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이 태어나다.
이균이 자신이 아기라는 것을 완전히 인식한 것은 거의 백일이 다 되어서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인식변화에 공언을 한 것은 어머니의 엄청난 크기였다. 다른 것은 다 속여도 사람의 크기를 10배쯤 늘려 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로봇으로 보기에는 현대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게 많았다.
바느질하다 바늘에 찔리면 피가 나는 인조피부에 자기를 안아들던 안 들던 별 차이 없는 걸음걸이(현대의 로봇은 걸어다니는게 제일 힘든 기술임. 무게중심점을 잡기가 극악이라나뭐라나.... ), 그리고 보충 없이도 잘나오는 따뜻한 모유까지. 무엇보다도 안기면 포근한 엄마의 품은 그 어떤 과학기술. 아니 외계생명체라도 구현하기에는 불가능한것이였다.
환생이라는 것을 했다는데 대해서는 무척이나 덤덤했다. 원래 무신론자지만 환생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전생의 부모님과 누나에게 잘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이제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처음에는 꿈이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오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은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나 가장 먼저 생긴 촉각의 생생함과 무려 100일이라는 엄청난 기간은 그런 작은 기대마져도 없애버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아기는 아기로써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열심히 먹고 자고 싸고. 아기는 무척이나 많이 먹었고 황금색 변을 기저귀가 넘치도록 쌌다. 일단은 빨리 커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욱~ 젖이 넘어오려고 그래. 그만 먹을까? 아니야 조금이라도 더 먹어야지 기어라도 당길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다. 빨리 커서 책도 보고 컴퓨터게임도 하는 거다. 쪽쪽~'
당연히 아기의 부모는 기쁠 수밖에 없다.
"서방님, 아기가 젖을 너무 잘 먹습니다. 세 형제 중에서도 가장 튼튼한 아이가 될 것 같습니다."
"허허허, 부인. 이 아기는 아무래도 장군이 되려나보오. "
아기와 부모의 동상이몽 이였다.
원래 이초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크고 작은 다툼에 시달린데다가 현재도 계모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다. 살림도 겨우 처가집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어나는데다 그냥 글 조금 아는 선비인 이초가 건강할리는 만무하다.
그래서인지 위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로 건강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셋째 균이는 무척이나 건강했다. 자라는게 눈에 보일 정도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놀이감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잘 반응하니까 큰 문제는 아니였다.
"부인, 왜 우리 균이는 놀이개를 갖고 놀지 않소?"
"서방님, 아이들마다 다 틀리옵니다. 우리 균이는 좀 얌전할 뿐 별 이상은 없사옵니다."
균의 일과는 자고 먹고 자고 먹고다. 원래 아기들은 많이 먹고 많이 자는데다가 컴퓨터게임을 하던 아기에게 실타래 같은 조선시대의 장난감은 관심밖이였다. 그나마 좀 고급스런 노리개도 하루 만에 질렸다. 그래서 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아기는 자신의 새부모님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엄마 품에 안겨야겠다는 무척이나 아기적인 생각을 했다. 전생에서도 책을 읽어서 알지만 자식이 빨리 크는 것을 부모들은 매우 좋아한다. 특히나 경쟁상대가 있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사랑받는 아기가 되면 조금 어려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기는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향해 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혀를 굴려 말했다.
'엄마~.'
"마마……."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두 부부는 잘 옹알거리지도 않던 아기가 기어오면서 하는 말에(정확히는 말이라고 하기 힘들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말이다.) 놀라고 또 무척이나 기뻤다. 아기가 말을 한다는 것은 아기가 정상적인 아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다 역대 천재라는 자들은 말을 빨리하기로 유명하다.
다른 집안은 모르지만 분명히 아기의 두 형보다는 무척이나 빠른 성장이다. 자기 형들은 생후 8~9개월은 되어야 했던 일을 아기는 생후 6개월 만에 하고 있었다. 정씨부인은 너무나 기뻐서 아기에게 다가가 기어오던 아기를 안아주었다. 아기는 기분이 좋은지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이초도 무척이나 기쁜지 아기를 부인에게서 거의 빼앗다 싶이해서 안았다. 아기는 놀라서 울거나 싫어서 바둥거리지도 않고 아비의 수염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까르르거리며 웃더니 또 말했다.
'아빠~.'
"빠바..."
이초나 정씨부인 모두 머리가 하야졌다. 아기는 신동이였다. 두 부부 모두 눈에서 눈물이 다났다.
어쩌면 정말 큰 인물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기가 너무 귀여워보여서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 왜 울지. 요즘엔 전생과 틀리게 더 빨리 말하는 건가?'
아기는 더 빨리 커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기의 하루는 간단했다. 젖 먹고 자고 쌌다. 처음에는 낮에는 자고 밤에는 깨어서 계집종을 귀찮게 할 뻔했으나 잘 울기는 커녕 옹알이도 가끔씩 자다가 할뿐 무척이나 조용했다. 우는 것은 기저귀가 안 갈린지 한참 되었을 때였고 그나마 곧 낮과 밤을 정확히 찾아주어 계집종을 편하게 해주었다.하지만 그 결과 돌보는 이가 붙어있을 필요가 없어서 곧 아기는 정씨부인 혼자서 낮에만 돌보았다.
그러나 기어 다니기 시작한 지금은 달랐다. 원래라면 혼자 앉아있을 아기가 문을 열고 기어 나와서 까르르 웃으며 대청마루를 종횡무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높은 문지방을 넘는데 30분이나 걸리기는 하지만 이제 5살인 첫째와 3살인 둘째 못지않게 발발거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비록 한번도 마당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러면 아기에게는 치명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이는 즉시 아기를 방으로 집어넣었다.
특히 이제 시집갈 나이의 두 계집종들은 일하다가도 대청마루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안들어갈려고 '까우~' 거리면서 바둥거리는 아기가 너무나 귀여웠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쫌생원 정집사도 가끔 아기를 안고 아주 천천히~ 아기를 방에 넣어주었다.
"이보게 정집사, 왜 균이를 그렇게 천천히 안고 들어가나? "
간발의 차이로 아기를 정집사에게 빼앗긴 이초의 말에 쫌생원 정집사도 "아기씨가 경기라도 들릴까봐서..."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정집사가 서방님께 당할 때도 있군요."
어느덧 정씨부인도 이초 옆에 다가와 있었다. 이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우리 균이는 효자구려. 저렇게 나를 핍박하는 정집사를 물리쳐주니 말이요. "
정씨부인도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우리 집은 청학동인가? '
최근 들어 생긴 아기의 의문이다. 어느덧 아기는 그 높은 방문턱을 넘어 넓은 세상(?)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그 밖에 펼쳐진 세상은 사극 세트장내지는 민속촌 또는 청학동이였다.
넓직한 마당에는 몇 그루의 나무만 있을 뿐 썰렁했고 앞으로 제법 커 보이는 대문과 그 옆에 문간방이 4칸이 있었다. 본체가 가장 큰데 대청마루로 모든 방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방은 6칸에 부엌과 창고가 딸려 있었고 누운 기역자 모양이었다. 본채는 전형적인 중부지방식의 구조였다. 단지 일반 백성들이 살던 집보다 조금 커진 정도.
양반집치고는 작은 편이지만 그런대로 갖출 거 다 갖춘 집이였다. 그런데……. 왜 좋은 집들 나두고 이런 옛날 집에 사는지 몰랐다. 처음에 눈이 깨고 나서 부모님의 한복에 놀랐지만 옛날 것을 좋아하는 가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사극이다.
'저기 마당 쓰는 마당쇠에다가 밥 짓는 계집종에다가 양반집 집사 같은 사람도 있고……. 민속촌관계자인가? 돈 받고 옛날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그런데 왜 관광객들은 안보이지? 설마 몰래카메라인가?'
아기는 환생까지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환생을 하면 조금이라도 후대에 태어나는 게 정상이다.
환생을 광범위하게 믿고 있는 인도에서는 꼬마가 전생의 부인(이미 중년 아줌마이다.)랑 결혼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걸 주변 사람들도 당연하게 받아드리고……. 이게 아닌가? 암튼 최소한 21세기 이후에 태어나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조선시대니 환장할 노릇이다. 까딱하면 대를 이어 이 직업에 종사할 수도 있었다. 정말 재미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기의 부모는 재미있다는 듯 얼굴이 싱글벙글하다. 새부모님은 참 이상한 분들이라고 아기는 생각했다.
'난 이런 직업은 안 가져야지……. 꼭 컴퓨터와 인터넷과 관련된 직업을 구할 거야. 전부터 조금은 알고 있으니 컴퓨터천재로 소문나는 것 아니냐? 카카카 빌게이츠 기다려라.'
"까르르."
그랬다. 아기의 귀여운 웃음소리는 망상이 불러온 결과였던 것이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보통의 아기는 이제 기어 다닐 시기에 아기는 붙잡고 설수 있었다. 단 문지방을 넘을 때만. 일단 벽을 잡고 서서 마루로 업어진 후 나오는 것이다. 문지방을 잘 넘게 되자 이제는 대청마루라 아니라 안방이나 형들의 방까지 종횡무진 기어 다녔다.
아기의 두 형들도 아직은 어리지만 동생을 무척이나 귀여워해서 동생이 자기 방에 들어오면 통통한 볼살을 잡고 놀다가 이초나 정씨부인에게 혼나고 했다. 벌로 무거운 동생을 업고 아기방까지 데리고 가야 했는데 이는 언제나 첫째의 몫이었다.
자기가 업겠다고 난리를 치던 둘째가 아기에게 깔려버린후부터는 말이다. 그나마 첫째도 비틀거렸다. 하긴 몸무게만 17근(약 10Kg) 키 2자4치(약75Cm)에 달하는 거구의 아기다. 조만간에 둘째와 필적할 정도이다. 오죽 잘 먹으면 정씨부인 혼자서 힘겨워할 정도였다.
"허허허, 이건 옛날의 항우가 환생한 것 같구려. 이놈이 크면 정말 유명한 장수가 되겠소."
이초는 젖주느라 홀쭉해진 아내에게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아직은 업거나 안고 다닐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돌이 지나면 상당히 버거울 듯 했다.
아기의 원대한 계획은 집밖에 나가보는거다. 아기는 누워있을 때면 다리근육을 기르기 위해 다리를 굴리는 운동을 했다. 일명 자전거 폐달 밟기다. 왜 이런 연습을 하느냐? 심심해서다. 이미 집 구조는 질리도록 보았고 집에는 인터넷컴퓨터는 커녕 텔레비전도 없었다. 집 근처에 PC방이나 만화방이라도 있는지 살펴보려면 일단은 걸어야 했다.
거기다가 운동을 해야 많이 먹고 빨리 클 수 있었다. 그래야 맘 놓고 게임이나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부모가 아기가 게임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거기다 작은 체구로는 커다란 자판과 마우스를 제대로 쓰기도 힘들다. 무진장 커가는 우리의 아기는 오늘밤에도 운동에 여념이 없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난 지도 언 10개월이 되었다. 아기는 이제 걸어보기로 했다. 일단은 옆의 벽을 잡고 섰다. 그리고 벽을 계속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작은 다리를 앞으로 내딛었다. 보통은 돌은 넘어야하지만 이미 아기는 두 살 먹은 아이랑 비슷한 발달을 보이고 있었다.
'와 걸어진다. 좋아라. 히히히'
"까르르"
이제 아기는 벽에서 손을 떼고 걸었다 균형 잡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천천히 걸으니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걸음마에 성공한 것이다. 마침 아기의 웃음소리를 듣고 계집종(오월이라던가? 아무튼 옛날티 나는 이름이다. 본명은 무엇일까?)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큰 소리를 질렀다.
"마님, 빨리 좀 와보세요. 막내 아기씨가 걸음마하세요."
마침 이초와 같이 있던 정씨부인은 빠른 걸음으로 아기방으로 왔다.
'와~ 엄마당~ 엄마!'
"어마~ 어마~."
아기는 정씨부인을 보고는 아직은 서투른 걸음마를 하면서 말까지 하면서 걸어왔다.
이를 보던 정시부인이나 이초 모두 너무 기뻐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 모습을 보던 첫째 정이 동생인 둘째 인에게 말했다.
"막내가 너보다 훨씬 빠르다. 넌 돌 지나고도 몇 달 뒤에나 말했다. "
울상이 된 인를 보고 정집사가 인를 편들어주었다.
"그래도 둘째도련님은 첫째 도련님보다 빨리 걸음마를 하셨답니다. "
"웅~ 정집사도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요?"
"히히히, 형아도 막내에게 뒤진다."
한편 아장아장 위태위태 걸어오던 아기는 이불이 발에 걸려 쿵하고 넘어졌다. 정씨부인이 놀라서 달려가려했지만 이초가 말렸다.
"부인, 아직 우리 균이가 울지 않고 있소. 잠시 지켜봅시다."
'우씨 사람들 많은데 넘어졌네. 잘 걸어야 빨리 밖으로 나갈 텐데……. 다시 한번~ '
아기는 울지도 않고 다시 혼자서 일어나더니 정씨부인에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정씨부인에게 부비부비하면서 계속 '어마어마'를 연발했다. 이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막내는 장군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