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막내아들-15화 (16/200)

15화.

“이게 대환단의 힘인가.”

단전을 충만하게 채운 내공.

대충 대환단의 절반을 흡수한 것으로 보였다. 어떤 영약이든 한 번에 그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었다.

보통 사 할 정도만 흡수해도 성공이었다.

나머지 기운은 전신혈맥에 조금씩 흩어졌으니 운기를 하면서 서서히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내공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가벼워 마치 솜털 같았다. 오감은 더 예민해지고 느낄 수 있는 범위가 확장되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느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심기신(心氣身).

높은 경지를 바라보는 무인이라면 그 어느 것도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조화로워야 했다. 반면 팽무성은 조화는커녕 그 균형이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심(心)은 전생의 경험과 심득.

신(身)은 뛰어난 수준의 육체.

그에 비해 기(氣)에 해당하는 내공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대환단을 복용함으로써 그 조화를 어느 정도 이루어냈다.

그 덕분에 경지가 몇 단계는 훌쩍 뛰어넘었다. 아직 전생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팽무성은 크나큰 발전에 기뻐했다.

완벽한 조화는 아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앞으로 팽무성이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먼저 씻어야겠네.”

아래에서 올라오는 악취에 고개를 내렸다. 입고 있던 무복은 몸에서 배출된 노폐물에 검게 얼룩이 져 있었다. 그나마 겉에 걸친 장포는 미리 벗어놔서 다행이었다.

팽무성은 옷을 벗고 연못의 물로 몸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행낭에 있던 여유분의 무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팽무성은 악취가 나는 무복을 둥글게 싸서 한 손으로 들었다. 그 상태로 손끝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치익

손바닥에 피어오르는 연기.

무복에는 작은 불씨가 있어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내공이 받쳐주는 노련한 고수들이 펼칠 수 있는 삼매진화.

기의 성질이 양기를 띤 덕택도 있지만 팽무성의 내공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새 재가 된 무복은 팽무성의 손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팽무성은 공동을 더럽히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했다.

팽무성은 목함 안의 비급을 살폈다.

두 권 다 이름이 없으니 직접 읽어야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사락

공동에는 팽무성이 비급을 넘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몇 장 넘기던 팽무성은 비급을 덮었다.

첫 번째 비급은 천살불의 심득.

정확히는 천살불이 익힌 소림의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다만 천살불의 성향 때문인지 보통 소림의 무공보다 과격하고 실전적인 부분이 있었다.

천살불은 강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고수로 알려졌다.

그런 고수의 심득이니 엄청난 가치를 지녔지만 필수적으로 습득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팽무성보다는 천살불과 비슷한 부류인 광승에게 더 절실한 물건이었다.

광승이 이 비급을 얻는다면 전생보다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들인다면 나도 득을 보겠지만.’

무공은 극은 만류귀종.

수만 갈래의 길도 결국 한 곳으로 향했다.

오랜 시간을 연구한다면 분명 득을 볼 수 있었다. 전생의 철무련도 천살불의 심득 중 필요한 것만 뽑아내어 성취를 보았다.

하지만 팽무성은 느긋하게 연구하며 시간을 쏟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팽무성의 무공은 완성된 상황이 아니었다. 타인의 심득으로 무공의 길을 비틀만 한 시기는 아니었다.

“이것도 제목이 없네.”

뒤이어 두 번째 비급을 펼쳤다. 이것도 소림의 무공에 대한 심득일까.

비급을 읽던 팽무성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비급을 끝까지 살펴본 팽무성은 비급을 덮었다.

“이건 본가에 필요한 물건이다.”

다시 한번 비급을 살피던 팽무성은 두 권의 비급과 서신을 행낭에 집어넣었다.

“곧바로 갈 수는 없지만, 반드시 소림에 전달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팽무성은 천살불의 목내이에 마지막으로 예를 갖추고 공동을 빠져나왔다.

동굴을 빠져나오자 정오의 따가운 햇볕이 팽무성을 맞이했다. 팽무성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태양의 위치를 살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과 태양의 위치가 거의 똑같았다.

‘설마 동굴에서 하루 동안 머문 건가.’

팽무성은 몰랐지만, 하루가 아니라 이미 사흘이 지난 뒤였다. 운기를 하다 보면 시간을 잊는 일은 다반사였기에 팽무성은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아직 산서에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태원이 고향이라 했었지.”

태원은 산서의 딱 중간에 있는 거대한 도시였다. 운강석굴은 산서의 북쪽 경계에 위치하니 이곳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팽무성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꼬르륵

배에서 작은 번개가 이는듯했다.

“배고프네.”

* * *

“후룩.”

팽무성은 두 손으로 그릇을 잡아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고기로 육수를 냈는지 국물에는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북쪽은 추운 기후의 영향으로 기름을 많이 사용했다. 그 덕에 다른 지방에 비해 요리의 맛이 무거운 편이었다.

하지만 날 때부터 하북에서 자란 팽무성의 입맛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휴, 국물이 들어가니 좀 살겠네.”

팽무성은 국물로 속을 데우고 같이 주문한 음식들을 조금씩 맛보았다.

젓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팽무성의 얼굴이 밝았다. 역시 음식이 몸에 들어가니 몸에 활력이 돌았다.

팽무성이 머무는 객잔은 태원에서 하루 정도 거리에 있었다. 팽무성은 달라진 몸에 적응하기 위해 운강 석굴에서 이곳까지 경공을 펼쳐서 왔다.

그동안 간단한 열매나 물로 끼니를 대충 때웠다. 내려오는 길에 객잔을 하나도 못 찾은 탓이었다.

내공 덕에 며칠을 굶어도 버틸 수 있었지만 팽무성은 그런 것을 지양하는 편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맛을 보는 즐거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서도 정마대전이 끝나면 누군가와 함께 식도락 여행을 떠나려는 소박한 소망이 있었다.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팽무성은 식도락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한 이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잠시 허공을 보던 팽무성은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협호행을 다니며 가끔 맛집을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기름이 많이 들어가 조금 느글느글해진 속을 달래기 위해 술을 따르던 팽무성의 눈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온 두 명의 중년인.

각기 검은 장포와 붉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객잔 안에 있던 모든 눈이 문 쪽을 향했다. 들어오자마자 전신에서 살기를 흘리며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긴장된 눈으로, 어떤 이는 언짢은 표정으로 두 명의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그러던 도중 객잔에 있던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들은 흑적쌍사 아닌가.”

흑적쌍사.

별호 그대로 두 마리의 독사였다.

사도천에 속한 사파의 무인들.

개인의 무공도 뛰어났지만 그들의 진정한 힘은 두 사람이 함께 펼치는 협공이었다.

언제나 둘이 함께 협공을 해서 더 강한 적을 이겨왔다. 흑적쌍사의 협공에 초절정 고수도 애를 먹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객잔을 살피던 흑사가 입을 열었다.

“당장 나가라, 모조리 다 죽이기는 귀찮으니.”

흑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객잔을 빠져나갔다. 흑적쌍사의 무공도 그렇지만 그들의 뒤에는 사도천이 있었다.

흑적쌍사가 나서는 일은 사도천의 일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흑적쌍사의 말을 무시하고 객잔에 남아있을 무모한 이는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팽무성은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편하게 밥 좀 먹으려고 했더니 짜증 나네.”

객잔의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흑적쌍사는 팽무성의 탁자에 앉았다. 누가 보면 일행인 줄 알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탁자 위에 올려진 음식을 보고 적사가 아량을 베풀 듯이 말했다.

“식사 중이었나, 마저 먹어라, 배불리 먹고 죽어야 여한이 없는 법이다.”

적사의 말에 팽무성이 코웃음을 쳤다.

“흑적쌍사가 자비도 베풀 줄 아시는군.”

팽무성의 여유로운 태도에 흑사가 도끼눈을 하고 노려보았다.

“그 덩치와 무복을 보니 팽무성이 맞는 듯한데 우리가 두렵지 않으냐, 아니면 강호 초출이라 잘 모르는 건가.”

“뭘 알고 행동하는 놈이면 우리가 이곳까지 오게 했겠나.”

“훗.”

팽무성의 짧은 웃음에 적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이라면 방금 객잔에 있던 이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정상이다. 그런데 눈앞의 젊은 놈은 영 이상했다.

너무나 여유로웠다.

“호랑이가 고작 뱀 두 마리에 겁이 질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들을 비꼬는 말이다.

흑사는 살기를 흘렸고 적사는 재밌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네놈은 죽이지 않고 전신의 피부를 벗겨내야겠구나. 호랑이 가죽을 벗기듯이 말이다.”

팽무성은 상반된 두 반응을 보며 물었다.

“사도천에 직접 척을 진 일은 아직 없는데, 청빙음마가 개인적으로 보낸 건가?”

흑적쌍사는 팽무성이 청빙음마를 언급하자 살짝 놀랐다. 청빙음마가 엮였음을 알고도 평정를 유지하는 팽무성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 알고 있으니 죽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군.”

정확히는 청빙음마의 수하가 흑적쌍사를 보낸 것이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흑적쌍사는 갓 강호에 나온 후기지수를 죽이고 황금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만큼 네가 삼호법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뜻이다.”

청빙음마를 언급하던 적사는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맛이 괜찮군, 흑사, 일이 끝나면 식사라도 하고 가지. 저놈을 찢고 먹으면 더 맛있을 걸세.”

적사의 말에 흑사는 말없이 검병에 손을 가져갔다. 팽무성은 이를 보면서도 도병 대신에 접시에 손을 가져갔다.

이에 흑사의 손이 잠시 멈칫거렸다.

접시의 음식을 덜어 한곳에 모으니 두 개의 빈 그릇이 생겼다. 그리고 그 빈 그릇에 술을 채웠다.

팽무성의 기이한 행동에 눈을 찌푸린 흑사가 물었다.

“미친 거냐? 지금 무얼 하는 거냐.”

“마지막으로 한 잔씩 하라고 따랐다. 이제 죽으면 마시지도 못할 텐데.”

“건방진.”

흑사의 말과 동시에 검이 탁자를 가르고 팽무성의 명치를 향해 쇄도했다.

따앙

팽무성은 손등으로 검면을 쳐내 튕겨냈다. 자신의 검을 손쉽게 막아내자 흑사는 눈을 부릅떴다.

샤악

뱀이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불길한 소리.

적사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채찍.

뱀의 머리처럼 잘게 흔들려서 어디를 노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깨.’

팽무성의 눈에는 보였다.

손목을 노리는 듯했지만 허초였다.

예상대로 채찍의 끝이 갑자기 솟구쳐 어깨를 휘감으려 했다. 채찍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에 적사는 눈을 찌푸렸다.

채찍의 투로를 선점한 팽무성의 손.

채찍은 어깨를 치기 전에 손바닥을 마주해야 했다.

팽무성은 파갑권법과 쌍호장법을 연구해서 하나의 권장법을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호왕투법(虎王鬪法).

팽무성의 지금 펼치고 있는 금나수도 호왕투법의 초식 중 하나였다.

호왕잔연(虎王?燕).

제비를 낚아채듯이 팽무성의 손이 기이한 곡선을 그렸다.

파악

호랑이의 입이 뱀의 머리를 낚아챘다.

팽무성은 채찍을 잡은 채로 힘껏 잡아당겼다. 잠깐이지만 적사의 어깨가 휘청거렸다.

“윽.”

적사는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채찍을 잡아당겼다. 덩칫값을 하는 듯 팽무성의 근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채찍과 함께 끌려갔을 것이다.

쏴악

팽무성이 채찍을 당김과 동시에 흑사는 몸을 날렸다. 팽무성의 신경은 채찍에 쏠려있었다. 절묘한 때였다.

옆구리를 노리는 흑사의 날카로운 검격.

검이 지척에 달했음에도 팽무성은 제대로 반응을 못 하고 있었다.

흑사는 살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역시 애송이로군.’

경험이 적은 후기지수가 흔히 하는 실수.

하나의 상대에게 온 신경을 쏟는 것.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문에서 적당히 비무만 치르다가 처음 생사결을 겪으니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흑사의 검이 번쩍였다.

채앵

날카로운 금속음.

흑사의 검이 부르르 떨렸다.

도갑에서 반쯤 튀어나온 도신이 흑사의 검을 막아냈다.

“왜? 내가 모르는 줄 알았나? 그렇게 살기를 흘리는데?”

“이놈.”

도갑에서 점점 도신이 뽑히면서 검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힘에서 밀리는 것이다.

버티고 있는 흑사의 손목이 잘게 떨렸다.

쩌억

흑사의 무게를 지탱하던 왼발에 딛고 있던 객잔의 바닥에 금이 갔다.

위에서 눌러오는 팽무성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팽무성의 몸에서 천근같은 무거운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위의 탁자와 그릇이 잘게 떨렸다.

흑사와 적사, 모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요한 객잔에 팽무성이 낮게 말했다.

“뱀 새끼들, 겨우 이 정도로 날 죽일 수 있겠냐.”

팽무성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새롭게 얻은 내공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였다.

뱀 사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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