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장 血鵬皇과 天慧西施
여인,
독고붕비에게 있어 세상에 이런류의 여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었다.
(음......! 전설의 천혜성령지신(天慧聖靈之身)을 타고난 여인이 존재할 줄이야. )
놀람의 물결이 독고붕비의 뇌리를 강타했다.
---천혜성령지신!
문일지천(文一智天).
하나를 들으면..... 그것으로 능히 하늘을 그려낼 수 있는 천혜(天慧)의 소유자.....
아울러,
백지(白紙)같이 깨끗하고 성스러운 기운을 타고났다는 성체(聖體)가 그것이었다.
너무도 깨끗하고 순결하기에.....
만일,
이런 체질을 타고난 여인이 마(魔)에 물들면 천하를 혈세(血洗)의
대마녀가 된다했고,
정도(正道)에 들면 광명(光明)의 수호여신(守護女神)이 된다는 전실이 아울러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
그런 성체(聖體)에도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 어떤 무공(武功)도 익힐 수 없으며....
또한,
이십세 이전에 반드시 죽어야할 천형(天刑)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하나,
그 자신은 그렇지만......
만일,
극마지경(極魔之境)에 든 대마인이 그녀를 얻는다면 마(魔)의 결정체(結頂體)인
아수라천마존신체(阿修羅天魔尊神體)를 이룬다.
가히,
기담괴집(奇談怪集)에나 나옴직한 이야기인데......
그런 여인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독고붕비의 눈 앞에 생생하게.....
더더욱 놀라운 사실,
이 여인의 나이가 이십(二十)이 넘어 있다는 것이었다.
백의여인,
그녀의 봉목으로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저런 신비로운 사내가 겉모습은 이상하지만.... 분명 저 사람은
한족(漢族)이다! )
그녀는 독고붕비를 보며 자시이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껏 보아온 것중 최대의 충격이었다.
(피(血).... 불길한 저주(詛呪)라 생각했거늘 오히려 약동과 생기(生起)의
표상이라니.... 저 신비스러운 마력(魔力).... 천신(天神)의 기세이면서도
싱그러운 풋풋함이라니.... )
하나,
이내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추스렸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지금도 대륙에선 본회의 사람들이 아수라의
마수에 희생되고 있을텐데..... )
그녀는 자책감을 느끼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어리고 부드러운 양어깨......
그 위엔....
최소한 십만(十萬)의 목숨이 얹혀져 있는 것이었다.
오직,
그녀에게 구함을 받기 위한 미약한 대정(大正)의 등불이.....
.......
잠시 후,
백의여인은 신색을 회복하더니 독고붕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녀와 사천로(四天老)를 구해주신 은혜.... 감사드리옵니다! "
이어,
그녀는 봉목을 빛내며 자신을 소개했다.
"소녀는 신비회(神秘會)라는 곳의 군사(軍師)와 임시회주직을 맡고 있는
혁혜미(赫慧美)라 하옵니다. 은인께옵선......? "
아아..... 그랬는가?
<신비회(神秘會). >
대륙무림에서.......
아수라의 발호에 신음하는 대정무림의 최후등불이 되어있는 신비세력!
이 여인,
그런 신비회의 군사라는 직위와 함께 임시회주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가막힐 노릇이 아닌가?
무공도 모르는 그녀가 일문의 대종사라니.......!
하나,
독고붕비는 알지 못했다.
신비회란 이름은 서역이나 변황엔 알려지지 않고 있었기에......
그저,
독고붕비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을 뿐이었다.
"혜미, 아름다운 이름이구려. 난 독고붕비라 하외다! "
(독고붕비...... )
혁혜미의 머리 속에는 이 이름이 한참동안 여운을 남기며 맴돌았다.
(흐음! 천룡(天龍)이로고.....!)
(회주와 아주 잘 어울리는 쌍이야. )
죽음을 목전에 두고 누워 있으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는 백의사천로였다.
이미,
살만큼 살아온 연륜 속에서,
그들은 독고붕비의 비범함을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사천로..... "
혁혜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백의사천로에게로 다가왔다.
무공을 모르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백의사천로의 상세가 아주 위중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보통의 요상약 정도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내부가 박살난 위급한 중상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흠..... 어디 봅시다! "
독고붕비는 그녀의 옆으로 앉으며 백의사천로를 바라보았다.
이어,
"끊어진 혈맥(血脈)은 새로이 모세혈관을 뚫어 혈행(血行)을 시켜주면
되겠고 부서진 내장이야.... "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입으로 물어뜯었다.
그리고는,
주르륵------!
떨어지는 핏방울을 백의사천로의 입속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이건......! )
(보혈(寶血).......! )
청량한 느낌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백의사천로는 흠칫했다.
그랬다.
독고붕비의 피,
어려서부터 복용한 수많은 영약과,
수정혈모와의 정사로 인해 얻어진 희세의 영기(靈氣),
그것이 녹아들어 있는 독고붕비의 피는 만년삼왕(萬年蔘王) 이상가는 최고의
보혈이었다.
거기에,
슥------!
독고붕비는 허공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순간,
츠츠츠츠------!
네 개의 손가락 끝에서 네줄기의 공력기도(功力氣道)가 폭출되며 백의사천로의
단전(丹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쿠----- 쿠쿠쿠-----!
오오..... 그것은 폭풍이었다.
막혀진 혈맥이 관통되었고,
끊겨진 혈맥의 주위를 이은 모세혈관이 자극되어 확장되었다.
체내로 들어간 보혈의 영기는 부숴진 내부를 급속도로 아물게 만드니...
백의사천로,
백짓장같던 그들의 얼굴색은 삽시간에 불그레한 홍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내상이 완전히 치유됐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에 비해 삼성(三成) 정도의 내력이 증진되는 기연(奇緣)을 얻은 것이었으니...
일어선 백의사천로,
감격에 겨운 신검옹 백리빈이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하외다. 대협! "
하나,
그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본 것이다.
차갑게 식은 독고붕비의 얼굴을....
그 눈엔 은은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왜..... 그러시오? 노부가 무슨 잘못이라도.....? "
신검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막...... "
문득,
독고붕비는 시선을 모래의 바다로 던지며 말문을 열었다.
"내 고향이고 집이고.. 안식처요! "
"......? "
"......? "
"......? "
".......! "
백의사천로는 그런 독고붕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떠나시오! 이곳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소!
평화의 대지에.... "
일순,
시선을 돌린 독고붕비!
츠으.... 팟!
그의 눈가로 시퍼런 뇌광(電光)이 피어 올랐다.
"피를 흘리는 것은 다시는 보고싶지 않소! 그것을 깨뜨리는 자는... 누구도
용서치 않을 것이오! 설사 천하가 덤빈다해도! "
가공할 살기와 패기와.... 웅장한 기도!
".....! "
"......! "
백의사천로는 아연실색했다.
(허....! 이 정도였는가? )
(아까 보인 신기보다 최소한 세배는 강하다! )
(능히 하늘이 될 인물.....! )
감탄과 경악의 빛이 그들의 노안으로 어우러졌다.
그와 함께,
(대륙무림이 환우천하의 주인이던 시대는.... 지났다! )
(이 인물... 누구도 상대가 될 수 없다! )
그들의 안목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서글픔을 느꼈다.
<중화(中華)... 대륙(大陸). >
환우천하의 중심지!
누구라도...
그 어떤 왕조라도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대륙천하를 정복해야만 했다.
하나, 대륙천하는 단 한 번 치욕을 당했을 뿐이었다.
복방대초원의 대지에서 대륙천하를 정복하여 환우대군림천( 宇大君臨天)을
이룩했던 몽고대제국!
하나, 그들도 대륙무림의 중원대혼(中原大魂)마저 정복하지는 못했었다.
영원한 처녀지,
그것이 대륙무림이었고......
대륙무인(大陸武人)들에겐 환우천하의 중심지이자 주인이 곧 자기라는
불문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백의사천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도 과거 대륙무림의 정점에 군림했었으며,
그 자리가 천하의 지존(至尊)임을 자랑스레 여겨왔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대륙의 주인이 바뀌어도 그것은 대륙무인들만의 쟁투였을 뿐이었다.
하나,
눈앞의 이 미청년,
현란한 적발(赤髮)을 휘날리며,
붉은 서기가 감도는 적동공을 반짝이는, 혈의(血衣)가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
약관의.... 사막을 사랑하는 이 신비청년을 보는 순간 백의사천로는 이전의
사고방식을 떨쳐버려야만 했다.
이백사십여 년을 살아온 연륜 속에서,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미청년이 미래의 환우천하의 주인임을.....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천명(天命)임을 뼈골 깊숙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예언이라도 해도 좋았다.
문득,
털---- 썩.......!
여인.... 혁혜미는 독고붕비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한 여인이 한 명 사내에게 무릎을 꿇은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여인,
---천혜서시!
이것이 혁혜미의 앞에 붙은 별호였다.
그 이름,
아는 인물은 전율에 몸을 떤다.
무공은 일푼도 발휘할 수 없는 연약하고 아름답기만한 미녀(美女).....
하나,
그녀의 두개골 안쪽에 있는 작은 부위는 능히 십만대군세(十萬大軍勢)를
능가하는 위력이 담겨 있었다.
사실,
신비회란 조직은 그녀의 팔 다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수라대마벌와 십대마문이 일으킨 무서운 대마풍(大魔風)!
그 앞에 대정무림은 쓰라린 패배를 경험해야만 했다.
한 번 꺾인 전의(戰意)가 다시금 일어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비슷한 솥뚜껑만 봐도 경기를 일으킨다.
한 번 당해본 패배자.....
상대가 더욱 커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나, 그런 패배자들이 다시금 투혼(鬪魂)을 일으켰다.
신비회는 그런 조직이었다.
조직원 개개인의 무력(武力)은 물론 정보망과 금력(金力)에서도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열세인 신비회,
하나,
지난 삼년간에 걸쳐 아수라대마벌과 쟁투에서 얻은 전과는 가히 혁혁할 정도였다.
그것은 일방적인 승리로 집약되고 있었다.
그 모든 공로는 바로 한명 여인의 두뇌에서 나온 지혜로 인한 결과였다.
지리멸렬한 대륙정도무림.....
아수라마풍이 대륙천지를 완벽하게 군림할 수 있었음에도....
최후의 목적을 저지시킨 신비회의 실질적인 주인!
그녀에 대한 신비회원들의 충성심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무슨 명령을 내려도 아무런 의심없이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통쾌한 승리의 연속이었고....
여인은 대륙을 수호하는 등불이었으며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
한데,
그런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 "
".......! "
흠칫하던 백의사천로!
그들은 혁혜미의 행동을 보면서도 만류하지 않았다.
대륙의 정도대천하(正道大天下)가 무릎을 꿇었음에도.....
한편, 독고붕비는 놀라고 있었다.
"왜....? "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는 혁혜미를 내려보았다.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하늘을 머리에 담고 있는 천혜의 소유자가....
생명부지의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뜻밖의 사태에 독고붕비가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천혜서시 혁혜미,
그녀는 독고붕비를 우러러보며 간절하게 입을 열었다.
"천녀는 알고 있답니다. 상공의 출신이 무엇인지를... "
".....? "
독고붕비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다.
사실,
독고붕비의 신분은 철저한 신비의 장막 속에 가리워져 있었다.
---혈붕황!
그 위대한 호칭은 변황의 수많은 문파와 왕국들의 지존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변황의 최초이자 마지막 신화!
그 탄생은 변황의 일반인들에게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욱이,
대륙에선 그런 신화가 변황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거늘.....
하나,
이 여인....
혁혜미는 자신있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배시시....
그녀는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술을 열었다.
"천녀의 은사께옵선.... 천산성모(天山聖母)라는 이름ㅇ르 가지고 계시옵니다. "
"천산성모! 그대가 그 성모 할머니의 제자라고? "
독고붕비는 깜짝 놀랐다.
아아......
---천산성모(天山聖母)!
뉘라서 모르랴....
서역제일현자(西域第一賢者)!
아니,
전(全)..... 변황(邊荒)을 통틀어 최고의 현인(賢人)이었다.
또한, 그녀의 나이를 짐작하는 사람도 없었다.
변황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장수옹(長壽翁)은 세수 이백팔십(二百八十)에
죽으면서 한탄했었다.
---내가 천산성모님을 처음 뵌 나이가 열두 살이거늘.... 그분은 당시에도
할머니셨다.
한데, 내가 그분보다 먼저 죽는 것을 보면 절대로 장수하는 것은 아닌게야.
그렇다면....
천산성모의 나이는 대체 얼마란 말인가?
천산성모....
그녀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의 최고봉인 천모봉(天母峯)에 기거한다 전해지고 있었다.
일평생...
단 한 번도 천산을 떠나보지 않은 기벽을 지니기도 한 신비노파...
그녀의 이름은... 변황에선 살아있는 역사(歷史)였다.
한데,
이 여인, 천혜서시 혁혜미가 그 천산성모의 후계자였다는 말이었으니..
"흐음....! 오년 전에 뵈옵고.. 문안도 여쭈지 못했는걸? 그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아주 많이 알고 있는데.... 들려봐야겠어! "
독고붕비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년 전(五年前),
독고붕비는 관음성후의 품에 안겨 천산으로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산성모를 보았었다.
열흘간 성모동(聖母洞)에 기거하며 그가 한 일은 끊임없이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른 것뿐이었다.
천산성모,
그녀는 그런 독고붕비를 안은 채 열흘 내내 고래(古來)의 기문기담(奇問奇談)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후, 독고붕비에게 있어 천산성모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당시,
천산성모는,
독고붕비에게 천외천을 일깨워준 유일한 어른이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앞에선 독고붕비는 나이 그대로의 아이가 될 수 있었다.
무엇을 물어도 막힘없이 나오는 삼라만상의 신비....
독고붕비는 그런 천산성모의 주름진 노안(老眼)을 떠올리며 천진스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흡사, 자애로운 할머니를 보러가는 어린아이와도 같이......
"그럼 누님은 외인이 아니구려? "
대번에, 벽혜미를 대하는 그의 말투가 바뀌었다.
"누님? "
돌연한 호칭에 오히려 혁혜미가 당황할 정도였다.
"그럼! 성모 할머니의 쩨자면 붕비하고는 친척인 같아.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누님이라는데 이상한 것은 아니잖아! "
독고붕비는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자자.... 일어나! "
"고마.. 와요! "
혁혜미는 고개를 숙이며 옥용을 빨갛게 물들였다.
"할머닌 안녕하시지? 아니. 그럴게 아니라 같이 가자구! 혈붕이라면 금방 갈
수 있을테니까! "
독고붕비는 들뜬 음성으로 그녀를 잡아끌었다.
한데,
"가실 필요.... 없어요. "
그녀는 슬픈 음성으로 독고붕비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갈 필요가 없다니! 설마.. "
독고붕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돌아가셨답니다. 작년... 중추가절의 월하(月下)에서.... "
혁혜미는 하늘을 올려보며 애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돌아가셨다고? "
휘청------!
독고붕비는 비칠거리며 망연히 중얼거렸다.
"붕비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이름도 지어주고 옛날 이야기도
해주겠노라고 약속하셨었는데.... "
"약속은 지키셨어요. "
그런 그를 바라보며 혁혜미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신의 후예가 아들이라면 성(星)이라 하고.. 딸이라면 미미(美美)라고 지어
놓으셨어요. "
"쳇! 이름도 촌스럽게 지어놓셨구만! "
독고붕비는 투덜거렸다.
"살아계셨다면 당장 바꿔달라고 하겠지만... 싸워서라도 말이야! 하지만.... "
씨익----!
독고붕비는 혁혜미를 돌아보며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돌아가신 분한테 따져봤자 소용없겠지? "
(이분.... 성모님을 진정 따르셨구나. )
웃는 얼굴 속에서 엿보이는 지극한 슬픔을 혁혜미는 볼 수 있었다.
이어,
슥----
그녀는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내 내밀었다.
"뭐야? "
"성모님이 말씀하셨답니다! 피의 바다(血海)에서 한 마디 대붕(大鵬)이
탄생할 것이니 변황의 최후신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죽음의 저주와
아름다운 마령(魔靈)을 부숴버릴.... 대초인! 혈붕황이 나타날 것이니
그 분의 이름은 독고붕비! 환우천하의 광명(光明)은 혈붕황만이 뿌릴
수 있노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혈붕황을 만나게 되면 이것을
전해주라 하셨구요. "
혁혜미는 잔잔한 어조로 설명을 마쳤다.
"하여튼 귀신이라니까! 모르시는게 없으니..... 붕비가 혈붕황이 될걸 어떻게
미리 아셨담? "
툴툴거리면서 독고붕비는 서찰을 받아 앍어 내려갔다.
<아가.....
너를 떠나보내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되었단다.
이 할미의 수명이 이제 다 됐거든...... >
서두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가......! "
독고붕비는 서찰에서 시선을 떼어 하늘로 올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가,
그에게 그렇게 부른 사람은 둘(二)뿐이었다.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
봄날의 햇살같이 따사로운 어머니의 품에서 아련히 들려왔고.....
또 하나,
천산성모가 그를 안아주며 부른 이름이 그것이었다.
"씨! 다큰 대장부한테 아가라니! 노망이 드신게야! "
독고붕비는 눈물을 감추며 짐짓 투덜거렸다.
<아가야.....
네가 이 글을 볼 때에는 혈붕황이 되어 있을게야.
그것이 네게 주어진 운명이었으니.....
이 할미가 천산을 벗어나본 적은 없지만 하늘의 뜻을 헤아릴 줄은 안단다.
혈붕황의 신화는 변황만의 것이 아니란다.
구주(九州), 팔황(八荒)... 사해오호(四海五湖)를 그 푸근한 날개로
뒤덮어줄 대혈붕(大血鵬)이란다.
아가야,
아수라(阿修羅)의 부활이 보이는구나....
역경도 많겠고 힘들겠지만 아수라의 파멸을 실행하는 것이 네게 주어진 또
하나의 운명이란다.
그리고,
네가 멀리 대륙으로부터 이 사막에까지 쫓겨온 이유도 아수라의 부활때문인
듯 싶구나.
아가를 데려왔던 그 씩씩한 젊은 놈은 이 할미가 구해주었단다. >
"신비.. 흑기사를 성모 할머니가? "
독고붕비는 흠칫했다.
신비흑기사!
어린 독고붕비를 안고 십만리 지옥사로(地獄死路)를 탈출하다가 아수라백팔마신에
포위 공격되어 죽음의 목전을 넘어갔던 대(大)... 철혈한(鐵血漢)!
그가,
천산성모가 키우는 천산백학(天山白鶴)에 구함을 받은 것은 하늘의 섭리였다.
<나중.... 보게 될 것이다.
아마, 아가에게 많은 힘이 될게야.
그리고,
이 서찰을 가진 아이는 네게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니.... 네것으로 만들도록
하거라.
놓치고 후회해봤자 이 할미가 들어줄 수도 없으니 후딱 한 번만 눌러주거라!
여자는... 그게 쥐약이니라! >
"참내......! "
독고붕비는 서찰에서 시선을 떼며 실소를 흘렸다.
이어, 그는 혁혜미를 바라보다가 불쑥 말을 던졌다.
"여자는 그저 한 번 꾹 눌러주면 내것이 된다는데.... 맞는 말이오? "
"예? "
느닷없는 그의 물음에 혁혜미는 봉목을 동그렇게 치떴다.
"할머니가 그렇게 써놨는걸! "
독고붕비는 서찰을 흔들며 짓궂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님을 얼른 꾹꾹 눌러주라고 말이야! "
"정.... 말! "
혁혜미는 상큼 아미를 치떴다.
그러자,
두 남녀의 뒤에 있던 백의 사천로가 참견을 했다.
"훌훌! 맞는 말이외다! 천산성모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외다! "
"클클클.... 그냥 지그시 꾹 한 번만 눌러주면 여자야 만사 끝이지! "
"암! 암! "
"천하의 변치 않는 진리지. "
백의 사천로는 입에서 침을 튀기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천로----! "
혁혜미는 찢어지는 교갈을 터뜨렸다.
"이크! "
"이보게, 회주가 화가 나신 듯하니.... 이만..... "
"그럼 이럴땐 그저 도망가는게 상책이지. "
서로 시선을 교환한 백의 사천로!
둥실....
그들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헛허! 그럼 훼방꾼은 없어지겠소! "
"앙탈부리지 마슈? 그저 못이기는 채 꾹! 한 번 눌리기만 하면 평생을 놀고
먹을 거외다. 회주! "
"훌훌훌! 아들을 낳으면 성(星)이고 딸을 낳으면 미미(美美)라 했으니 이름은
기억해 두리다! "
"클클......! 아예 쌍둥이가 좋을 듯 싶은데 말씀이야! "
쐐----- 애액!
벼락같이 소아져 나가며 백의사천로는 히죽거렸다.
하나,
이미.....
그들의 신형은 까마득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정말 주책맞은 늙은 노물들 같으니라구! "
열이 백회혈까지 치솟아 오른 혁혜미는 교구를 파르르 떨었다.
한데,
"흠.....! 할머니도 그렇지만 저 노친네들도 꽤나 오래 살았던 것 같은데...
자고로 오래 산 사람들의 말은 진솔(眞率)일 때가 많다고 옛 성현 중
누군가가 그랬다지? "
독고붕비,
그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었으니......
"당신, 정말로.....? "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응! 결심했다. 붕비는....... "
독고붕비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님을 한 번 눌러(?)주기로 말이야! 두 번째 부턴 혜미 누님이 붕비를
깔고앉아 눌러주면 손해보는 거야 없지 않겠어! "
"궤, 궤변이예요! "
혁혜미는 다급히 외쳤다.
"한번은 당신이 날 눌러주고.... 두 번짼 내가 당신을 눌러주는게 어떻게
계산이 같아요? 결국은 나만 두 번 당하는 셈인데! "
"그런가? "
필사적인 혁혜미의 설명에 독고붕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아....! 그렇지! "
독고붕비는 이마를 치더니 얼른 혁혜미에게 다가왔다.
"이럼 되겠는걸? 누님이 먼저 날 눌러줘. 그럼 나중에 내가 누님을 눌러주면
되잖아. 알았지? "
그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다, 상신.... 정말..... "
천혜서시 혁헤미,
아예, 말을 이어갈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혈붕황 독고붕비!
---천혜서시 혁혜미!
변황과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두 남녀,
허나,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절대로 고차원적인 현문현답(賢問賢答)이 아니었다.
오히려,
치졸한 어린아이들의 소꼽장난과도 같았으니....
백치와 천재,
종이 한 장 차이라던가?
이곳.....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