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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24화 (324/408)

324화. 손님 (3)

청교장이 조심스레 소화여를 살피자, 준혁은 이해한다는 듯 말을 꺼냈다.

“괜찮습니다. 용건을 말씀하셔도.”

“선사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눈치 보지 않고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

청교장은 평소보다 긴장한 기색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제 몸 안에 심은 금제가 어떤 종류의 힘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혹 그것이 영근을 자극하기 때문입니까?”

“헙, 알고 계셨습니까? 설마, 의도하신 일입니까?”

준혁은 놀라는 청교장은 안정시킨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럴 거라 예상해본 것뿐입니다. 진선급 강자에게 금제를 거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그에 걸맞은 힘을 사용하다 보니 우연히 그것이 영근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었을 뿐입니다.”

순간 청교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가 준혁을 찾은 이유는 금제가 영근을 자극해 수행 속도를 향상시키고 있는 것이 잘못된 부작용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

준혁의 말을 풀이하자면 결국 원래부터 영근에 이로운 작용을 하는 힘을 이용해 금제를 가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선사! 부탁이 있습니다.”

어느덧 청교장의 태도가 조금 전과 사뭇 달라져 더욱 예를 갖췄다.

“말씀해보시지요.”

“제게 시전한 금제를 강화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금제를 더 강화해 달라?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지금도 준혁이 원한다면 삼지행을 격발해 청교장의 심장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하물며 금제를 강화한다면 심장뿐 아니라 원영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

청교장은 바로 답변하지 못하고, 입술을 악다물더니, 한참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미 금제를 품고 있으니 이득이라도 보겠다는 건가? 재밌군.’

준혁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목숨을 저당 잡히려는 청교장의 태도에 흥미를 느꼈다.

보통 금제가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이용하려고 할 만한 강심장은 드물었으니까.

청교장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전에 선사께선 저희 청심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

그리고 시작된 청교장이 소속된 청심문에 대한 설명.

청심문도 다른 종문들과 마찬가지로, 위로 올라갈수록, 수행이 높을수록 매년 할당받는 재화의 양이 급상승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재화를 매년 제공 받았는데, 부문주인 청교장이 제공받는 양이 나머지 문도들 전원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런 청교장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많은 재화를 가져가는 이가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청심문의 문주였다.

“저를 포함한 세 명의 선사가 천 년에 한 번씩 문주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입니다. 전대 문주께서 변출불의한 일로 승천하신 후, 저희끼리 내규를 그렇게 정했지요.”

처음 경합을 벌일 때만 해도 세 사람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등한 실력이었는데, 지금의 문주가 첫 문주 자리에 오른 후부터 그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차이를 줄이고자 금제를 강화하고자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으득, 그렇습니다. 부끄럽게도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던 이보다 뒤처진다는 것이 평생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재화가 욕심나는 것이기도 하겠지.’

청교장이 문주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당연하게도 열등감뿐 아니라 실리 때문.

문주의 자리에 올라야 더 많은 재화로 더 빨리 수행을 올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해서 그런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제 요청을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청교장의 기나긴 이야기가 끝나자 준혁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손으론 앉아있는 의자의 손잡이를 탁탁 소리 나게 두들겼다.

그러다 청교장의 얼굴에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며 짙어진 순간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물론 어렵지는 않은 일입니다…. 만, 금제를 가하기 위해 사용한 그 힘은 저에게도 매우 중요하고 다룰 수 있는 양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매우 중요한 건 맞지만, 그에게 주입한 양은 가진 총량과 비교하면 반딧불만큼이나 적었다.

“이미 선사께 금제를 가한 이득이 사라진 현시점에서 제가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선사께선 저에게 무얼 주시겠습니까? 영원토록 저를 섬기기라도 하시겠습니까?”

섬뜩-

준혁의 눈이 살짝 번들거리는 것처럼 보인 건 청교장의 착각이었을까? 그는 등줄기로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 만약 저를 도와주신다면, 앞으로 우리 청심문은 대화성의 혈맹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아니 최 선사께 피의 맹세라도 하겠소이다!”

피의 맹세는 충성의 맹세보다 상위호환의 술법이었지만, 청교장보다 수행이 낮은 준혁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청심문이라…. 훗날 도움이 되려나.’

“제가 도와드린다면 다음 대에 문주위를 차지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차후엔 모르지만, 차차 후엔 분명 제가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준혁이 무언가를 제안하려 하자, 청교장이 긴장하며 초조함을 내비쳤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제게 선사의 명원패를 바치십시오. 그럼 제가 심은 금제를 더 강화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후 선사가 문주가 된 후, 세 번. 딱 세 번 제 뜻에 따라 행동하시면 됩니다. 어떠십니까?”

“굳이 명원패까지….”

“선사께서 수행이 급상승해, 스스로 금제를 풀어버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명원패를 소유한다는 건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뜻.

“그, 그건….”

“그리고 제가 말한 세 번의 행동은 선사의 명예에 흠이 가지 않는 것으로 한정하도록 하지요. 이 정도면 서로 납득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

청교장이 떠난 후, 준혁은 소우자를 불러 몇 가지 사항을 지시했다.

적루로 인한 피해가 생기지 않게 남수사들을 단속하면서, 청심문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 거래를 늘리라는 것까지.

그런 후, 얼마 뒤 돌아온 산들바람과 청호를 따끔하게 혼내고는 아마르곤을 찾아 떠나기 위해 채비를 갖췄다.

“난 안 간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이번엔 혼자 다녀오거라.”

중괴는 굳이 흑석대륙까지 넘어가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고,

“나도 이젠 진짜 수련 열심히 할게….”

“저도요….”

산들바람 청호도 수련을 핑계로 함께하길 거부했다.

준혁은 동행을 원하는 소화여와 조호랑 남매, 그리고 용천, 천무 형제만을 대동한 채 전송실이 위치한 곳으로 이동했다.

“만약 돌아왔을 때 영역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그땐 너희 둘 다 100년간 강제 폐관을 시킬 것이다. 명심하거라.”

그리고는 산들바람과 청호에게 엄포를 놓고 전송진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전송진이 발동되며 준혁이 모습을 감추자, 산들바람이 신이나 전송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 같이 가!”

그 모습에 청호도 헐레벌떡 그녀 뒤를 쫓았다.

그런 두 영수를 보며 소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딱히 그들을 저지하진 않았다.

오랜 세월 살아온 그가 생각하기에 평생 철들지 않은 이들도 많았고, 두 영수는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한편, 대화성에서 호란대륙 북단의 임주성으로 넘어온 준혁은 미리 마중 나와 있던 임주성 성주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전송진을 이용했다.

그런 후, 묘립성에 도착해 소우자의 수하들에게 환대를 받다가, 몇몇 상위 수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법상 지식을 전해주고는 소리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묘립성을 떠나온 준혁은 곧장 북서쪽으로 1년여 정도를 날아갔고, 그곳에서 폐허가 돼버린 전왕문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뇌명숲에 이동 수단을 제공하면서 흑석대륙과의 유통 요충지로 자리하고 있던 전왕문은 과거의 영광 따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사리판이 나 있었다.

“흐음…. 설마?”

준혁은 그런 풍경에 곁에 서 있던 조호랑에게 시선을 옮겼고, 그녀는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말랑이를 제물로 사용하려던 이들을 가만히 둘 순 없죠. 다만 소식을 알게 된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방문했을 땐,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홧김에 건물들만….”

조호랑이 어깨를 으쓱하자, 그 옆 조말랑도 머리를 긁적였다.

“형님, 죄송해요. 무고한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걸 싫어하신다는 걸 알지만…. 할아버지께서 화를 내시면 어쩔 도리가 없어서….”

“아니네. 충분히 화낼 만한 일이지, 영수족 수사들만 모아 제물로 사용하려 했으니, 그대의 조부께서 이렇게 하신 것도 이해는 가.”

‘다행히 전왕문주가 내 의도대로 행동했구나….’

곳곳이 처참하게 파괴된 전왕문의 옛터를 바라보며 준혁은 전왕문주에게 조말랑의 조부에 대해 얘기한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태백랑이란 자가 무자비하게 죄 없는 사람들을 해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전쟁이 일어나면 무고한 자들이 죽어 나가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그때, 문득 준혁의 뇌리로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어찌 됐든 뇌명숲을 통과하기 위한 이동 수단이 존재해야 하는 게 사실. 지금의 준혁에겐 해당 사항이 없지만, 저급 수사들은 혼자 힘으론 뇌명숲을 지날 수 없었으니 방도를 마련해야만 했다.

특히 지구와 연결 통로를 만들려던 그로서는 넓은 대륙으로 통하는 뇌명숲에 이동 수단이 존재하게 유지해야 할 처지기도 했고 말이다.

준혁은 생각이 떠오르자 빈 옥간을 꺼내 그 안에 전왕문이 사용하던 뇌공지신에 대한 자신의 심득을 전부 담았다.

그리고는 몇 마디 전언을 남기고 분광소를 소환해 묘립성으로 날려 보냈다.

‘묘링성의 도움으로 이곳에 자리 잡는 게 태식 수사에게도 더 나을 테지.’

당장 스스로 힘으로 자립할 수는 없을 테지만, 묘립성의 도움이 있다면 옛 전왕문이 하던 일을 그가 이어갈 수 있을 터.

그걸 바탕으로 발전한다면, 그저 묘립성 내의 하나의 문파가 되는 것보다 좋은 선택일 거라 여겨졌다.

훗날 전왕문주가 돌아온다면 그땐 자신의 선에서 막아주면 되고 말이다.

어쨌든 그가 수하 관리를 잘못해, 전왕문이 사라진 거니 거기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긴 힘들 테니까.

잠시 후, 일을 마친 준혁은 일행을 이끌고 뇌명숲으로 향하는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자 그럼 흑석대륙으로 떠납시다.”

그리고는 조각배 법기를 꺼내 전왕문의 뇌공지신 공법으로 배를 보호한 후 숲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

어둠이 내려앉은 산 중턱.

그곳에는 보라색, 검은색 이파리가 어우러진 나무가 가득했는데, 특이하게도 꽃잎마저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여 괴이함을 넘어 두려움을 전해주었다.

그러한 꽃을 한 손에 들고, 진한 검보라색 피부를 지닌 사내가 꽃잎을 감상하고 있었다.

사내의 비단결 같은 머리칼도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일반적인 마족들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꽃을 감상하고 있던 사내가 입김을 살짝 불자, 검보라색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며 화사하게 변해갔다.

퍼석-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먼지처럼 흩어져버리자, 사내가 혀를 차며 인상을 구겼다.

“쯧”

인상을 구긴 사내가 다시 입김을 불자, 어디선가 꽃잎들이 날아와 뭉치더니 다시 검보라색 잎을 가진 꽃으로 변했다.

“이게 나의 한계인가? 아직 멀었군.”

한참 동안 재생성한 꽃잎을 바라보던 사내는 이윽고 손을 털어냈고, 그 즉시 꽃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잠시 후, 사내는 시선을 들어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더 멀리 시선을 두다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손님이 오는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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