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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64화 (64/200)

64화

쩌엉

어둠을 찢고 맞붙은 두 자루의 도는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양쪽에서 거대한 힘이 밀려오자 한가운데에 있던 두 자루의 도는 파르르 도신을 떨었다.

우웅

서로 다른 빛을 흘리고 있었지만, 상대에게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고집이 똑같이 느껴졌다.

“혼원벽력신공...”

붉은 내공을 보던 팽지혁은 내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주홍빛 내공이 불꽃처럼 일렁거리며 덩치를 키워냈다. 그 주홍빛을 보던 팽무성이 찰나였지만 반가운 눈빛을 띠었다.

“대호심법.”

대호심법(大虎心法)은 도왕의 근간을 지탱하던 고마운 심법이었다.

적아도를 감싸던 혼원벽력신공의 내공이 기세 좋게 대호심법의 내공을 밀어냈다.

팽무성은 쉽게 우세를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팔성에 오른 혼원벽력신공이 움직이자 단전의 내공이 용암처럼 솟구쳤다.

우우우웅

두 내공이 충돌하며 폭풍 같은 기파가 사방으로 넘쳐흘렀다.

착 달라붙은 도를 중심으로 초장부터 내공 싸움을 벌이던 팽무성과 팽지혁이 미리 약속한 양 동시에 내공을 거두며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진각을 찍으며 날아드는 두 사람의 걸음 하나하나에 무시무시한 기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산왕군림보와 패왕진보.

양보와 굽힘을 모르는 패도적인 두 무공이 서로의 힘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쿠아앙

“훗.”

팽무성은 돌연 웃음을 흘렸다.

전생에 자신을 도왕으로 만들었던 무공들을 이렇게 직접 상대하니 기분이 묘한 탓이었다.

쩌어억

두 무공의 격돌에 순간이었으나 주변의 어둠이 도망치듯 밀려 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 영향에 두 사람은 바로 전신이 물에 들어간 듯 질퍽함을 느꼈다. 그런데도 쇄도하는 도의 속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도격. 철혈맹호도였다.

꽈앙

좌측에서 사선으로 도가 베어오자 팽무성은 우측에서 횡으로 올려 쳤다.

철혈맹호도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똑같이 공세를 펼치며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힘에서 넘어서거나, 밀리거나 양자택일이었다.

콰쾅

도가 충돌할 때마다 바위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이는 팽지혁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두 사람은 멈추거나 물러서기는커녕 도리어 힘과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힘을 마음껏 쏟아내는 두 사람에 적아도와 유엽도의 도신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서억

어깨에 핏물이 솟구치며 팽무성은 한 걸음 뒤로 밀려났다. 과연 도왕이라 불렸던 무인의 도격이라 할만했다.

‘실로 무지막지하구나.’

손목의 시큰함을 느낀 팽무성은 이제껏 자신의 도를 받아온 이들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한걸음에 거리를 좁힌 팽지혁은 곧바로 도를 베어냈다. 허리를 가르는 도격이 날아들자 팽무성의 도가 지금껏 보이지 않은 곡선을 그려냈다.

차앙

처음 보는 도의 궤적에 유엽도가 손쉽게 튕겨 나갔다. 이에 팽지혁이 눈을 살며시 찡그렸다.

그동안 철혈맹호도를 펼쳐내던 팽무성의 도가 드디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꽈릉

하늘에서 이는 뇌벽 같기도 하고 호랑이의 포효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다섯 줄기의 도격이 동시에 분출되며 팽지혁을 두 다리와 가슴께를 노렸다.

허나 패왕진보를 밟는 팽지혁에게 회피의 동작은 볼 수 없었다. 오직 돌진뿐이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이것이 도왕이 싸워왔던 방식이었다.

콰쾅

다섯 개의 도격을 일거에 베어내려 했던 팽지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도격이 팽지혁의 도를 교묘히 비껴간 탓이었다.

팽지혁은 두 줄기의 도격만 막아냈을 뿐 나머지는 온전히 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도격이 몸을 훑고 지나가자 팽지혁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꽃잎처럼 흩뿌려지는 핏물과 함께 어깨와 팔에 상처가 벌어지고 있었다.

“재밌군.”

본래의 철혈맹호도라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투로였다. 입을 비튼 팽지혁은 연달아 철혈맹호도를 펼쳐냈다.

솨아아악

전장의 핏물을 먹으며 창안된 철혈맹호도. 그 진면목이 날것 그대로 이빨을 드러내며 이번에는 팽무성을 집어삼키려 했다.

팽지혁은 도기를 연달아 날려냈지만 팽무성은 가볍게 받아냈다.

“맹호오조. 우리가 즐겨 쓰던 초식이었지.”

지금껏 즐겨 쓰던 초식들이 자신의 목을 노린다니 정말 섬뜩한 일이었다.

그러나 팽무성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 도법은 철혈맹호도를 이미 넘어섰다.

연달아 펼쳐지는 철혈맹호도의 초식에 팽무성은 새로운 초식들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두 자루의 도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맹호쌍아의 연달아 쇄도하는 두 겹의 도기를 전박자여(剪撲自如)의 초식으로 베고 두들겨 깨부쉈고.

혈호난풍의 사방으로 미쳐 날뛰는 수십 줄기의 도풍을 일소풍생(一嘯風生)의 거대한 와풍(渦風)으로 짓눌러 가라앉혔다.

두 개의 초식이 잇달아 파훼 되었지만 팽지혁은 꿋꿋이 도를 휘두르며, 되려 앞으로 나섰다.

“아직이다.”

나직이 내뱉는 팽지혁의 말이 기쁘면서도 서글프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팽지혁은 도를 위아래로 크게 내지르며 철쇄호아를 펼쳐냈다. 이에 사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대한 주홍빛의 도기에 순간 해가 뜰 때의 여명을 보는 듯했다.

꽈르릉

위로 뻗는 적아도의 끝에서 날아오르는 붉은 벼락. 새롭게 다듬어져 완성된 관천적뢰였다.

도사(刀絲)로 이루어진 벼락이 도기를 깨트리자 여명은 사라지고 주위에 노을이 지는 듯 붉은 광경이 만들어졌다.

쑤아앙

관천적뢰로 만들어진 노을을 뚫고 쇄도하는 팽지혁.

붕산비호를 펼치며 날아오는 그의 유엽도는 주홍빛 섬광으로 화해 당장이라도 팽무성의 가슴을 꿰뚫을 듯했다.

이에 팽무성도 적아도를 중하단으로 내린 채 화살처럼 붕산비호의 정면으로 쏘아졌다.

쏴악

두 초식은 각 도법에서도 손에 꼽히는 위력으로 절초에 해당하는 것들이었으나 요란한 폭음 대신에 듣는 이를 섬뜩하게 하는 절삭음이 날 뿐이었다.

두 선이 교차했고 그 선의 끝에 팽무성과 팽지혁이 서 있었다. 팽지혁은 천천히 등을 돌리며 물었다.

“방금 그 초식의 이름은 뭐지?”

“백호도간(白虎跳澗).”

“어울리는 이름이군.”

완전히 등을 돌리자 보이는 팽지혁의 가슴은 사선으로 크게 베여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팽지혁이 펼쳐낸 철혈맹호도는 팽무성의 새로운 도법에 의해 철저하게 분쇄되었다.

“철혈맹호도가 이런 식으로 무력하게 파훼 되다니.”

어투와 다르게 팽지혁은 무언가 들떠 보였다.

“이 도법이라면 그놈을 이길 수 있을까.”

팽무성의 물음에 팽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천마신공도 대단하긴 하지만, 사람의 문제일 테지. 너도 잘 알지 않나.”

팽지혁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절세의 신공이라 해도 이를 익힌 무인이 보잘것없으면 제힘을 보이지 못하는 법.

천하제일인은 있어도 천하제일무공이 없는 이유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그래, 이런 중요한 사실을 망각했으니 심마인 너를 만난 거겠지.”

대답하는 팽무성의 얼굴은 어딘가 개운해져 있었다.

“물론 이 도법에는 부족함이 없다. 결국 너에게 달린 거다.”

답하는 팽지혁의 목소리는 조금 작아졌다.

팽무성이 방금 한 질문이 이 상황을 관통하는 것이었는지 팽지혁의 전신이 점점 희미해지며 어둠 속에 사라지고 있었다.

반투명해진 팽지혁의 입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도법의 이름은 뭐지.”

잠시 고민하던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땅한 이름을 정하지 못한 탓이었다.

“뭐가 좋을까, 오호신도? 철혈벽력도?”

이에 팽지혁은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이 이름은 어떠냐.”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팽지혁의 입술이 꿈틀거렸고 팽무성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팽지혁은 어둠 속에 스며들어 완전히 사라졌고 팽무성은 그 어둠을 바라보며 웃었다.

“좋은 이름이네.”

새로운 도법의 이름이 정해졌다.

* * *

츠츠츠

금빛과 붉은빛이 섞인 서기(瑞氣)가 안개처럼 흐르며 명상 중인 팽무성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다.

서기의 빛이 절정에 달하자 팽무성은 가부좌를 튼 그대로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 아래로 금빛의 연꽃이 피어나더니 꽃잎으로 팽무성을 보호하듯 감쌌다.

인간이 지닌 본연의 그릇을 깨고 새로운 경계로 초월할 때 나타나는 천화난추(天花亂墜)라는 현상이었다.

초절정이 자신의 그릇을 가득 채우고 이를 수 있는 경지라면 그 위의 초월경은 가득 채운 그릇 자체를 깨트려 한계를 초월했을 때 오를 수 있는 경지였다.

전생에서는 타고난 태생이라는 한계를 깨트리고 초월경에 올랐다.

이번에는 줄곧 곁에 존재했던 도왕의 그림자를 극복해내며 도왕이라는 한계를 깨트렸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전생의 종착점이었던 도왕을 넘었으니 얼마든지 앞으로 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으리라.

샤르륵

영롱했던 연꽃의 자태가 조금씩 희미해지며 팽무성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연꽃의 금빛 가루로 흩어져 사라졌을 때 허공에 떠 있던 팽무성도 다시 바닥에 내려왔다.

마침내 초절정의 벽을 넘어 초월경에 도달했다. 드디어 전생의 경지를 수복했지만 팽무성은 기뻐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제 진정한 출발선에 선 것일지도 몰랐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이들은 이보다 강대한 마인들이었다.

그러나 팽무성은 지금의 경지도 또다시 뛰어넘어 강해질 자신이 있었기에 그 발걸음이 사뿐했다.

눈을 뜬 팽무성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적아도를 뽑았다.

그러곤 중앙의 벽 앞에 서서 도를 들었다.

촤자자작

팽무성의 도가 움직이자 흑강석 벽에 드디어 깊고 확연한 도흔을 남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초식의 도흔까지 완벽하게 남기고 나서야 팽무성은 도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깨끗했던 중앙의 벽이 지금은 팽무성이 남긴 도흔으로 빼곡했다.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

도흔을 눈에 담던 팽무성은 한줄기 미소를 보이며 적아도를 갈무리했다.

폐관 수련을 마무리할 때였다.

* * *

“이건 어쩔 수가 없군.”

가주전에서 집무를 보던 팽진연은 사천당가에서 보내온 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성이는 아직 폐관 중이니, 대신 중혁이를 보내야 하나?”

서류를 살피는 팽진연의 얼굴빛은 상당히 좋았다.

팽무성이 폐관에 든 이후로 팽진연의 주화입마도 조금씩 호전을 보인 덕분이었다.

도천의 충고도 있었지만 달라지는 팽가의 모습을 보며 혼원벽력도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직접 몸으로 체감한 탓이었다.

팽진연은 지금처럼 팽무성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보다는 아비로서, 가주로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 마음이 팽진연이 주화입마를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조금씩 주화입마에서 벗어나고 기력을 되찾고 있는 팽진연은 직접 집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나아졌다.

“가주.”

“알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마.”

뒤에서 들리는 팽영대주의 목소리에 팽진연은 서류를 접었다. 간혹 팽진연이 집무에 과도하게 빠져있을 때마다 팽영대주가 제지를 한 탓이었다.

그러나 팽영대주의 말은 팽진연의 예상과 달랐다.

“소가주가 오셨습니다. 폐관을 끝내신 모양입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팽진연도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주.”

고개를 숙이는 팽무성의 어깨를 팽진연이 두 팔로 끌어안았다.

“고생 많았다.”

팽진연의 포옹에 팽무성은 그 기분 좋은 온기를 잠시 느끼더니 말을 꺼냈다.

“잠깐 밖으로 나가시지요,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래.”

팽진연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주전을 나섰다. 팽무성이 폐관 수련으로 얻어낸 성취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여겼다.

허나 팽무성의 도를 보던 팽진연은 방금까지 했던 생각을 말끔히 지워냈다.

꽈르릉

도법이 펼쳐지며 울리는 소리에 팽진연의 팔에 일순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무공의 성취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도법.

한눈에 뿌리가 팽가의 무공임을 알았으나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떤 팽가의 도법도 이에 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달빛 아래에서 펼쳐내는 이름 모를 도법은 팽진연의 혼을 쏙 빼놓았다.

“아아.”

먹먹한 탄성을 내뱉는 팽진연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화입마에 걸린 이후로 언제나 가슴 언저리에 있던 응어리가 단숨에 녹아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팽무성이 도법을 전부 펼쳐내고 적아도를 갈무리하자 팽진연은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이 도법의 이름은 무엇이냐.”

팽진연도 오호동에 들어가 도흔을 봤기에 알 수 있었다. 팽무성이 혼원벽력도를 복원한 것이 아닌 아예 새로운 도법을 창안했다는 것을.

“오호단문도라 이름을 정했습니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무공에서 문(門)의 의미는 관문, 혹은 방어의 의미를 지녔다. 즉 단문(斷門)이란 상대의 방어를 부수는 의미였다.

이 도법은 다섯 개의 변화를 중심으로 상대의 방어를 깨트리는 도법이니 이처럼 잘 어울리는 이름도 없었다.

“오호단문도는 이제 혼원벽력도를 대신하여 하북팽가를 대표할 도법이 될 것입니다.”

“정말 장하다. 내 아들아.”

팽진연은 눈물을 머금은 채 빙그레 웃었고 팽무성도 따라서 입꼬리를 올렸다.

* * *

남궁세가의 거처에서 남궁혁은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붓을 움직이는 남궁혁은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장의 서신을 연달아 써 내렸는데 각기 소림사와 팽가로 보낼 것들이었다.

무신총 이후로 만나지 못한 네 사람이었다.

하남과 하북은 안휘에서 가까웠기에 종종 방문했지만, 무각과 팽무성 모두 폐관수련 중이라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무각은 넉 달 전에 폐관을 끝냈다고 들었지만 팽무성은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다 모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남궁혁은 다시 만날 미래의 기대감을 담아서 서신을 봉했다.

도객, 주당, 땡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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