계로 안전 가옥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말이 안전 가옥이지, 진이 발동되는 순간부터는 외부에서 허락하지 않는 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잘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우린 거대 세력으로 발돋움할 단초를 잡는 것이다.”

어느새 라후지의 입에서 욕망이 줄줄 흘러나왔다.

“헌데 성주님.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최 선사가 보인 능력은…. 도무지 가늠이 안 될 정도인데, 특히 마지막에 그 폭발 보셨지 않습니까? 그건 정말….”

“흥, 걱정하지 말아라. 아마 승부를 빨리 보려는 최후의 발악으로 전신의 영력을 강제로 폭발시킨 것이겠지. 가까이서 확인한 그는 외부로 느껴질 만큼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건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없지. 최소한 수십 년은 정양해야 할 테니 크게 겁먹을 필요 없다. 그자도 결국 인간이다.”

라후지의 확언에 수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걸음 물러나 대열에 합류했다.

“흐흐, 진마정 안 중화의 힘만 얻을 수 있다면, 규선도 꿈은 아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라후지가 부푼 꿈에 젖어있는 사이, 점처럼 작았던 황금 마차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며 지상에 내려섰다.

잠시 후, 마차의 문이 열리며 준혁이 땅을 밟자, 마차를 중심으로 파문이 퍼졌다.

파르륵-

파문은 반경 5미터 정도를 빠르게 파고들더니 원형의 보호구 형태가 되었고,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붉은색에서 검회색으로 순식간에 변화하며 외부와 완벽하게 독립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흐음. 라 선사. 이게 무슨 뜻입니까?”

준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당황하지 않고 지켜보다가 라후지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게 뭐지? 이건…. 대인망혼진(對人網魂陳)?”

그때, 준혁의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린 중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던 라후지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노란 깃발을 치켜올렸다.

“발동하라!”

그 순간, 길게 늘어서 있던 수사들이 전원 깃발을 치켜들었고, 그에 반응해 대지가 잘게 떨리며 반응했다.

깃발에서 미증유의 기운이 치솟으며 준혁이 갇힌 보호구로 밀려들더니, 떨리는 대지와 공명이라도 일으킨 듯, 더 큰 진동을 만들어냈다.

잠시 후, 준혁과 중괴를 감싼 보호구 주위로 대나무처럼 얇은 기둥 수십 개가 치솟아 올랐고, 쑥쑥 자라 올라가던 기둥들이 멈춰 서자 보호구 속 중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이 미친놈아! 이게 무슨 짓이냐! 대인망혼진이라니! 네놈의 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우리를 꼭두각시라도 만들겠단 뜻이냐?!”

“어르신, 대인망혼진이 무엇입니까?”

라후지를 향해 핏발선 고함을 내지르던 중괴는 준혁이 무덤덤하게 질문하자,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설명했다.

“느껴지느냐?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아를 가진 생명체는 점점 기억을 잃게 된다. 기억뿐만 아니라 혼이 흐려지지. 저 빌어먹을 놈이 우릴 죽이려는 건 아니지만 생각 없는 인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중괴의 말에 기감으로 진법의 흐름을 파악한 준혁은 내부의 기운이 보호구 밖 기둥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파악했다.

‘재밌군. 망혼이라….’

천천히 기억과 혼을 삭제시키는 대인망혼진은 악명이 높은 것과 달리, 자주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펼칠 수 있는 범위도 너무 작았으며, 발동하기까지 필요한 시간도 너무 길었다.

심지어 외부의 충격에 취약해, 작은 공격으로도 기둥들을 쉽게 부술 수 있기까지 했으니,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는 이상 쉽게 써먹을 수 있는 진법은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따위 진이야 부숴버리면 그만.”

중괴의 설명을 듣던 준혁은 피식 웃더니 한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움직이며 보호막을 강타했다.

“부서져라!”

동시에 언령까지 발동하며 의지를 움직였다.

콰앙!

하지만 진이 만들어낸 보호구는 요지부동.

“으하하, 이미 끝났습니다! 대인망혼진은 외부의 충격엔 약하지만, 내부에선 무슨 짓을 해도 충격을 줄 수 없지요. 설사 규선이나 신선에 이른 자가 온다고 하여도 말입니다.”

그랬다. 규선이나 신선에 이른 자들이 작디작은 함정에 걸려들까 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누구든 완전히 발동된 대인망혼진 안에 잡힌다면 탈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론적으론 신선도 손쓸 수 없는 진법이었다. 이론적으론 말이다.

라후지가 공을 들여 대인망혼진을 준비한 이유는 준혁의 압도적인 힘을 두려워했기 때문.

어떤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그를 붙잡고 처리하긴 힘들다고 여겼기에, 천천히 말려서 죽일, 아니, 말라가며 결국엔 이지를 상실한 멍텅구리가 돼버리게 할 진법을 펼친 것이었다.

“정녕 이것이 라 선사의 뜻입니까?”

진을 파괴하는 데 실패한 준혁이 여전히 무덤덤하게 입을 열자, 라후지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상대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어느새 입가엔 승리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러길래 누가 보물을 지니고 다니라 하였습니까?”

“... 겨우 진마정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겨우라니요.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대답해 주시지요. 정말 그 마족 놈의 말대로 흑마지에서 진마정을 빼내 온 겁니까?”

“진마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준혁은 놀라는 중괴를 무시한 채, 대답했다.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제가 그런 물건을 구했다 한들, 아직까지 가지고 있을 거라 여기십니까?”

“하하, 만약 정말 진마정을 손에 넣었다면 당연히 가지고 있겠지요. 개나 소나 진마정의 순수한 마기와 중화의 힘을 분리할 순 없는 일. 이제야 그럴 자격이 생기셨는데, 그동안 그럴 시간이 없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으시겠지요. 성 내에서 사용한다면 금방 주위에서 알아차릴 테니 교환회가 끝난 후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셨을 겝니다? 안 그렇습니까?”

‘자격?’

라후지는 자신의 추측이 정답이라도 되는 양 확신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마기와 중화의 힘의 분리.

그건 라후지의 말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준혁은 둘 다 흡수했기에 애초에 분리가 필요 없었던 상황.

준혁은 라후지의 말에서 그가 오해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크흐. 제 추리가 어떻습니까? 아직도 발뺌 하시려는 겁니까?”

소름 돋게 웃는 라후지의 모습에 준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중괴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르신 잠시만 버티시면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준혁과 달리 중괴는 제대로 위력을 보이지도 않은 진법에도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직전의 전투로 인해 바닥을 보았기에, 작은 반응에도 힘겨워하는 것이었다.

***

대화성에 당도해 마차에서 내렸을 때.

진법이 발동되며 함정에 빠진 걸 알았을 때만 해도 중괴는 분노에 휩싸였었다.

인족 놈들의 비열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치가 떨릴 정도였다.

자신과 준혁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으니, 그런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하였다.

하지만 분노도 잠시.

준혁의 차분함이 어디서 오는지 이유를 파악한 후엔 오히려 라후지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작은 욕심에 큰 화를 당하게 되었으니 고소해 웃음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그동안 보아온 준혁의 성격이면 절대 신뢰에 대한 배신을 가볍게 넘길 놈이 아니었으니까.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중괴는 준혁의 말에 바로 전음으로 답했다.

-적마를 이용하려는 것이냐?

-예. 아마 금방 끝날 것입니다.

-대인망혼진은 순간이동 같은 술법도 가로막는다. 될 것 같으냐?

‘아! 그래서 저자가 저리도 여유로운 것이었구나.’

중괴의 반문에 준혁은 그제야 대인망혼진의 진정한 무서움을 깨달았다.

각종 술법과 권능으로 무장한 수사의 손발을 묶어버린 후, 무기력하게 만드는 진법.

만약 이런 걸 넓은 범위에 펼칠 수만 있다면, 대라멸진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어르신께서도 적마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으시진 않군요.

-그게 무슨 말이냐?

준혁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중괴를 보고 피식 웃더니 손안에 붉은 장검을 소환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라후지에게 시선을 옮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적마는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권능은 무시입니다.”

이동하는 직선상의 모든 장애물에 대한 무시.

그랬기에 수행이 낮을 땐 결계를 통과하며 무시하지 못한 나머지 기운을 몸으로 버텨내야 했던 것.

평소 양아치처럼 껄렁대며 다른 이들을 무시하던 적마와 딱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무시?”

중괴가 의문을 표하며 반문하는 순간.

파앗-

준혁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