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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66화 (66/200)

66화

팽무성 일행은 만두가게의 삼 층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낙양의 고즈넉한 풍경을 한눈에 담으며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삼 층의 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았지만, 미리 남궁혁이 손을 써두어 자리를 잡아놓은 덕분이었다.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쇼!”

만두판 맨 위에 있던 뚜껑을 들자 눈앞을 흐리는 김과 함께 만두의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이에 고개를 앞으로 내민 무각과 남궁혁의 눈이 만두판 안으로 쏠렸다.

“맛있겠다.”

“음, 팽 아우. 이 가게는 소맥을 만드는군.”

이 가게의 만두는 일반적인 만두와 달리 윗면이 트여서 속 재료를 볼 수 있었다. 색색의 속 재료 덕분에 마치 만개한 꽃처럼 보이니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이런 종류의 만두를 소맥(??)이라 불렀다.

입맛을 다시는 두 사람을 보며 팽무성은 만두판을 살짝 밀며 웃었다.

“어서들 드셔보시죠.”

남궁혁은 맛을 보듯 절반 정도 베어 물었고 무각은 한입에 털어 넣곤 우물거렸다.

“으흐흐.”

만두를 먹던 무각은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입안의 김을 흘려냈다.

돼지고기와 새우의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었고 기름과 향신료가 적은 편이라 몇 번 씹지 않아도 사르르 녹듯 부드러운 식감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맛에 무각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소림의 맛없는 음식과는 차원이 달라. 이 만두가 극락이야!”

무각은 혼자 유난을 떨더니 이내 불호를 외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옆에서 이를 보던 팽무성과 남궁혁은 그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흘렸다.

승려가 고기가 섞인 만두를 먹는 기괴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흘끔 쳐다봤지만 무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로 소림의 무승들은 몸을 키우기 위해 어느 정도 고기를 섭취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확실히 놀랍군. 남궁세가에서도 쉬이 먹을 수 없는 맛이야.”

남궁혁도 만두의 맛에 빠져든 모양인지 젓가락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마음에 드셔서 저도 기분이 좋군요.”

“팽 아우 덕분에 우리가 이리 호강을 하네.”

한 판을 게눈 감추듯 해치우자 남궁혁은 허리춤에서 호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좀 전에 팽무성에게 던진 호리병과 다른 것이었다.

“남궁 형님, 무슨 호리병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계십니까.”

만두에 열중하던 무각도 잠시 남궁혁의 허리춤을 살폈다. 식탁에 올려놓은 것 말고도 호리병이 두 개나 요대에 매여져 있었다.

“하나는 알다시피 연향주, 다른 하나는 사천에 가서 화련이가 있을 때 넷이 마실 것이네.”

나중에 마신다는 말에 무각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호리병을 남궁혁은 소중한 듯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건 우리끼리 마시도록 하지. 내가 직접 담근 것인데 남자에게 좋은 것들만 넣었지.”

술을 워낙 좋아하는 남궁혁은 검을 수련하다 막힐 적엔 직접 술을 담그며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미 수십 번을 담가본 남궁혁으로선 어느새 주조에도 나름의 경지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쿨럭.”

“저걸 마셔도 내가 쓸 데가 있으려나.”

만두를 삼키던 팽무성은 사레들렸고 무각은 괜히 자신의 민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우들의 어색한 반응을 보던 남궁혁은 껄껄 웃었다.

“후훗, 아직 어리군. 두 아우는 극양의 내공을 지녔으니 혹시 아나? 도움이 될지.”

“태양화리라도 잡아서 넣으신 겁니까.”

팽무성은 농담으로 받아치며 남궁혁이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이 술의 이름은 양양주(陽陽酒)라 이름 붙였네.”

세 사람은 동시에 술잔을 들이켜며 목을 타고 내려가는 후끈함을 느꼈다. 이름에 걸맞게 제법 센 화주(火酒)였다.

“크흐, 시원하네.”

“맛이 제법 괜찮습니다.”

아우들의 괜찮은 반응에 남궁혁도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남궁혁은 시선을 틀어 가게 바깥의 풍경을 응시했다.

“낙양의 절경, 옥식(玉食)과 미주(美酒), 이를 함께 즐길 아우들이 있으니 즐겁지 아니한가. 무림의 도원(桃原)이 여기에 있네.”

“아미타불.”

남궁혁이 마치 시를 읊듯 중얼거리자 무각은 장난스레 불호를 외어 합을 맞춰주었다.

“하하하.”

이를 보고 팽무성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래서 그 미모의 여인을 구했는데...”

“스승님의 손맛이 그렇게 맵다고...”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세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웃음을 끊임없이 흘렸다.

“만두도 얼마 안 남았네. 아미타불.”

자리가 무르익을수록 그 많던 만두도 이제 다섯 개밖에 남지 않았다. 양양주도 몇 잔 안 마신 듯했는데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술이 제법 셌기에 세 사람은 금세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게 익었다.

내공을 이용하면 바로 취기를 빼낼 수 있지만, 이들은 지금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바깥에 피어나고 있는 꽃을 유심히 보던 남궁혁은 무언가 생각난 듯 젓가락으로 술잔을 가볍게 쳤다.

“아우들은 화산에 가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나도.”

이에 남궁혁이 씨익 웃었다.

“그럼 섬서를 경유하는 김에 화산을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나. 아우들이 중원오악을 그냥 지나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화산은 섬서의 화음(華陰)에 있는데 화음면은 섬서와 하남의 경계에 가까이 위치했다.

어차피 지나야 할 곳이니 그렇게 긴 시간을 소요할 필요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매화가 피는 시기. 매화가 만발한 화산파는 절경일세.”

“화산파, 꽃쟁이 놈들인가.”

남궁혁의 말을 듣던 무각은 흥미가 돋은 듯 중얼거렸다.

화산파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검으로 매화를 피워낼 수 있다는 그 검법은 무림인뿐만 아니라 양민들에게도 유명했다.

더구나 불존이 종종 화산과 무당의 무공에 대해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기에 무각은 화산의 검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산이면 그분이 계시겠네.’

검성(劍聖).

불존과 같은 배분으로 화산이 배출한 십대고수였다. 전생에서도 별다른 인연이 없던 검성이었기에 팽무성도 호기심이 생겼다.

‘운이 좋으면 만나 뵐 수 있지 않을까.’

검성은 다른 노고수처럼 문파 깊숙한 곳에 칩거하는 것이 아닌 문파 내에서 모습을 잘 보인다고 들었다.

검성은 십대고수 중에서도 상위에 평가받는 인물. 전생의 도왕도 말석에 머물렀었기에 그 격차를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 위의 경지는 얼마나 드높고 험난할 것인가.

검성을 떠올린 팽무성은 입을 씰룩였다.

“화산파. 좋습니다. 가보도록 하지요.”

“정해졌군.”

쪼로륵

무각은 호리병의 남은 술을 털어 세 잔에 나눠서 담았다.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 * *

팽무성 일행은 하남에서 섬서의 경계를 넘기 위해 이름 모를 산을 넘고 있었다.

남궁혁은 섬서에 몇 번 다녀온 경험이 있었기에 길잡이를 자처했다.

“사람이 제법 다니는 길로 보입니다.”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산에 꾸준히 길이 나 있었다. 팽무성의 눈썰미에 남궁혁은 앞을 막는 나뭇가지를 쳐내며 말했다.

“표국에서 마차를 사용하지 않는 소규모 표행을 할 때 쓰는 길이네. 나도 우연히 표행에 동행했다가 알게 되었지.”

산세는 조금 험했지만, 반나절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산의 중턱쯤 지났을까, 돌연 팽무성의 코가 벌렁거렸다. 이에 냄새의 방향으로 고개가 확 틀어졌다.

“피 냄새가 납니다.”

“피 냄새라고?”

“어?”

남궁혁과 무각도 팽무성이 보는 방향을 보며 후각에 집중했지만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전장에서 피에 익숙해졌던 팽무성이기에 맡을 수 있는 피 냄새였다.

“저쪽인가.”

기감을 넓게 퍼트리자 팽무성은 저 멀리 서쪽으로부터 금방 꺼질듯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팽무성이 먼저 몸을 날렸고 남궁혁과 무각도 그 뒤를 따랐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인영을 발견하자 팽무성은 곧장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전투를 했던 것인지 오른손에 검을 쥐고 있었고 도복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화산의 제자인가.”

매화가 수놓아진 검은 도복을 입고 있는 후기지수였다. 화산제자의 몸 상태를 살피던 팽무성은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가 제법 깊어 주변의 흙이 피로 흥건했다. 조심스레 상처를 살피는 사이에 남궁혁과 무각도 도착했다.

“베이거나 찢긴 상처는 아닌데.”

“조법에 당한 상처로 보인다.”

마치 짐승에게 물린 듯 뭉텅 뜯겨 있어 지혈에 상당히 곤란한 상처였다.

팽무성은 점혈과 동시에 무각에게 받은 금창약을 상처에 뿌리곤 자신의 소매를 찢어서 붕대 대용으로 사용했다.

“뭐야, 의술도 배웠어? 능숙한데, 팽 시주.”

뒤에서 처치과정을 지켜보던 무각은 침착하게 상처를 지혈하는 팽무성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 재빠른 손길은 마치 의원을 보는 듯했다.

전장에서는 크고 작은 상처를 입기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의원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실제로 눈대중으로 익힌 의술로 팽호대는 서로의 몸을 살펴주며 전장에서 버텨왔었다.

지혈이 끝나자 팽무성은 품속에서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반합을 꺼냈다.

반합 안에는 여러 색의 작은 단환이 들어있었는데 그중 붉은 단환을 화산 제자의 입에 넣어주었다.

보혈단(補血丹)이라는 것으로 출혈이 심한 부상자에게 먹이면 도움이 되는 약이었다.

“으윽.”

팽무성이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남궁혁이 맥문으로 내공을 불어 넣어준 덕분일까.

화산 제자는 낮은 신음과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정신이 드십니까?”

“아... 누구?”

화산 제자의 힘없는 목소리에 팽무성은 화산 제자가 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했다.

“하북팽가의 팽무성입니다.”

“으...”

고통 때문인지 말을 잇지 못하던 화산 제자는 팽무성과 그 뒤에 있던 무각을 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정파... 사형... 들을 도와... 주십시오.”

목소리가 계속 끊겨서 듣기 쉽지는 않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만큼 화산 제자의 목소리에서 절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화산 제자의 말에서 팽무성은 화산 제자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자세한 뒷사정은 나중에 들어도 늦지 않았다.

“어디입니까.”

“동굴...”

쥐고 있던 매화검으로 방향을 가리키곤 화산 제자는 기력이 다한 듯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에 무각의 얼굴이 굳어졌으나 남궁혁이 고개를 저었다.

“맥은 아직 잡히고 있네. 아무래도 내가 계속 내공을 불어 넣으며 상태를 봐줘야겠어. 아우들이 다녀오게.”

“무각, 가자.”

팽무성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고 무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팽무성과 무각이 동시에 경공을 펼쳐 산을 오르자 주변의 나무가 거세게 흔들리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 * *

“쿨럭.”

끝까지 곧게 세워졌던 매화검이 결국 땅에 박히고 말았다. 일현은 올라오는 핏물을 삼키며 주변을 살폈다.

함께 들어왔던 사제들은 이미 쓰러져 마인들에게 제압당한 뒤였다.

‘막내 사제는 잘 빠져나갔는지 모르겠구나. 본산에 무사히 당도해야 할 텐데.’

“이놈들...”

일현이 으르릉거리자 이를 보던 사내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너는 그래도 제법 오래 버티네.”

사내는 손가락에 묻은 누군가의 피를 핥으며 유독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일현은 몸을 잘게 떨었다.

저 사내가 핥고 있는 것은 사형제의 피일 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다니.’

비슷한 또래로 보였으나 저 기괴한 사내가 보여준 무위는 자신을 한참이나 넘어섰다.

일현은 사제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 일현을 보던 사내는 피로 얼룩진 붉은 입술을 삐쭉였다.

“맛있겠다.”

식마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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