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막내아들-191화 (191/200)

191화

쿠우우우웅

낙호곡을 근원지로 퍼져나오는 기파는 협곡을 넘어 전장 너머까지 퍼지고 있었다.

쏟아진 기파는 평야를 넘어 문상전주가 올라타고 있는 망루까지 흔들었다.

“크윽.”

강풍이 부는 듯 흔들리는 망루에 문상전주는 난간을 붙잡고 몸을 지탱해야만 했다.

‘이것이 절대경의 싸움인가.’

단순히 기파를 쐬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저릿거리고 심장이 조여왔다.

“전주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던 문상전주의 귀에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돌리던 문상전주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림 연합의 뒤쪽에서 새롭게 등장한 마인들.

“역시나.”

마교가 병력을 따로 빼놓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문상전주는 곧바로 후방에 빼놓은 타격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후방을 지키던 무림 연합의 타격대와 마교 별동대의 충돌.

“크윽, 버텨라!”

“이놈들, 너무 강합니다.”

허무할 정도로 후방의 병력이 쉽사리 무너지고 있었다.

칠흑의 기마대가 진영을 단번에 무너트렸고 그 뒤로 귀신 가면을 쓴 마인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곡도를 휘둘렀다.

무림 연합의 후방을 급습한 것은 철마흑무단과 만마선귀단.

하나는 마교 최강의 기마대였고, 다른 하나는 만마오단에 속했는 최정예 타격대.

“설마 저 정도 힘을 지닌 타격대가 아직도 남아있었나.”

빠르게 무너지는 무림 연합의 후방을 보던 문상전주는 침음을 흘렸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예비대에 속한 타격대뿐이었다.

전황은 팽팽하여 정예에 속하는 타격대는 물론이고 무천궁주와 장문인, 가주들을 비롯한 고수들도 전장에 나선 뒤였다.

“저들을 막을 병력이 없다.”

“전주!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타격대를 물릴까요?”

“안돼! 그러면 이 전장은 필패다. 예비대로 해결하는 수밖에.”

문상전주의 명령으로 예비대가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보고 흑무단주와 선귀단주가 코웃음을 쳤다.

“먹물쟁이들이 머리를 굴리나 보군.”

“아직도 모르는 건가. 무림은 결국 무력이라는 것을.”

“그렇지. 무림은 무력이다.”

갑자기 끼어든 낯선 목소리에 흑무단주와 선귀단주가 급히 고개를 틀었다.

그 순간, 사선으로 솟구쳐 교차하는 두 줄기의 피 분수.

흑무단주와 선귀단주의 목이 동시에 허공을 나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엇?”

“단주?”

곁을 지키고 있던 마인들은 단주들의 목이 떨어지고 나서야 이변을 알아차렸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살왕이다!”

목이 날아간 두 단주의 사이에 서 있는 살왕을 보고 마인들은 경악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아주 고요하게 십여 명의 목이 다시 한번 허공을 날고 있었다.

마인들이 비명을 지를 틈 따위는 없었고 떨어진 목이 땅에 떨어지거나 심장을 뚫는 아주 미세한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살왕을 시작으로 무림 연합의 뒤를 치던 마인들의 뒤로 천살택문의 살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살행 시작이다.”

살왕과 천살택문이 평야의 전장에 합류했을 때, 평야 안쪽은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단주! 삼대 쪽으로 새로운 타격대가 지원을 왔소!”

“일대에도 적선대라는 놈들이 가세했습니다!”

밀려오는 보고마다 의룡단의 위기를 알리는 것뿐이었다.

일향은 곧바로 각 명령을 내려 대처했지만 의룡단은 위태롭게 버티는 게 전부였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소마단을 기세 좋게 무너트렸지만, 전장은 한 상대를 쓰러트린다고 끝이 나는 곳이 아니었다.

적들은 쉴새 없이 밀려들었고 의룡단은 방진으로 검진을 바꾸어 버텨내고 있었지만, 사상자와 부상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흐아아압!”

원래 쓰던 장창과 반쪽만 남은 창성의 창대를 양손에 들고 사방팔방 휘두르며 마인들을 찔러내는 묵연사.

묵연사는 온몸의 상처로 인해 입고 있던 백색 무복이 검붉게 물들고 있었다.

묵연사 뿐만이 아니었다.

검진을 누비며 단원들을 구하던 대주들도 하나둘 부상이 늘어났고 이는 일향도 마찬가지였다.

왼팔을 깊게 베인 일향은 소매를 찢어 대충 묶고는 마인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하아.”

호흡을 고르기 위해 숨을 천천히 내쉬는 일향의 입에서는 어느새 단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향은 점점 내려가는 매화검을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곤 다시 다잡았다.

‘스승님. 버텨내겠습니다.’

촤자자작

이내 다섯 송이의 매화가 피어나 마인들 사이로 퍼지니 그 사이로 핏물이 솟구쳤다.

“크윽! 도와주십시오!”

“뚫린다!”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단원들의 다급한 외침에 일향이 급히 몸을 꺾으려 했으나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휘청였다.

‘이런.’

그 사이 마인들의 공세에 방진이 무너지려는 순간, 단번에 수십 줄기의 직선이 그어지며 마인들을 베어놓았다.

쉬이 볼 수 없는 그 쾌속한 도격, 젊은 나이에 이런 경지의 쾌도를 펼칠 수 있는 이는 무림에 드물었다.

“광도!”

무천궁 무인을 이끌고 의룡단을 구해낸 한백유는 일향을 알아보곤 몸을 날렸다.

“무천궁 소궁주. 한백유라고 하오. 이런 깊숙한 곳에서 오래 버텨내다니, 대단하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향이 포권하는 사이 반대쪽에서 철무련이 자신의 호위대인 철권대를 이끌고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의룡단을 도우라는 명령을 내린 철무련은 일향과 한백유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광도에, 만향검인가.”

“소천주께서도 참전하셨군.”

“맹주가 마왕을, 궁주는 종주 둘을 상대하고 계신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소.”

쿠르르릉

협곡에서 다시 터져 나오는 굉음과 뒤이어 퍼져나오는 기파에 이 셋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굉음이 터질 때마다 마치 협곡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실제로 협곡에 가까운 곳은 굉음이 울릴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 듯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점점 싸움이 격렬해지는 것 같군.”

철무련이 날카로운 눈으로 협곡을 쳐다보자 한백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떤 전투를 벌이는 것인지. 팽 대협이 걱정되오.”

이에 전투 내내 굳어있던 일향의 얼굴이 처음으로 펴지며 웃음을 보였다.

“팽 형님께서는 잘 해내실 겁니다. 다들 준비하시지요.”

일향은 또다시 몰려드는 마인들을 보며 매화검을 겨누었고 한백유와 철무련도 일향의 양옆에 서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어디 그 유명한 만향검과 철권의 무공을 식견해 보겠소.”

“흥.”

철무련의 코웃음을 신호로 세 사람은 일제히 앞으로 몸을 뻗었다.

* * *

뻗어지는 천마휘의 정권.

주먹을 따라 주변의 대기는 물론이고 공간마저 접히듯이 밀려든다는 착각이 들고 있었다.

이 구십 번째 연격을 향해 팽무성은 간결하게 적아도를 휘둘렀다.

뻗어지는 주먹 앞에 붉은 직선이 그어지자 주변의 공간이 거세게 떨렸다.

부우욱

거세게 펄럭이던 팽무성의 소매가 결국 길게 찢어졌다.

‘여천고원과는 완전히 다른 위력이군.’

그때도 마지막으로 구십 번째 일권을 받아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적아도를 타고 밀려오는 충격에 전신의 뼈가 울려서 시릴 정도였다.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강골에 환골탈태까지 겪은 팽무성이 이렇다면 다른 이들은 어찌어찌 공격을 막아낸다 해도 전신의 뼈가 박살 났으리라.

우우웅

주먹을 거둔 천마휘가 오른발을 내디디며 사선으로 수도를 그어냈다.

그와 동시에 팽무성도 적아도를 하단에서 대각선으로 올려치고 있었다.

천마혼을 두른 채 펼쳐지는 천마백팔식.

이대로 백팔 번의 연격이 쏟아진다면 그 위력은 하늘마저 흔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마저 들었다.

쩌어어어엉

천마백팔식의 열한 번째 순환이 시작되었고 팽무성은 이와 똑같은 속도로 오호단문도를 펼쳐내고 있었다.

팽무성의 몸은 열기로 인해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정말 단단한 몸이구나. 팽무성.’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팽무성을 보며 천마백팔식을 펼치는 천마휘조차 감탄을 흘렸다.

지금의 천마백팔식은 주변에 솟아오른 봉우리조차 무너트릴 힘을 지녔다.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위력을 봉우리에 비하면 작디작은 팽무성이 끈질기게 버텨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놈의 도법도.’

꽈아아아앙

적아도를 수직으로 짧게 끊어쳐 턱을 향해 뻗어오는 각법을 막아내는 팽무성.

팽무성은 천마백팔식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구십 세 번의 연격을 모두 똑같은 공격으로 맞받아쳤다.

점점 위력이 증폭되는 천마백팔식에 공세로 대응하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천마신교에서 제일 호전적인 무공을 지닌 천마신조차 엄두 내지 못할 일이었다.

무림의 그 어떤 고수도 해내지 못할 일을 유일하게 팽무성이 해내고 있었다.

팽무성에 대한 경외가 느껴질 때마다 천마휘의 입꼬리가 점점 찢어지고 있었다.

‘분명 네놈을 취할 수 있다면.’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기를 두른 천마휘의 양팔이 순식간에 뻗어지며 팽무성의 급소를 노렸다.

쿠웅

진각을 밟은 팽무성은 무게 중심을 앞으로 실어내며 적아도로 반원을 그려냈다.

쌍장과 적아도가 충돌하며 마기와 뇌기가 각기 반대쪽으로 뿜어나가며 사방을 휩쓸었다.

팽무성과 천마휘는 동시에 내상을 입었지만 이를 기회로 여기는 듯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쿠르릉

연달아 쏟아지는 충돌의 여파를 계속해서 감당해내야 했던 낙호곡은 결국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콰카캉

크고 작은 낙석이 머리 위로 쏟아짐에도 이 둘의 전투에 조금의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지금!’

눈을 번쩍인 팽무성이 천마휘의 팔등을 쳐내느라 하단으로 꺾인 적아도를 순식간에 쳐올렸다.

콰르르릉

우렁찬 뇌성이 터져 흐르며 솟구친 도격이 협곡 위를 넘어가며 붉은빛을 터트렸다.

촤악

수직으로 뻗어진 도격이 천마혼와 구룡암포를 뚫고 천마휘의 몸에 깊은 도상을 남겼다.

그러나 팽무성은 연이어서 공격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뻐걱

동시에 가슴을 가격한 천마휘의 구십구 번째의 장력이 갈비뼈 세 개를 그대로 부러뜨렸다.

두 번의 도격으로 위력을 낮추고 호신강기와 철호피공을 펼쳐냈음에도 이정도였다.

만약 온전한 위력의 장력을 허용했으면 몸이 터져 즉사했을지도 몰랐다.

“크흐흐흐.”

몸에서 솟구치는 핏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천마휘의 몸으로 폭풍과 같은 마기가 휘몰아치며 사방을 뒤덮었다.

천마백팔식의 마지막 순환을 알리는 백번째 연격. 급격히 거리를 좁히며 뻗어오는 천마휘의 팔꿈치.

꾸아아앙

도신을 세워서 명치에 꽂히는 팔꿈치를 막아낸 팽무성은 그대로 적아도로 원을 그려 천마휘의 팔꿈치를 옆으로 흘려냈다.

천마휘는 흘려낸 팔꿈치를 역으로 회전시킴과 동시에 다리를 길게 뻗어 각법을 펼쳐냈다.

꽈아앙

팽무성의 손등을 들어 각법을 막아냈음에도 무슨 진천뢰가 터진 듯 요란한 폭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번개처럼 쇄도하는 다섯 줄기의 도격에 천마휘는 연달아 손발을 뻗어냈다.

푸학

뿌드득

천마휘의 몸에서 연달아 세 번의 핏줄기가 솟구쳤고 오싹한 뼛소리가 커다랗게 난 팽무성의 몸은 두 번이나 크게 들썩였다.

쿵뒤로 밀려나 산왕군림보를 밟으며 앞으로 향하던 팽무성의 오른쪽 눈이 잘게 떨렸다.

일격을 허용한 허벅지의 뼈가 부러진 듯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제대로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이정도 통증쯤이야.’

팽무성은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팽무성의 발이 디딘 땅에 실금이 파이며 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팽무성이 다시 거리를 좁히는 사이에 천마휘는 세로로 길게 베여서 너덜너덜해진 왼팔을 억지로 움직이며 장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팽무성은 면전으로 뻗어오는 천마휘의 장심을 향해 적아도를 찔러넣었다.

이에 팽무성과 천마휘는 동시에 피를 토해내며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츠츠츠츳

협곡을 가득 채우며 요동치던 마기는 물론이고 전신에 두르고 있던 천마혼마저 천마휘의 오른쪽 주먹에 모여들었다.

천마휘는 단순히 검은색인 것을 넘어서 아예 꿀렁이는 어둠 자체가 된 주먹을 뻗어내고 있었다.

천마백팔식의 마지막, 백팔 번째 연격.

천마일로(天魔一路)가 펼쳐졌다.

팽무성을 향해 곧게 뻗어오는 어둠.

주먹이 스쳐 부풀어 오른 눈을 억지로 뜨고 천마일로를 마주 보는 팽무성.

그 어둠에서 이유 모를 수많은 한(恨)을 느낀 팽무성은 저 검은 직선이 천마휘가 걸어온 길과 같다고 여겼다.

콰르릉

호쾌하게 그어지는 적아도의 끝에서 다섯 가닥의 거대한 뇌전이 날뛰었다.

뻗어지는 천마일로를 감싸내는 다섯 줄기의 도격. 그 형태가 마치 다섯 호랑이가 마음껏 뛰노는 것 같았다.

다섯 호랑이가 천하에 뛰놀지 못할 곳이 없으니.

오호천하(五虎天下).

천마일로와 오호천하가 엮어지며 이내 검붉은 빛이 팽무성의 시야를 삼켜냈다.

쿠르르릉

그와 동시에 낙호곡이 일제히 무너져 내려 팽무성과 천마휘를 뒤덮었다.

결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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