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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25화 (125/200)

125화

콰르릉

부채꼴의 형태로 퍼지는 뇌전.

세 줄기는 요마군에게 나머지는 각기 요녀들에게 쇄도했다. 이에 요녀들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감당하기 힘든 위력에 요루와 요선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콰앙

도격을 막아냈지만, 철선을 타고 밀려온 뇌기가 그대로 내부로 밀려온 탓이었다.

하지만 요녀들도 만만치 않았다.

아름다운 얼굴과 생기있는 표정은 요녀의 제일 강력한 장점이자 무기.

곧바로 표정을 관리한 요녀들은 뇌쇄적인 미소를 흘리며 선풍을 일으켰다.

요녀들이 철선을 교묘하게 몸 안쪽에서 바깥으로 휘두르자 음향(淫香)을 머금은 선풍이 팽무성에게 날아들었다.

후웅

팽무성이 도풍을 날려 선풍을 상쇄할 때 요마군이 정면에서 나타나 자신의 곡선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요섭마안은 계속 사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팽무성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바로 굴복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와중에 요마군은 정면에서 팽무성을 상대하며 꾸준히 말을 걸고 있었다.

요마군의 산뜻하면서 끈적한 목소리는 팽무성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정마를 떠나서 사내와 여인으로 즐겨보는 건 어떠니.”

“못생긴 게.”

이 한 마디에 요마군의 눈이 빠질 듯이 커졌다. 동공에 서린 싸늘한 한기에 팽무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팽무성은 알고 있었다.

요마군이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만큼 자존심도 크다는 것을.

“죽여버리겠어.”

팽무성의 도발에 요마군은 의외로 쉽게 걸려들었다.

‘그럴 만도 하지. 태어나서 처음 들었을 테니.’

쐐애애앵

요마군의 심경을 대변하듯 날카로운 선풍이 파공음을 일으키며 연달아 쏟아졌다.

일소풍생(一嘯風生)의 초식으로 일거에 선풍을 날려버린 팽무성.

그 사이로 요마군이 팽무성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팽무성은 눈을 감았다.

이 행동이 요마군의 화를 부채질했다.

“너!”

눈을 감은 팽무성은 요마군을 무시한 채 적아도로 변화무쌍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요녀들의 요기, 향, 목소리 어느 하나 위협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위험한 것은 아름다운 미모, 표정, 손짓과 같은 시각적인 것들이었다.

거슬린다면 보지 않고 싸우면 그만이었다.

시각을 시작으로 후각과 청각도 하나씩 차단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칠흑 속에 빠져들었다.

팽무성은 오로지 기감에 의지해서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시야가 사라졌지만 팽무성의 도는 시원하게 뻗어갔다.

그에 뭉툭하기만 했던 팽무성의 도격에 예리함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팽무성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녀들이 만들어낸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촤자작

적아도가 그려낸 붉은 궤적이 색무를 휘저으며 날뛰자 그 궤적과 겹친 요루의 어깨와 요선의 허리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요녀들이 이를 악물며 비명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때.

팽무성의 발이 바닥에서 떼어졌다.

적아도를 타고 올라오는 미세한 손맛을 느낀 팽무성.

기감으로 정확히 요선의 위치를 읽고 신형을 날렸다.

요선이 쏘아지는 팽무성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적아도가 자신의 가슴을 가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그 광경을 본 요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팽무성이 시각, 청각, 후각을 차단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교하고 신속한 움직임이 가능하단 말인가.

팽무성이 실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

하지만 예리하게 다듬어진 팽무성의 기감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체내로 침범하는 요기를 막으려고 신경이 분산되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팽무성은 멈추지 않고 발을 놀려 요루를 노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요마군의 외침에 요루는 눈을 번쩍 뜨며 뒷걸음질 쳤지만, 그때는 이미 적아도가 대기를 가르며 수직으로 베어오고 있었다.

요루가 급히 철선을 들었지만 팽무성은 철선과 함께 요루를 베어버렸다.

요마종의 마공이 팽무성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이들은 그저 평범한 무인에 불과했다.

“이제 너 혼자 남았구나.”

한 호흡에 요녀들을 베어버린 팽무성은 눈을 감은 채 요마군이 있는 방향을 정확히 바라봤다.

요마군은 힘없는 웃음을 흘리면서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환락마공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감각을 차단하고 싸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

하지만 이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보통 고수보다 기감이 예민한 초절정 고수라도 감각을 차단한 채 평소와 같은 기량을 보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요마군도 초절정의 극에 도달한 상태지만 팽무성과 똑같이 해낼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기감(氣感)은 단련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신체의 여러 감각을 한꺼번에 대체할 만큼 만능은 아니었다.

‘십대고수가 괴물인 거야, 팽무성이 괴물인 거야.’

“요마군, 입과 목젖이 움직이지 않고 있군. 내가 청각을 차단해서 입을 다문 건가.”

이에 요마군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이 기감으로 사람을 살필 때는 그저 기로 뭉쳐진 사람 형태의 덩어리로 보였다.

‘기감으로 그걸 구별한다고?’

그런데 팽무성의 기감은 더욱 세밀하게 살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똑같이 기감을 다루어도 팽무성은 자신과 전혀 다르게 세상을 보고 있었다.

언제나 여유를 부리던 요마군이 조금씩 조급함에 물들고 있었다.

까가강

정면으로 밀려오는 강맹한 도격에 요마군은 눈을 부릅뜨고 막기에 급급했다.

환락마공과 극락색무마공을 극성으로 펼쳐냈지만 팽무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적아도만 우직하게 요마군을 향해 예리한 날을 드러내고 있었다.

쏴아아아앙

살벌한 바람 소리가 거세게 일어나며 날카로운 삭풍이 팽무성의 주위로 휘몰아쳤다.

쩌저적

삭풍의 예기에 전각의 바닥과 기둥이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선풍 한가운데에서 팽무성은 그저 고요히 도를 휘둘렀다.

마치 폭풍을 견뎌내는 우직한 고목과 같았다.

환요선풍무(幻妖鮮風舞)의 절초가 연달아 펼쳐졌지만 팽무성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전까지 무공으로 팽무성을 제압하는 것보다는 유혹하며 정신을 무너뜨리는 것에 집중했던 요마군이었다.

그랬던 요마군이 내공을 아낌없이 쏟아내며 절초를 펼쳐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무공을 펼치고 있구나.’

판이 흔들어진 덕분에 어느새 팽무성과 요마군은 무인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팽무성의 흐름에 휘말린 요마군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촤악

적아도가 아슬아슬하게 요마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적아도의 예리함 때문에 요마군의 볼에 긴 혈선이 그려졌다.

이에 언제나 웃음을 유지하던 요마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팽무성!”

요마군의 철선이 일으키는 선풍은 더욱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두 자루의 철선이 펴지고 접히길 반복하며 어지럽게 움직였다.

허나 팽무성에게는 그저 시원한 산들바람과 다를 바 없었다.

적아도가 요동치며 뿌리 형태를 한 붉은 뇌전을 뿌릴 때마다 선풍은 허무하게 흩어지길 반복했다.

철선이 제대로 휘둘러지기도 전에 적아도에 튕겨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요마군의 전신에는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존재 자체로 예술이었던 요마군의 몸에 점점 옥에 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요마군의 평정심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요마군이 초절정의 극에 달했다 하나 팽무성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서걱

팽무성이 적아도를 하단에서 사선으로 올려치며 요마군의 왼팔을 날려버렸다.

요마군은 피륙이 찢기는 고통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 바로 어깨를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요녀 셋을 기감만으로 처치하는 데 사십여 합을 넘지 않았다.

‘할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더 갈고 닦아야겠네.’

그럼에도 팽무성은 스스로 싸우면서 부족함을 느꼈다.

팽무성이 요마군을 내려다볼 때 요마군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살려줘...”

미인의 눈물은 무기라고 했던가.

요마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팽무성을 올려다봤다.

그런 눈을 한 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그 어떤 사내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어.”

허나 팽무성은 단호하게 적아도를 휘둘러 요마군의 목을 쳐냈다.

요마군의 죽음에 전각의 꼭대기를 감싸고 있던 색무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팽무성은 구석에 밀어놓은 마랑문주에게 걸어가 맥문을 잡았다.

팽무성은 천천히 내공을 불어넣어 마랑문주의 체내에 숨어있는 요기를 빼내기 시작했다.

요기를 빼내고 혈을 짚자 기절한 마랑문주의 눈이 번쩍 떠졌다.

요기가 빠지고 본래의 눈빛을 한 마랑문주는 팽무성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는?”

“하북팽가의 팽무성입니다.”

“팽무성?”

팽무성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마랑문주는 문득 주변을 살폈다.

난장판이 된 전각을 보고 마랑문주의 입이 벌어졌다.

“여기는 또 왜 이렇게 된 거야.”

“할 얘기가 많습니다. 문주.”

팽무성은 그 자리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팽무성의 얘기를 듣던 마랑문주는 할 말을 잃었다.

마랑문주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한참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머리가 복잡하군. 기억이 끊어져 있고 생각나는 기억도 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몸의 요기가 뇌의 혈맥까지 침범한 영향 때문에 그럴 겁니다. 요기는 제거했으니 걱정 마시지요.”

관자놀이를 짚고 있던 마랑문주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정파인 자네에게 도움을 받을 줄이야.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물론이고 마랑문이 커다란 위기를 맞을 뻔했군. 정말 감사하네.”

마랑문주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에 팽무성도 똑같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신세를 졌군. 전후 사정을 알았으니 팽가를 향한 진격부터 막아야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랑문주에 의해 본대의 출격은 취소되었고 흥륭에 머물고 있던 선봉에도 귀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럭저럭 조용하게 끝났네.”

팽무성이 마랑문에 출발하기 전에 무림맹과 사도천에 미리 서신을 보냈고, 부상자는 꽤 생겼지만 사상자는 없었다.

이 정도라면 정사 동맹은 큰 흔들림 없이 완만하게 완성될 수 있을 터였다.

마랑문의 전경을 바라보던 팽무성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 * *

호북성 무한.

“어떻게 되었나.”

남궁구의 물음에 청룡단주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맹주.”

청룡단주는 보고를 이어갔다.

“이전에 말했다시피 자신을 사려면 흥미를 돋을만한 이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것은 허울뿐인 이유고 내가 직접 오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죄송합니다, 맹주. 제가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제 실력으로는 무리였습니다.”

청룡단주의 걸음걸이에서 어깨의 부상을 눈치챘던 남궁구는 옅은 한숨을 흘렸다.

“역시 내가 직접 가야 하는가.”

남궁구의 중얼거림에 청룡단주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맹주, 중요한 사안이지만 맹주께서 직접 절강까지 가시는 것은...”

“알고 있네.”

평화로운 시기에도 무림맹주는 함부로 이동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혼란한 때에는 더더욱 무림맹을 함부로 비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남궁구는 누군가를 떠올리곤 얼굴이 밝아졌다.

“한 번 그 녀석에게 부탁을 해볼까.”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새로운 왕 말일세.”

청룡단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인원을 준비해서 하북팽가로 파견하겠습니다.”

절강성을 향해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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