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28)

 균이 태어나다.

드디어 아기의 돌잔치가 벌여졌다. 하지만 이초의 집에는 특별히 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막내처남이나 왔을 뿐이다. 이초는 중추부판사를 지낸 장인 정세호(鄭世虎)의 도움으로 먹고 사는 처지였다.그나마 저번의 사화이후 거의 왕래가 끊어졌다.

중추부판사는 문관의 고위직중 하나이나 실질적인 권력은 없다. 그냥 대기직중에 하나이다. 고위 문관들이 다른 자리로 옮겨갈때 잠시 머무르는 그저 그런자리다. 그러니 그다지 권력가라고 하기엔 힘든것 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윤원형같은 세도가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신경써야 하는 처지다.

법도대로라면 종친부에서 넉넉한 생활자금을 내려주어야 하지만 대비 윤씨의 친정오라비인 윤원형과 정난정일파가 전횡을 일삼는 조선조정은 돈이 없었다. 심지어 예산부족이라는 이유로 덕흥군같이 국왕의 이복형제들에게도 봉록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지 오래됐다. 하지만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우유부단하고 여린 이초에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막내처남인 정인기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 누나인 정씨부인과 무척이나 친했다. 거의 열 살 터울의 작은 누나는 어린 정인기에게는 거의 어머니랑 같은 존재였다. 이제 정인기의 나이는 16세였고 이 정도면 조선에서는 다 큰 어른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존재였다.

그에게 있어 누나와 매형 그리고 조카들은 매우 가까운 중요한 존재들이였다. 최근에 진사시험에 바빠서 막내 조카가 태어날 때 못 가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벼르고 별러서 이초의 집에 왔다. 그리고 선물을 핑계 삼아 집안의 재물과 곡식을 한짐 가득퍼왔다. 물론 아버지는 못마땅해 하겠지만 그다지 반대하는 않았다.

"매형, 누님 저 인깁니다."

정인기가 집안에 들어서자 이초와 정씨부인 모두 반겼다. 실제로 가장 반기는 것은 정집사다. 유일하게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 정진사오는가?"

"인기구나."

정인기가 대청마루에 올라서 두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늦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오 아닐세. 진사시험에 합격했다며 이제 대과만 남았구만... "

"아닙니다. 제 실력으로 아직 대과까지야... 그나저나 막내 조카는 어디 있습니까? "

"호호호, 인기 너도 장가들 나이가 다된 모양이다. 그렇게 아기가 보고 싶으냐?"

"참 누님도 아직 장가가려면 멀었습니다."

"이제 처남도 열여섯이 아닌가? 나도 자네 누님을 처음 본게 열 두살였다네."

세 명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서 아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정인기는 아기의 거대함에 놀라듯했다.

"아니 누님, 막내조카가 이제 두 살입니까? 거의 둘째 조카만 하군요."

"아닐세. 이제 갓 돌을 맞은 아기야. 장군감이 않나?"

"장군도 큰 장군감입니다. 큰 조카와 둘째 조카가 병약해서 걱정했는데 막내를 보니 참으로 든든합니다. "

"너무 든든해서 탈일세. 자네 누님의 얼굴이 수척한 게 보이지 않는가?"

"하하하 알고 보니 못된 아이였군요."

세 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아기 앞에 돌상이 차려졌다. 원래 돌에는 이상하게 아기들이 많이 아픈데 아기는 워낙 튼튼해서인지 생생했다. 하지만 원래하던 대로 마구 움직이지는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게 눈치가 빠른듯했다.

곧 돌잔치의 백미라는 돌잡이가 시작됐다. 대추, 책, 쌀, 실타래, 돈 등이 아기 앞에 놓여졌다. 그리고 아기의 선택은…….무척이나 빨랐다. 아기는 돈을 보면서 얼굴이 하애졌다. 이초 등은 실망이 컸다. 조선은 사농공상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천시한다. 일부사대부는 돈이 더럽다고 젓가락으로 집어 주기도 했다. 은근히 책을 집기를 원했던 이초 등의 기대는 무너졌다.

한편 아기도 자신의 돌날이라는 것에 무척이나 기대가 컸다. 첫돌이니만큼 비디오카메라로 잔치를 찍고 수많은 사람들이 올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게 없었다. 한 고등학생정도 되는 이만 혼자 왔고 비디오카메라는 커녕 그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아도 몰래카메라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자는척하면서 주변을 살펴도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리고 돌잡이 물건으로 보이는 물건들 쌀은 현미에 책은 족보를 보는 듯 했다. 실타래는 처음 보는 실이고 무엇보다도 돈에는 상평이 아닌 조선이라는 한자가 쓰여진 그것도 몇 백 년은 된 듯한 돈이었다. 아무리 고증을 한다해도 너무 심했다.

조선은 3번 금속화폐를 발행한다. 세종대의 조선통보, 인조대의 십전통보, 그리고 가장 많이 쓰인 숙종대의 상평통보이다. 위의 두 화폐는 제대로 사용되지 않아서 구경하기도 힘들다. 재현한다고 거의 발행되지도 않아 귀한 조선통보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심각한 고민에 빠진 아기는 즉시 책을 열고 읽어보았다. 한글이라고는 단 한자도 없고 아주 기초적인 한자만 아는 아기에게는 해석불가능의 글자들이 반겼다. 고증이라면 표지만 그렇고 안에는 잡지책인 경우가 태반이다. 척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책의 제목은 '대학'이였다.

"다하악~(대학)." "헉~"

"돌때 한자를 읽다니, 막내조카는 신동입니까? "

아기가 책제목을 보고 말하자 모두들 놀랐다. 특히 정인기는 신동이라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아기는 골이 아파왔다. 전후사정은 조선시대라면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어떻게 과거로 환생이 가능하단 말인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였다.

"엄마, 아빠 나 자래."

아기는 주변사람들을 다시 한번 경악시키고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자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머리가 복잡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초는 막내처남에게 다짐을 받았다. 왕족이 너무 똑똑한 것도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처남 잘 알겠지만, 오늘 일은 어디에서도 발설하지 말게. 까딱하면 우리 두 집안 모두 봉성군꼴 나네. "

"물론입니다. 매형."

정인기와 이초 모두 11월의 겨울날씨에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 바께에 좀.."

돌잔치이후 한참을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던 아기는 어머니 정씨부인에게 말했다. 정씨부인은 두 말하지 않고 아기를 데리고 대문 밖을 나섰다. 인달방은 한성부 서부에 위치한 동네 이름으로 방은 오늘날의 동과 비슷한 행정단위였다.

아기는 집 주위를 아장아장 걸으면서 주변에 지나가는 행인들과 여러 이웃집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정씨부인에게 안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며칠을 방에서만 보냈다.

'조선시대다. 컴퓨터, 인터넷, 텔레비전, 만화방, 콜라, 피자, 햄버거 아무것도 없다.'

아기는 한동안 충격에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 잡고 결심했다.

'이왕 조선시대에 온 것. 영의정이나 한번해보고 삼처사첩을 거느려보는거다. 하하하.'

아무래도 충격이 컸던 것 같다.

큰아이와 둘째아이 모두 어린지라 서당에는 다닐 수 없었고 아버지인 이초에게서 간단한 한자를 배우거나 고사성어에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나마 둘째는 놀이상대인 형이 잡혀있는지라 옆에서 방해나 하는 실정이었다.

이곳에 아기가 아장거리며 걸어왔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서 세 부자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이초는 별로 방해하지도 않는데다가 옆에서 듣기만 해도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특별히 쫒아낸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기는 전보다는 덜하지만 젖도 많이 먹고 이유식도 먹으며 공부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자 아기의 말은 더욱더 정확해졌다. 그리고 세 형제 중에서 단연 두각을 들어냈다.

"타산지석이란 무슨 뜻이냐? " "……."

이초의 물음에 첫째와 둘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초는 혀를 차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기를 보고 물어보았다.

"균아 너는 아느냐?"

"딴 사의 도리옵니다.(다른 산의 돌입니다.)"

"...그 뜻 또한 옮다. 하지만...."

"가이고오기 업사오니다.(가이고옥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그 모든 뜻은 ?"

"딴 사의 도리라도 내 오글 가수이다. 득 쓰모 없느거 업다. 이오니다.(다른 산의 돌이라도 내 옥을 갈수 있다. 즉 쓸모없는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이초는 아기가 그 뜻을 이해하고 있다는데 크게 놀랐다. 시경에나 나오는 어려운 구절인 것이다. 그러나 400년 후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사자성어이다.(설마 모르다고? 사실 글 쓴 놈도 몰랐다.)

우리가 쓰는 타산지석은 쓸모 없는 이도 보고 배울 것 있다는 뜻이다. 옛말에 세사람이 걸어가면 그 중에 한 명은 보고 배울 것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큰 차이는 없지만 원래는 가이고옥이란 구절이 생략된것이다.

겨울철이 다가왔고 한성부 전체에 고뿔이 유행했다. 이초와 큰아들 정 ,둘째 인 모두 고뿔이 걸렸다. 특히 병약한 둘째 인이 기침을 심하게 했다. 하지만 균이는 튼튼했다. 돌이 지난 이후부터 알아서 대소변을 가리는 지라 변의 색깔을 알 수 없지만 기침 한 번 하지 않다.

"끙끙"

아기는 혼자 걸어 다니기도 버거운데 커다란 수건을 가져다가 물에 적셔서 제형인 인의 머리에 올려주었다. 그 고사리 손으로 짠 물수건은 물기가 많았지만 정씨부인은 기특한 마음에 그냥 두었다. 하인들도 대부분 고뿔에 걸려서 쉬어야했다. 이렇다면 옆에 있어야 고뿔나 더 옮는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귀신도 피해가던 쫌생원 정집사도 사랑채(방문객이 없어서 정 집사가 쓴다.)누워있었다. 이러던 차에 어린것이 간호하겠다고 끙끙거리는 게 무척이나 귀여워 하는 대로 나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인의 고뿔이 오래갔다. 그해 겨울이 가고 나서 인의 고뿔이 다 낮고 나서 아기는 생각했다.

'물수건의 물은 꼭 짜주야겠다.'

까딱하면 아기는 제 형을 보낼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도 둘째 인의 건강이 가장 안 좋았다. 무서운 아기 그 이름은 이균이다.

그렇게 아기는 여러가지 일들과 사고를 치면서 계속 자랐다. 아기가 두 살 되던 해 드디어 아기는 아이가 되었다. 진짜 막내인 여동생이 태어난 것이다. 아기의 이름은 이진으로 지어졌다. 보배라는 뜻이다. 균이 처음으로 부모님께 혼난 게 이때였다. 잘 자는 아기를 만지다가 깨어서 울려버렸기 때문이다.

균은 무척이나 제 동생이 귀여운지 정씨부인의 철벽방어를 유유히 통과해 제 여동생을 구경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아기를 울리지도 않고 옆에서 아기를 돌보는지라 결국 정씨부인도 균의 아기방 침입을 눈감아주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균이는 팔불출이 되겠구나."

아기 옆에서 새우잠 자는 균이를 제 방에 대려다 눕힌 후 나온 정씨부인의 혼잣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다.

'너도 참 힘들겠구나. 전생을 기억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니 지금 지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편한 데서 쫓겨나서 많이 힘들지? 이 오빠가 도와줄게. 응~ 무거운 이불도 걷어주고, 응~ 똥 싸면 바로 말해주고, 응~ 자장가도 불러 줄게. 고맙다구? 아니 괜찮아. 나도 할일 없거든. 정말 최상의 장난감 아니겠어. 카카카. 어디부터 만져나 볼까? 팔이 좋겠다. 히히히'

아무래도 팔불출은 아닌거 같다. 로리타로 봐야 하나?

'아 심심하다. 뭐 재미난 일은 없을까?'

진이를 가지고 놀다가 균이는 문득 심심하다고 느꼈다. 전생에서 했던 오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는 했다. 그러다가 문득 언제나 근엄하신(비록 진이가 옹알거리기라도 하면 얼굴이 헤벌래하지만) 아버지를 골탕 먹이기로 했다. 균은 쪼르르 이초에게 다가갔다.

"아버니 아버니.."

"오 그래 균아 무슨 일이냐?"

"소자가 구구하게 있사와요."

"그래. 그럼 말해보거라. 이번엔 무슨 글귀이냐?"

"지니는 왜 소피(오줌)보는데 가 어서요?"

"어!... 그런 말이다... 네 어미가 잘 안단다."

원래 유약한 이초는 식은땀을 흘리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정씨부인에게 떠 넘겼다. 작전에 성공해 기분이 좋아진 균이는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물어봤다. 강인한 엄마의 대답은…….

"네 이놈! 동생을 돌보는 가 했더니 이상한 것만 보았구나! 어디 회초리가 어딜 갔지?"

식은땀을 흘리며 균이는 다시 쪼르르 달아났다. 잠시후 균의 집에서는 무엇인가 타작하는 소리와 '자모해서요'라는 소리가 한동안 울려퍼졌다. 그리고 다시는 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역시 강인한 어머니 정씨다.

그날 어머니에게 잡혀 터질 때까지 맞은 종아리가 한 달 동안 부어 있었다. 그 뒤로 아기방에 출입도 금지 당한데다가 이미 만져볼만큼 만져봐서 균이의 팔불출행각를 가장한 인형놀이는 그 막을 내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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