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전승자 (3)
“저게 무어란 말입니까?”
하늘에서부터 시작한 뇌전 기둥.
상식을 벗어난 엄청난 규모의 천겁에 모여있던 팔왕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도 전원이 천겁을 이겨내고 지금의 수행을 얻었기에, 천겁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천겁이라 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물러나야 합니다!”
그때 팔왕 중 적수리족의 조왕이 말을 내뱉고는 즉시 몸을 날렸고, 그걸 본 나머지도 재빨리 천겁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안전하다고 여긴 거리가 너무나 거대해져 버린 천겁 때문에 위험 지역에 포함돼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팔왕은 안전거리를 확보했다고 여겼는지 천겁을 주시했다. 다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때, 천겁과 비교하자면 미약하지만 희미한 빛무리가 터져나가며 백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전함이 나타났다.
“저건!”
전함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푸른 보호막을 방출하더니 천겁을 막아섰다.
쿠아아앙!!
두 힘의 대결은 엄청난 파동과 충격파를 퍼트렸고, 봉황족 영토 일대를 휩쓸며 파괴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잠시 후, 세상을 녹여버릴 듯 떨어져 내리던 노란 뇌전 기둥이 사라지자, 전함만이 고고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인족들의 전함이 저리 대단한 물건이었습니까?”
그 모습에 흑언족 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고, 모두가 동의한 듯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니겠는가?
전함이 아무리 강력한 법기라 한들, 조금 전의 천겁은 감히 법기 따위로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다만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준혁이 가진 전함은 공간의 틈에서 버틸 의도로 만들어진 특수 전함이란 것이었다.
곧이어, 또 한 번의 천겁이 떨어졌고.
쿠아앙-
전함은 여전한 모습으로 하늘에 떠 있었다.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푸른 보호막이 아까보다 훨씬 더 두꺼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
두 번째 천겁을 막아낸 준혁은 전함의 상태를 살피고 만족의 미소를 띠었다.
이 정도면 4번의 천겁을 무리 없이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선에 이르는 천겁이라 하기엔 너무나 강력했지만, 이미 열여섯 번 단계적으로 강해지던 것을 막은 전력이 있던 준혁에겐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잠시 후, 안심한 그는 흑룡을 해제하고는 산들바람에게 집중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느새 준혁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번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산들바람의 수행 때문이었다.
천겁이란 건 일종의 시험적인 성격이 강했고, 그걸 이겨냄으로써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을 자신이 대신 받아주다 보니, 산들바람의 성장은 애매하게 돼버렸다.
분명 진선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신체 강도를 포함한 여러 가지가 그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 말인즉, 반쪽짜리 진선이 되고 있단 뜻이었다.
‘천천히 완성해가면 되겠지.’
그렇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었기에 산들바람의 상태를 확인한 준혁은 이후 그녀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생각하다 관심을 돌렸다.
‘이제 마지막인가?’
세 번째 천겁이 끝나고, 일반적인 진선이 겪어야 할 마지막 천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응? 이건….”
하지만, 마지막 천겁을 받아내기 위해 전함을 통해 막강한 의지력을 표출하던 준혁은 주변 대기가 미세하게 요동치는 걸 감지했다.
다른 이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것이 평범한 현상이 아님을 눈치챘다.
“이런 식으로!”
그 순간, 준혁은 곧장 흑룡을 발동하며 자신이 머문 지역 일대를 보호했고, 동시에 귀원패를 포함한 마족의 전영까지 소환해 방어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기도 전.
부글부글-
대기 중 일부에 기포가 생기며 퐁퐁 터지더니, 마치 물이 끓듯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산들바람의 몸속에 있던 응축된 화기보다 더 견디기 힘든 초고열의 화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준혁이 뇌전 형식의 천겁을 열여섯 번 겪었던 것과 달리, 산들바람의 마지막 천겁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다.
“하압!”
화기가 침투하기 전 만반의 준비를 마친 준혁은 합장을 마치며 파동을 퍼트렸고, 그에 반응하듯 주변을 뒤덮던 화기가 그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
“끝난 건가?”
봉황족 금지가 자리한 방향을 보고 있던 태백랑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혼잣말을 했다.
처음엔 영기폭풍 안에서 준혁이 어떻게든 버텼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었지만, 천겁까지 떨어진 마당에 근처에 있던 그가 무사할 리 없다 여겼다.
“다시 돌아오라고 해야겠구나. 하아….”
이젠 혼자가 돼버린 하나뿐인 손녀를 떠올리던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피부가 따끔거리며 불쾌한, 하지만 묵직한 무언가에 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동시에 곁에 있던 명왕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저, 저게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끝이 아니었다고?”
“내 생각엔 저것이 진짜인 것 같네.”
명왕의 목소리에 조왕이 대답했고.
“진짜라니? 그럼 그전에건 무엇이고?”
“......”
두 번째 의문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갈라졌던 하늘이 다시 뭉치며, 불덩이 구름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기에 당연히 천겁이 끝났다고 여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보이는 건 겨우 세 번이었고, 느껴지는 기운은 네 번.
혹여나 규선급, 혹은 그 이상의 강자가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팔왕은 진선의 탄생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여있던 영기구름 외곽으로 그전까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구름이 갑자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 석양빛을 물들어 있던 영기구름과 달리 진한 먹구름 색을 띠고 있었고 말이다.
“허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누구 하나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예측하지 못했고, 그렇게 하늘은 더 많은 영기구름으로 빽빽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
초고열로 이루어진 마지막 천겁은 흑룡이나 기타 수단으로 보호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흑룡의 보호막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고, 전영이나 귀원패의 능력도 쉽게 투과해버렸다.
그랬기에 준혁은 맨몸으로 화기를 버텼다. 그 와중에 산들바람이 산화해버리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고난의 시간은 결국 끝이 났고, 산들바람은 무사히 진선에 오르며 그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 내비쳤다.
‘허어. 이게 염화신족 전승자의 능력인가?’
산들바람은 불의 근원이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능력을 개화했다. 그것은 태양지력에 버금가는, 아니 화기를 다룬다는 것 하나만 놓고 보자면 그것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었다.
아직 완전히 발화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미미했지만, 산들바람이 불의 근원을 완벽히 다루는 날.
그때가 오면 또 한 명의 초강자가 탄생할 거란 예상이 들 정도였다.
‘불의 근원…. 생각보다 재밌는 힘이구나.’
준혁은 내심 만족하며 불의 근원을 하나씩 뜯어보며 그 기능을 살폈다. 동시에 하늘 가득 남아있는 화기를 쉬지 않고 흡수했다.
이젠 산들바람의 그릇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에, 남은 화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보다 수월히 끝났구나.”
하지만 그때, 준혁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불의 근원이 발화한 덕분에 준혁에게 전해지는 화기는 더욱 강해졌다.
결국 그는 화기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태양지력으로 몸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천겁도 끝난 마당에 무식하게 강체술로만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쾅! 화르륵-
불의 근원은 태양지력과 만나더니 폭발적으로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은 여지껏 산들바람의 기운을 버텨온 준혁에게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준혁은 어쩔 수 없이 태양지력을 더 강화하며 대항했고, 그것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시간이 지나자 불의 근원과 태양지력이 점점 하나 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문제의 시발은 거기였다.
‘어째서 내 수행이!’
불의 근원과 하나 된 태양지력은 준혁의 의지를 벗어나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산들바람에게 주입하려 했던 화기를 미친 듯이 잡아먹었다.
그러자 그에 반응해 삼지행이 균형을 되찾으려는 듯 월광지력과 성광지력 또한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경쟁하듯 힘을 키운 삼대지력은 결국 산들바람에게 가야 할 영기를 전부 소화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새로운 영기구름까지 몰고 온 것이다.
준혁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천기를 건드려 수행 상승 때나 불렀어야 할 현상을 일으키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만약 준혁의 그릇이 충분하다면, 갑작스레 일어난 천지 현상은 그의 그릇을 가득 채우는 거로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그릇의 크기가 부족하다면?
그땐 그릇이 깨지거나, 더 큰 그릇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즉, 강제로 수행을 상승시킬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
“후우….”
금지 안.
준혁의 한숨이 깊게 울렸다.
석양빛 영기구름에 이어 끝없이 모여들고 있는 영기구름.
그것들을 쉬지 않고 받아들인 지도 며칠이 흘렀고, 결국 내부가 터지기 직전까지 들어차고 말았다.
의지를 돋구어 천기를 자극하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규선에 오를 수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단 것이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그토록 애썼거늘.”
일전의 열여섯 번의 천겁으로 예상컨대 규선에 오르면 서른두 번의 천겁을 견뎌야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준혁은 세상이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흘러갈 거라고 안일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인즉.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단 뜻이었다.
“어쩔 수 없나. 더는 무리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준혁은 결국 거부할 수 없는 일임을 인정했다.
이대로 이어지는 영기구름을 더 받아들이면 천겁이고 나발이고를 떠나 몸이 터져버릴지 모를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래, 의지가 무너지지 않는 한 나에게 한계란 없다. 그깟 천겁! 이겨내 주마!”
곧이어 자신에게 걸어놓은 빗장을 걷어냈다.
쿠오오오-
그 순간 억제하며 절제하던 기운이 물밀듯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신의 그릇이 갑작스레 확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준혁은 휘몰아치는 기운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다가 재빨리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쿠쿵- 쿠우웅-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굉음과 함께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에선 십이 색 무지개가 떠올라 준혁이 자리한 금지를 비추었다.
동시에 하늘 곳곳에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무지개 길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준혁은 그러한 현상을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영혼의 일부가 하늘로 이어지는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현재 위험한 상황이란 것도 잊은 듯, 감탄 섞인 소리를 내었다.
“하, 이것이 규선인가?”
영혼의 떨림과 함께 등줄기로부터 소름이 올라와 전신으로 확장됐다.
규선이라 함은 진선과는 또 달랐다.
그저 세상에 가득한 영기를 느끼고 조종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의지가 하늘에 닿고 있었다.
이제 막 수행이 오르기 시작했기가 확실하진 않았지만, 만약 규선에 오르는 게 성공한다면 자신의 의지는 이제 거칠 게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말이 세상의 말이 되고.
자신의 뜻이 세상의 뜻이 되는.
준혁이 느끼는 규선의 경지는 그러한 것이었다.
동시에 신선이 어떠한 존재인가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선이란 생명체임과 동시에 세상의 일부였다.
그랬기에 그들의 의지는 ‘의지’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말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신선의 ‘의지’에 담긴 것은 그의 생각과 염원뿐이 아닌 세상을 관통하고 조종하는 본질이었다.
그렇게 준혁이 수행이 상승하며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끼는 사이.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이어져 있던 십이 색 무지개가 점차 옅어지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하아…. 아쉽구나. 조금만 더 길었다면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금지안의 준혁이 그 때문에 아쉬워하는 순간.
콰콰쾅!!
번쩍-
갈라진 하늘 사이로 무자비한 뇌전 기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