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오독문을 비롯한 마인들의 사천당가 습격.
허나 사천당가의 무력이 집중된 곳은 당가가 아닌 당가타였다.
챠앙
좌우로 날아오는 쌍겸을 손등으로 튕겨낸 당영주(唐影主)는 염룡독장(炎龍毒掌)을 쏟아내 세 명의 독마종 마인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마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 쓰러졌다.
“괜찮으시오?”
“아이고...”
“갑자기 이게 무슨 변고인지.”
“일단 사천당가에서 멀리 떨어지시오. 곧 해결될 터이니.”
덜덜 떠는 양민들을 진정시켜 무인 한 명과 딸려서 보낸 당영주는 건물 위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곁으로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한 명씩 붙으며 보고했다.
“동남쪽은 정리했습니다. 흑영대는 화재를 진압하고 바로 합류할 예정입니다.”
“북쪽도 끝났습니다. 현재 집결지에서 대기 중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만큼 밀려오는 보고의 수도 상당했다.
“장로원은?”
일단 일차적으로 학살을 막았다곤 하나 마인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연회장을 지원하러 가신 분들을 제하면 모두 당가타에 오셨습니다.
양민들을 지키며 퇴로를 차단할 것이니 타격대는 외곽으로 투입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독문 말고도 마인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가세해서 외곽의 상황이 어렵다고 합니다.
게다가 마인의 일부는 저지선을 뚫고 본가로 진입했습니다.”
본가가 뚫렸다는 보고에 당영주는 눈썹을 들썩였다.
“이런, 가주께서 화가 많이 났겠는걸. 서둘러야겠다.”
당가타의 여섯 장소에서 화재와 독을 이용한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팽무성의 정보를 얻은 당가는 미리 타격대를 배치해서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그 탓에 사천당가 외곽의 전황은 불리했으나 이에 불만을 가지는 가솔은 아무도 없었다.
당가타도 사천당가의 가솔이나 마찬가지였고 힘이 없는 가솔을 먼저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파와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양민을 먼저 우선하고
인의를 지키려 하는 정파의 차이점이었다.
까가강
타탁
점점 크게 들려오는 비명과 금속음. 자욱한 독무를 보고 당영주가 중얼거렸다.
“이놈들, 당가의 주력이 당가타에 빠진 줄도 모르고 아주 신이 났구나.”
당영주를 비롯한 당가 무인들이 외곽 쪽에 도착했을 때,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갖가지 독이 뿜어지며 시야는 어두웠고 그 사이로 암기와 쌍겸이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머릿수가 제법 많군.”
얼핏 보기에도 사천당가에 비해 두 배는 많은 수였다.
하지만 당영주는 서슴없이 앞으로 나섰다.
“반격이다. 외곽부터 시작해서 다 태워죽이고 포위망을 좁혀 본가에 있는 놈들도 정리한다.”
당영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인은 기다렸다는 듯 신호탄을 터트렸다.
퍼엉
하늘에 녹색 빛의 불꽃이 수놓아지자 각 집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력대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둑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무수한 수의 암기가 오독문과 독마종 마인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후방에서 적이!”
“당가 놈들이 왜 뒤에서 나타나는 거냐!”
화르륵
후방에서 느닷없이 날아드는 암기에도 정신없던 차에 거대한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엄청난 화기는 오독문과 독마종의 독기를 말끔히 태워내며 사위를 맑게 만들고 있었다.
검붉은 색을 띠는 기이한 불꽃을 양손에 두른 당영주의 등장은 모두의 이목을 한 번에 끌고 있었다.
오독문과 독마종을 지휘하고 있던 독마우사는 갑작스레 등장한 그 뜨거운 존재감에 조용히 쌍겸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천당가를 짓밟으려면 우리를 먼저 밟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당영주의 선언과 동시에 뒤에서 몸을 날린 십여 명의 무인들이 마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사천당가를 수호하는 그림자. 당영(唐影).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당영주(唐影主).
녹색 그림자가 외곽을 뒤덮기 시작하자 단숨에 전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슈아악
검은 독운이 당영주의 머리 위로 쏟아졌으나 몸에 두르고 있는 화염에 단숨에 타 들어가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의 독기를 가볍게 지워내는 모습에 독마우사는 쌍겸이 달린 사슬을 회전시키며 물었다.
“누구냐, 당가에 너 같은 고수가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알 거 없다. 그냥 타 죽어라.”
당영주의 두 손에서 그 어떤 독도 집어삼키는 지독한 화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당가의 반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괴세마왕이라...”
팽무성이 중얼거릴 때 괴세마왕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괴세마왕이 손가락을 하나씩 말아 쥘 때마다 주변의 대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 생에서는 사세마왕이 벌써 모습을 드러냈군.’
사세마왕(四世魔王).
극마의 경지, 중원의 기준으로 초월경에 도달한 마인. 처음 이들이 등장했을 때 무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림 전체를 모아서 열 명이었다.
마교의 덩치가 지나치게 비대하고 마공이라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있다곤 하나,
초월경의 고수를 네 명이나 보유한 것은 무림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일이었다.
마교의 이런 비상식적인 강함은 무림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허나 무림은 힘을 합치지 않고 각자 싸우니 마교에 하나씩 지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확실히 나 때문에 흐름이 달라지고 있구나.’
전생의 흐름대로라면 사천당가에 이런 대규모 습격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군이 세 명이나 나타날 일도, 이 때문에 마왕이 등장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팽무성은 이 변화의 원인에 자신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네는 본교와 세 번이나 접하고 살아남았지.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지 볼까.”
마기를 갈무리한 괴세마왕은 서서히 자세를 잡았고 팽무성도 도병에 손을 가져갔다.
문득 펼쳐 놓은 기감에서 치열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사패가 느껴졌다.
‘모두 사선에 서 있구나.’
괴세마왕은 초월경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팽무성과 달리 상당한 시간을 두고 완숙된 경지에 도달했을 터였다.
이러니 팽무성보다 강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패도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만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팽무성은 한치의 걱정도 품지 않았다.
무림인은 언제나 사선 뒤에 한 발자국 뒤에 물러서 있는 이들.
자신을 뛰어넘는 강자를 만날 때 비로소 사선 앞에 바로 서게 된다.
그 사선 앞에서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수많은 사선을 넘으며 지닌 무공을 연단하는 소수만이 고수(高手)라고 불리는 법.
‘이정도 사선, 우리는 숱하게 넘어왔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팽무성은 당가에 펼쳐 놓은 기감을 거두었다. 온전히 괴세마왕에게 온정신을 쏟기 위함이었다.
쿠웅
괴세마왕이 지붕을 박차고 몸을 날리자 지붕의 한 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부풀어 오른 근육이 꿈틀거리며 패력이 실린 주먹이 쏘아졌다.
대기를 밀어내는 권력에 강풍이 쏟아졌지만 팽무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단에서 수직으로 도를 그어 내렸다.
쩌엉
커다란 금속음이 울리며 주먹과 도가 찌르르 떨고 있었다.
퍼억
팽무성이 충격을 두 발을 통해 흘려내자 주변의 지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콰르릉
더는 버티지 못한 지붕이 무너져 내리자 발판을 잃은 팽무성과 괴세마왕도 추락했지만 이에 구애받지 않고 무공을 펼쳐냈다.
쾅쾅쾅
괴천마권(壞天魔拳)을 펼치는 괴세마왕의 주먹이 뻗어질 때마다 벽력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울렸다.
오직 힘과 파괴에 치중된 이 권법은 주먹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도와 주먹이 충돌할 때 괴세마왕은 기습적으로 좌수를 뻗어 장력을 쏟아 냈다.
이에 팽무성도 장력으로 응수했다.
쫘악
장력의 충돌에 팽무성의 소매가 터지듯 찢겨나갔다. 그러나 별다른 피해는 없어서 팽무성은 곧바로 괴세마왕의 어깨를 베어냈다.
괴세마왕은 어깨를 뒤로 빼서 회피와 동시에 옆구리에 주먹을 붙였다.
곧바로 정권을 쏘아내는 괴세마왕은 권사로서의 공방일체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팽무성도 이에 못지않았다.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적아도의 힘을 흘리지 않고 되살렸다.
이중으로 꼬아진 곡선을 그리며 하단에서 솟구친 적아도는 허리에서 터져 나오는 정권을 베어냈다.
쾅
정교하게 지어진 전각이지만 두 초월경 고수의 충돌을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무너지는 바닥으로 나무 파편이 사방에서 튀어 올랐고 그 사이로 팽무성이 기습적으로 도기를 쏟아냈다.
콰르릉
순간 괴세마왕은 다섯 줄기의 벼락이 떨어지는 착각을 했으나 본능적으로 주먹을 뻗고 있었다.
사람 크기의 거대한 권기가 터져 나오며 전방을 휩쓸었다. 도격을 흩어냄과 동시에 그 뒤에 있던 팽무성까지 삼켜버렸다.
급히 도막을 펼쳐내 충격을 완화했지만, 내부가 살짝 진탕되었다. 팽무성은 피 섞인 침을 뱉으며 빠르게 내부를 다스렸다.
“잘 싸우는군.”
괴세마왕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거리를 좁혀 팽무성을 짓누르려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팽무성도 뒤지지 않는 파괴력을 보이며 괴세마왕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괴세마왕은 팽무성이 수세를 유지하며 버티는 싸움을 벌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의 착각이었다.
팽무성은 정면에서 맞서는 패기를 보여주며 전혀 밀리지 않는 공방을 선보였다.
자신의 행동이 헛된 만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직접 도(刀)로 증명해낸 것이었다.
“마군들이 죄다 자네에게 당한 이유가 있었어.”
괴세마왕은 웃음을 흘리며 기습적으로 간격을 좁혔다. 그러곤 곧장 주먹을 내질러 팽무성의 가슴을 으스러뜨리려 했다.
그러나 가슴을 향하던 주먹을 쳐낸 적아도가 되려 비스듬히 솟구쳐 괴세마왕의 목젖을 찔렀다.
왼손을 뒤집어 손등으로 도를 막은 괴세마왕의 허벅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쑤앙
괴세마왕의 다리가 사라졌나 싶더니 어느새 팽무성의 옆구리를 쳐내고 있었다.
팽무성은 순간 무릎을 높게 들어냈다.
괴세마왕의 각법을 막아냄과 동시에 호왕투법을 펼쳐 팔꿈치로 괴세마왕의 발목을 내려찍었다.
쿵
반격을 했음에도 한 발로 괴세마왕의 각력을 견딜 수 없었던 팽무성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혀버렸다.
괴세마왕은 발을 몇 번 움직이더니 거슬리는 듯 눈을 찌푸렸다.
‘뼈에 살짝 금이 갔군.’
이정도 부상은 괴세마왕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허나 자신보다 약자인 팽무성에게 얻은 부상이기에 신경이 쓰였다.
벽에서 튀어나온 팽무성은 곧장 백호도간을 펼치며 쏘아졌고 괴세마왕은 눈을 부릅뜨고 쌍장을 내질렀다.
지근거리가 되자 팽무성과 괴세마왕은 교묘히 발을 놀리며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를 점유함과 동시에 공세를 이어갔다.
사십여 합을 겨룬 그 순간, 서로의 힘에 거리가 벌려지자 두 사람은 약속을 한 듯 절초를 쏟아 냈다.
진득한 마기가 꼬아진 주먹, 괴력붕산(壞力崩山)이 펼쳐지자 십자형의 거대한 도기가 이를 막아섰다.
사각혈뢰(四角血雷)로 맞받아쳤지만 팽무성은 힘에서 밀리는 것이 느껴졌다.
“크합!”
기합을 내지르며 내공을 끌어올린 팽무성은 괴력붕산을 밀어내며 기어코 팽팽한 접점을 이루어냈다.
콰아앙
일어난 폭발에 괴세마왕과 팽무성은 양쪽으로 튕겨졌다. 그 격돌에도 두 사람은 무사한 듯 멀쩡히 일어나고 있었다.
괴세마왕과 팽무성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동시에 손을 휘저었다. 이에 바람이 일며 주변의 먼지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야가 밝아지자 주변의 광경이 깨끗하게 드러났다. 전각 꼭대기에서 싸우던 두 사람은 어느새 땅을 밟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공방에 전각이 버티지 못하고 한 층씩 부서지더니 결국 전각 전체가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기둥 잔해를 치워낸 괴세마왕은 진지한 얼굴로 팽무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잘한 내상을 입은 듯 보이지만 전투를 이어나가는 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쉽게 봤는데 예상보다 수준이 뛰어나군.’
괴세마왕의 거구에서 피어오르던 마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와 함께 몸의 근육도 조금씩 부풀며 입고 있던 장포가 찢기고 있었다.
괴세마왕의 거구는 어느새 팽무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져 있었다.
팽무성에게 걸어오는 괴세마왕의 모습은 마치 산이 움직이는 위압감을 선사했다.
“적당히 놀다가 죽이려 했는데, 점점 놀라게 되는군.”
“나를 뒤늦게 만났다면 당신은 이미 죽었어.”
마주 걸어오는 팽무성이 내뱉은 말에 괴세마왕은 씨익 웃었다. 값싼 도발이 아닌 자신도 어렴풋이 이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본디 무림인은 운도 중요한 법이지. 자네는 운이 없군.”
이전과 다른 농밀한 권기를 두른 괴세마왕의 주먹이 팽무성의 얼굴을 꿰뚫었다.
고수는 사선(死線)을 넘으며 탄생한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