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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85화 (185/200)

185화

곤륜파를 무너뜨린 천마신교 본군은 곧장 감숙성으로 향했다.

감숙성은 사도천을 비롯하여 사도칠문의 세 곳이 자리 잡은 사파의 중추.

이 감숙성이 무너진다면 사파는 거의 씨가 마르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천마휘가 이끄는 본군은 두 갈래로 나뉘어 움직였다. 일군은 사도천 본성으로 진격했고 이군은 감숙성을 돌며 사도칠문의 세 곳을 차례로 휩쓸었다.

그 덕에 감숙성의 전역에서 피바람이 불며 거대한 전장이 된 형국이었다.

사도천 본성의 상징인 붉은 성문은 검은 연기를 뿜은 채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소천주! 동쪽 십삼 구역이 뚫렸습니다!”

“그대로 계속 뚫릴 거냐! 막아내! 적련대와 붕극대를 보내라!”

“예!”

철무련의 호통에 보고하던 무인은 급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도천의 소천주로 올라선 천무련은 본성을 넘어선 마교를 상대로 사도천 무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철무련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본성 바깥에 이루어진 두 겹의 방어선을 이틀 만에 뚫고 성문을 박살 낸 마교의 전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소천주. 경투문이 불타올랐다는 첩보입니다.”

사도칠문 중 하나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철무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쩌적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가자 책상 윗부분이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철무련도 직접 나서고 싶었으나 오대장로들도 직접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판국이다.

사도천 본성은 그 넓이도, 병력의 수도 그 규모가 있기에 전체적으로 통솔할 이가 필요했다.

구우우웅

사도천 본성 전체에 울리는 거대한 진동.

그 진동이 끝나자 폭풍과 같은 기파가 본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기파에 본성 곳곳에서 싸우던 사도천 무인과 마인들이 오싹함을 느끼며 순간 전투를 멈췄다.

사도천 전체로 퍼지는 그 기파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위기를 겪은 탓이었다.

철무련은 그 기파가 퍼져나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사도천 본성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만사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주.”

만사전은 언제나 보던 그 웅장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도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만사전은 지붕이 폭삭 주저앉아 무너진 상태.

그 폐허 위에서 사천은 지마신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사천의 손아귀에는 주홍빛 바람이 거세게 맴돌고 있었다.

사천이 폭발시킨 기세가 질풍처럼 밀려들자 지마신도 똑같이 기세를 풀어냈다.

이에 두 고수의 기세가 사도천 본성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쩌저적

두 절대경 고수의 충돌에 사도천 본성 전체가 거칠게 요동쳤다.

떠오르는 만사전의 잔해를 보며 사천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안휘성에서 설쳤다더니 지금은 감숙성이라, 아주 바쁘게 움직이는군.”

“음, 확실히 그래도 십대고수보다는 삼천이 더 재밌긴 하군.”

지마신은 짐승이 물어뜯은 듯 거칠게 찢긴 소맷자락을 흔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지마신이 흔드는 손에서는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서서히 주변을 검게 잠식하는 마기에 눈을 찌푸린 사천은 두 손에 일으킨 와풍의 크기를 점점 키워냈다.

“하늘과 신, 과연 누가 이길까.”

지마신의 중얼거림에 사천이 용포를 벗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말이 많군. 너는 입을 찢어 죽여야겠다.”

* * *

한낮임에도 천마휘가 앉아있는 주변은 마치 어둠이 깔린 듯 칙칙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감숙의 전장은 지마신과 검마군에게 일임한 천마휘는 대부분의 시간을 운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역시 용천. 탐천마공으로도 한 번에 갈무리하기가 힘들군.’

천마휘는 단전의 포만감을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팔 할 이상을 흡수했으니 나머지는 시간문제였다.

가까워지는 검마군의 기척을 느낀 천마휘는 운기를 멈추고 눈을 떴다.

만마혈검대가 길을 열어주자 검마군은 천마휘의 앞에 오체투지하며 입을 열었다.

“교주. 급보입니다.”

“급보?”

경투문을 멸문시키고 다른 사도칠문인 비은대방을 치러 갔던 검마군이었다.

그런 검마군이 급보를 가져오자 천마휘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십만대산에 사패가 발을 들였습니다.”

천마휘가 조용히 응시하자 검마군은 낮은 목소리로 보고를 이어갔다.

천마신이 죽었다는 소식에는 주위에 호위를 서는 만마혈검대마저 잠시 꿈틀거릴 정도였다.

보고를 다 들은 천마휘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천마신을 비롯하여 광서성의 흑성(黑城)에 상주하던 장로들이 절반 이상 죽어 나갔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병력의 손실이 제법 컸다.

이렇게 피해가 큰 데 정작 사패는 모두 놓쳐버렸으니 마교로서는 뼈아픈 실책이었다.

“크하하하하! 역시 팽무성이로구나. 그래, 내가 용천을 먹었으니 이 정도는 해주어야지.”

그 웃음에 검마군은 침묵을 유지했다.

천마휘는 보고를 듣고도 도리어 흥미롭다는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대계를 전체적으로 수정해야겠군.”

본래 천마휘는 사도천을 지마신에게 맡기고 사도칠문을 밀고 섬서로 넘어가 종남파와 화산파를 불태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천마신이 흑성의 병력을 이끌고 호남을 점령하고 호북으로 넘어와 도천을 상대했을 터.

무림맹은 북과 남, 동쪽이 포위되어 훗날을 기약할 수도 없이 그렇게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사패라는 아주 소수의 장기말이 천마신교의 판을 아예 뒤집어놓고 있었다.

“사패, 아니 팽무성이 혼자 무림에 숨을 불어넣고 있군.”

짜인 대계가 거의 무너진 상황에도 천마휘는 그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천마휘는 전체적인 전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천과 하남, 하북의 전선도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했나.”

“맞습니다.”

“섬서의 침공은 중단한다. 빠르게 흑성으로 향한다.”

흑성의 지휘부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고 실질적으로 교인들을 이끄는 단주, 대주의 피해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섬서의 침공보다 흑성의 병력을 재정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각 전선의 군단을 모두 철수시켜라.”

전선의 교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계속 병력을 묶어놓아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천마휘의 본군이 광서로 철수하는 마당에 분산된 병력은 혹여 반격의 여지를 줄 수도 있었다.

“본교를 재정비하고 이 전쟁의 끝을 내도록 하자.”

“존명!”

비은대방을 멸문시킨 천마휘의 본군은 방향을 바꿔 광서성을 향해 남하했다.

* * *

무림맹 대회의장.

무림맹을 이끄는 주요 간부를 비롯해 정파 무림의 거목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 구파일방도 전사한 장문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무천궁주도 팔문주 중 두 명을 대동한 채 대회의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런 인원 구성이 가능했던 것은 마교가 무림 전역의 군단을 철수시켜 잠시의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무림맹주인 남궁구가 자리에 앉자 비로소 대회의장의 모든 좌석이 채워졌다.

-팽가주. 본가의 가솔들을 받아주어서 감사하오.

안휘성이 마교에 의해 쑥대밭이 되면서 남궁세가의 가솔들은 하북팽가에 몸을 의탁하는 상황이었다.

남궁구의 전음에 팽진연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이를 본 남궁구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무천궁주를 보며 포권으로 예를 갖추었다.

“궁주. 먼 길 이리 걸음 해주셔서 감사하오.”

“아닙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쪽으로 가는 것이 서로에게 편한 일이지요.”

이어서 남궁구의 간단한 인사치레가 이어지고 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것부터 알려드려야겠군. 도왕이 천마신을 쓰러트렸다는 정보를 입수했소. 마교에도 워낙 파장이 커서 확실할 것이오.”

남궁구의 나직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오오!”

“아니, 잠깐. 마신은 절대경의 고수라 알고 있는데 그럼 도왕이 절대경에 올랐단 말인가.”

“하하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강호의 홍복입니다!”

한껏 달아오른 강호 명숙들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중 몇몇은 팽진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팽무성의 소재가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팽진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자신에게 쏠린 눈길을 느낀 팽진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어딘가에 잘 있을 겁니다. 마교가 무성이를 죽였다면 벌써 알려졌을 것입니다. 다들 걱정 마시지요.”

팽진연의 목소리에서는 팽무성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다.

이에 소림사 방장, 현진 대사가 미소를 지었다.

“소승이 보기에 그 아이는 장수를 할 관상이더군요.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마치 번개처럼 화려하게 말입니다. 아미타불.”

이어서 문상전주가 광서성과 광동성의 거대한 지도를 배경으로 전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마교가 정비를 위해 십만대산에 모인 이 시기가 동시에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문상전은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전쟁을 이어나가는 것보다는 무림의 힘을 한데 모으는 게 더 유리하다고 결론을 지었다.

“총력전인가...”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대회의장에 모인 이들은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사패가 광서성을 탈출하면서 마교의 주둔지를 제대로 흔들어준 덕분에 이목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문상전주는 세 개의 검은 깃발을 꺼내서 지도의 각 위치에 올려놓았다.

“무림 서부를 공격하던 병력은 광서성, 동북부를 공격하던 병력은 광동성에 위치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두 개의 군단은 십만대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배치되어 십만대산을 지키는 듯한 진영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십만대산에는 기존의 흑성 병력과, 천마휘가 이끄는 최정예까지.

마교가 정비를 위해 물러났다고는 하나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감숙성의 사도칠문 두 곳이 무너지고, 사도천 본성도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소. 자세한 정보가 온 것이 있소?”

황보세가주의 질문에 문상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천에 지마신이 출현해서 사도천주와 자웅을 겨루었다고 합니다.”

두 절대경 고수의 충돌 소식에 회의장에 모인 이들은 침을 삼키며 문상전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지마신이 중상을 입고 마인들과 함께 후퇴했다고 합니다. 다만 사도천주도 위중한 상처를 입어 소천주가 사도천을 움직이는 상황입니다.”

“허어...”

“그 사도천주가 결판을 내지 못했단 말인가.”

천하제일에 제일 가깝다던 사도천주마저 마신을 완전히 꺾어내지 못했다는 소식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이번 총력전은 사도천도 동의했습니다. 사도천주 대신에 소천주가 사도천의 병력을 이끌고 사천 연합과 합류할 것입니다.”

무림을 지탱하는 세 축인 무림맹, 사도천, 무천궁의 하나로 뭉쳐 마교와 총력전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팽무성이 전쟁을 준비하여 그려낸 그림이 드디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구는 대회의장에 모인 각 문파의 수장들과 명숙들을 보며 말했다.

“무림맹은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모두 십만대산으로 향할 것이오. 물론 그것은 본인도 마찬가지. 이번 총력전에서 패배하면 뒤는 없소.”

남궁구의 굳은 목소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과 마교의 전 병력이 충돌한다면 결과가 어찌 나오든 전쟁을 마무리 짓는 결정타가 되리라.

“듣기로 마교주가 용천을 쓰러트렸다 들었는데 절대경의 고수 둘을 어찌 감당하실 생각이십니까.”

화산파 장문인, 건륜 진인의 질문에 다른 강호 명숙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주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걸세. 그전에 중상을 입은 지마신을 도천이 처리해야겠지. 아니면 십대고수 셋이 합공하여 도천을 돕던가, 도천이 마교주를 상대하는 동안 발을 묶을 생각이네.”

“십대고수 셋 말씀이십니까?”

현재 무림맹에 있는 십대고수는 검존과 낭왕 두 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란 말인가.

“지옥련과 만살회의 정리는 끝났다. 본인을 비롯하여 천살택문도 총력전에 참가할 것이다.”

회의장 구석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명숙들이 고개를 돌리자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살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살왕은 천살택문주만 쓸 수 있는 검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 검은 가면은 살왕의 상징이기도 했다.

“살왕!”

“천살택문까지 합세하는 건가.”

강호 명숙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왕과 천살택문이 뒤를 지켜준다면 그보다 든든할 것이 없었다.

“자, 그럼 작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상세한 작전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도천이 대회의장의 문을 벌컥 열고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급보다!”

대부분의 명숙들은 도천이나 되는 인물이 말단 무인 대신에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니 의아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구는 도천이 팽무성의 소식을 기다리며 전서구 앞에서 먹고 자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광동성에 배치되었던 군단이 거의 괴멸되었다는 소식이다. 살아남은 마인들은 십만대산으로 후퇴했다고 한다.”

“광동성?”

“갑자기 어느 곳에서 그 병력을 밀어냈단 말입니까.”

쉴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도천은 씨익 웃으며 팽진연을 쳐다봤다.

“나도 모른다. 그런데 특이사항으로 광동성의 군단이 모여있던 장소에서 끊임없이 커다란 뇌성이 울리고 붉은 벼락이 쳤다고 하더군.”

도천의 말에 강호 명숙들이 일제히 팽진연을 쳐다봤다.

이에 팽진연도 쐐기를 꼽듯 입을 열었다.

“무성이입니다.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멀쩡한가 보군요.”

“오오. 도왕!”

갑자기 들려오는 팽무성의 소식에 대회의장이 불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무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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