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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35화 (135/200)

135화

쩌엉

적아도와 주먹의 충돌에 사방으로 퍼지는 거센 풍압이 일어났다.

도격의 위력을 가늠하던 권마군이 양 주먹에 검은 권기를 둘렀다.

이에 경쟁하듯 적아도에도 도기가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팽무성과 권마군이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도와 권을 맞부딪쳤다.

격돌이 일어날 때마다 충격파가 퍼지니 주변의 나무나 텃밭의 작물이 흔들리고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를 본 팽무성이 몸을 가볍게 회전시키며 적아도에 힘을 실어냈다.

괴력이 실린 강맹한 도격에 대기가 찢기는 것이 느껴지자 권마군도 지지 않겠다는 양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하늘을 뭉개버리는 위력을 가진 괴천마권.

이 권법을 익힌 이후로 권마군은 사투 속에서 뒤로 물러난 적이 없었다.

연달아 몰아치는 두 번의 도격.

베는 것이 아니라 두들겨 빼려 부수는 듯한 둔탁한 연격, 전박자여(剪撲自如)가 펼쳐지자 권마군의 주먹은 끝까지 뻗지 못했다.

파파팍

땅이 파이면서 발이 뒤로 길게 밀려났다. 권마군은 주먹의 얼얼함을 느꼈지만 이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콰르릉

방금의 무식한 공격과 달리 섬세하게 공간을 점하고 뻗어오는 붉은 번개에 눈이 부신 상황.

“크합!”

권마군은 기합을 지르며 진각을 밟았다.

두 다리를 기둥처럼 땅에 박은 권마군은 허리에 붙인 주먹을 연달아 내질렀다.

팡팡팡

주먹이 뻗는 방향의 허공에서 대기가 차례대로 터져나가니 이에 번개 줄기가 비틀어졌다.

그럼에도 이를 뚫고 베어오는 도격이 있었으니 권마군은 손목을 회전시키며 장력을 분출해야 했다.

장력이 십여 줄기의 도격을 막아냈으나 그 반동에 권마군은 다시금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야 했다.

찰나에 펼쳐진 수십 번의 공방에 팽무성과 권마군은 원래 싸우던 모옥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검후께서 손수 키우시는 텃밭이라 엉망이 되면 안 된단 말이지.”

팽무성의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한 권마군의 얼굴이 붉어졌다.

빠드득

이를 악문 권마군이 거력금마공을 펼쳤다.

한껏 짙어진 마기에 권마군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이에 얼추 비슷했던 권마군의 덩치가 팽무성을 넘어섰다.

허나 특유의 기세와 존재감은 팽무성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팽무성은 권마군이 거력금고공을 펼치는 그 틈을 노렸다.

곧장 수평으로 목을 베어오는 도격.

목을 뒤로 빼서 피해낸 권마군은 보법을 밟아 팽무성의 품속에 파고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하단에서 단전을 노리고 솟구치는 권력에 팽무성은 무릎을 올려쳐 막아냈다.

뻐억

그러자 나무줄기가 꺾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팽무성의 신형이 살짝 땅에서 떨어졌다.

이를 의도한 팽무성은 그대로 사각혈뢰(四角血雷)를 펼쳐내 십자형의 도기를 분출했다.

이에 권마군은 두꺼운 팔뚝을 교차해 방패처럼 하여 그대로 몸으로 받아냈다.

그 사이에 허공에 체공하던 팽무성은 천근추와 함께 맹호하산(猛虎下山)의 일격으로 권마군을 찍어눌렀다.

콰앙

이에 주변의 땅이 푹 가라앉았고 대기가 저릿하게 떨렸다. 권마군이 발끝을 살짝 움직이자 땅이 쩍 갈라졌다.

발을 통해 땅으로 충격을 흘린 권마군은 적아도의 도신을 잡은 채 우권에 권기를 집약시켰다.

권기가 꼬아진 주먹이 팽무성의 왼쪽 가슴을 노리고 쇄도하자 팽무성도 좌수를 뻗어 와호장의 장력을 분출했다.

거센 폭음과 함께 팽무성과 권마군의 신형이 흔들렸지만 두 사람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권마군이 우악스럽게 적아도를 붙잡고 있는 탓이었다. 이럼에도 팽무성은 굳이 도를 빼내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내공을 끌어올려 적아도를 통해 뇌기를 흘려보냈고 팔근육이 부풀더니 적아도를 권마군을 향해 밀어 넣었다.

‘내공, 외공 모두 나를 뛰어넘는군.’

권마군은 눈썹을 한 번 들썩이더니 가볍게 장력을 펼쳐 적아도를 밀어놓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손목을 저릿거리게 하는 뇌기를 배출한 권마군은 손을 털면서 호흡을 골랐다.

“괴세마왕보다 못한 것 같은데.”

팽무성이 도발했지만 맞는 말인지라 권마군은 뭐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팽무성을 노려보면서 오호단문도를 복기하던 권마군은 문득 팽무성과 자신의 거리를 느꼈다.

삼장(三丈 약 9m) 정도의 거리.

권사인 권마군이 누군가를 상대하며 이리 거리를 벌린 적이 있었던가.

권마군은 이 거리가 단순한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팽무성과 자신의 무공의 격차로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거리가 더욱 멀어지는 착각이 들었다.

그때, 권마군이 눈을 부릅뜨자 그렇지 않아도 딱딱했던 표정이 흉흉해졌다.

권마군도 모르는 사이에 패배감에 휩싸이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치욕은 처음이로군.”

잠시 움츠러들었던 권마군의 마기가 다시 폭발적으로 증폭하기 시작했다.

콰앙

땅이 파일 정도로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몸을 날리는 권마군.

오로지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강력한 주먹이 정면으로 뻗어오기 시작했다.

권마군은 저돌적으로 팽무성에게 달려들었다.

간혹 도격이 몸에 닿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거리를 좁혀 권사로서 최적의 거리를 확보하려고 들었다.

거력금고공에 짙은 마기까지 두르고 달려드니 그 모습이 무시무시했다.

허나 상대는 팽무성이었다.

붉은 안광을 흘리는 권마군이 거대한 권기를 쏟아내며 덤빔에도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수직으로 적아도를 내려쳐 권기를 두 쪽으로 갈라낸 팽무성은 다시 적아도를 쳐올리며 오호월아(五虎月牙)를 쏟아냈다.

이에 대경한 권마군은 전방에 짙은 호신강기를 둘렀다. 초승달 형태를 한 다섯 개의 거대한 도기가 차례대로 날아들었다.

호신강기가 세 개의 도기를 견디고 무너져내리자 권마군은 나머지 두 개의 도기는 거력금고공으로 버텨냈다.

상의가 잘게 찢겨나간 채 뛰어오른 권마군은 그대로 괴력붕산(壞力崩山)을 펼쳐냈다.

뭉쳐진 거대한 권기가 팽무성의 면전을 덮쳤다.

콰카캉

두 고수의 물러섬 없는 거센 격돌.

벽력탄과 같은 폭음이 연달아 울렸고 뇌성이 터질 때마다 보타산이 붉게 물들였다.

권마군이 피해낸 도기가 그대로 날아가 나무들을 그대로 베고 지나갔다.

이에 나무들이 차례대로 기울어지며 숲이 요동쳤다.

오랜 시간 만들어진 산길은 산사태가 일어난 양 흙과 돌로 뒤덮였고 수십 그루의 나무가 터지거나 베여서 근처에 온전한 나무를 찾기가 어려웠다.

칠십여 합을 겨룰 때 권마군은 상단으로 올려치는 팽무성의 각법을 팔뚝으로 막아내며 밀려나자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슬슬 끝을 내야겠군.’

팽무성은 어깨와 허리에 상처를 입은 권마군의 부상을 가늠하며 다시 적아도를 들었다.

권마군이 거력금고공과 호신강기를 이용해 죽음을 도외시하고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설마 소교주 말고도 벽을 느끼게 하는 놈이 중원에 있을 줄이야.’

권마군은 마군 중 제일 먼저 초월경에 오른 저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런 권마군의 주먹도 팽무성에게는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다.

팽무성은 권마군의 눈을 마주하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날렸다. 이번에 끝을 볼 요량이었다.

콰앙

주먹과 적아도가 부딪치고 팽무성이 허리를 회전시키며 권마군의 주먹을 억지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에 권마군이 급히 우권을 뻗으려 하자 팽무성은 좌수로 호왕잔연(虎王?燕)를 펼쳐 권마군의 오른쪽 손목을 잡아냈다.

손목을 통해 뇌기를 흘려보내던 팽무성은 적아도를 다시 휘둘렀다.

그 순간, 끝을 내려던 팽무성이 급히 몸을 뒤쪽으로 틀면서 적아도를 수평으로 베어냈다.

까앙

적아도를 막아낸 것은 다섯 개의 손톱이었다.

권마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덩치를 지닌 괴인은 발을 올려쳐 적아도를 튕겨내곤 양손을 크게 휘둘러 열 줄기의 조기(爪氣)를 날렸다.

그물처럼 겹쳐진 조기는 팽무성은 사선으로 베어내 갈라버렸지만, 그 사이에 괴인과 권마군은 거리를 벌린 상황이었다.

이에 팽무성이 눈가를 좁혔다.

“이거 귀찮은 놈이 튀어나왔군.”

팽무성의 반응에 괴인이 한쪽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뭐야. 나를 아는 거냐?”

“광마군. 네놈도 이곳에 있는 줄은 몰랐다.”

누더기 같은 낡은 옷을 걸친 괴인, 광마군은 팽무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군. 내가 어느새 유명해졌나.”

권마군은 어깨와 허리에 점혈하여 피를 멈춘 후 물었다.

“뭐 하다가 이제 온 거냐. 이쪽에는 검후가 없었다. 검각에 있는 것 같은데 죽이고 온 거냐?”

권마군의 질문에 팽무성의 눈이 사나워졌다. 하지만 광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딴 늙은이를 죽이는 데 나까지 갈 필요가 있나. 검마군이 알아서 하겠지. 나는 보타산을 구경하고 왔다.”

“뭐?”

이에 권마군은 물론이고 팽무성마저 광마군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달도 크고 밝아서 예쁘고 보타산도 나름대로 정취가 있더군. 중간에 자리 잡은 사찰도 조화를 이루니 이곳이 별천지더구나.”

광마군의 개소리에 권마군은 순간 머리가 정지되어 입이 막혀버렸다.

팽무성은 조용히 적아도를 어깨 위에 올린 채 앞으로 옮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광마군은 권마군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곳곳에 내가 불을 지르고 왔다. 이제 슬슬 불이 붙었을 테지. 보타산이 불에 활활 타올라 잿더미만 남는다면 또 하나의 색다른 절경이 만들어지겠지. 상상만 해도 온몸이 찌릿거리는구나.”

“요약하면 뜬금없이 불장난하고 왔단 말이군.”

광소를 터트리며 말을 잇는 광마군을 보며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가 안 갔으나 광마군의 잡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피부를 찌르는 살기에 광마군은 껄껄거리면서 팽무성을 바라봤다.

“나도 미친놈인데 너도 미친놈이구나. 도망을 안 치다니.”

“내가 왜?”

자신감이 어린 팽무성의 목소리가 거슬린 듯 광마군은 웃음을 거두곤 서서히 얼굴을 구겼다.

“이 새끼, 변변찮은 마군 몇 쳐 죽였다고 기세가 살아있구나. 어디 귀존처럼 죽을 때까지 그 표정을 유지하나 보겠다.”

“귀존? 너희 설마 귀존을 죽인 건가?”

“광마군, 그만해라.”

권마군의 제지에도 광마군은 광기가 서린 웃음을 흘리며 혓바닥을 드러냈다.

“그래, 죽였다. 권마군과 내가 합공을 해서 죽였지. 소교주가 마지막에 훔쳐먹은 것은 화가 나지만... 알겠느냐.

이 새끼야. 고작 쓸모없는 마군 몇 죽여놓고 본교의 행보를 막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 말이다.”

참다못한 권마군이 광마군의 팔뚝을 세게 잡았다.

“광마군.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말란 말이다.”

이에 광마군은 히죽 웃더니 손톱을 세워 권마군의 얼굴에 찔러넣었다. 이에 권마군은 급히 목을 비틀어 피해냈다.

“찡얼거리지 마라. 어차피 저놈도 죽일 것인데 뭐가 그리 걱정이냐. 더 짜증나게 하면 너를 먼저 죽이는 수가 있다.”

권마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이를 억눌러야 했다.

이 미친놈은 한다면 진짜 하는 놈이니 팽무성을 앞두고 마군끼리 맞붙으면 대참사였다.

권마군은 묵묵부답을 한 채 팽무성을 보며 광마군의 옆에 섰고 광마군은 그 모습에 조소를 흘렸다.

광마군은 권마군에게 다른 신호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팽무성에게 몸을 날렸다.

자신에게 알아서 맞추라는 듯한 광마군의 행동에 권마군도 옅은 한숨을 흘리고는 발을 박찼다.

두 초월경 고수의 합공.

이는 팽무성도 처음 감당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팽무성은 싸늘한 눈을 한 채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 * *

촤자자작

전방을 가득 메운 채 쏟아지는 수십 다발의 흑회색 검기.

여차하면 그냥 피해버리고 싶지만, 그 뒤에는 검각의 제자들과 낭인들이 피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검각주가 십자 형태로 검기를 날렸고 여덟 개의 어린표가 그 뒤를 따랐다.

이에 검마군의 검기가 주춤하는 순간, 와류를 머금은 아라한신권의 권력이 검기의 중앙을 분쇄했다.

그 틈으로 검각주와 무각이 몸을 날렸고 이를 보조하기 위해 양 소매에 손을 집어넣었다.

채채채챙

콰쾅

두 자루의 검과 주먹이 난무했고 그 사이를 어린표가 끼어들었다.

호기롭게 돌진하며 맞붙었지만 부상을 입고 물러나는 것은 무각 일행이었다.

어느덧 무각은 네 번의 검상을 입은 상황. 소림의 외공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각이 정면에서 대부분의 검격을 받아낸 덕분에 검각주와 당화련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런 무각도 한계에 달한 듯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의외로 잘 버티는군.”

검마군은 검에 묻은 피를 여유롭게 털며 걸어왔다.

“너희가 아무리 기를 써도 이 정도가 한계인 것이지. 벽을 넘지 못했으니까.”

검마군이 곧바로 무각의 목을 쳐내려 했지만 그 앞을 검각주가 막아섰다.

채앵

검각주가 자신의 검을 막아내자 눈을 찌푸린 검마군은 그대로 검을 눕혀 검각주의 어깨에 검을 찔러 넣었다.

“크흠.”

어깨에 검이 관통하자 검각주가 신음을 흘렸고 검마군은 그런 검각주를 발로 차 날려버렸다.

일단 혈천검에 대한 행방을 알 때까지는 살려둘 셈이었다.

다시 무각에게 검마군이 발을 옮기는 순간.

우우웅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른 고수들만 들을 수 있는 공명음이 보타산 전체에 퍼졌다.

맑고 청아한 기운이 보타산에 색을 물들이듯 퍼져나갔고 그 기운을 느낀 무각과 당화련의 얼굴이 밝아졌다.

“설마.”

검마군은 무각을 베는 것을 잊은 채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새롭게 등장한 거대한 기운이 점점 가까워지자 놀랐던 검마군의 얼굴에도 서서히 웃음이 깃들었다.

“드디어 벽을 넘었나. 검호.”

검마군은 보타산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무표정하던 검마군의 얼굴이 서서히 살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검마군의 머리 위로 푸른 안개, 창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추절의 불청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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