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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58화 (158/200)

158화

땡땡땡

점창파의 경내에 다급하게 들리는 종소리가 연달아 울렸고 남색 도복의 도인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검진을 펼쳐라!”

“목상각을 중심으로 뭉쳐! 마인들이 목상각을 넘어서게 해서는 안 된다!”

점창파의 이대제자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속속히 등장하는 일대제자들이 강해 보이는 마인의 앞을 막아섰다.

퓨퓨퓩

곳곳에서 쏟아지는 섬광에 마인들의 무복이 꿰뚫렸다.

태양을 꿰뚫는 검광이 번득이니 극마단의 돌진도 늦춰지는 것은 당연지사.

갑작스러운 급습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창파 도인들은 극마단의 공세에 맞받아치고 있다.

점창파가 괜히 구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크윽.”

“사형!”

검기에 다리를 베인 도인이 휘청이며 물러섰지만 마인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피를 탐하고 있었다.

피융

도인의 목을 찌르려 했던 마인이 몸이 잘게 떨리더니 그대로 옆으로 툭 쓰려졌다. 쓰러진 마인의 머리에는 기다란 철시(鐵矢)가 박혀있었다.

단단한 머리뼈를 꿰뚫고도 힘이 남아있는 듯 머리에 박힌 철시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원시천존... 마두들이 기어코 세상에 드러나는구나.”

커다란 궁을 들고 묵상각의 지붕 위로 올라선 중년인. 하각 진인을 본 이대 제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각 사숙!”

하각 진인은 점창파에서 사일궁을 익힌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하각 진인은 매서운 눈빛으로 극마단을 노려보더니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수가 너무 많다. 정문 쪽에서 또 몰려오고 있군.’

마인들의 숫자도 많았지만 철저한 훈련을 받았는지 마인들의 검이 매섭기 그지 없었다.

빨리 수를 줄여야겠다고 판단한 하각은 등에 멘 전통에서 꺼낸 철시 세 개를 동시에 쏘아냈다.

퍼퍼퍽

이에 세 명의 마인이 동시에 고꾸라졌다.

개중 둘은 하각 진인을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허무하게 당해버렸다.

“앞을 막는 놈들을 다 죽여라. 그다음에 저 활잡이도 죽이면 그만이다!”

눈으로 쉬이 따라갈 수 없는 사일궁의 위력에 마인들이 움찔거렸으나 기세는 조금도 죽지 않았다.

이에 가늘어진 하각 진인의 눈이 점창파 제자들을 향해 틀어졌다.

“보준, 보하! 너무 앞으로 나섰다. 사형제들과 대열을 맞추어라!”

“예! 사숙!”

하각 진인은 점창파 제자들을 살피며 위협이 되는 마인들을 겨냥하여 철시를 연달아 쏘아냈다.

터엉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 위력을 지닌 사일궁인데 내공까지 실리니 마인들은 하각 진인의 존재가 여실히 거슬렸다.

시위를 당기는 하각 진인의 오른팔 근육이 부풀려지며 전방에서 미쳐 날뛰는 두 명의 마인을 노릴 때였다.

슈악

묵상각 지붕을 뚫고 날아오르는 검기에 하각 진인은 호흡을 멈춘 채 가슴으로 궁을 끌어서 검처럼 휘둘렀다.

검기에 뒤이어 솟구치는 이번대주의 검. 이번대주는 그대로 하각 진인의 궁을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까앙

귀를 울리는 쇳소리와 검을 타고 흐르는 묵직한 반탄감. 하각 진인이 들고 있는 궁은 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이가 없군. 철로 만들어진 궁이라고?”

중얼거리는 이번대주는 검기와 검격을 연달아 막느라 흐트러진 하각 진인의 가슴을 노렸다.

“태양을 꿰뚫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하네.”

하각 진인은 철궁을 휘둘러 검격을 받아치더니 허공으로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슈슈슉

어느새 전통에서 꺼낸 철시로 시위를 매긴 하각 진인은 이번대주의 머리, 가슴, 다리를 노리는 삼 연발을 날렸다.

틈을 노린 급습이었지만 이번대주는 간발의 차로 화살을 연달아 쳐내곤 검풍을 쏘아내 반격까지 해냈다.

하각 진인을 잠시 바라보던 이번대주는 눈매를 휘었다.

“어이, 말코. 시간을 끄려고 하는군.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뒤쪽에서 노인네들이 도우러 오는 일은 없을 테니.”

이번대주의 말대로 하각 진인은 굳이 무리하지 않고 장로들의 참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각 진인은 처음으로 굳은 얼굴을 보이며 이번대주를 향해 궁을 겨누었다.

“무슨 뜻이지. 마두.”

“무슨 뜻이긴, 점창파를 치는 데 우리만 오지 않았다는 거지.”

이번대주의 살기 어린 웃음에 하각 진인은 조금씩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장문인.’

하각 진인과 이번대주가 맞붙을 때 점창파의 심처에서도 검은 안개와 함께 피비린내가 섞인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콰앙

전각 벽을 뚫고 튕겨 나온 점창파 장문인, 대선 진인의 가슴께는 사선으로 길게 도복이 갈라져 있었다.

뚫린 벽 사이로는 암무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암무 사이로 반백의 중년인이 쌍도를 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장문인은 쉽지 않군. 업무에 치여 살면서도 무공을 놓지 않았나 본데.”

암마종주는 잘려나간 대선 진인의 도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극마단이 정문으로 점창파를 두들길 때 암마종주를 비롯한 암마종의 정예들은 장문인과 장로들이 모여있는 심처에 잠입해 급습했다.

카카캉

곳곳에서 암마종의 정예와 점창파 장로들이 충돌하는 소리가 거세지는 것이 들려왔다.

“크흠. 어찌 마두들이 이곳까지 들어왔단 말인가.”

“대진 사형! 뒤쪽에 셋입니다.”

“알고 있네.”

장로들의 검이 번쩍이더니 달려드는 암마종 마인의 목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아직 점창파 장로들이 살짝 우위를 보였으나 암마종이 수적 우세였고 개중에는 암마종의 장로들이 섞여 있었다.

이에 상처를 입는 점창파 장로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대선 진인은 네 줄기의 섬광을 분출하며 암마종주의 움직임을 제한하려 들었다.

하나 암무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암마종주에게 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일검법의 검광이 헛되이 암무를 꿰뚫을 때 암무도 반월형의 도기 두 개를 연달아 뱉어냈다.

다시 검을 찔러 넣어 도기를 쪼개버린 대선 진인이 앞으로 쏘아지려 할 때였다.

측면에서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권력에 대선 진인은 급히 좌수를 휘둘러 장력을 쏟아냈다.

꽈앙

암마종주가 극마단주의 기습에 맞춰 다시 쌍도를 휘둘렀기에 대선 진인은 어깨가 베인 채 끈 떨어진 연 마냥 하늘을 날아야 했다.

전각의 지붕에 착지한 대선 진인은 어깨를 지혈하며 자신을 기습한 극마단주를 쳐다봤다.

“극마단주. 늦었군.”

극마단주와 일번대주는 목상각에서 일어난 전투에 동참하지 않고 쭉 경내를 돌파하기만 했는데 중간에

가로막는 점창파 제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 때문에 극마단주는 시간을 제법 소요했다.

“아, 구파는 구파입니다. 점창의 검이 제법 매섭더군요.”

극마단주는 자연스레 암마종주의 옆에 나란히 섰고 극마단주와 함께 따라온 일번대의 마인들도 흩어져서 전투에 가세했다.

‘상황이 힘들게 돌아가는구나.’

자신을 암마종주라 칭한 저 마두도 승부를 자신할 수 없는데 새로운 초절정 고수까지 합류하니 방법이 없었다.

당장 앞쪽에서 싸우고 있을 제자들을 도우러 가야 하는데 이렇게 발목을 잡히니 대선 진인은 이 상황이 갑갑할 따름이었다.

암마종주와 극마단주를 한 번에 눈에 담은 대선 진인은 비장한 얼굴로 검을 다잡아야 했다.

그 굳은 얼굴을 본 암마종주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장문인. 마음 같아서는 홀로 찢어주고 싶지만, 우리가 바쁜 몸이라서 말이지.”

“원시천존.... 이 마두 놈들이.”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대선 진인이 먼저 몸을 날렸고 암마종주와 극마단주가 양쪽에서 대선 진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가슴을 짓뭉개려 드는 극마단주의 주먹을 쳐내고 대선 진인은 분광검법(分光劍法)을 펼쳐 검격을 두 갈래로 나누었다.

촤악

단숨에 미간을 노려오는 분광검법의 검초에 극마단주와 암마종주는 급히 손을 움직여 검격을 튕겨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쾌검에도 극마단주와 암마종주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서서히 대선 진인을 압박하려 들었다.

‘다행히도 대현 사제가 움직였으니 시간을 벌어야겠구나.’

대선 진인은 모든 생각을 떨쳐내고 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점창의 명운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 * *

식자재를 올리기 위해 용두봉을 내려갔다 온 용진이 굳은 얼굴로 짐을 내려놓곤 용천에게 뛰어갔다.

평소 느긋하게 걷는 편인 용진이 뛰는 모습에 도천과 만담을 하고 있던 용천의 눈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더냐.”

“마교가 발호했습니다.”

용진의 말에 사패도 비무를 멈추고 용진을 쳐다봤다.

“마교가 점창파의 전서구를 이용해서 무림 전역에 자신들의 발호를 알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용진은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용천을 보여주었다.

천마도래(天魔渡來)

만마앙복(萬魔仰伏)

역천지동(逆天地動)

점창파의 전서구를 통해 무림 전역에 퍼진 마교의 서신이었다.

서신에 적힌 글자를 보던 용천은 미간을 좁히곤 도천에게 건네주었다.

이에 도천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더 자세히 말해봐라.”

“점창파가 화마에 삼켜졌고 점창파 장문인을 비롯한 장로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장문인과 장로, 일대제자들이 남아서 시간을 벌 때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이 탈출했다고 합니다.”

용진의 말에 듣고 있던 이들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점창파가 멸문지화를 면했기 때문이었다.

용진의 말을 듣고 있던 팽무성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전생과 다르군,’

전생에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곤륜파였다. 신강에서 몰려온 마교의 군단을 곤륜파가 홀로 막아섰고 이를 무림맹이 지원했다.

그 병력의 공백이 생긴 사이에 무림에서도 마교의 군단이 나타나 무림 전역에 전쟁의 불씨가 번졌었다.

‘전쟁의 시작이 바뀌었으니 그 뒤의 흐름도 바뀔 가능성이 크겠군.’

곤륜파에 도천과 사패가 머물고 있다는 정보에 천마신교의 상층부는 계획을 바꾼 것이지만 팽무성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패에 의해 마교의 침공 계획이 수정될 만큼 사패는 마교에 커다란 존재감을 지닌 상황이었다.

“련주.”

“그래. 이제 내려가야겠군.”

도천과 사패가 지금 당장 곤륜산을 내려가 중원으로 뛰쳐나갈 기세를 보이자 용천이 이를 말렸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니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게.

하루 늦게 출발한다고 하여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야. 그리고 가는 길에 용진도 데려가고.”

도천은 용천의 마지막 말에서 출발을 늦추는 이유를 눈치채곤 말없이 평상에 앉았다.

“그렇게 하지.”

도천의 표정을 본 용천이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네.”

달이 뜨고 다들 잠에 들었을 무렵, 용천과 용진은 단둘이 용두동 안으로 들어섰다.

사슬을 건너 만장단애의 위로 올라선 두 사제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동굴 안에 들어갔다.

용천은 공청석유가 모인 종유석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공청석유 한 방울을 복용할 것이다.”

“스승님, 제자는 이미 두 방울이나 복용하지 않았습니까.”

용진의 질문에 용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도천과 사패를 따라 중원에 들어서면 너도 수많은 마인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무공으로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준비하거라.”

용진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순순히 말을 따랐다. 가부좌를 튼 용진의 입으로 공청석유 한 방울이 떨어졌다.

운기를 하는 동안 용진은 자신의 등에 두 손을 가져다 대는 용천의 손길을 느꼈다.

여느 때처럼 공청석유의 기운을 갈무리하는 것을 도와주리라 여겼지만, 용진의 생각은 빗나갔다.

용천의 두 손에서 채홍빛이 흘러나오더니 용진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 기운의 정체를 알고 있는 용진은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용단!’

곤륜비맥을 잇는 맥주들을 통해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이 영단은 용의 기운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 용단은 곤륜비맥의 비전심법을 익힌 자만이 다룰 수 있었다.

이 영단이 용진에게 전해진다는 것은 용진이 새로운 곤륜비맥의 주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였다.

-이제부터 네가 곤륜비맥의 주인이자 곤륜의 수호자이니라.

용단의 무게를 느낄 필요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시냇물이 흐르듯 천천히 들려오는 용천의 전음에 결국 용진도 마음을 다잡고 공청석유와 용단을 단전에 갈무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마지막 말을 결국 꺼내지 못한 용천은 그저 마음속으로 삭혀내야만 했다.

용단을 성공적으로 전하고 운기에 빠져든 용진을 보며 용천은 이제야 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

마교의 발호 소식을 듣는 순간 용천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답답하며 원인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이에 용천은 용진에게 용단을 넘길 때임을 직감했다. 이리 용단을 용천에게 전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할 일은 다 한 셈인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용천은 운기를 하는 제자의 옆을 묵묵히 지켜냈다.

이제 용천에게 남은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발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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