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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막내아들-199화(완결&후기) (199/200)

199화

하북팽가는 몰려오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번 백가회가 하북팽가에서 열릴뿐더러 불혹(不惑, 40세)를 맞이하는 팽무성의 생일잔치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업무와 무공 수련에 몰두하느라 생일잔치는 생략해 왔지만 당화련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번 불혹에는 생일잔치를 열게 되었다.

하북팽가에 들어서기 위해 몇 시진째 줄을 서고 있는 무림인들은 줄어들지 않는 줄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사람이 엄청나군. 무슨 무림맹의 앞에 있는 줄 착각할 뻔했어.”

“역시 도신의 생일잔치는 다르구려.”

“거기에 천하제일가의 가주이기도 하지요.”

팽무성이 팽진연에게서 가주직을 이어받은 지 십 년이 흘렀고 하북팽가는 꾸준히 성장했다.

진주언가와 마랑문을 완전히 압도하고 하북성을 삼켜버린 하북팽가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드높아진 하북팽가의 위세와 천하제일이라는 팽무성의 명성이 더해져서 하북팽가는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로 불리고 있었다.

팽무성은 가주전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철호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가주. 검성과 창왕, 용제께서 오셨다고 합니다.”

“오. 용제도? 곤륜에서 여기까지 왔다니 고생 좀 했겠군.”

일향과 묵연사, 용진이 왔다는 소식에 팽무성은 붓을 놀리면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천살택문에서도 왔다고 하네요.”

가월이 새롭게 끓인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팽무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 전에 진영이 잠시 들렸다. 조용히 즐기다가 가겠다는군.”

“아, 그런가요?”

하북팽가의 가솔들은 밀려오는 손님 수도 그렇지만 연달아 거물들이 등장해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보고를 들으며 업무를 마무리 지은 팽무성은 붓을 내려놓으며 철호와 가월을 바라봤다.

팽무성이 가주가 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두 사람은 사공자 시절과 똑같은 모습으로 팽무성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철호, 가월. 기억하느냐?”

팽무성의 질문을 파악하지 못한 철호와 가월은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할 뿐이었다.

“내가 약관 때 맞이한 생일잔치, 너희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지.”

-십 년 뒤의 내 생일에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하는 장소, 손님의 수, 선물, 여러 가지가 말이다.

이제야 이십 년 전에 팽무성이 했던 말을 상기한 철호와 가월은 동시에 웃음을 흘렸다.

“십 년 뒤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때는 가주로 취임하신 지 얼마 안 돼서 많이 바쁘시던 시기니까요.”

가월과 철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들에게 말하던 그때의 팽무성을 떠올리며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가주.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주도, 저희도, 하북팽가도 말입니다.”

“그러게요. 선물이 달랑 두 개가 오던 그때가 아직도 눈에 훤한데 말이죠.”

철호와 가월은 뿌듯한 눈으로 팽무성을 쳐다봤고 팽무성도 이에 웃음으로 답했다.

“정말 너희도 고생 많이 했어. 감사하고 있다.”

세 사람이 웃음을 흘리는 사이에 덕삼이 가주전으로 급히 뛰어와서 소리쳤다.

“가주! 무림맹주와 무천궁주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업무도 마침 끝냈으니 나가봐야겠다.”

팽무성이 가주전을 나섰고 철호를 비롯한 팽호대가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랐다.

대연회장에서는 자리를 비운 팽무성을 대신해서 안주인인 당화련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화련은 이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미모를 유지하고 있어 손님들의 감탄을 흘려내고 있었다.

남궁혁과 한백유와 인사를 나누고 있던 당화련은 저기 걸어오는 팽무성을 보며 웃었다.

“저기 오시네요.”

팽무성은 남궁혁과 한백유를 보고는 웃으면서 포권했다.

“남궁 형님, 궁주. 어서들 오십시오.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후후. 팽 아우의 생일잔치이니 당연히 와야지.”

“아무래도 재미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팽무성이 남궁혁과 한백유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는 주위에 있던 손님들의 눈이 반짝였다.

“허어, 맹주와 궁주가 직접 오다니.”

“도신의 위용이 대단하군.”

“사도천주만 온다면 거대 연맹의 주인 셋이 모두 모이는 셈이군.”

“이 사람이, 사도천주가 어찌 오겠나.”

무림인들이 저들끼리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이에 그렇지 않아도 혼잡했던 대연회장의 입구 쪽이 극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팽무성도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빼곡하게 차 있던 연회장의 인파가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 인파 사이를 당당하게 가로지르는 사내를 알아본 무림인들은 그야말로 경악했다.

적룡이 그려진 화려한 붉은 장포를 펄럭이며 등장하는 사도천주 철무련.

철무련의 등장에 어떤 이들은 자신의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가주. 축하드리오.”

철무련이 담백한 인사와 함께 팽무성에게 인사하자 시끌벅적하던 대연회장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팽무성을 중심으로 거대 연맹의 세 주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과연 언제 또다시 볼 수 있겠는가.

“놀랐소. 사도천주께서 오실 줄이야.”

“한번 심심해서 말이오. 맹주와 궁주도 방문한다길래 호기심도 생기고 말이오.”

철무련은 옆에 서 있는 남궁혁과 한백유를 흘끗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야. 아주 화려하구만.”

대연회장의 구석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던 무각은 바뀐 기류를 느끼고는 술병을 손에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일향과 묵연사, 용진이 따라서 걸어오고 있었다. 팽무성은 차례대로 얼굴을 보이는 친우들을 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을 보며 무림인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천하제일인과 팔대고수가 한자리에 모였나.”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그려지는군.”

“허허. 광서에서 하북까지 오길 정말 잘했소이다.”

현 무림은 천하제일인 도신의 밑으로 팔대고수가 군림하는 시대였다.

팽무성은 자신의 곁으로 모인 팔대고수를 눈에 담으며 웃더니 주변을 살폈다.

“오늘 밤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봅시다. 다른 손님들도 맞이해야 하니 지금은 각자 연회를 즐겨주시오.”

팽무성의 말에 팔대고수들은 각자 무리를 지어 대연회장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팽무성은 당화련의 가볍게 감싸 안으며 물었다.

“굳이 직접 손님들을 맞이할 필요는 없었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요. 십여 년을 생략했다가 간신히 연 생일잔치인데 성대하게 치러야지요.”

당화련의 단호한 말에 팽무성은 쓴웃음을 흘리며 당화련의 배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이제 셋째도 있으니 조심해.”

“네. 그럴게요.”

당화련은 최근에 신의의 진맥으로 셋째를 임신한 것을 확인해서 무공 수련도 조금씩 줄이고 있었다.

“아버지!”

앳된 목소리가 뒤에서 우렁차게 들려오자 팽무성과 당화련은 등을 돌렸다.

팽진목의 양손을 하나씩 차지하고 양쪽에서 걸어오는 두 사내아이.

팽무성의 첫째 아들인 팽위현과 둘째 아들인 팽사훈이었다.

“이 녀석들, 수련은 다 끝내고 나온 것이냐.”

“네, 진목이 형이 옆에서 봐줬어요.”

“팔 아파요. 아버지.”

이제 각기 일곱 살과 다섯 살이 된 두 아들.

되도록 팽무성이 직접 신경 쓰려고 하지만 시간이 부족할 때는 팽진목이 두 아들의 수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팽위현과 팽사훈은 팽진목을 큰형처럼 믿고 언제나 붙어서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미 이 셋은 삼형제나 마찬가지였다.

팽무성은 칭얼거리는 팽위현과 팽사훈을 양팔로 잡아 품에 안고는 팽진목을 바라봤다.

“진목아. 오늘 비무대회 우승상품이 뭔지 알고 있나?”

“신의께서 만드신 대성단이라고 들었습니다.”

비무 대회 상품으로 내놓기에는 과한 영약이지만 팽무성은 과감하게 우승상품으로 내걸었다.

“네가 우승해서 취해라. 이번에 우승하지 못한다면 당분간 영약은 없다.”

“걱정 마십시오. 스승님.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자신감을 드러내는 팽진목을 보며 팽무성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아, 그리고 이번에 무각의 제자도 나선다는구나. 기대하고 있으마.”

이번에 제자들의 승패로 내기를 한 팽무성과 무각이기에 반드시 팽진목이 무각의 제자를 꺾어야만 했다.

“예. 스승님.”

대답하는 팽진목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자신은 천하제일인의 제자.

절대 질 생각이 없었다.

* * *

연회는 한밤중임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고 하북팽가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가주전 앞의 대연무장에서는 팽무성을 비롯한 팔대고수가 모여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모이니 무림 대전 당시가 새록새록 떠오르는군.”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어.”

묵연사와 용진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에 일향도 같이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오늘 보니 의룡단의 동료들도 많이 모였던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좋았어.”

이를 듣던 팽무성이 입꼬리를 올렸다.

“의룡단의 후기지수들이 이제 어엿하게 문파의 수장이나 강호 명숙이 되었군.”

남궁혁은 옆에 있던 한백유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며 물었다.

“요즘 무천궁은 새로운 소천주를 뽑는다고 하던데 맘에 드는 인재는 보이시오?”

한백유는 남궁혁이 채워준 술잔을 털어 넣고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보이지는 않소. 게다가 오늘 비무 대회에서 도신과 광승의 제자를 직접 보니 더욱 눈이 높아진 것 같소.”

한백유의 말을 듣던 무각은 오향장육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흥! 그 녀석은 소림으로 돌아가면 나와 함께 폐관 수련이야.”

자신의 제자가 져서 내기에서 진 무각은 다음을 기약하며 눈에 사나운 불길을 태우고 있었다.

“다음에도 쉽지 않을 거다. 진목이가 정말 열심히 하거든.”

일련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팔대고수는 분해하는 무각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일향, 너는 아직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거냐.”

팽무성의 물음에 일향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제자를 받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

이에 당화련이 웃으며 말했다.

“검성이 제대로 못 가르친다면 누가 잘 가르치겠어요.”

“후후. 스승님의 절반만 따라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스승의 별호를 이어받았지만 일향은 아직 스승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팔대고수가 서로의 근황과 옛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대화의 꽃을 피우는 사이에 철무련은 미묘하게 겉돌고 있었다.

철무련은 단순히 팽무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하북까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른 팔대고수들도 꾸준히 경지를 높여가고 있군.’

자신과 한백유를 제외하면 팔대고수의 여섯이 정파 출신이었다. 게다가 그 한백유도 만약 편을 든다면 무림맹의 손을 잡을 터.

현 무림은 정파로 힘의 추가 완전히 기울어진 상황. 사파는 간신히 영역을 보존하며 맥을 이어가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사파의 무림 일통이라는 전대 천주의 야망을 물려받은 철무련은 작금의 무림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철무련은 팽무성을 흘끗 쳐다보더니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술이 너무나도 썼다.

‘도신과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으니 답이 없구나. 나의 대에서는 사파의 세력을 보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철무련은 홀로 쓴웃음을 흘렸다.

팽무성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현 무림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팽무성이 살아있는 한 사도천은 절대 전쟁을 벌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술잔이 오고 가길 몇 시진이 지났을 때, 한백유가 팽무성에게 물었다.

“가주. 이번에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본인의 도를 받아주시겠소?”

도제라고 불리고 있는 한백유였으나 팽무성에게 도전하는 지금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한백유는 이 순간을 위해 생일잔치에 방문한 듯 어느새 눈에 취기는 사라지고 뜨거운 투기를 채워내고 있었다.

“엇? 이렇게 갑자기 선수를 치다니. 가주, 나도 마찬가지다.”

이에 묵연사도 바닥을 더듬거리며 던져놓았던 자신의 장창을 찾고 있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하며 팔대고수들은 각자 몸의 주독을 빠르게 빼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연무장에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 가운데 있는 고수들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후후.”

자신을 쳐다보는 여덟 명의 고수들을 보며 팽무성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북해무신 이후로 거의 싸울 일이 없었기에 적아도의 손맛을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팽무성이 천천히 기세를 끌어올리자 이에 호응하여 팔대고수들도 저마다 기세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오시오.”

팽무성의 말에 팔대고수들은 얼굴을 굳혔지만, 그 말이 진심임을 잘 알고 있었다.

“천하제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도록 하지.”

이에 자극을 받은 사패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팽 시주. 각오해라.”

“간만에 독 좀 써볼까요.”

“팽 아우. 사양하지 않지.”

사패가 거리낌 없이 팽무성에게 달려들자 철무련과 한백유, 일향과 묵연사, 용진도 차례대로 팽무성에게 달려들었다.

천하제일과 팔대고수의 싸움.

팽무성은 간만에 붉게 빛나는 적아도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좋군!”

콰르릉

어둠을 관통하는 웅대한 붉은 벼락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하북팽가 막내아들. (完)

후기.

안녕하세요. 무향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팽무성의 이야기가 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 유료작이라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와 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하북팽가 막내아들이 종장까지 달려 갈 수는 없었을 겁니다.

매 편마다 독자 분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부족한 무협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발전된 무협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글로 독자 분들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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