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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59화 (159/200)

159화

도천과 사패 일행에는 곤륜파 제자들도 합류했다.

주로 어린 제자들이었는데 마교의 발호에 곤륜파에서 미리 무림맹으로 보내려 한 것이었다.

청해에 혼자 떨어진 곤륜파는 외부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기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물론 곤륜파의 어린 제자들은 견식을 넓히는 여행 명목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우와. 크다!”

“사천 음식이 엄청 맵다던데.”

“나는 매운 거 싫어.”

곤륜파의 어린 제자들은 매우 들떠서 눈을 쉬지 않고 곳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성도에 가까워지자 도천은 걸음을 멈춰 팽무성을 쳐다봤다.

“여기서 갈라지자.”

“예. 무림맹에서 뵙겠습니다.”

팽무성은 곤륜파 제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용진을 쳐다봤다.

다른 곤륜파 제자들과 달리 용진은 사패와 함께 사천에서 머물다 무림맹으로 향할 셈이었다.

용진은 삼대 제자들과 함께 곤륜산을 내려온 이대 제자들을 보며 당부했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나이로 따지면 비슷한 또래이나 용진의 특수한 배분 덕에 이대제자는 용진에게 존대하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용진 사숙. 무림맹에 도착하면 파견을 나오신 사숙과 장로들도 계시니 괜찮을 겁니다.”

“그래, 부탁한다.”

용진은 멀어져 가는 곤륜파 제자들을 잠시 바라봤다. 눈에서 쉽게 떼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련주께서 함께 가시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예. 정말 다행입니다. 도천 어르신 덕분에 곤륜파도 전력으로 대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성도에 도착한 사패는 곧장 무림맹 사천 지부로 향했다.

지부 안으로 들어서자 사천지부장 남석태가 직접 나와서 사패를 맞이했다.

“어서들 오시게.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군.”

남석태는 사패에게 인사를 하곤 사패와 함께 들어온 용진을 보며 물었다.

“이 친구는?”

“원시천존. 곤륜파의 용진입니다.”

남석태도 곤륜비맥에 대해 들은 바가 있기에 바로 용천의 제자임을 알아차렸다.

“사천지부에 온 걸 환영하네. 큰 힘이 되겠군.”

“현재 무림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팽무성의 물음에 남석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석태는 사패 일행을 대회의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사천 지부의 맹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맹도들은 사천 전역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취합하여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남석태는 대회의장 중앙에 펼쳐진 사천과 운남, 감숙의 지리가 그려진 지도를 보여주었다.

지도 위에는 색색의 작은 깃발들이 올려져 있었다. 사천에는 대부분이 푸른 깃발이었고 감숙은 붉은 깃발이 차지하고 있었다.

‘정파와 사파를 나타낸 것이로군.’

팽무성은 운남의 경계와 접해있는 사천 남부로 시선을 내렸다.

운남성의 점창산, 그리고 무림맹 운남 지부가 있을 곤명(昆明)에는 푸른 깃발 대신에 검은 깃발이 올려진 상황.

팽무성의 시선이 운남을 보고 있음을 눈치챈 남석태가 입을 열었다.

“무림맹 운남 지부도 무너진 상황이네.”

“점창파에 쳐들어간 마인들입니까?”

“아닐걸세. 전서구가 날아온 시간을 계산해보면 같은 시간에 동시에 습격받은 것으로 예상되네.”

점창파와 운남 지부를 동시에 무너뜨리려면 상당한 병력이 필요했다. 이런 병력이 갑자기 나타났을 리는 없을 터.

‘역시 중원에 커다란 규모의 주둔지를 지어놓았나.’

마교는 긴 세월을 무림에 공을 들였으니 정체를 숨기고 중원에 스며든 마인이나 문파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점조직처럼 뿔뿔이 흩어진 병력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전생에서도 무림맹이 이를 예상했지만 마교의 주둔지를 찾을 인력을 따로 빼낼 여유가 없었다.

‘초반이 중요하다.’

지금 운남을 휩쓸며 나타난 마교의 병력은 일부에 불과할 터.

초반에 마교의 공세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정리해서 판도를 주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교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무림은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맞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나타나는 마교의 군단 중 하나를 제압하고 그 틈에 중원에 숨겨진 주둔지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교 병력은 어디쯤 있는 건가요.”

당화련의 물음에 남석태는 운남과 사천의 경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들은 무림맹의 자잘한 분타나 소문파는 노리지 않고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곳만 쳐부수며 북상 중이네.”

거기에 마교는 한 무리로 뭉쳐서 이동하지 않고 단이나 대의 단위로 사방으로 흩어져서 이동하고 있었다.

거기에 길목에 들어설 때마다 흩어지고 합쳐지길 반복하며 뭉쳐진 마인의 수가 뒤바뀌니 사천지부로서는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기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쉬이 병력의 규모와 수준을 알려주지 않으려는 마교의 술책이었다.

이러니 정확한 병력의 규모나 수준을 판단하는 것에 시간이 걸려 사천 지부와 사천 연합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실정이었다.

“지부장님! 사도천에서 보내온 급보입니다!”

뛰어온 맹도는 서신을 펼쳐 남석태에게 건네주었다.

서신을 읽던 남석태는 눈길을 돌려 방금까지 보고 있던 지도로 눈을 돌렸다.

“이쪽에 놓아라.”

“알겠습니다.”

지도에는 맹도들의 손에 의해 새로운 깃발이 등장하고 있었다. 귀주 방향에서 사천으로 넘어오는 검은 깃발들이었다.

“귀주 방향에서 새로운 마교 세력이 포착되었네. 귀주의 사도천 분타 중 제일 큰 곳을 무너뜨리고 사천을 향하고 있다는군.”

애초에 귀주성의 사도천 분타는 그리 세력이 큰 곳이 없기에 무너졌다는 소식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 새로운 마교 세력이 등장하여 사천의 다른 쪽에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동남쪽과 서남쪽에서 사선으로 올라오고 있네요.”

당화련은 사천 남부 양쪽에 자리한 마교 깃발의 진로를 쭉 이어보니 사천 중앙에 위치한 성도에 교차하는 것을 확인했다.

“음. 역시 마교의 최종 목표는 성도인가.”

남궁혁의 중얼거림에 무각이 성도에서 살짝 떨어진 곳을 보며 물었다.

“그전에 청성산과 아미산을 노리겠네.”

청성산은 성도의 북서쪽에 위치했고 아미산은 남서쪽 방면에 위치했다.

사천의 주요 문파가 성도의 주변에 밀집된 상황.

마교의 입장에서는 간편하게 성도를 향해 진격하며 보이는 것을 밀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서창에서 마인 오십여 명 발견! 북상 중입니다.”

“구룡에서 마인 백여 명이 북동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흥문에서 귀주성 방향에서 올라오는 마인을 발견! 수는 이백으로 추정됩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정보와 함께 깃발의 위치가 바뀌거나 새로운 깃발이 등장하고 있었다.

“목리 분타의 연락이 한 시진째 두절 되었습니다.”

이렇듯 몇몇 분타는 공격받고 있으니 누락된 정보도 제법 있을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한 가정을 더해내어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했다.

보고를 듣던 남석태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마교가 사천 남부를 짓밟으며 성도까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병력을 분산해야 하는데 양쪽에서 올라오는 마교 병력의 수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 제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찌한다. 시간이 부족하군.’

남석태가 쉬이 명령을 내리지 못할 때 팽무성이 입을 열었다.

“지부장님. 이렇게 하시죠.”

팽무성의 이야기를 듣던 남석태가 살짝 기대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가능하겠나? 무리할 필요는 없네.”

“가능합니다.”

팽무성의 묵직한 대답에 남석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이곳입니까?”

팽무성의 물음에 옆에 있던 무림맹 맹도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주변은 산맥이 매우 가팔라서 무림인도 쉬이 오를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 인원이 다수라면 더더욱.”

팽무성은 창처럼 솟아오른 산맥 사이로 유일하게 길이 터져 있는 넓은 협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주에서 올라오는 마교 병력이 어떤 방향에서 오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 정도 숫자로 가능하겠습니까.”

무림맹 맹도가 뒤를 돌아보며 팽무성에게 물었다. 이 협곡 앞을 지키고 있는 인원은 채 삼십을 넘지 못했다.

주변의 무림맹 분타에서 데려온 무인 스무 명과 사패가 전부였다.

무림맹 맹도도 사패의 위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수로 수백의 마인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괜찮습니다.”

팽무성은 무각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용진을 쳐다봤다.

언뜻 보면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얼굴이지만 살짝 굳어있는 것이 보였다.

‘실전은 처음이라 했었지.’

사패에서는 남궁혁이 빠져 있는 대신 용진이 합류한 상태였다.

본래 군단을 이끄는 것은 사세마왕.

아직 병력도 전부 드러나지 않았고 전쟁 초반부터 마왕이 나설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팽무성은 남궁혁을 남서쪽으로 향한 사천연합에 합류시켰다.

용진을 잘 부탁한다는 용천의 부탁을 떠올린 팽무성은 용진에게 다가갔다.

“용진 도장. 살생은 처음이시지요?”

용진은 자신의 얼굴에 긴장이 드러난 것을 알곤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머리는 괜찮은데 마음이 절로 긴장한 것 같습니다. 아직 싸움은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평생을 곤륜산에서 살아온 용진은 살인은커녕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실전이 처음이기에 절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미타불. 용진 도장. 벌써 이러면 곤란한데.”

무각은 평소와 달리 어깨에 힘이 들어간 용진을 삐딱하게 쳐다보더니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무각은 협곡에 도착하기 전에 지나친 객잔에서 공수해온 술병을 꺼내 용진에게 건네주었다.

“한 모금, 아니 두 모금만 마셔보자고. 그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테니.”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음주라니.

이에 주변에 있던 무림맹 맹도들이 황당한 눈으로 무각을 바라봤고 당화련이 도끼눈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각 오라버니, 미쳤어요? 싸움 전에 무슨 술이에요!”

“아아, 미쳤으니 별호가 광승이겠지.”

“어휴. 진짜!”

무각과 당화련이 투닥거리는 사이에 용진은 무각이 건넨 술병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용두봉에서 간혹 술을 마시던 남궁혁과 무각의 모습을 떠올리던 용진은 용기를 내서 술병에 입을 가져갔다.

“크으.”

목젖이 두 번 넘어가고 용진은 인상을 살짝 구긴 채 무각에게 술병을 넘겨주었다.

“용진 도장. 마셔보니 어때?”

“으음. 그냥 목이 칼칼하고 쓰기만 한 것 같은데 왜 마시는 거죠?”

“다음에 마실 때는 달게 느껴질 모르지. 전투가 끝나고 한잔하자고.”

무각의 익살맞은 웃음에 용진도 결국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몸에 과도하게 들어갔던 힘이 빠진 것을 느낀 용진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나쁘지 않군요.”

승려와 도사의 음주 작당 모의를 들으며 협곡을 쳐다보고 있던 팽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온다.”

협곡의 끝에서 서서히 등장하는 검은 무리. 마치 커다란 개미떼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마인의 행렬은 어느새 협곡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공으로 안력을 높여서 마인들의 수를 가늠하던 맹도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보고에 있던 삼백은 일부에 불과했나. 최소 오백, 아니 육백은 되어 보입니다.”

맹도의 보고를 듣던 팽무성은 무덤덤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내가 혼자 앞으로 간다. 삼십 보 간격이 벌어지면 그때 뒤를 쫓아.”

“알겠어요. 팽 오라버니.”

팽무성이 혼자 달려가는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는 사패의 모습에 무림맹도들은 벙찐 얼굴로 지켜보기만 했다.

“팽 대협이 강하다곤 하지만 홀로 저렇게 보내도 괜찮은 것이오?”

옆에 있던 맹도가 묻자 당화련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테니.”

당화련의 목소리에서 강한 신뢰가 느껴졌지만 맹도들은 아직 반신반의였다.

‘아무리 도왕이라지만 이렇게 혼자 달려들어도 괜찮은 것일까.’

콰르릉

팽무성의 손에 들린 적아도가 붉은 벼락을 뿜어내자 무림맹도의 눈빛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십대고수가 왜 십대고수인지 팽무성의 등이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도왕인가...”

무림맹 맹도 중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개전(開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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