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좌측에서 베어오는 맹렬한 도격.
대기가 밀려나며 바람이 일어나니 도천의 수염이 잘게 흔들렸다.
“시원하군.”
도천은 손목을 살짝 비틀어 팽무성의 투로 앞에 도를 비집어 넣었다.
카앙
도천은 도를 휘두르지 않고도 팽무성의 도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오히려 전신의 힘을 실어 쏟아낸 팽무성의 도가 반탄력에 튕겨 나갔다.
팽무성은 오른쪽 어깨를 들썩이며 몇 발자국 뒤로 밀려난 반면, 도천은 그저 소매가 잠시 펄럭였을 뿐이었다.
도를 잡은 채 뒷짐을 지고 있던 도천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힘은 좋구나, 숨겨놓은 실력을 좀 더 보여봐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천의 소매가 팽무성을 향했다.
쑤욱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도천의 도가 늘어난 마냥 어느새 팽무성의 명치를 찔러내고 있었다.
간신히 자세를 잡고 다시 돌진하려 했던 팽무성의 의도를 알고 정확히 때를 노린 것이었다.
“클클.”
도천의 얼굴에는 악동과 같이 장난기가 가득했는데, 이를 본 팽무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하시군.’
흔히 흥미로운 상대를 만났을 때 도천이 보이던 웃음이었다. 그러곤 얼마나 버텨낼지 시험을 해보고는 했다.
팽무성은 이내 웃음을 지우곤 적아도를 가슴으로 끌어내어 도천의 도극을 쳐냈다.
그러나 허공에 고정된 듯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를 예상한 팽무성은 몸을 회전시킴과 동시에 적아도를 도천의 도에 맞붙여 그대로 도신을 따라 쭉 밀어냈다.
회피와 동시에 반격을 행하고 있었다.
챠아악
철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적아도가 안쪽으로 파고들자 도천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어린 녀석이 제법 대응이 괜찮구나.”
도천의 손목이 한 차례 떨리자 순간적으로 도천의 도신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도가 채찍처럼 곡선을 그리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은 도기(刀技)였다.
차앙
파랑이 일어나자 적아도는 허무하게 밀려났지만 팽무성은 무릎을 살짝 굽혀 자세를 낮춘 채로 하단에서 도를 올려쳤다.
폭포처럼 연달아 솟구치는 도풍이 하단과 중단으로 날아들자 도천은 가볍게 바닥을 그어냈다.
가볍게 도풍을 흩어낸 도천은 팽무성의 도를 유심히 눈에 담았다.
하련승아(河連昇牙)의 초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철혈맹호도가 펼쳐지자 도천은 이를 기다린 듯 눈을 반짝였다.
차차차창
파도에 흩날리는 모래처럼 도천의 움직임에 휩쓸리던 팽무성이 처음으로 도천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철혈맹호도를 음미하고 싶은 도천이 공세를 누그러뜨린 탓도 있으나 팽무성이 능히 그 도를 감당할 수 있는 무공을 지닌 덕분이었다.
우웅
팽무성은 뒤는 생각하지 않고 내공을 힘껏 끌어내기 시작했다.
적아도는 도사를 머금고 한껏 붉어졌지만, 도천은 여전히 내공을 두르지 않고 팽무성을 상대하고 있었다.
‘분명 뿌리는 팽가인데 처음 보는 도법이구나.’
도천은 정사를 구분하지 않고 대부분의 도법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일인전승 문파의 희귀한 도법도 아는 마당에 하북팽가에 자신이 모르는 도법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휘익
그때, 가볍게 막기만 했던 도천의 도에 변화가 일었다. 반원을 그리며 가슴을 파고드는 적아도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냈다.
그러고는 팽무성의 가슴을 향해 도를 찔러넣었는데 방금 팽무성이 펼쳤던 초식과 거의 흡사했다.
그에 팽무성의 눈이 부릅떠졌다.
까앙
끊임없이 이어가던 팽무성의 공세가 멈추고 두 사람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작하셨군.’
팽무성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도천의 자세를 눈에 담았다.
얼핏 똑같은 초식을 펼친 듯하나 자세히 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무릎이 좀 더 굽혀졌고 발의 간격이 반 치 정도 더 넓구나.’
팽무성은 도천의 도를 옆으로 쳐내더니 방금과 동일한 초식을 펼쳐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본래의 초식이 아닌 도천이 펼친 초식을 따라 한 것이었다.
후웅
자세를 약간 바꾼 것임에도 보이는 위력은 한층 매서워진 상황.
팽무성의 자세를 확인한 도천은 이전보다 더 짙은 웃음을 보였다. 제법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눈썰미가 있구나.’
도천은 친절하게 말로 설명하며 도혼련의 도객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비무를 벌이다 상대가 펼친 초식을 똑같이 펼쳐 보이는 것. 그것이 도천이 도객을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약점이나 허점을 짚어주거나 좀 더 나은 자세를 지도해주었다.
그런다고 도천의 가르침을 온전히 흡수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도천은 그저 단초를 던져줄 뿐,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좀 더 빨라질 거다.”
“바라는 바입니다.”
곧이어 도천의 도가 곱절은 더 빨라졌다.
그에 따라 도천의 몸도 희끗해지니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팽무성은 정신을 온전히 집중해야 했다.
도천의 도에도 희미하지만 푸른 도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팽무성을 높이 산 것이었다.
콰카카캉
두 사람의 도가 격돌할 때마다 피부를 따끔하게 찌르는 기파가 연무장을 휩쓸었다.
연무장에 깔린 청강석 바닥에 금이 그어지며 파편을 토해내고 있었다.
도천의 도기를 확인한 일도와 삼도는 혀를 내둘렀다.
“련주께서 흥이 돋으셨네.”
“후기지수가 이 정도라니, 놀랍습니다.”
연무장의 중앙을 뒤덮는 것은 주로 붉은빛이었으나, 간혹 푸른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붉은빛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따악
순간 무언가 울린 소리가 나더니 팽무성이 거칠게 땅을 굴렀다. 도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는 팽무성의 이마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시.”
도천은 활짝 웃으며 중지를 오므리더니 그 위에 엄지를 가져갔다. 흔히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딱밤을 때릴 때와 똑같은 손짓이었다.
이를 본 일도는 눈살을 구겼다. 삼도는 괜히 자신의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못 따라 했나 본데.”
“저것 때문에 이마에 피멍이 들었던 게 몇 번이었더라.”
일도와 삼도도 많이 당해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르침을 잘 못 따라올 때 도천은 간혹 딱밤을 날리고는 했다.
말이 딱밤이지 실제로 맞으면 절정 권사의 주먹에 당한 듯 골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쑤아아앙
철혈맹호도의 절초가 펼쳐지며 기세등등한 도사와 도기가 빛을 발했지만, 도천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도를 휘두를 뿐이었다.
딱, 따악
그 와중에도 팽무성은 간혹 딱밤을 맞고 땅을 굴러야 했다.
“크흡.”
다섯 번부터 팽무성도 어지러움을 느끼고 머리를 뒤흔들었다. 골이 울렸지만 그럼에도 팽무성은 웃고 있었다.
‘전생에도 많이 맞았었지.’
그때는 지긋지긋하여 맞지 않으려고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인지 이 딱밤이 반가웠다.
‘련주, 이번에는 천수를 누리게 해드리겠습니다.’
팽무성은 전생에 도천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분명 도천은 웃으며 가셨을 테지만 팽무성은 도천이 마교주의 손에 죽는다는 사실 그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맞고도 웃는 놈은 처음 보는구나.”
팽무성의 웃음을 본 도천의 손등에 미약하나 힘줄이 돋기 시작했다.
다시 자세를 잡으며 최적의 보폭을 가늠한 팽무성은 철쇄호아의 초식을 쏟아냈다.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절초였으나 팽무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달아 펼쳐냈다.
콰아앙
쇄도하는 직선형의 붉은 도기를 연달아 쳐낸 도천의 소매가 거칠게 펄럭였다.
‘스스로 다듬어내고 있는가.’
계속 장난기 섞인 웃음을 머금던 도천이 처음으로 진지한 얼굴을 했다.
팽무성은 내어준 단초를 완벽히 터득할 뿐만 아니라 한발 앞서서 다른 부족한 부분을 채워내고 있었다.
“너는 마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는 듯하구나. 그뿐만 아니라 벽을 부수는 법도 알고 있어.”
그에 팽무성은 정곡을 찔린 듯 눈썹을 움찔거렸다. 도천은 팽무성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내고 있었다.
“재미있군.”
입꼬리가 올라간 도천의 도에 도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폭풍이 맺혀있는 듯했다.
“조금 더 세게 가볼까.”
도천의 독문무공.
폭풍도식(暴風刀式)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쿨럭.”
바닥에 널브러진 팽무성의 입에서는 한 줄기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팽무성의 무복은 옷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으로 찢겨있었다.
특히 이마에는 보랏빛의 커다란 혹이 난 상태였다.
도천은 휘적휘적 걸어와 팽무성을 쳐다보았다.
“괜찮으냐?”
“예.”
무덤덤한 팽무성의 대답에 도천이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드는군.’
도천은 오른손을 들어 팽무성을 향했다.
“가만히 있어라.”
‘음.’
도천의 내공이 팽무성의 혈도를 타고 들어오고 있었다. 맥문을 따로 잡지도 않고 타인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는 운용.
십대고수라 불리는 이들도 쉬이 흉내 낼 수 없을 터였다. 도천의 내공은 혈도를 거침없이 질주하며 내상을 치유하고 있었다.
내상이 말끔히 사라지자 도천은 내공을 거두며 물었다.
“내가 알기로 팽가에 이런 도법은 없다. 네가 창안한 것이냐?”
“예.”
나이도 어린 후기지수가 무공을 창안했다는 대답에도 도천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흔히 강호에 일대종사라 불리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던 이들은 이런 젊은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내곤 했다.
“실전적이고 살기가 짙어 명문의 직계가 만들 만한 도법은 아닌데... 뭐 상관없나.”
흔히 무인들은 무공에 자신의 신념이나 인생을 담고는 했다. 도천은 팽무성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니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다.
“이름이 뭐냐?”
“철혈맹호도입니다.”
“철혈맹호도...”
도천은 이름을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팽무성은 도천의 눈치를 보며 다음 대답이 궁금했다.
-제법 일대종사의 흉내를 내는 듯한데 그래도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
전생의 도천이 팽무성에게 내린 평가였다.
물론 지금의 철혈맹호도는 팽무성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지금껏 계속 다듬어온 것이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이제 약관이 넘은 핏덩이가 만들었다 하기에는 나름의 유장함이 느껴지는구나. 아직 거칠어서 다듬을 부분은 많지만.”
도천은 도를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이에 팽무성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힘을 쏟아야 했다.
말의 어조는 퉁명했으나 나름 도천의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자만하지 말고 꾸준히 나아가거라. 가주에게도 말했지만 혼원벽력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느니라. 혼원벽력도가 없다면 대체할 것을 만들면 그만 아니더냐.”
도천의 마지막 말은 철혈맹호도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 분명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팽무성은 자세를 바로잡고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은 내가 굳이 봐주지 않아도 되겠네, 가주.’
도천은 팽진연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현재의 팽무성은 누군가의 가르침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다.
벽에 막힌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릴 뿐, 꾸준히 나아가고 있으니 지금은 뒤에서 지켜봐 주면 그만이었다.
“늙은이와 놀아주었으니 답례를 줘야겠지.”
도천은 소매에서 철패 하나를 꺼내주었다. 철패의 앞면은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고 도혼(刀魂)이라는 두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일도와 삼도는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도혼련에서도 금색을 띠는 철패는 지닌 이가 열 명이 채 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도천이 그만큼 팽무성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혼련에 소속임을 증명하는 철패다. 문파라기보다는 모임에 가까워 제약이 없으니 품속에 넣어두거라. 심심하면 도혼장에 들리고.”
확실히 도혼련에 소속되어도 별다른 제약은 없었다. 그저 도천을 중심으로 도를 파고드는 무인들의 모임이었으니 말이다.
팽무성은 금색의 철패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더니 도천에게 물었다.
“이 금빛의 철패를 가지고 있으면 도천께 부탁을 할 기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금빛 철패를 가지고 찾아온다고 하여 도천이 무조건 조건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도천의 이름이 새겨진 각패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도천에게 무언가 부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기회임은 분명했다.
실제로 도천은 크게 어긋나지 않은 부탁이라면 수용하기도 했었다.
“허허. 이놈 봐라.”
팽무성의 말에 도천의 눈썹이 치솟아 올랐다.
철패를 들고 부탁하러 찾아온 이들은 있었으나 설마하니 철패를 받자마자 부탁을 하는 맹랑한 놈은 팽무성이 처음이었다.
도천은 깜찍한 손자를 보는 듯한 눈을 하곤 물었다.
“그래, 말해 보거라.”
팽무성이 도천에게 부탁을 말하자 일도와 삼도는 눈을 껌벅거렸다.
* * *
“내리거라.”
“예.”
팽중혁의 명령에 무인들은 일주각의 현판을 내렸다. 팽중혁은 일주각의 현판을 잠시 바라보더니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 새로운 현판을 걸었다.
대무각(代武閣).
이전의 하북팽가에는 없던 이름이 새롭게 걸렸다.
대무각이라는 새로운 조직의 탄생은 하북팽가의 변화를 알리는 첫 시발점이었다.
오호동(五虎洞).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