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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98화 (398/408)

398화. 천신라 (1)

“과연 의식공간 안에서 식아가 발동될지 궁금하군.”

준혁이 가진 궁금증이자 재미난 생각이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의식공간으로 몰래 스며들며 자리를 차지하는 불순물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그 상태에서 불순물에게 점점 본인의 의식공간을 빼앗겼을 테지만, 준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들어오셨으면 이리 오시지요.”

주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의식공간을 먹어 치우려던 괴뢰종은 흠칫하다가, 조금씩 형상을 갖추며 준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나를 이곳에서 상대하려고 방비를 푼 건가?”

“이제야 깨달으셨습니까?”

“허, 참.”

담대한 준혁의 말에 괴뢰종이 바깥에서와 동일한 모습으로, 하지만 크기는 수십 배나 커지며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천신라도 내 능력을 방어할 뿐 맞상대하려고는 안 했거늘. 감히 인족 따위가.”

거대한 거인이 되어 성장을 멈춘 괴뢰종은 당장이라도 준혁을 압사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천신라도 보기보다 약골인가 보군요?”

“뭐라? 하하, 그래 언제까지 기고만장할지 봐보자!”

준혁의 도발 때문인지, 아니면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서인지.

괴뢰종은 자신의 능력을 온전하게 터트리며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그러자 그의 거대한 형체가 어느새 준혁 앞에 도달했고, 도달했다 여긴 순간 깍지낀 양손이 준혁의 머리 위에 도착해 있었다.

“너무하시군요. 이곳에서 그리 힘을 쓰면 제 의식이 손상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찰나의 순간.

준혁은 마치 시간을 늘리는 것처럼 상대방의 행동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머리 위까지 도착한 주먹을 톡하고 건드렸다.

“끄아아아악!!”

그러자 괴뢰종은 송곳에 관통당한 쥐처럼 몸을 부르르 떨더니 쿵- 하며 엉덩방아와 함께 넘어졌다.

“말도 안 돼! 어찌 이런 능력이! 시, 시간을 움직이다니!”

시간은 고유의 영역이었다.

어떤 수사도,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것.

오직 한 명, 법문의 마규보만이 가속과 감속을 조율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능력 역시 소문에 의하면 다른 마선들처럼 자유자재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특정 비술을 사용할 때 정혈을 바쳐야 하는 것처럼. 마선 고유의 권능이었음에도 심한 부작용이 있었다.

준혁은 겁에 질린 아이처럼 엉거주춤 엉덩이 걸음으로 도망가려는 괴뢰종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잊으셨습니까? 이곳이 제 의식 안이라는 걸? 이곳에서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도망치는 괴뢰종은 점점 몸집이 줄어들더니 1m 남짓까지 줄어들었다.

어느새 하얗게 질린 얼굴로 괴성을 토해냈다.

“본인의 의식이라고 해도! 내 의식 또한 이곳에 있는데 어떻게!”

그랬다. 괴뢰종이 단 한 번의 공격에 준혁에게 겁을 먹은 건 바로 그 이유 때문.

본인의 의식과 준혁의 의식이 상충하고 있었기에, 누구 한 명이 압도적인 상황을 연출한다는 건 어려웠다.

상대방의 의식이 본인보다 수십 배 강력하다면 모를까.

그리고 그 의문이 드는 순간, 괴뢰종의 눈엔 준혁이 괴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 오지 마!”

상대의 의식을 파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괴뢰종에게 준혁은 천적. 말 그대로 천적이었다.

“오지 말라고! 오지 마!!”

겁에 질린 괴뢰종의 눈에 상대가 검은 식검을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

푸욱-

식욕을 꾹 참고 있던 식아가 번개처럼 움직여 괴뢰종을 흡수했다.

그 순간 의식 바깥의 괴뢰종이 비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역시 여기에 들어온 놈이 본체군.’

의식체, 혹은 정신체 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가 괴뢰종의 본질이었다.

준혁은 곧바로 의식 밖으로 의지를 확장하며 검은 반지를 발동시켰다.

촤르르-

그러자 검은 장막이 퍼져나가며 영역과 하나되 주변을 완벽히 차단했다.

본체를 잃은 마족 몸뚱이야 그저 수거하면 그만일 테지만, 지켜보는 이들이 많으니 최대한 감춰야 했다.

“와, 이게 적지주 수사에게 받았다는 그 물건이군요!”

준혁 가까이 있었기에 검은 장막 안에 머물게 된 소화여만이 들뜬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떨쳐버린 듯이.

그사이, 준혁은 괴뢰종이 머물렀던 마족 신체를 확인하고는 기쁨을 흘렸다.

“수행이 그대로 남아있구나.”

원영뿐 아니라 신체까지 완벽한 규섭급 마족 마선.

당장은 모르겠지만 쓰임새는 무궁무진할 터였다.

준혁은 족자를 열어 분광소를 창고로 들여보내 관처럼 생긴 보호구를 꺼내왔다.

그리곤 영혼이 비어버린 마족 규선의 몸을 보호구에 집어넣고 다시 공천귀의 창고로 보냈다.

잠시 후, 소화여를 상대로 괴뢰종의 능력을 확인해 본 준혁은 만족과 함께 검은 장막을 거뒀다.

장막이 거둬지자, 마선과 함께 나타난 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괴뢰종이 어딨는지 확인하겠다는 듯이.

준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코웃음을 치고는 전방으로 소릴 질렀다.

피라미들은 상대할 생각도 없었다.

“천신라!! 모습을 드러내시오! 나 최준혁이! 내 사람들을 찾으러 왔소이다!”

***

“저게 말이 된단 말인가?”

“말이 안 될 건 뭡니까? 지왕도 한 수만에 당했는데.”

먼 곳에서 모습을 감춘 채 방관하고 있던 팔왕 중 조왕과 명왕의 대화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 가까이 있던 지왕이 불편한 듯 입술을 구겼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자는 괴뢰종입니다! 그가 누군지 모르십니까?”

천신라의 최측근이자 선마궁의 이인자로 알려진 괴뢰종.

그는 준혁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실제로는 의식 속에서 작은 투덕거림이 있었지만, 팔왕의 눈엔 검은 장막에 시야를 빼앗긴 짧은 순간 증발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평소보다 더 무리한 건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에게 어서 나서라고 시위를 하는 것일 테지요.”

조왕의 추측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태백랑이 무겁게 침음을 흘렸다.

“흐음…. 드디어 모습을 보이는가….”

그의 말에 안력을 집중한 팔왕은 볼 수 있었다.

조금 전 괴뢰종과 일반 수사들이 쏟아져 나왔던 대문에서 새로운 이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그들은 총 스물세 명의 마선이었다.

천신라를 선두로 선마궁의 모든 인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도 슬슬 움직여 봅시다.”

***

피처럼 붉은 입술, 비단보다 매끄러운 흑발. 눈보다 하얀 법의.

천신라의 첫인상은 백면서생이란 단어가 잘 어울렸다.

모르고 지나갔다면 마선인지도 몰랐을 터였다.

그는 신선에 오른 수사였지만, 천휴림주와 다르게 어떤 기운도 풍기지 않았다. 마치 준혁처럼.

‘심영근….’

마선 특유의 파동도, 수사 특유의 기세도.

심지어.

‘생기마저 감춘 건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천신라였지만, 딱하나 두드러지는 게 있었다.

존재감.

바로 존재감만큼은 준혁이 보아온 그 어떤 수사보다 강렬했다.

그의 존재감이 뒤에 종처럼 시립해있는 모든 마선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실로 지배자의 모습이구나.’

상대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딱 그것이었다.

천신라는 산책을 나온 듯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뒷짐을 쥔 채 준혁을 가볍게 훑었다.

그러다 흐읍~ 하면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냄새를 맡듯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후에야 깊게 숨을 내쉰 그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응시하며 말했다.

“후아, 좋구나. 이런 거였나?”

의미 모를 혼잣말을 하며 싱글싱글 웃기 시작했다.

그러길 한참, 웃던 그는 준혁의 존재를 인지했다는 듯 눈꼬리를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만나는군. 최준혁 수사.”

천신라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던 준혁.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렇군요. 선마궁주… 라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선마궁주라니. 우리 사이를 참 멀게 느껴지게 하는 단어군.”

“그럼 뭐라고?”

“형님 어떤가? 우리 마선은 결국 한뿌리에서 태어난 것 아니겠나?”

형님이라니.

준혁은 코웃음을 치다가 입을 열었다.

“시답잖은 소린 그쯤 하시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 여인과 중괴 어르신을 돌려주시지요.”

준혁의 반응을 귀여운 동생 보듯 바라보던 천신라는 ‘중괴 어르신’이란 말에 멀뚱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전혀 뜻밖이란 듯이.

“중력괴? 여인은 혼인을 약속한 이라 듣긴 했다만, 중력괴라니? 그는 왜?”

“왜라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와 오래 함께한 동료이니 데려가야지요. 더군다나 두 분은 사이가 나쁘지 않습니까?”

준혁의 말이 끝나자 천신라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거짓으로 꾸며낸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배 아파 웃는 것 같았다.

“하하하, 이걸 고약하다 해야 하나? 천진난만하다 해야 하나? 하하하. 최준혁 수사.”

한참 동안 웃던 천신라의 눈이 살인자처럼 번들거렸다.

준혁이 듣고 있으니 말해보란 듯 응시하자, 천신라는 계속해서 피식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료라니? 그 말 진심인가?”

“아니 될 건 무엇입니까? 같은 적을 두고 함께하면 그것이 동료 아니겠습니까?”

준혁은 말속에 뼈를 담아 대답했다.

하지만 천신라는 전혀 다른 얘길 했다.

“하하, 정말 재밌구나. 먹이를 두고 동료라 부르는 이가 있다니. 정말 우습구나! 우스워.”

‘먹이? 설마, 식아의 능력을 알고 있던 말인가?’

중괴마저 식아의 존재를 알 뿐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마선을 흡수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흡수한 뒤의 일 역시도.

그런데 천신라는 마치 그것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했다.

겨우 ‘먹이’라는 한 단어를 입에 올렸을 뿐이었지만, 마치 눈앞에서 식아의 행사를 직접 본 사람처럼. 경험해본 것처럼 말했다.

“아니면 그런 건가?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 것처럼? 수행을 높여 더 맛 좋은 상태로 만들려고?”

“......”

“최준혁 수사. 내 한 가지만 묻겠네. 자넨 혹시 내 권능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자신을 비웃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뜬금없는 질문으로 화제를 전환하는 천신라를 보며 준혁은 눈썹을 찡그렸다.

허나 말 상대는 해줘야 했기에 입을 열었다. 기감으론 계속해서 주서령을 찾으면서.

“중괴 어르신이 그러더군요. 지배자의 권능이라고.”

“그렇지. 잘 알고 있군. 그럼 혹시 그것이 정확히 어떤 건진 알고 있나?”

준혁이 알고 있는 건 몇 가지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 몇 가지 가설은 중괴가 천신라를 상대하며 느낀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누가 되었든 궁주를 상대하다 보면 자신의 모든 게 읽히는 느낌이라 그러더군요.”

“읽힌다라…. 뭐 틀린 말은 아니군. 계속해보게. 설마 그게 다인가?”

“......”

“중력괴 그 친구는 그토록 고생하고선. 알아낸 게 그것뿐이라니. 참…. 안타깝군.”

천신라는 무엇이 즐거운지 입가가 쉬지 않고 씰룩거렸다.

그러던 그가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까부터 열심히 무얼 찾고 있는 듯한데. 나에게 집중해주면 고맙겠군.”

“......”

“여기까지 먼 길 왔는데 그대에게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나의 진정한 권능을.”

준혁이 서서히 기세를 일으키며 영력을 움직이자, 천신라가 마저 말했다.

“지배자가 무엇인지 말이야.”

그리고 질문도 던졌다.

“자네가 한번 알아맞혀 보게. 내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천신라의 말이 끝나고 그의 입술이 닫힌 순간.

스으윽-

앞으로 내민 천신라의 손바닥 위로 검은 식검 하나가 솟아 올라왔다.

거무튀튀하니 특색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식검.

반 토막 난 듯 볼품없는 중식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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