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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69화 (169/200)

169화

커다란 폭발이 터진 듯 문상전 내부가 살짝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엇.”

“이게 무슨?”

난데없는 상황에 다들 당황했지만 문상전주는 되려 눈을 날카롭게 뜨며 보고를 기다렸다.

그러자 문상전의 경계를 맡은 문호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가?”

“살수들입니다. 두 번째 경계선에서 막히자 몸에 두른 화탄을 터트리며 강제로 전진 중입니다.”

“정말 화려한 살행이군. 이목을 끌기 위한 미끼인가.”

콰아앙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폭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폭음 때문에 다른 곳의 타격대도 지원을 오겠지만 혹시 모르니 안쪽으로 대피하시지요.”

문호대주의 조언에 문상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문상전주는 앉아있던 의자의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그르릉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중원전도가 절반으로 쩍 갈라졌다.

갈라진 중원 전도의 아래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별일 없을 걸세. 다들 들어가지.”

모여있던 학사들이 모두 들어간 것을 확인한 문상전주가 마지막으로 들어가자 중원전도가 다시 합쳐지며 계단을 감쪽같이 감추어냈다.

“어서 안쪽으로 신속하게 이동하시게. 기관을 작동시킬 것이니.”

“예. 전주.”

문상전 내부의 비밀통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학사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계단 밑으로 내려가면 흑철이 섞인 일 자(一尺 약 30cm) 두께의 철문이 통로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철문의 뒤로는 이십 장(二十 丈 약 60m) 정도 되는 직선형 통로가 있는데 이 통로에는 온갖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침입자를 막아내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이 통로의 기관진식은 제갈세가에서 직접 설치한 것이라 초절정의 고수도 쉬이 전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안심입니다.”

“본성 안에서 이렇게 대놓고 난리를 피우다니.”

“역시 아무리 솎아내도 안 걸리는 놈들이 있군.”

이 통로의 끝에 있는 작은 공간에 들어서자 학사들은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들을 보였다.

살수들이 여차여차 철문을 뚫는다고 해도 기관진식까지는 돌파할 수 없을 터이니.

문상전주는 안도하는 학사들을 보더니 흘끗 좌측 벽을 바라봤다.

좌측 벽에는 또 다른 통로가 숨겨져 있었는데 이는 무림맹을 탈출할 때 사용하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이상하게 불안하군.’

분명 이 통로까지는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문상전주는 원인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문상전주는 이 불안의 원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허나 이 비밀통로의 끝에는 어둠을 밀어내는 야명주 말고는 자신과 함께 들어온 학사들뿐이었다.

‘음?’

학사들을 살피던 문상전주는 한 학사와 눈을 마주쳤다.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저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다른 학사들과 달리 이 자는 자신과 명확히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

그 뒤틀린 눈웃음에 문상전주는 어깨가 오싹함을 느꼈다.

“이보게, 정 학사.”

문상전주가 자신과 눈을 마주친 학사를 부르려고 할 때, 정 학사의 소매가 펄럭이며 바로 옆에 있던 단문 학사의 미간을 향해 뻗어졌다.

드러난 정 학사의 손에는 손가락 마디 끝에 끼는 작은 철조가 껴있었다.

정 학사의 날쌘 몸놀림도 놀랍지만 그 철조에 반응하는 단문 학사의 움직임도 제법 빨랐다.

학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는 두 사람.

“크흠.”

쌍장을 교차해서 정 학사의 철조를 막아낸 단문 학사가 신음을 흘렸다.

손바닥을 파고든 정 학사의 철조 때문이 아니라 등 뒤로 옆구리를 관통한 단검 때문이었다.

“허엇, 단문 학사! 괜찮으시오!”

“아니, 정 학사! 이 학사! 갑자기 뭐 하는 짓이오!”

갑자기 일어난 사단, 피를 뿜으며 비틀거리는 단문 학사의 모습에 학사들을 대경하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문 학사를 뒤에서 급습한 이 학사가 옆구리의 단검을 뽑아내며 단문 학사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푸욱

그대로 단검이 목젖을 그어버리자 간신히 버티고 있던 단문 학사가 고개를 틀어 문상전주를 잠시 쳐다보더니 그대로 허물어졌다.

“별거 없군.”

“이놈도 설마 이곳에서 기습을 받을 줄은 몰랐겠지.”

이 학사와 정 학사는 한 마디씩 뱉으며 구석에서 자신들을 노려보는 문상전주를 쳐다보았다.

살인을 저지른 두 학사는 방금 죽인 단문 학사를 제외하고는 다른 학사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문상전주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수신호위의 존재를 알고 있었군.”

방금 죽은 단문 학사는 문호대와 별개로 문상전주를 지키는 수신호위였다.

평소에 정체를 숨기고 문상전의 학사로 활동했지만, 저 둘은 수신호위의 정체를 간파하고 있었다.

“이제야 이 지긋지긋한 인피면구를 벗어도 되겠어.”

“후우. 두 달 동안 인피면구를 벗지 않는 것은 제법 고역이로군.”

바닥에 이 학사와 정 학사의 인피면구가 떨어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만살회주와 지옥련주였다.

문상전을 무너트리는 오늘의 살행을 위해서 살문의 수장들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문상전주는 바닥에 떨어진 인피면구를 보며 눈을 좁혔다.

보통 인피면구는 턱밑까지 제작되는데 두 살수가 쓰고 있던 인피면구는 거의 목 아래 쇄골까지 내려오는 수준이었다.

“만살회의 인피면구 제작 기술이 명불허전이로군.”

아무리 정교한 인피면구도 실제 얼굴과 미세한 차이는 있기 마련.

그러나 근 두 달 동안 문상전주는 전혀 이상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인피면구도 그렇지만 저 둘의 연기력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 학사와 정 학사를 한 줌의 어색함 없이 연기해내다니.

“본회의 인피면구 기술만은 천살택문도 따라올 수 없지.”

만살회주가 자부심 섞인 목소리로 말할 때 지옥련주는 주변의 학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수신호위도 죽였으니 느긋하니 다 죽이면 되겠군.”

지옥련주의 말에 벽에 바싹 달라붙어서 떨고 있던 학사들이 흠칫하며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목적이 아니라 문상전 자체를 무너트리는 것이 목적이었구나.’

이곳에 모인 학사들은 그야말로 문상전의 중추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아무리 인재가 넘치는 무림맹이라고는 하나 이들을 대체할 인원을 단기간에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를 다 죽인다 해도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갈 셈인가. 마교를 위해 죽을 각오라도 한 것인가?”

시간을 벌기 위해 뱉은 말이었으나 지옥련주와 만살회주는 그저 콧방귀를 칠 뿐이었다.

“어이, 이곳에 본성을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숨겨진 것은 다 알고 있다. 저 왼쪽 벽이지 아마?”

“본련의 정보력을 우습게 아는군. 우리가 목숨을 바쳐가면서 무리한 계획을 짰는 줄 아나 보군.”

오늘의 계획을 위해 오래전부터 무림맹에 잠입하여 정보를 모으고 사람을 바꿔치기하여 연기해온 두 사람이었다.

지옥련주와 만살회주는 더는 말을 섞을 생각이 없는지 단검과 철조를 내보이며 양측으로 흩어진 학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꽈르릉

그때, 저 바깥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화탄의 폭음과는 조금 달랐다.

멀리서 들려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번개가 치는 소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그 굉음에 지옥련주와 만살회주는 동시에 미간을 구기며 서로를 쳐다봤다.

살수로서 평생을 쌓아온 예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뭐지?”

“빠르게 처리하지. 통로에 기관진식이 잔뜩 깔려 있으니 누가 오든 빨리 오지는 못할 거야.”

꽈릉

지옥련주와 만살회주가 학사들을 향해 몸을 날리는 그 순간, 통로를 막고 있던 철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붉은 벼락을 뿜어냈다.

두 줄기로 뿜어진 벼락은 정확히 지옥련주와 만살회주를 관통하곤 뒤쪽의 벽을 뒤흔들었다.

한순간에 고철이 되어버린 철문을 옆으로 밀어내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팽무성이었다.

“엇! 팽 대협!”

“사, 살았다.”

팽무성을 알아본 학사들은 웃음을 머금고 환호를 지르거나 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쿨럭! 기관진식을 어떻게 이리 빨리...”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지옥련주는 피를 토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분명 방금 통로 입구의 철문이 박살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빨리 통과해냈단 말인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지옥련주는 미간을 구기더니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팽무성은 숨이 끊어진 지옥련주와 아직 숨이 붙어있는 만살회주를 번갈아 봤다.

“너희들의 수준을 보아하니 지옥련주와 만살회주인가.”

팽무성의 중얼거림에 만살회주는 미간을 구겼다.

“팽무성. 반드시 본회에서...”

만살회주가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팽무성은 부득불 들어줄 이유가 없어 그대로 목을 날려버렸다.

‘이놈들의 수급을 들고 할아버님께 가봐야겠네.’

지닌 무공을 보니 각 살문의 수장인 듯하지만, 추측일 뿐이니 확실히 확인할 셈이었다.

“전주님. 괜찮으십니까.”

번개처럼 나타나 단숨에 상황을 정리해버린 팽무성에 문상전주가 얼떨떨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문상전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답게 빠르게 제 모습을 되찾았다.

“고맙네. 팽 대협. 자네가 이 사람들, 문상전을 지켜냈군.”

“감사합니다. 팽 대협.”

“커다란 보은을 입었습니다.”

문상전주와 학사들이 앞다투어 포권을 하며 감사하자 팽무성도 포권으로 답했다.

팽무성의 안내로 통로를 빠져나가던 문상전주는 통로의 상태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통로 전체가 무언가에 짓눌린 듯 금이 가고 일그러져있었다.

‘그냥 통로에 설치된 기관진식을 뭉개면서 돌파했나 보구나. 역시 도왕이다.’

문상전주와 학사들은 산왕군림보가 만들어낸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통로를 빠져나왔다.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오자 문호대주가 팽무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서 양동을 펼치던 살수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팽 대협.”

“아닙니다.”

문호대주에게 대답한 팽무성은 문상전주를 보곤 고개를 숙였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 먼저 이동해보겠습니다.”

“그러시게. 팽 대협.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네.”

문상전주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다시 들었을 때, 팽무성은 이미 문상전 밖을 빠져나간 뒤였다.

‘운이 좋았네.’

팽무성이 언제까지고 살수들을 일일이 색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잡아 놓으려고 한 것인데 제일 주시했던

문상전의 암살을 막아내고 두 살문의 수장마저 처리했으니 한시름 놓은 셈이었다.

전생의 흐름대로 흘렀다면 제법 고생을 했을 무림맹이었지만, 팽무성과 천살택문이라는 변수가 상황을 바꿔내고 있었다.

‘이 새끼들, 너희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마교는 호남과 강서를 침공하는 군단과 지옥련과 만살회로 무림맹을 흔들려 했겠지만, 무림맹은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 * *

강서성 길안(吉安)

길안에는 이백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제법 큰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곧 저녁 시간이라 각 집에서는 저녁 준비를 하느라 허연 연기가 피어올라야 할 텐데 시꺼먼 검은 연기만 솟구치고 있었다.

“후우. 이제야 무림에 나선 느낌이 나는구나.”

곤세마왕은 기분 좋은 듯 가벼운 한숨을 내뱉으며 두 손을 놓았다.

그러자 곤세마왕의 양옆으로 두 구의 목내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좋구나.”

이 마을에 있는 사람의 정혈을 모조리 빨아들인 곤세마왕이 포만감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을 때.

쐐애액

곤세마왕의 면전으로 수직으로 기다란 창기가 쇄도했다. 빛살처럼 날아드는 창기에도 곤세마왕은 여유롭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파아앙

창기와 곤세마왕의 내공이 허공에서 터질 때 창을 어깨에 들쳐멘 창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가 창성인가. 맛있어 보이는군.”

곤세마왕이 반갑게 창성을 맞이했지만 굳은 얼굴은 한 창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을에 진입하며 본 수많은 목내이를 보며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황이었다.

“양민의 정혈을 빨아들여도 네놈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인데 왜 이런 짓을 한 거냐.”

“이보게, 창성. 자네는 음식을 먹을 때 일일이 영양을 따져서 먹나?

그저 배고프고 맛있어 보이면 먹는 것이지. 나도 그러한 것이네. 자연스러운 이치지.”

“그렇군. 자연스러운 이치.”

어느새 어깨에서 내려와 허리에 바싹 붙은 창성의 창이 거칠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심심했는데 이제야 좀 제대로 놀겠군.”

곧장 쏘아진 창성의 창이 쭈욱 늘어나는가 싶더니 곤세마왕의 심장을 노리고 쇄도했다.

“진격!”

“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창성과 곤세마왕의 전투를 신호로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무림맹과 마교의 병력도 맞붙기 시작했다.

열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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