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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39화 (339/408)

339화. 인연을 담고 (3)

당장이라도 주서령을 잡아챌 것처럼 솟구치던 남운성주는 준혁의 등장에 급하게 선회하며 멀찌감치 떨어졌다.

대비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상대방이 자신의 분신들을 단숨에 박살 내 버렸기에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경계를 올렸다.

그사이 주서령과 시선을 맞추며 많은 감정을 주고받은 준혁은 그녀에게 눈짓으로 지상을 가리켰다.

그 뜻이 무엇인지 파악한 그녀는 눈물을 멈추고 웃음으로 화답한 후, 주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내려갔다.

주서령이 자리를 피한 직후.

준혁은 그제야 남운성주를 살피며 주변을 장악하려 의지를 발산했다.

‘흐음, 진선인가? 라후지 말고도 성주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 진선이라….’

천운성주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대천경 수사가 성주 자리를 맡고 있었기에, 준혁은 상대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선이든 아니든 이런 상황을 야기시킨 상대를 가만둘 생각은 없었다.

“누구시길래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입니까? 성명을 밝혀 주시지요.”

상대는 자신의 행사가 방해받았음에도 무작정 덤벼들 생각은 없었는지 예의를 갖추고 나왔다.

직후, 준혁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 움찔하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하, 당신이 바로 그 선사로군요. 요마족 동급 수사들을 연달아 처리했다고 이름을 날리던.”

주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음을 전해 받은 남운성주가 아는 체를 하자, 준혁이 차갑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 최가입니다. 그럼 성주께선 듣지 못하셨나 봅니다? 주가의 여식이 저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요?”

준혁의 웃음을 비웃음으로 여겼는지, 남운성주가 인상을 구기며 답했다.

“인연? 최가란 자가 주가를 방문한 후, 주 소저가 한동안 외부활동을 멈췄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헌데 그것이 어쨌단 말입니까? 저 여인은 이미 제가 가지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인데. 당신이 끼어들 자리 따윈 없습니다.”

“끼어든다라…. 그렇다면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 없겠습니다?”

준혁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무시하듯 턱을 내밀자, 남운성주가 갑자기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크큭, 그래요. 잘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배필이 나타났다는 소문에 심기가 불편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리해버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남운성주는 보여주듯 과도하게 웃던 모습을 바로 하고, 갑작스럽게 양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몇 차례 달싹이다가 크게 소리쳤다.

“파도여! 갈라라!”

그러자 그의 음성이 거대한 파동이 되어 앞으로 뻗어나가다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이내 집채만 한 파도가 되었다.

남운성주가 만들어낸 파도는 거대한 반달 모양의 칼날처럼 변하더니, 시야에 존재하는 모든 걸 압살하며 토막 내버릴 것같이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곁으로 네 명의 분신이 만들어졌고,

슈아악-

분신들 역시 손에 반달 칼날을 든 채로, 준혁을 향해 빛 꼬리를 남기며 쇄도해갔다.

주서령을 공격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위력을 품은 분신들의 기세는 보고만 있어도 절로 위축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남운성주가 만들어낸 파도가 준혁을 향해 절반도 다가가지 못했을 때.

화아악-

준혁을 중심으로 검은 장막이 생성되더니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어 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남운성주는 힘을 배가시키며 코웃음을 쳤다.

“겨우 외부의 시선이나 막을법한 것으로 내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준혁이 발동한 사신정의 효능을 단번에 파악한 남운성주는 즉각 분신들의 뒤를 따라 허공을 박차며 몸을 움직였다.

검은 장막이 규모를 키워가며 일대를 뒤덮었지만, 그깟 거 파도에 휩쓸리는 순간 모조리 부서져 나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뚝-

하지만 채 십여 미터도 이동하지 못하고, 외마디소리를 내며 벌벌 떨며 분신들을 멈춰 세우고 말았다.

“자, 잠깐!! 규, 규선! 서, 서, 선배님이셨습니까?!”

파파앗-

검은 장막이 온전하게 주변을 가로막아 버린 직후.

준혁이 서 있던 자리,

그곳에서 여덟 명의 영역분신이 공간을 에워싸듯 포물선을 그리며 쇄도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선 준혁의 등 뒤로, 화신체처럼 보이는 기의 덩어리가 따라붙고 있었다.

남운성주는 대적할 마음이 사라져 버린 듯, 공포에 전염되어 버렸다.

***

다른 수사들에 비해 네 배나 많은 분신을 운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그리하지 않았던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터무니없이 소비되는 영력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유일하게 자신의 수행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중괴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준혁이 전력을 드러낸 이유는 왕의 정수만 믿고 행동하기엔 상대와의 수행 차이가 제법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주백강과의 대화를 통해 반드시 그를 주살하려는 의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주 가주, 이자를 처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자의 평판은 어찌 됩니까?

남운성주가 주서령을 두고 내 것이니 어쩌니 말을 늘어놓고 있을 때, 준혁은 남몰래 주백강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소문으로는 그리 좋지 못합니다. 남운성에 거주하는 수사만 해도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겨우 몇 명만 대동한 채 나타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처리해도 문제가 없겠군요.

-물론입니다. 그에게 불만을 가진 인사가 한둘이 아니니…. 게다가 성주 자리가 비면 그 자릴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일 테니, 다른 곳에 신경 쓸 이는 없을 겁니다.

준혁이 무얼 걱정하는지 단번에 파악한 주백강의 설명이 이어졌다.

준혁이야 주서령을 데리고 떠나면 그만이겠지만, 주가 사람들은 계속 이곳에 있을 테니 혼자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순 없었다.

-게다가 그자가 지금껏 서령이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할 수 있으시다면 꼭 그를 죽여주십시오.

그 뒤로 이어진 주백강의 말엔 남운성주가 사람들을 보내 숱하게 그녀를 괴롭힌 일들과 몇 번의 납치 시도 등, 준혁의 심기를 건드릴 얘기들이 잔뜩 흘러나왔다.

-걱정 마십시오. 오늘 저자는 두 번 다시 하늘을 볼 수 없을 테니.

-딸아이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잊으셨습니까? 가주의 딸이기 전에 제 여인이었단 사실을?

정확히는 준혁의 여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과거의 인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확실했기에,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주서령이 배필을 구했다는 소문은 그녀가 마음을 정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했으니, 준혁도 서슴없이 마음을 드러냈다.

그사이 남운성주가 할 말을 마치고 공격을 개시하자, 준혁은 사신정을 사용해 주위 시선을 완벽히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는 진선들을 흡수하고 남은 잉여 영기로 만든 화신체 중 하나를 공명시켜 막대한 영력을 충당 받았고,

그 즉시 여덟 분신을 만들어내 사방을 휘몰아치듯 움직였다.

그 순간, 남운성주가 지레 겁을 먹고 공격을 멈췄고, 준혁은 오히려 더 매섭게 기운을 몰아쳤다.

“규, 규선! 자, 잠깐!! 서, 서, 선배님이셨습니까?!”

‘저런 한심한 놈이 그동안 그녀를 괴롭혔다니.’

아무리 상대가 대단해 보인다고 해도, 칼을 뽑은 이상 필사의 각오로 덤벼야 하는 게 이치였다.

겨우 분신 숫자에 기겁해 주춤하는 상대를 보니 더욱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나도 남기지 말아라.’

준혁은 여덟 분신 중 네 명을 사진정 밖으로 보내 남운성 떨거지들을 처리하게 했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왕관을 만들어내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대기에 속박되어라.”

“예, 예?”

공격하던 와중 갑작스레 입을 연 준혁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생각하던 남운성주는 이내 절망에 휩싸이고 말았다.

조금 전 공격을 멈춘 건 자신의 의지였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몸이 허공에 묶인 듯 꼼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장-

그리고 그걸 인지한 순간 속박이 깨져나가며 운신이 가능해졌지만,

“속박되어라.”

다시금 들려온 소리에 또 한 번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스가아악-

붉은 광선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고 느꼈고, 찰나의 순간 다시금 속박을 풀어낸 남운성주는 왼쪽 어깨와 팔이 떨어져 나간 걸 인지했다.

“이, 이게 무….”

조금 전 자신이 속박된 힘을 강제로 풀지 않았다면 어깨가 아닌 심장이 반 토막 났을 상황에 그는 등줄기로 소름이 올라오는 걸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 남운성주를 포위하듯 다가온 네 명의 분신이 전광석화와도 같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가 방어에 나섰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으윽.”

어느새 다가온 상대의 분신 하나가 지옥의 겁화와도 같은 열기를 머금은 채 대기를 가르고 있었고,

또 다른 분신은 극한의 한기를 머금고 반대를 파고들고 있었다.

반면 준혁은 왕의 정수를 최대한으로 발동했음에도 지극히 짧은 순간밖에 상대를 잡아두질 못해 입안이 썼다.

조금만 더 자신의 의지력이 강했다면, 단 한 수에 끝났을 수 있었을 테니 아쉬움이 남았다.

게다가 공포와 절망에 잠식되어가던 상대가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대항하려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승부의 승패 때문이 아닌, 영력 보충용으로 만들어진 화신체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

처음부터 충전용으로 만들어졌기에 한 번 쓰고 난 기운은 회복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더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준혁의 표정은 의미심장하게 변했고, 어느새 날개가 나타나 펄럭거리자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자리에 남은 건 그가 남긴 마지막 말뿐이었다.

“하긴, 소비한 건 다시 충전하면 그뿐이지.”

***

“아버지, 최 선사께서…. 저자를 처리하실 수 있을까요?”

검은 장막이 일정 부분을 감싸버린 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태가 돼버렸다.

그랬기에 주가 구성원들은 안절부절못했고, 방계 몇 명은 당장이라도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장막에서 네 명의 각기 다른 외형의 수사들이 나타나더니 남운성주를 따라온 수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저, 저분들은?”

“수사가 아니라 최 선사께서 만든 분신이다.”

“분신이라고요? 말도 안 돼요. 어찌 한 사람이 저토록 다양한.”

주서령의 말에 주변 모든 인물이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역 분신이라는 건 위선경에 오른 자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분신은 본체의 능력을 복사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본체가 익힌 공법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 법.

하지만 지금 남운성 수사들을 휩쓸고 있는 분신들은 넷 모두 제각각의 공법을 운용하며 각기 다른 기운을 내뿜는 중이었다.

“어찌 우리의 지식으로 모든 걸 재단한단 말이냐?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어디에나 있는 법.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가 나타난다면 불신할 게 아니라, 배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다.”

“아…. 맞아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주서령이 자신의 편협함을 뉘우치는 사이, 네 명의 분신은 순식간에 주변 정리를 마쳤다.

그리고는 그중 둘은 다시 사신정 안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고, 나머지 둘은 주가 사람들 머리 위에 떠서 조용히 대기했다.

“허어…. 내가 정말 그를 과소평가했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주백강의 탄식에 주서령이 반문했다.

“그 역시 남운성주와 마찬가지로 진선에 올랐다 하지 않았느냐?”

“그랬죠?”

“헌데 보아라. 분신 따윈 배제하고서라도 남운성주를 상대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일을 마무리하고 전부 불러들이지도 않고 우릴 지키게 하다니. 이건 상대를 압도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으냐.”

“아….”

그리고 주백강의 평가를 뒷받침하듯.

두 명의 분신이 되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장막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준혁 홀로 도도하게 날아내려 주서령 앞에 섰다.

그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주 소저,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전투를 벌인 당사자가 자신을 걱정해주자, 주서령은 바보처럼 웃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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