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막내아들-108화 (108/200)

108화

천룡대회 중간에 일향이 팽무성을 보며 입모양으로 했던 말.

-이 대회에서 우승해서 팽 소협께 제 검을 평가받겠습니다.

그리고 일향은 자신이 꺼낸 말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천룡대회에서 우승을 해냈다.

“패호도, 팽무성 소협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동등한 무인의 위치에서 검성과 무를 겨루었던 팽무성.

검성의 마지막 검을 받아낸 사내였기에 일향은 검성의 가르침을 받은 자신의 검을 팽무성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천천히 손을 포개며 포권하는 일향의 모습은 어딘가 경건한 면이 있었다.

팽무성과 일향의 사정을 모르는 관객들도 이 도전에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용투장의 관객들은 괜히 환호를 질러 분위기를 깨지 않고 그저 조용히 팽무성과 일향을 지켜봤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귀빈석에 있던 팽무성이 비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흠?”

“허허.”

관객들은 물론이고 귀빈석의 명숙들까지 팽무성의 신법에 깜짝 놀라 헛웃음을 흘렸다.

팽무성의 움직임을 놓친 이들이 대다수.

정확히 그 움직임을 읽어낸 이는 용투장에서도 극히 소수였다.

“드디어 그 유명한 사패의 실력을 보겠군.”

“일단 몸놀림만 보면 우리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소이다.”

“팽가가 점점 기우는가 싶더니 다시 날아오르는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천룡대회를 관전했던 명숙들도 자세를 바로잡고 진지한 눈을 하고 있었다.

팽무성과 일향은 서로 도검을 뽑은 채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이에 팽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라.”

그와 동시에 일향이 암향표를 펼치며 매화검을 곧게 찔러왔다.

매화검이 잘게 떨리더니 직선형의 검기를 연달아 분출했다. 그 뒤로 초승달 형태의 검풍이 들이닥쳤다.

일향은 한 호흡에 검기와 검풍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그 수가 제법 많아 순간 뒤에 있는 일향의 모습이 가려질 정도였다.

매화검이 바삐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팽무성을 둘러쌌으나 적아도는 그저 간결하게 전방을 베어낼 뿐이었다.

그 한 번의 참격에 일향의 공세는 물거품처럼 증발해버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검기를 뚫고 튀어나온 적아도, 시야가 가려져 있던 일향은 급히 검신을 곧게 들어서 막아냈다.

꺼엉

묵직한 울림과 함께 일향이 일곱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야 했다.

“물 샐 틈 없이 검기와 검풍을 쏟아내는 게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야. 방금처럼 되려 시야가 가려져 불의의 반격을 당할 수 있다.”

“예!”

“다시.”

이에 일향은 한 줄기 호흡을 들이쉬더니 다시 몸을 날렸다.

채채챙

팽무성은 검을 일일이 받아내며 일향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살폈다.

일취월장의 성과를 보여준 일향이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팽무성은 이를 일일이 잡아내고 있었다.

화산에서 머물려 검성에게 받았던 가르침을 그대로 일향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좀 더 빠르고 촘촘하게, 그래, 거기서 기감을 끌어내서 대비하는 거다. 너의 경지에서 시력에만 의지하면 안 돼.”

꽈앙

적아도가 사선으로 그어지며 꽃잎처럼 원형으로 쏟아지는 검영을 찢어냈다.

팽무성은 가르침을 주면서도 적아도에 힘을 실어서 일향을 다소 거칠게 다루고 있었다.

“이제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보여봐라.”

검성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받아냈듯이, 이번에는 일향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팽무성의 말에 일향은 기다렸다는 듯 아껴놓았던 내공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매화검에 검기가 솟구치니 검신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첫 시작은 매화노방(梅花路傍).

검성과의 비무 때처럼 팽무성의 앞에 매화가 피어났다. 그때는 간신히 매화에 반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적아도가 먼저 움직였다.

매화가 채 피어나기도 전에 적아도에 매화도가 찢겨나갔다.

이미 이를 예상했던 일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을 하나씩 차례대로 펼쳐냈다.

매개이도(梅開利導).

매화가 피어나 예기를 이끄니 매개이도의 초식이 도격을 밀어내고 검풍과 검기가 나아갈 길을 열었다.

콰르릉

오호단문도의 다섯 도격이 매화를 꿰뚫고 솟구치자 매화구변(梅花九變)의 아홉 개의 매화가 연달아 피어났다.

아홉 개의 매화는 저들끼리 회전하며 도격을 흘리거나 막아냈다.

팽무성은 이미 일전에 화산에서 검성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모든 초식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팽무성이 일향에게 맞추어서 오호단문도를 펼쳐내

지닌 역량 그대로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이곳은 분명 무한의 무림맹인데, 익숙한 매화향이 팽무성의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마치 화산파로 다시 돌아가 매화나무를 배경 삼아 비무를 펼치는 느낌이 들었다.

“매화향.”

팽무성의 중얼거림에 일향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으나 다시 검에 집중을 쏟았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이 차례대로 펼쳐질수록 내공에 자극을 받은 매화검의 검신이 은은한 매화향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매화향은 조금씩 넓게 퍼져 어느새 관람석에도 닿고 있었다.

귀빈석까지 닿는 진한 화산의 향기를 느끼며 화산파 장문인, 건륜 진인은 일향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향, 훌륭하구나.’

그리고 일향의 검을 받아내는 팽무성을 바라봤다.

‘이렇게 화산이 다시 한번 도움을 받는군. 정말 감사하네, 팽소협.’

쐐애애액

꽈릉

팽무성의 정면으로 끊임없이 쇄도하는 붉은 빛줄기, 매향성류(梅香成流)가 팽무성의 전신요혈을 노렸으나 한 줄기 뇌성과 함께 흩어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범을 쉬지 않고 연달아 펼쳐내던 일향은 잠시 멈춰서 호흡을 골랐다.

스물세 번째 초식인 매향성류도 펼쳤고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초식 매화만리향뿐이었다.

이에 팽무성은 일향을 빤히 쳐다봤다.

과연 일향이 매화만리향을 펼쳐 낼 수 있을까.

매화만리향은 단순한 마지막 절초가 아닌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성취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했다.

화산파에서는 매화만리향의 흉내만 낼 수 있어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팔성의 성취에 도달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런 의미였다.

매화만리향을 펼쳐낼 수 있다는 것은.

호흡을 고른 일향은 하단에 향했던 검을 들어 중단으로 들어서 곧게 세웠다.

[스승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내공 전수를 할 때가 왔음을 결정하셨습니다.]

웅웅웅

일향의 한 줄기 전음이 울리고 내공이 집약된 매화검이 검명을 토해냈다.

일향이 그려내는 커다란 원. 팽무성은 그 모습에서 검성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이는 듯했다.

‘검성께 제대로 배웠구나.’

그때, 일향이 법문을 외듯 짧게 읊조렸다.

“화산의 매화향은 만리를 퍼져나가니.”

검성에게 이미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팽무성은 그 뒷말을 받았다.

“화산의 검이 닿지 못할 곳은 없으리라.”

전혀 다른 밀도의 매화향이 팽무성에게 쏟아지더니 어느 순간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서서히 피어나는 이십여 송이의 매화.

백여 송이를 피운 검성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았으나 매화만리향은 매화만리향이었다.

적아도에 넘실거리던 도기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이정도의 매화만리향이라면 오호단문도의 초반부 초식만으로 깨트릴 수 있었다.

허나 팽무성은 다른 초식을 준비했다.

오호척천(五虎陟天)

검성의 매화만리향에 맞섰던 절초.

상단을 겨눈 적아도가 비스듬한 궤적을 길게 그려냈다.

다섯 줄기의 도격이 꼬아지며 솟구쳐 매화만리향을 휩쓸었다.

쿠르릉

제법 요란한 초식이었기에 연달아 폭발이 일어나며 일향은 저 멀리 날아가 용투장의 벽에 처박혔다.

팽무성은 일향을 향해 몸을 날려 몸을 부축해 주었다.

“일향, 이번에는 닿지 않았다.”

“예, 더 정진해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이에 팽무성이 웃으며 일향의 어깨를 잡았다.

“비무 중간에 얼핏 검성의 모습을 봤어. 훌륭하게 진전을 이었구나. 고생 많았다.”

그 말에 일향의 눈이 붉어졌다.

고개를 푹 숙인 일향의 등을 팽무성이 가볍게 어루만졌다.

“허허, 대단하군. 일향이 천룡대회에서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군.”

“팽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로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일향을 상대하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에 보인 그 초식도 그렇고, 엄청난 후배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귀빈들은 천룡대회 우승까지 힘을 숨긴 일향과 강호 명숙마저 우습게 볼 수 있는 팽무성의 무력에 혀를 내둘렀다.

짝짝

남궁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일어나서 손뼉을 쳤고 주변의 귀빈들도 따라서 일어나 팽무성과 일향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짝짝짝짝

“와아아아!”

“패호도! 패호도!”

“만향검! 만향검!”

관람석에서도 온갖 환호성이 쏟아졌고 그 가운데에 생소한 별호가 들려왔다.

누군가 처음 외친 별호에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는 듯 따라서 외치고 있었다.

만향검(滿香劍).

용투장에 화산의 매화향을 가득 채운 일향. 그런 일향에게 걸맞는 별호였다.

‘취향검이 만향검이 되었구나.’

전생의 별호를 알고 있는 팽무성은 일향을 보며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새로운 별호가 생겼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팽 소협.”

일향은 새로 얻은 별호가 마음에 드는 듯 살짝 얼굴을 붉혔다.

* * *

천룡대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용투장의 비무대에 천룡대회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단상 위에 오른 남궁구는 비무대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후기지수들과 눈을 맞췄다.

“이번 천룡대회는 미래가 기대되는 후배들이 많이 보여서 참 즐거웠던 행사였네.”

남궁구의 뒤로 호천대의 무인들이 보합을 하나씩 들고 도열했다.

“이번에 우승상품으로 무림맹이 신의가 직접 연단한 대성단과 중성단을 준비했고,

소림의 방장께서 소환단을, 본 맹주가 따로 남궁세가의 백천단을 내놓았네.”

상품이 총 네 개라는 말에 이번 천룡대회에서 사 등을 한 묵연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후배들, 이번 천룡대회와 등용문을 끝으로 무림맹은 전시체제로 전환되네. 앞으로 발호할 마교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함이지.”

마교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영약의 얘기에 흥분해있던 후기지수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방장과 본 맹주가 따로 영약을 내놓는 것은 자네들이 더욱 강해져서 마교를 막아내고

향후에는 늙은이들이 사라진 정파를 지탱할 새로운 기둥으로 자라나길 바라기 때문이네.”

남궁구는 일향을 비롯한 준결승에 오른 네 후기지수를 보고 뒤에 도열한 수많은 후기지수를 바라봤다.

“이번 천룡대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여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게.

언젠가 무림맹이 자네들의 힘을 빌릴 때가 올 것이니. 후배들은 천룡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무공을 익혔는가?”

“아닙니다!”

힘찬 대답에 남궁구도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래, 우리는 정파이고 정의와 협의를 지키기 위해 무공을 익혔네.

그것뿐이야. 다시 한번 시작점을 돌아보고 수련에 전념하게. 후배들. 전장에는 선배들이 앞장설 것이니 그 뒤를 후배들이 받쳐주게.”

마땅히 전쟁에 앞장서겠다고 하는 남궁구의 말에 후기지수들은 자신의 병장기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천룡대회가 끝난 다음 날.

남궁혁이 사패를 불러놓고 말했다.

“자네들, 오늘 밤은 황학루에 가세.”

“밤에 말입니까?”

팽무성이 묻자 남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조부님이 우리를 초대했네.”

황학루의 밀회.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