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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76화 (176/200)

176화

콰자작

땅에 기다란 손톱자국이 새겨지며 그 위에 있던 무인들의 몸이 찢겨나갔다.

피가 비처럼 쏟아지고 찢긴 팔다리가 나뒹구는 참상 속에서 피 칠갑을 한 광마종주가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크하하학! 찢는 재미가 없구나! 좀 더 발버둥 쳐라!”

그 말과 달리 광마종주는 주위에 덤벼드는 무인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눈을 번득였다.

이놈은 팔을 뽑아도 방금처럼 사나운 눈빛을 하고 노려볼지 궁금했고, 저놈은 제법 경공이 뛰어나니 두 다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광마종주에게 있어 주위에 널린 무천궁, 무림맹의 무인들과 낭인들은 그저 한 번 가지고 놀 장난감에 불과했다.

“하하하! 어딜 가느냐?”

광마종주는 자신의 장난에 한쪽 눈을 잃은 무인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지닌 신법이 뛰어나 빠르게 몸을 빼고 있으나 광마종주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쫓고 있었다.

물론 광마종주가 곧바로 잡지 않고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었다.

“크윽.”

눈을 잃고 가슴에 큰 상처를 입은 무천궁의 무인은 한계에 달했는지 점점 다리가 느려졌다.

이에 재미를 잃은 광마종주는 무인의 발목을 박살 낼 요량으로 오른쪽 발을 올려 그대로 진각을 밟았다.

꺼엉

광마종주가 기대했던 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아닌 쇳덩이를 찬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마종주의 진각과 무인의 발목 사이에는 누군가의 발등이 껴있었다. 그 발등에서는 희미한 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 딱 보기에도 패 죽이는 게 답일 것 같은 마귀로군.”

광마종주는 자신의 진각을 막아낸 사내를 노려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무각에게 인사를 하듯 손을 들어 살짝 흔드는 광마종주.

“아아, 네놈의 광승이라는 땡중이구나. 반갑다.”

그러나 곧바로 솥뚜껑만 한 손바닥을 활짝 펴서 무각의 머리를 터트릴 기세로 장력을 내질렀다.

광마종주의 기습에 무각은 실소를 터트리며 똑같이 장법으로 응수했다.

쩌어엉

항마신장(降魔神掌)과 광쇄마장(狂刷魔掌)의 손바닥이 맞붙자 두 사람의 주위로 원형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다리의 한쪽이 땅을 딛고 있지 않아 자세가 불안정한 무각과 광마종주.

장력의 충돌에도 두 사람의 자세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시주. 정신을 차렸으면 뒤로 물러나시지요.”

장심을 맞댄 채로 광마종주와 힘겨루기를 하던 무각이 입을 열자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던 무인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크윽. 고맙소.”

그와 동시에 무각은 맞대고 있던 손을 쥐어서 주먹을 쥐었고 광마종주는 활짝 핀 손으로 손톱을 드러냈다.

잔육야마조가 무각의 목과 가슴을 그대로 긁어냈지만, 그것은 불영선하보의 잔상이었다.

손톱에 잔상이 갈라질 때, 무각은 광마종주의 면전으로 아라한신권을 내질렀다.

뻐억

왼손을 들어 권력을 막아낸 광마종주가 머금고 있던 웃음이 미묘하게 변했다.

‘무겁군.’

사흘 전에 찢어 죽인 무천궁 권문주의 주먹도 이런 묵직함을 실어내지는 못했다.

충격을 흘려내기 위해 뒤로 뺀 왼발이 살짝 밀려난 것을 느낀 광마종주는 이내 이마에 깊은 주름을 드러냈다.

카캉

광마종주는 왼손을 오므려 무각의 주먹을 그대로 걸레짝으로 만들려 했지만 금강불괴신공에 가로막혀 날카로운 쇳소리만 나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주먹을 억세게 잡아낸 광마종주는 그대로 오른팔을 크게 휘둘러 잔육야마조를 펼쳐냈다.

천근추를 펼쳐낸 무각은 오른쪽 다리로 무게를 지탱하더니 왼손과 왼발을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무각의 손발은 선명한 수영(手影)을 그려내고 있었다.

손으로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를 펼쳐낸 무각은 꽃처럼 피어나는 수십의 수영으로 쇄도하는 조기(爪氣)를 부드럽게 받아냈다.

무각은 잔육야마조를 받아낸 것에 그치지 않고 뻗어온 오른팔을 금나수의 수법으로 잡아챘다.

이에 광마종주가 급히 팔을 빼내려 했으나 무각의 악력에 수영까지 가세하여 쉽게 빼낼 수가 없었다.

광마종주가 무각의 왼 주먹을 잡고 있던 손을 푸려고 하자 무각이 되려 그 손을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발로 펼쳐지는 관음십팔족(觀音十八足).

발의 움직임에 따라 불어나는 족영(足影)은 관음청강수와 달리 호쾌하게 날아들어 광마종주의 허벅지를 찍어내고 있었다.

퍼버벅

연달아 울리는 열여덟 번의 타격음.

어찌나 빨리 후려쳤는지 열여덟 번의 소리가 네다섯 번으로 들릴 정도였다.

제대로 공격을 적중시켰으나 무각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발끝으로 올라오는 느낌으로 무각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쿠웅

탈인순마공을 떠올린 무각은 관음십팔족을 펼치던 발로 진각을 밟아 자세를 잡았다.

오른쪽에 치우쳤던 무게 중심이 하단 중앙으로 이동했고 무각의 오른쪽 주먹은 허리에 착 달라붙어 언제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쏴앙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로 쏘아지는 무각의 주먹.

그 순간을 노린 듯 광마종주의 손톱이 비어있는 무각의 왼쪽을 파고들었다.

광마종주는 무각의 주먹을 무시했고 무각도 뻗어오는 손톱에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가 상대의 공격을 무시하자 교차된 공격은 그대로 두 사람에게 적중했다.

콰아앙

“헉!”

“뭐지? 동귀어진?”

주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중간중간 두 사람의 생사결을 지켜보던 무인들은 침음을 흘렸다.

서로 일격을 주고 받았음에도 무각과 광마종주는 멀쩡해 보였다.

광마종주의 가슴팍은 주먹 모양으로 살짝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내 다시 제 모양을 되찾고 있었다.

무각도 입고 있는 승복이 그대로 찢겨져 상체가 드러났지만, 전신에 은은한 금빛을 두르고 있었다.

상체를 가로지르는 붉은 자국은 금강불괴신공에 의해 금빛에 의해 빠르게 옅어지고 있었다.

‘광승이 종주의 수준은 아니라 들었는데, 설마 그 사이에 성장한 건가.’

‘반 수, 아니 한 수 정도 모자라나. 그래도 할 수 있다.’

고작 한 수 차이.

그 한 수 차이가 죽음으로 이어지기 마련.

이 한 수 차이를 넘어서서 광마종주를 쓰러트린다면 자신은 이 한 수 이상의 성장을 해내리라.

‘팽 시주. 기다리라고. 보란 듯이 해낼 테니.’

무각과 광마종주는 서로를 가늠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재미있군. 금강불괴신공과 탈인순마공, 과연 어느 것이 더 오래 버텨낼까.”

“금강불괴의 뜻을 모르는 건가. 끝까지 서 있는 것은 나다. 마귀야.”

금강불괴신공을 전력으로 펼쳐낸 무각의 전신에서는 상서로운 금빛이 도드라졌고 탈인순마공을 펼쳐낸 광마종주의 근육은 점점 붉어지고 부풀고 있었다.

“크하하하!”

“아미... 으하하!”

물러섬을 모르는 광승과 광마종주는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광소를 터트리며 주먹과 손톱을 뻗어냈다.

* * *

무천궁의 팔관을 공략하고 있는 병력 말고도 그 뒤편에는 난세마왕이 직접 이끄는 병력이 예비대로 대기 중이었다.

난세마왕은 혹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때 예비대를 보내서 그 변수를 없앨 요량이었다.

전장을 넓게 살피던 난세마왕이 멈칫거렸다. 전장에 나선 종주들의 기척이 움직이지 않고 같은 위치에 묶여있었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군. 팔문주들이 관문 밖으로 나와서 직접 상대하는 것인가?’

무천궁의 팔문주들이 제법 실력이 뛰어나다곤 하나 종주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그 증거로 남부 전선에서 종주들과 싸우던 문주들은 죄다 죽어 나가지 않았던가.

기감을 넓게 펼치고 있던 전장에 새롭게 등장한 하나의 기척을 느끼곤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 기척은 전장을 가로질러 자신이 있는 이곳을 향해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거리가 상당했지만 난세마왕은 내공으로 안력을 끌어올려 곧바로 그 기척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창천검호.”

멸세마왕과 마라단에 의해 지금쯤 저승에 갔어야 할 사패가 멀쩡히 이 땅을 밟고 있었다.

사패를 죽인 멸세마왕과 마라단이 무천궁을 치러 내려올 예정이었기에 난세마왕은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사패가 무천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난세마왕은 계획이 제대로 틀어졌음을 알아차렸다.

“설마 멸세께서 꺾이셨단 말인가.”

새로운 마신 후보가 이렇게 사라지는 것은 천마신교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

“막아라! 상대는 혼자다.”

촤자작

콰앙

그 사이에 남궁혁은 홀로 난세마왕의 병력을 돌파해내고 있었다.

자비 없는 남궁혁의 위력적인 중검을 정면에서 받아낼 마인은 아무도 없었다.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도 못하고 쓸려나가기만 하자 난세마왕이 손을 저었다.

“길을 열어라. 그리고 너희들도 무천궁의 공략에 합류해라.”

“존명!”

난세마왕의 명령이 고마단에게 전달되었고 마인들은 남궁혁을 무시하고 무천궁을 향해 진격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는 난세마왕과 남궁혁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낭왕보다는 강한가. 보타산에서 초월경에 올랐다 들었는데 젊어서 그런가 빠르군.’

난세마왕은 남궁혁의 기세를 살피던 양 소매에서 두 자루의 단봉을 꺼내 들었다.

“자네만 온 것은 아닐 테고 사패가 왔겠군.”

“맞소.”

난세마왕은 방금 생각했던 종주를 상대하는 이들이 팔문주가 아닌 사패임을 눈치챘다.

‘팽무성은 어디 있는 거지.’

멸세마왕이 죽었다면 당연히 그 원흉은 팽무성일 터.

난세마왕은 눈앞의 남궁혁보다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팽무성에게 신경이 갔다.

눈치가 빠른 남궁혁은 난세마왕의 눈짓을 보고 무슨 생각 중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걱정 마시오. 팽 아우는 우리의 생사결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남궁혁이 검을 중단으로 가져갔고 난세마왕도 단봉을 교차하며 자세를 잡아갔다.

“그렇다면 자네를 빠르게 죽이고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군. 아직 교주께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몸이라.”

난세마왕의 말에 남궁혁은 검을 비스듬히 눕히며 비릿하게 웃었다.

“본인의 실력이 미진해서 이미 적을 두 번이나 놓친 경험이 있소.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오.”

“자네 실력으로 가능할까?”

마치 북을 두드리듯 난세마왕은 단봉을 경쾌하게 휘둘렀다.

터터텅

춤을 추는듯한 그 가벼운 움직임과 달리 난세마왕의 단봉에는 남궁혁의 중검 못지않은 힘이 실려있었다.

그 충격에 연신 두 걸음 물러서던 남궁혁은 단봉이 교차하는 순간을 노려 수직을 검을 내려그었다.

꺼엉

단봉이 잘게 떨리며 이번에는 난세마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서로를 노려보던 남궁혁과 난세마왕은 다시 몸을 날려 맞붙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팽무성과 팽호대는 난세마왕이 보낸 예비 병력, 고마단을 마주하고 있었다.

팽호대는 무천궁의 각 관문으로 흩어지려는 병력의 앞을 당당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팽무성은 마인들을 노려보고 있는 팽호대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무천궁에도 사패가 지원 왔다는 소식이 들어갔을 거다. 무천궁이 참지 못하고 스스로 뛰쳐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무천궁에 직접 연락해서 출진을 요청하면 그만이지만 팽무성은 그러지 않았다.

호남성의 전력은 남부에서 이어진 연전연패로 무천궁까지 밀려나며 크게 사기가 꺾인 상황이었다.

사패가 왔다는 소식만으로 어느 정도 사기가 올라가겠지만 더욱 좋은 방법은 개개인의 투기를 스스로 끌어내게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을 지필 역할을 맡게 될 것은 바로 팽무성과 팽호대였다.

“크게 불을 일으켜 보자.”

팽무성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철호가 도를 뽑으며 소리쳤다.

“팽호대! 돌격!”

개미 떼처럼 밀려오는 마인들을 향해 팽호대는 조금의 멈춤도 없이 전진했다.

검제와 독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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