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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22화 (322/408)

322화. 손님 (1)

일곱 종문의 수사들이 전부 떠나간 뒤.

준혁 일행은 곧장 고문성으로 이동해 전송진을 이용하려 움직였다.

하지만 몇몇 종문이 먼저 전송진을 이용하던 과정 중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겨, 바로 전송진을 사용하지 못하고 한 달가량을 체류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인 준혁 일행은 고문성에 거처를 마련하고 한 달 동안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공법 연구와 수련으로 시간을 소비한 준혁과 달리, 소화여와 조호랑, 조말랑은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최 선사님께 말씀 좀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유미종에서 나온 가담이라 하옵니다. 저희 종주께서 이것이 선사께 어울리겠다 생각하시어….”

준혁과 인연을 맺고 싶은 이들이 끊임없이 방문했지만, 수련을 핑계로 누구도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대신해 손님을 접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달 후.

전송진 수리가 완료됐다는 소식에 준혁이 움직이자, 쉬지 않고 몰려드는 손님 접대로 진이 빠져있던 세 명은 쾌재를 부르며 따랐다.

중괴 역시 준혁만큼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그제야 나타나 합류했다.

그렇게 다섯 사람은 곧장 전송진을 타고 명규성으로 이동, 직후 또 한 번 전송진을 이용해 대화성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기다렸다는 듯 대기하고 있던 대화성 수사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

대화성 전송실.

눈앞을 가로막던 빛무리가 사라지며 전송진법이 멈추자, 준혁은 기다렸다는 듯 대기하고 있던 소우자를 볼 수 있었다.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별일 없었는가?”

진법이 가라앉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내 일은 잘 해결됐네. 그나저나 굳이 왜 이렇게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이야. 다들 할 일이 적지 않을 텐데.”

“아, 사실은 주군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꺼내던 준혁은 난처한 표정을 하는 소우자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옆에선 중괴가 발을 떼며 말했다.

“설레발은. 딱 보아하니 손님이 오는가 보구만.”

“그렇습니다. 어르신.”

소우자는 예전과 달리 자연스럽게 미소 지으며 소화여를 슬쩍 바라보다 준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주군에 대한 소문이 벌써 호란대륙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소문?”

“용설족의 백유 선사와 적루의 교호홍, 거기다 청심문의 청교장을 비롯해 총 일곱의 종문을 홀로 저지한 일 말입니다.”

“아 그일 말인가?”

저지라기보단 타협이 맞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준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생각보다 빠르게 퍼진 소문에 의문이 생길 때쯤 중괴가 알았다는 듯 소리를 내었다.

“어쩐지, 그래서 전송진을 바로 사용할 수 없었고만.”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수많은 소식통이 전송진을 통해 전달됐단 뜻이지.”

“아….”

전송진은 편리하다고 해서 아무나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번 발동하는 데 엄청난 영력이 소비됐고, 진법에 비축한 영기가 전부 소모되면 한동안 사용할 수 없는 게 현실.

즉, 고문성 성주의 지시 아래, 성 외곽에서 발생했던 전투 결과가 수많은 종문이나 다른 성으로 전해졌고, 그로 인해 전송진이 과부하에 걸려 한동안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준혁은 자신들이 체류해야 했던 이유를 새삼 깨닫고 쓰게 혀를 차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적루와 청심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

“예. 조만간 이곳을 방문할 테니 함께할 미래에 대해 자세히 얘기를 나누자며….”

“아, 그래서 이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군?”

“그렇습니다. 오늘이 두 종문에서 방문하기로 한 날입니다.”

소우자의 말이 끝나자 준혁은 일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적루는 예상 밖이지만, 청심문은 청교장으로 인해 방문이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가 떠나기 전 은밀히 전한 말과도 상관이 있었다.

삼지행이란 영근을 만든 거인족의 근원과 같은 힘.

비록 준혁이 금제 형식으로 심어두었다고는 하나, 삼지행의 기운 자체는 영근의 발달을 도울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마 종문으로 돌아간 후 그것을 깨달았을 테고, 그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방문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효과가 좋으면 다른 이들에게도?’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던 준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짓다 고개를 저었다.

비록 삼지행이 영근에 도움이 된다 해도, 그건 영근을 지닌 인족 한정이었고, 심장 어림에 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싶은 이는 많지 않았을 테니까.

준혁은 빠르게 상념을 정리해버렸다.

다만 삼지행을 심은 일은 실험의 의도도 있었기에 청교장의 방문에 나름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가? 그럼 복잡해지기 전에 움직여야겠군.”

“멀리 배웅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주군.”

“죄송할 일도 많군. 그리고 함부로 고개 숙이지 말게. 이 성에서 가장 웃어른은 그대이니.”

“...명심하겠습니다.”

소우자에게 한마디 건넨 준혁이 등을 돌려 전송실 밖으로 향하자. 나머지 무리도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그 뒷모습에 소우자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는데,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우자의 눈빛엔 갈망이 어려있었다.

잠시 후, 준혁 일행이 멀리 사라지자, 소우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이가 숙맥이라 걱정이 크구나…. 택요 수사.”

“말씀하십시오. 성주.”

“저번에 나에게 했던 말 말이오. 성혼전문가라던….”

“아, 만 명의 인연을 만들었다는 교생부인 말씀이십니까?”

“그러네. 그 사람 좀 수배해 주겠나?”

비밀리에 음모가 싹트고 있음을 준혁은 알지 못했다.

***

대화성 중심에 세워진 화려한 건물.

거처로 돌아온 준혁은 일행들을 각자의 거처로 돌려보낸 후 영수들을 찾았다.

하지만 산들바람과 청호는 보이지 않았고, 용천, 천무와 마휴만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녀석은 어디 갔느냐? 거짓 없이 말해 보거라.”

“산들 수사가 청호 수사를 이끌고 며칠 전 자리를 비웠습니다.”

“무엇 때문에?”

“대화성 동서쪽으로 사흘가량을 가면 동호(東湖)라 불리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 모여 사는 집성촌을 방문한다 했습니다.”

“??”

준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용천이 살짝 머뭇거리다 답했다.

“그곳에 꿀타래라는 음식이 있는데…. 명인의 손을 거쳐야만 만들어지는 것으로 조청을 이용하여….”

“됐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또 새로운 음식을 발견해 나들이를 갔다는 산들바람의 소식에 준혁은 절로 고개를 젓고 말았다.

‘언제 철이 들고 수련에 힘쓸 건지….’

산들바람이나 청호가 나이에 비해 엄청난 수행을 가지고 있었기에 앞으로 살아갈 날은 길고도 길었다.

하지만 영원불멸하지는 않을 테니, 그들이 수행을 쌓아 자신과 평생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러니 놀고먹기만 좋아하는 산들바람과 그녀를 대장처럼 여기고 따라다니는 청호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허나 거기엔 준혁의 잘못도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나, 영수는 기본적으로 주인을 섬기고 보호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주인의 수행이 너무 높아 아무런 도움도 되질 못한다면 섬김이 의지로 바뀌고 부모를 따르듯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눈 깜짝하면 준혁의 수행이 날로 발전해 버리기에, 애당초 수련 의지가 꺾여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둘과 다르게 용천, 천무는 엄청난 양의 지식을 빨아들이며 수련 삼매경을 이어 나갔는데, 굳이 결론 내리자면 용천, 천무가 이상한 것이었다.

물론 준혁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말이다.

‘청룡이 심어둔 그의 혼이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

청룡이 죽기 전 두 아이에게 심어주었던 힘. 그것이 원인이 된 것이 분명했다.

산들바람과 청호가 주작과 백호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그들의 혼백에 일부 감응한 것과 달리, 용천과 천무는 완벽하게 순수한 원영 상태에서 청룡의 의지를 받았기에 다르게 작용하고 만 것이다.

‘돌아오면 당분간은 폐관수련을 시켜야겠어.’

준혁은 시간이 나면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용천과 천무 두 영수의 수련을 돌봐주었다.

그리고 마휴의 발전 상태를 점검하고는 자신의 거처로 이동했다.

***

“무슨 일로 기다렸느냐?”

거처로 돌아온 준혁은 다소곳이 반 무릎 자세로 기다리고 있던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시침 시비를 자처했던 유아였다.

유아는 준혁이 거처 안으로 들어오자 더욱 몸을 낮추며 인사했다.

“어르신을 뵈어요. 다름이 아니오라 성주께서 어르신이 오시면 바로 보여주라 한 물건이 있어 이렇게 대기하고 있었답니다.”

“물건?”

유아의 말을 들어 보니 최근이 아닌, 준혁이 떠난 직후 소우자가 준비한 물건 같았다.

준혁이 의문을 드러내자, 유아는 품속에서 몸통만 한 상자를 꺼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더니, 그 안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수박통만 한 돌을 꺼내 들었다.

“그건?”

“라후지의 창고를 정리하던 중, 미처 처리하지 못한 비밀창고에서 추후에 발견한 것이라고 전해 들었어요.”

유아가 꺼낸 돌.

그건 엄청난 기운을 담고 있는 공간석이었다.

마족이 침입할 당시 엉망이 돼버린 경매로 인해 소우자가 성주에 오른 후 전해 받았던 공간석.

준혁은 그걸 이용해 공천귀를 되살리려 했지만, 공간석의 기운은 체화되는 즉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고, 공천귀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진 공간석이 전혀 효과가 없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손목에 보일 듯 말 듯 한 실선이 생겼고, 그 말인즉 공천귀의 법기 형태인 공천령이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뜻.

그때 아쉬워하던 준혁을 기억하던 소우자가 물건을 구하자마자 바로 유아를 통해 보낸 것이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챙기지 못하더라도, 복귀하면 바로 받을 수 있도록.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알았으니 돌아가 보거라.”

마음이 급한 준혁이 바로 축객령을 내리자, 유아는 아쉬운 표정으로 예를 올리며 거처를 벗어났다.

잠시 후, 준혁은 지체 없이 공간석을 집어 들어 입속에 넣었다.

수박통만 한 돌이 입술에 닿는 순간 주먹만 한 구슬처럼 변하더니, 입속에 들어갈 때쯤엔 알사탕만 하게 줄어들었다.

쏘옥-

그렇게 공간석을 체내에 집어넣어 체화하길 수 시간.

준혁은 손목이 화끈거리는 느낌에 급하게 손을 들어 올렸고.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오래전 사라져버렸던 팔찌 문신을.

그리고 문신 위에 은은하게 올라와 있는 푸른 옥으로 만든 것 같은 팔찌.

아직은 매우 희미한, 반투명한 공천령을.

“역시! 공간석의 양이 부족해서였구나.”

그 당시 경매에 등장했던 공간석의 양이나 질은 분명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한 수준이었던 건 맞았다.

하지만 공천령을 부활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 아직이구나.”

하지만 공천령의 내부를 확인해 보려던 준혁은 무한한 창고처럼 넓어야 할 팔찌 안을 전혀 확인할 수 없음에 실망하고 말았다.

최소한의 모습을 비출 정도로 회복한 건 맞지만, 권능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에 준혁은 곧바로 거처를 벗어나 중괴에게 향했다.

“어르신께 물어봐야겠구나. 공천귀의 권능에 대해서.”

공천귀의 친우라 자처하던 그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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