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막내아들-139화 (139/200)

139화

천마승천(天魔昇天)

과연 무슨 의미일까.

팽무성은 이 단어가 단순히 천마가 어떤 경지에 올랐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일세. 천마신검의 정확한 힘을 알 수는 없지만 마교가 이리 찾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겠지.”

무천궁주의 설명이 끝나자 집무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당화련이 침묵을 깨고 무천궁주에게 물었다.

“천마신검이 그리 위험한 물건이라면 없애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에 다른 사패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천궁주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에 무천궁주는 쓴웃음을 흘렸다.

“천마신검은 말년의 무신께서 무림맹으로 보내셨네. 당대의 무림맹주도 천마신검을 없애려고 했지만, 부술 수도 녹일 수도 없었다고 하더군.”

입을 살짝 벌린 당화련은 무천궁주의 말에 어이없어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검이...”

“아미타불, 확실히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로군.”

팽무성은 조용히 전생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마교주는 언제나 허리춤에 한 자루 검을 달고 다녔지만 쓰는 법이 없었다.

전생에 죽을 때도 마교주의 천마지존수(天魔至尊手)에 심장을 꿰뚫렸으니.

쓰지 않을 검이라면 거추장스럽게 패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검 자체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인데.

‘그 검이 천마신검일까. 그 비정상적인 강함과 성장 속도도 어쩌면 검의 힘일지도 모르겠군.’

무천궁주의 얘기를 들으니 천마신검의 행방을 찾는 것이 중요한 듯한데 단서가 없으니 애매했다.

전생에서도 혈천검이나 천마신검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적이 없이 조용했고

마교도 무림 곳곳을 들쑤시는 것을 보면 그 행방을 확실히 모르는 듯했다.

‘시간 싸움인가.’

혈천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무림맹에도 정보를 보냈고 천살택문에는 그 행방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아직 반응이 없었다.

‘천마신검...’

지금으로서는 마교가 천마신검을 못 찾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무천궁의 논검연회.

오 년에 한 번 열리는 이 연회는 무림의 고수들이 기다리는 중요한 행사였다.

논검연회에 초대되는 무림인의 수는 그 숫자가 일백을 넘지 않았다.

무천궁이 초대하는 고수들은 어느 성을 가도 모르는 이가 있는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었다.

특히 금, 은의 배첩을 받은 고수들은 무림백대고수 안에 들었다는 보증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니 강호의 호사가들은 무천궁이 배첩을 뿌릴 때마다 금, 은의 배첩을 어떤 고수가 받았는지 주목했다.

“이번에 풍운검은 안 오는 건가.”

“후후. 단 대협께서 단단히 벼르고 오셨나 보군요.”

“흠. 저번 패배를 설욕해야 하지 않겠소.”

연회장에 모인 무림인들은 안면이 있는 이들끼리 인사하며 연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연회장에 새롭게 등장한 이들에게 기존에 있던 무림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기 시작했다.

“젊군.”

“저들이 그 유명한 사패인가.”

“그럼 저 거구의 사내가 도왕이겠군요.”

논검연회에 초대받은 고수들은 아무리 어려도 불혹을 넘은 중년인들이었다.

그 와중에 파릇파릇한 후배들이 등장하니 무림인들은 흥미로운 시선을 보였다.

“소문에 의하면 저 네 명이 모두 금첩을 받았다고 하더이다.”

“호오. 내가 은첩을 받았는데 저 후배들이 금첩을 받았다고?”

고수들의 눈길이 사패에 쏠렸지만 네 사람은 여유롭게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제법 강해 보이는 시주들이 많군.”

“어중간한 고수는 이름도 내밀기 힘드니까 말이야. 검호라 불릴 때도 초대를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금첩으로 아우들과 함께 오는군. 하하.”

시간이 되자 무천궁주를 필두로 팔문의 문주들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천궁주는 상석에 오르더니 연회장에 모인 무림인들을 보며 포권을 하며 예를 갖추었다.

“모두 이렇게 먼 걸음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오.”

이에 연회장에 모인 무림인들도 포권이나 검례로 예를 갖추었다.

“오늘의 연회에는 강호 곳곳에서 모인 무림 동도들이 모여있소. 하지만 이 자리는 그저 무림인만 있을 뿐이오. 모두 잘 아시리라 믿소.”

무천궁주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간단했다. 연회장에 초대된 고수들은 순수하게 무공 하나로 선별된 이들이다.

정파와 사파도 있었고, 정사지간이나 낭인들도 있었다.

또한, 이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바로 생사결을 펼칠 원한 관계를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논검연회에서는 이 모든 것을 떨치고 오로지 무(武)를 겨루고 토론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저번 연회에서는 귀존, 창성, 검선께서 참여하셨는데 이번에는 아쉽게도 모두 불참하셨소.”

논검연회는 종종 십대고수도 참석하기도 했었다.

특히 귀존과 창성은 연회마다 참석하여 밤낮으로 논검을 벌이기도 했다.

직접 손을 섞지 않고 부담 없이 십대고수끼리 겨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자리를 빛내줄 새로운 무인들이 찾아왔소.

바로 새로운 십대고수인 도왕, 그리고 근래에 무림에서 명성이 제일 드높은 사패요.”

무천궁주의 소개가 아니더라도 고수들은 사패의 존재를 이미 알고 서서히 호승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후기지수의 나이로 도왕이라는 별호를 얻은 팽무성에게 그 뜨거운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성격이 급한 몇몇은 팽무성을 시험이라도 해보려는 듯 은근히 내공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어디 젊은 놈이 얼마나 대단한가 볼까.’

뒤쪽에서 기감을 찔러오는 낯선 기세.

이에 팔짱을 끼던 팽무성은 실소를 흘리곤 기세를 풀어냈다.

“크흡.”

팽무성에게 은밀하게 기세를 흘리던 중년인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갑자기 밀려온 위압적인 기세에 숨이 턱 막힌 탓이었다.

중년인의 얼굴이 빨개지려던 차에 팽무성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푸핫.”

중년인은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휘청거리더니 옆의 탁자에 몸을 기댔다.

중년인, 녹선한자는 뒤는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을 농락해버린 팽무성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이에 주변에 있던 고수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녹선한자. 어설프게 손을 댔다가 호되게 당하는군.’

‘팽무성이 확실히 보통은 아닌 것 같군. 녹선한자를 순식간에 제압해 버리다니.’

녹선한자라는 중년인은 타고난 심성이 급하고 자존심이 강한 부류지만 그 무공만은 확실했다.

실제로 녹선한자는 이번 논검연회에서 은첩으로 초대를 받았다.

팽무성의 무위를 약간이나마 엿보게 되자 고수들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은근한 열기를 느낀 무천궁주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중년인이 무천궁주에게 물었다.

“궁주, 이번에는 어떤 창고를 개방하는 것이오?”

무천궁은 논검연회가 열릴 때마다 무천궁의 창고 하나를 개방했다.

영약 창고, 비급 창고, 무기 창고.

이렇게 세 곳이 있었는데 논검연회가 열릴 때마다 열리는 창고가 달랐다.

“저번 연회 때는 비급 창고가 개방되었으니 이번에는 무기 창고가 개방될 것이오.”

“음. 무기 창고라.”

“무천궁의 병장기라면 환영이지.”

강호 동도들의 반응을 보던 무천궁주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오. 모두 즐겁게 즐겨주시길 바라겠소.”

무천궁주의 인사말을 끝으로 논검연회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곳곳에 흩어져서 적당히 배를 채우고 있던 무림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 문주, 오랜만에 겨루어 봅시다.”

“좋소. 마 대협. 새로운 한 수를 준비해 왔으니 기대하시오.”

서로 안면이 있거나 이전 연회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고.

연회 시작 전부터 주목을 받는 사패에게 접근하는 고수들도 많았다.

“도왕. 노부는 광현검이라 하네. 한 수 가르침을 주겠나.”

광현검(光現劍).

팽무성이 알고 있는 별호였다.

점창파의 장로이자 운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검수로 알고 있었다.

팽무성이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사패 전원이 각기 다른 고수들에게 논검의 제안을 받고 있었다.

“점창의 대현 진인이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팽무성이 자신의 도명을 언급하며 예를 갖추자 대현 진인은 기분이 좋은 듯 수염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렸다.

“별 볼 일 없는 명성인데 알아줘서 고맙군.”

팽무성과 대현 진인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그런데 제가 논검을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이에 대현 진인이 웃으며 가부좌를 틀었다.

“음. 그렇군. 이런 자리가 아니면 논검을 할 기회가 흔하지는 않으니 말이야.”

논검(論劍).

강호인들이 검과 같은 병장기를 맞대며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닌 서로의 무공과 초식을 말로써 대결하여 승부를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니 논검을 하는 두 무인은 머릿속으로 자신과 상대의 움직임을 그려내며 대응할 수를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기세를 조금씩 드러내 보게. 상대의 드러난 기세에 말한 무공과 초식을 덧대어서 가상의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지.”

설명을 해주던 대현 진인이 먼저 기세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허허로운 기세가 주변을 감싸며 팽무성도 뒤덮기 시작했다.

이에 팽무성도 기세를 풀어냈다.

패도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오며 대현 진인의 기세를 단번에 밀어냈다.

두 기세는 팽무성과 대현 진인의 중간에서 멈추더니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여유가 남아 보이는데 노부의 수준에 맞추는 것인가.’

대현 진인은 팽무성이 자신의 사정을 봐주는 것을 알곤 쓴웃음을 흘렸다.

“선배 된 처지에서 부끄럽지만 먼저 시작해도 되겠나.”

“그러시지요.”

호흡을 고르고 반쯤 명상에 빠져든 대현 진인은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사일검법의 일 초식. 일수초현으로 기호혈과 천추혈을 찌르겠네.”

기호혈은 심장의 위쪽이었고 천추혈은 배꼽의 오른쪽에 위치하는 혈이었다.

대현 진인이 말을 할 때마다 허허로운 기세가 미세하게 변화하며 꿈틀거렸다.

기세를 통해서 대현 진인이 초식을 어느 정도의 강도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펼치는지 머릿속에서 그려낼 수 있었다.

“호왕투법의 호왕잔연의 초식으로 검초를 좌우로 흘려내고 와호장을 뻗어 명치를 밀어내겠습니다.”

그 말에 팽무성의 기세도 반응했고 그 변화를 느낀 대현 진인의 머릿속에도 팽무성이 자신의 검을 가볍게 흘려내고

반격하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도를 뽑지 않는가. 이거 분발해야겠구나.’

박투로 팽무성이 대응하자 대현 진인은 입을 일 자로 다물곤 기세를 더욱 끌어올렸다.

“비천신법으로 좌측으로 다섯 보 앞으로 들어가 사일검법의 후예만궁을 펼쳐 여덟 개의 검영을 쏟아내겠네.”

대현 진인이 기세를 더욱 끌어올리자 팽무성도 기세를 드높였다. 대현 진인의 기세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였다.

이에 대현 진인이 순백의 눈썹을 움찔거렸다.

“호왕투법의 배호고를 펼쳐 검영을 깨부수고 산왕군림보를 일 보 밟으며 비호권을 펼쳐 승만혈을 노리겠습니다.”

팽무성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사일검법의 검영이 뭉개졌다.

뒤이어 호랑이가 뛰어오르듯 날쌔게 반격하는 팽무성의 모습이 그려지니 대현 진인은 침음을 흘렸다.

대현 진인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에 펼쳐놓았던 기세도 영향을 받았으나 팽무성의 기세를 조금도 밀어낼 수 없었다.

“환허보를 뒤로 다섯 보 밟아서 물러나고 ...”

말을 잇지 못하던 대현 진인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결국 눈을 떴다.

기세를 거둔 대현 진인은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방도가 없군.

자네가 보인 기세로 보아 사일검법으로 대항하면 내 검이 부러지고 칠절수로 주먹을 잡고자 하니 검을 버려서

두 손으로 막아내야 할 것 같더군.”

칠절수로 주먹을 막아낸다고 한들 그 뒤로 이어지는 박투에서 팽무성을 맨손으로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좋은 논검이었네. 한 수 배웠네.”

대현 진인이 먼저 일어나서 포권을 하자 팽무성도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양질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팽무성과 대현 진인의 논검을 구경하던 다른 무림인들은 경악스런 눈으로 팽무성을 쳐다봤다.

“벌써 끝났네?”

“광현검이 십초지적도 되지 않는다니.”

“느껴지는 기세도 보아하니 대현 진인이 한 번도 우위에 있던 적이 없었네. 내공도 무시무시한 것 같은데.”

고수들이 저마다 감탄을 하는 사이에 팽무성은 또 다른 상대를 만나서 논검을 시작했다.

‘논검도 제법 재밌는 구석이 있구나.’

상대가 말하는 무공과 초식, 노리는 곳을 들으며 움직임이 예측되었고 흘려내는 기세를 통해

초식에 어느 정도의 힘과 속도가 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의 논검은 심상 수련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슬슬 가상의 상대를 그려놓고 심상 수련을 할 생각이었던 팽무성은 이번 논검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 심상 수련의 질을 올릴 생각이었다.

* * *

무천궁 검관.

“이거 많이 늦었군. 논검연회는 벌써 시작되었나?”

“예. 종종 늦는 분들도 계시니 걱정 마시지요.”

검관을 지키고 있던 무인은 노인이 보여준 금첩을 확인하곤 눈이 가늘어졌다.

이 금첩에는 파연창(波演槍)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눈앞의 노인은 창이 아니라 검을 들고 있었다.

“이 배첩의 주인은 파연창으로 되어있습니다. 파연창에게서 배첩을 뺏은 것인지요?”

“그렇네.”

노인이 당당하게 말하자 검관의 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논검연회가 벌어질 때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초대받지 못한 것을 불만으로 삼고 배첩을 받은 고수를 기습하여 빼앗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금첩을 받은 파연창에게서 빼앗을 정도면 이 노인도 보통은 아니라는 것인데 누구지?’

검관의 무인은 금첩을 노인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배첩을 차지하는 것으로 무공을 증명하셨기에 논검연회로 들어가실 수는 있으나 별호는 알려주셔야 합니다.”

검관의 무인이 정중하게 묻자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아, 그런가?”

노인이 입을 떼자 검관의 무인이 눈을 파르르 떨었다.

논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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