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막내아들-181화 (181/200)

181화

진법으로 들어선 사패.

이 앞에 펼쳐진 진법은 오직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에 집중되어있는지 별다른 저항 없이 쉽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진법 안으로 들어서니 아예 주위의 풍광이 변했다.

“놀랍구나.”

“아미타불. 대체 진법이 얼마나 넓은 거야.”

사패가 입구로 들어선 쌍둥이 봉우리 주위로는 원래 크고 작은 봉우리가 빼곡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진법 안에 들어서니 끝없이 늘어져 있던 봉우리는 온데간데없고 웬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숲의 넓이만 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이 일대에 펼쳐진 진법의 넓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진법이라면 설치하는 비용은 물론이고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주변의 이목을 피해서 은밀하게 작업했다면 더더욱.

“마교가 정말 오랜 시간 준비했나 보군.”

이곳에 처음 들어선 팽무성도 이런 규모의 진법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따라가죠.”

사패는 먼저 진법에 들어간 마인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뒤를 따라갔다.

숲의 초입부에는 전혀 경계가 없었지만 조금씩 숲에 숨어있는 기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의 특급 살수에 필적하는 은신술과 희미한 기척으로 숨어있지만 팽무성의 기감을 벗어나기는 요원한 일.

마교 입장에서는 촘촘한 경계망을 세웠겠지만 팽무성의 눈과 기감에는 그 빈틈이 확실히 보였다.

‘어림없지.’

개중에는 초절정 고수조차도 자칫 놓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들도 섞여 있었다.

만약 보통 첩자였다면 어찌 진법을 찾아 침투하더라도 이 숲에서 모조리 붙잡혔을 터였다.

조용히 경계망을 뚫어낸 사패는 결국 숲의 끝에 아무 일 없이 도달했다.

그런 사패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절벽을 연상시키는 드높은 성벽이었다.

-사도천 본성보다 커 보이는군.

성벽 위의 경계는 숲에 비해 훨씬 삼엄했다. 그 크기에 걸맞게 마인들은 일정 간격으로 빼곡히 서서 각자 다른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안쪽의 마인들은 경계를 서고 있는 마인들에게 이상이 없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억지로 들어가려 한다면 어떻게든 다른 곳에 의해 발각이 되는 구조였다.

거기에 간혹 성을 출입하는 이들은 소속과 암어를 확인했는데 그 암어가 다 제각각이었다.

게다가 마교는 함께 활동하는 최소 인원이 여섯 명이라 사패처럼 네 명이 다니는 무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몰래 들어가는 것은 힘들겠지요.

팽무성의 물음에 남궁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복이랑 암어를 어떻게 확보한다고 해도 팽 아우 때문에 입구에서 바로 걸릴 걸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팽무성의 전음에 가만히 듣고 있던 무각이 말했다.

-어이, 팽 시주. 마교의 일반 무인 중에 팽 시주처럼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는 애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렇지 않아도 무림에서 손꼽히는 거구였던 팽무성이다. 그러던 차에 곤륜산에서 환골탈태를 겪으며 더욱 커졌다.

어쩌면 팽무성은 몸의 크기만으로는 이미 천하제일일지도 몰랐다.

마교에서도 이런 덩치는 흔하지 않을 테니 단번에 이목을 끌 것이 분명했다.

-푸흐, 애초에 맞는 무복을 구하는 것도 어렵겠는데요.

-아.

무각과 당화련이 웃음을 참으며 보내는 전음에 팽무성은 이제야 깨달은 듯 헛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무리하면 안까지 비집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네.

-동감입니다.

천지마신의 행보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빨리 마교의 숨겨진 주둔지의 위치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커다란 성과였다.

‘이 정도면 천운이다.’

이제 이 정보를 무사히 무림맹에 전달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렇게 사패가 조용히 숲을 빠져나가려는 데 갑자기 성문이 열리고 있었다.

두두두

먼지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철갑에 커다란 언월도를 들고 있는 기마대였다.

‘철마흑무단.’

총 오백으로 이루어진 마교의 기마단.

같은 기마대인 사도천의 적철혈랑대와 무림맹의 청운파기대를 연달아 전멸시킨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철마흑무단은 출동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연이어 성안에서 대기 중이던 타격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격대는 물론이고 마교의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성을 나와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적검대, 마룡단, 흑검십삼객, 사하오마.’

하나같이 전생에 악명을 떨치던 놈들이었다.

이를 계속 지켜보던 팽무성의 눈에도 살짝 살기가 돌았다.

역시 마교의 주둔지답게 성에서 대기하던 전력 중에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뭐지? 어디론가 출진하는 건가?

무각의 전음에 팽무성이 고개를 저었다.

“꼼꼼히 수색해라!”

“발견하면 싸우려고 하지 말고 신호탄부터 터트려!”

성문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타격대는 갑자기 주위의 숲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소마단이로군.’

무림맹의 의룡단과 같이 마교에도 후기지수들로 이루어진 타격대가 있는데 지금 숲을 수색하고 있는 소마단이 바로 이들이었다.

본래 숲에서 은신한 채 가만히 경계를 서던 마인들도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침입한 것이 걸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도 의미가 없겠구나.

팽무성은 전음으로 말하는 것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이놈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에 빠르게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이곳은 엄연한 마교의 영역, 광서성.

최악의 경우 십만대산 뿐만 아니라, 광서성의 모든 길목에 마교 병력이 배치될 것을 예상하고 움직여야 했다.

“가세.”

“흐흐흐.”

남궁혁과 무각이 팽무성의 좌우로 섰고 그 뒤에 당화련이 자리를 지켰다.

나무 사이를 밟으며 이동하던 사패는 열 보를 채 나아가기도 전에 두 명의 마인과 마주쳤다.

이에 마인 한 명은 달려들고 뒤에 있던 마인은 품속의 신호탄을 꺼냈다.

그러나 사패는 이를 무시하며 지나갔고 그 뒤에 마인들은 목이 떨어진 채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엇!”

“이쪽이다! 시체야!”

순식간에 마인 둘을 베어낸 팽무성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마단 마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힘차게 나뭇가지를 밟으며 앞으로 튕겨졌다.

퍼펑

마인의 외침과 함께 신호탄이 터지자 숲을 수색하던 마인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촤악

“이놈들!”

앞에서 튀어나온 마인 셋을 일격에 베어내자 이어서 좌우에서 마인들이 연이어 나타나며 검기를 날렸다.

이에 남궁혁이 검기를 분쇄함과 동시에 마인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고, 무각은 팔꿈치로 마인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당화련은 뒤쪽에 은밀히 독을 하독하여 뒤를 쫓는 소마단이 자연스레 중독되도록 손을 썼다.

숲을 수색하는 마인들은 상대적으로 무위가 약한 이들이라 사패를 한순간이라도 잡아낼 수 있는 마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숲을 벗어나 진법을 통과하는 것까지는 수월하게 해낸 사패.

그러나 진법을 빠져나온 이 순간부터가 진짜였다.

“오는군.”

전원이 장창을 들고 있는 마인들을 본 팽무성은 적아도를 사선으로 비틀며 중얼거렸다.

“저놈들이군! 신호탄을 터트려라!”

퍼엉

시체를 발견한 소마단과 다른 색깔의 신호탄을 터트린 전창대는 부채꼴로 퍼지더니 일제히 사패를 향해 장창을 찔러 넣었다.

콰르릉

사패를 향해 찔러오는 장창이 채 닫기도 전에 다섯 줄기의 도격이 분화하며 장창을 일제히 베어냈다.

장창이 단숨에 쪼개짐에도 마인들은 당황하지 않고 허리춤의 단창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사이 적아도가 턱밑까지 뻗어오고 있었다.

팽무성이 전방을 박살 내는 사이에 다른 사패는 팽무성을 보조하며 빠르게 길을 뚫는 것에 집중했다.

두 호흡에 전창대 스물을 베어낸 사패는 남은 마인들을 무시하고 곧바로 십만대산의 바깥쪽을 향해 내달렸다.

이 어마어마한 격차에 살아남은 전창대는 쫓을 생각도 못 한 채 멀어져가는 사패의 등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십대고수라도 잠입했단 말인가.”

“아닙니다. 십대고수의 인상착의에 해당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당장 추가 신호탄을 터트려라. 보통 놈들이 아니다.”

사패는 변장을 푼 상태가 아니었기에 마인들은 자신들을 학살하고 지나간 상대의 정체를 조금도 유추할 수 없었다.

퍼퍼펑

언제나 고요했던 십만대산은 하늘에서 색색의 신호탄이 연달아 터지며 그 정적을 깨트리고 있었다.

그 신호탄의 근처에는 어김없이 사패가 마인들을 휩쓸고 있었다.

콰앙

옆에서 휘둘러지는 낭아봉을 거칠게 쳐낸 남궁혁이 길게 검기를 내지르며 말했다.

“지금 무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인보다 수준이 뛰어난 듯싶구나.”

“아직도 힘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 이건가? 아미타불.”

뛰는 자세 그대로 대력금강장의 거대한 장력으로 마인 다섯을 동시에 날려버린 무각은 입꼬리를 올렸다.

“저기 앞쪽에 또 오네요. 뒤에도 스무 명 정도가 따라붙었어요.”

소매에서 새로운 독을 꺼내는 당화련의 말과 함께 적아도가 떨리며 붉은 도격을 쏟아냈다.

도격이 길게 늘어지며 수십의 마인을 그대로 관통했지만, 그사이 다른 길목에서 새로운 타격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서 발을 묶어야 한다.”

“전사대, 은파대. 좌우를 막아라!”

다섯 방향으로 통하는 길목이 모두 가로막혀 포위당했지만 사패는 망설임 없이 마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사패는 멈출 줄 모르는 소용돌이와 같이 덤벼드는 마인들을 계속해서 삼켜내고 있었다.

하나 타격대의 대주들은 계속해서 마인들이 갈려 나가고 있었으나 명령을 내리는 데 있어서 주저가 없었다.

이는 명령을 받는 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크악!”

“저만한 고수면 마이각이 모를 리가 없는데, 누구지?”

서로 연동하며 움직이는 네 개의 타격대는 이내 인의 장벽을 이루어내 동시에 사패를 짓누르려 들었다.

그러자 앞으로 쭉 나아가던 사패가 뛰어가던 자세 그대로 사방으로 절기를 펼쳐냈다.

콰아앙

그 엄청난 위력에 사패를 좁혀오던 포위망이 다시 넓게 벌어졌다.

“잠깐, 저들의 무공 조합. 사패가 아닌가?”

“뭣이? 사패?”

이제 슬슬 마인들도 사패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콰카캉

마인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거나 폭마공으로 억지로 걸음을 막으려 해도 사패의 걸음이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콰르릉

뇌성을 터트리는 도격이 투박한 선을 그려냈다. 적아도가 거칠게 사방으로 틀어지며 그 주변을 모조리 찢어냈다.

이에 앞을 막아서던 타격대 서른이 단숨에 휩쓸리자 그 파괴력에 경악한 대주들은 팽무성임을 확신했다.

“팽무성!”

“사패, 사패다! 비상을 알리는 신호탄을 터트렷!”

대주의 명령에 옆에 있던 수하가 손에 쥐고 있던 것과 다른 신호탄을 터트렸다.

십만대산의 하늘에서 처음으로 드러난 검은색 신호탄.

이 신호탄은 마치 흑운이 낀 듯 바로 사라지지 않고 하늘에 오래 머물고 있었다.

기어코 분지의 포위를 뚫어낸 사패는 길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당화련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십만대산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상한데요?”

“그렇구나.”

그러나 사패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십만대산에 퍼진 마교의 타격대는 사패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앞을 가로막은 타격대 하나를 해치우면 곧장 두 개의 타격대가 새롭게 등장할 정도였다.

아무리 늦어도 타격대가 새롭게 등장하는 시간이 반 각(半刻 약 7~8분)을 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 각(一刻 약 15분)이 지났음에도 새로운 병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묵묵히 앞을 보며 달리던 팽무성이 걸음을 멈췄다. 이에 다른 사패도 경공을 멈추곤 팽무성을 쳐다보았다.

“팽 아우, 왜 그러나?”

“팽 시주?”

두 사람의 물음에도 미간을 구긴 팽무성은 답하지 않고 전방을 응시했다.

앞에 있는 내리막길을 올라오는 한 노인이 머리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지런히 정리한 흰머리와 백미(白眉), 잘 정리된 흰 수염은 가히 선풍도골의 풍모를 그대로 보였다.

츠츳

처음에는 시골의 촌부와 같던 노인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폭급한 기세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처음의 고아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만물을 찢어버릴 듯한 사나운 기세에 주변의 초목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두 번째 걸음에 눈이 내려앉은 듯했던 노인의 머리칼과 눈썹, 수염이 검게 물들었다.

세 번째 걸음에 얼굴의 주름이 점점 펴지더니 어느새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걸음마다 급격하게 젊어지는 노인의 기괴한 모습에 사패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켜야 했다.

그 강렬한 기세에 머리의 매듭이 풀려 머리칼이 마구잡이로 흩날렸다.

난발이 된 노인, 아니 중년인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허허롭게 걸어오는 촌부는 어디 가고 산마저 뭉개버릴 웅혼한 기세를 흘리는 중년의 패자(?者)가 사패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패뿐만 아니라 이 일대를 뒤덮어버리는 중년인의 기세는 가히 천외천이라 할만했다.

이에 팽무성을 제외한 사패의 얼굴이 핼쑥해질 정도였다.

“아미타불.”

“큭.”

무각과 당화련은 그 기세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내상을 입었는지 비틀어진 입 사이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쿠웅

산왕군림보를 밟으며 중년인의 기세를 몰아내기 시작한 팽무성은 곧장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자신과 서서히 거리를 좁히며 기세를 밀어내는 팽무성을 보며 중년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멸세가 죽었다더니 그럴만했군.”

처음으로 입을 연 중년인을 보며 팽무성이 물었다.

“하늘과 땅, 어느 쪽이오.”

그 질문에 중년인이 흥미로운 눈으로 팽무성을 바라봤다.

“이상하구나. 네가 그것을 어찌 알고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중년인은 두 눈에서 스산한 한기를 흘리며 대답했다.

“내가 바로 천마신이다.”

대답과 동시에 사패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는 천마신(天魔神).

삽시간에 장심으로 모이는 막대한 내공에 주변의 대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에 팽무성이 눈을 번쩍이며 힘껏 적아도를 휘둘러 천마신에게 덤벼들었다.

십만대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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