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28)

 균이 태어나다.

균이 만 세살이 되던 해인 서기 1555년 명종10년 5월 왜구가 배 70여척을 이끌고 전라도 남부 연안을 공격해왔다. 먼저 영암과 진도의 보루를 불태우고 노략질과 약탈을 자행하였고 곧이어 장흥, 강진에도 침입하였다.

전함 70척이면 그 병력이 최소 7천이다. 세종, 세조대의 조선의 군사력은 20만 수준이었고 현재도 명목상의 조선군은 20만 대군이다. 하지만 이미 조선의 정치체계는 부패하여 병력은 정수의 반도 못됐고 그나마 노인과 어린아이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라도 전체의 지상군 실 병력이 5천을 넘지 못했고 그나마 전투력마저도 확신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때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하던 왜구의 기습공격에 방심하던 전라도 지방군은 참패하여 이를 막던 전라병사 원적과 장흥부사 한온 등은 전사하고, 영암군수 이덕견은 사로잡혔다.

전라우수영의 조선수군도 기습공격에 허둥거리다가 수사이하 약 30여척의 전함과 1천명이 넘는 수군이 수장되고 나머지 군사는 놀라서 흩어졌다. 급히 전라좌수영 수군이 출발했으나 함선의 수요와 병력면에서 절대 열세를 보여 내륙의 약탈을 방관해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조정은 호조판서 이준경을 도순찰사, 김경석과 남치훈을 방어사로 삼아 왜구를 토벌, 영암에서 이를 무찔렀다. 이들에 의해 조선과의 무역 관계가 악화되자 난처해진 대마도주 종의조는 조선에 침입한 왜구의 목을 잘라와 사과하며 세견선의 증가를 간청해왔다. 이에 조선은 세견선 5척을 허용하여 교린책을 폈다.

그와 동시에 을묘년의 왜변때 왜구의 전함에 열세를 들어낸 기존의 전투함인 맹선을 대신해 판옥선을 만들고 조선수군의 주력전투함으로 약 250척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맹선이 최대 80명까지 탑승한 것에 비해 판옥선은 무려 120여명이 정원이다.

하지만 종친에게 녹봉이 지급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재정을 보이던 조선조정은 판옥선을 제작할 예산이 부족해 몇 십 년에 걸쳐 건조에 들어간다. 이로 인해 한동안은 맹선이 주력전투함으로 활약한다. 판옥선의 배치가 끝난 것은 30년 후 정도로 임진왜란 몇 해 전이라고 한다.

을묘왜변에 대한 소식은 그래도 종친인 이초의 귀에도 들어왔다. 이초는 세 아들을 불러서 앉게 하고 물었다.

"올해 오월에 왜구가 전라도로 올라와 큰 피해를 입혔다. 이에 조정은 토벌군으로 왜구를 격파하고 대마도에 쌀을 지원하기로 했느니라. 이 조치에 대한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이균이 충격을 받은 것은 세 번이다. 처음에는 병원이 아니라 환생해서 아기가 된 것이고 (죽은 줄도 몰랐다.) 또 하나는 과거로 와서 환생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후일 조선 제14대 국왕인 선조가 되는 하성군 이균이라는 것이었다.

아직 하성군의 칭호를 받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덕흥군이고 어머니는 정씨였으며 자신은 셋째 아들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는 8년 후에 죽고 자신이 12년 후 왕이 되는 것이었다.

선조. 조선 14대 왕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당파싸움에 시달린 비운의 왕이다. 일개 장군인 이순신을 질투해야 할 만큼 치적이라고는 눈 씻고 보기 힘들며 40년 동안 후궁소생의 자녀만 수십 명을 뿌린 것 밖에 내세울게 없는 실패한 왕인 것이다.

하지만 그 선조가 이제는 자신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균은 정신이 없었다.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이제 균에게는 세 가지의 길이 남았다.

'하나는 최대한 역사를 바꾸어 국란을 극복하는 것이고 둘은 그냥 그렇게 역사대로 살다가는 것. 셋는 왕이 되지 않고 은거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 번째가 균의 전생 성격과 맞다. 그리고 두 번째의 길은 편한길이다. 비록 백성들은 죽어나겠지만……. 하지만 첫 번째 길은 힘들다. 후에 있을 병자호란까지 대비해야하는 어찌 보면 나라를 재건국해야하는 힘든 길이다. 그러나 최소한 죄책감은 없을 것이다. 결과를 알고도 죄 없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둔다면 왕궁에서 미녀들과 진수성찬을 먹어도 산 좋고 물 맑은 산천에서 지내도 죄책감에 시달릴듯했다. 더욱이나 그냥 가만히 있다면 무척이나 심심할 것이다.

이미 자신이 이곳에 온 것으로 역사는 바뀌었다. 자신의 후대왕은 아마도 광해군이 아닐 것이다. 아니 아예 전에 살던 곳과 비슷한 다른 차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이왕 조선에 환생한 것 재미있고 폼 나게 살고 싶었다. 잘하면 조선은 네 차례의 대전란을 피하는 것은 물론 후대에 일본을 거꾸로 지배할지도 몰랐다. 속이 다 시원했다.

거기다 앞으로의 역사를 알고 있으며 앞선 과학지식은 자신의 우월감을 채워주고도 남았다. 아무리 왜와 명, 청이 날뛰어도 부처님 손바닥안의 손오공인 것이다. 대체역사소설처럼 신무기로 무장한 조선군이 조총이나 콩탁콩탁 쏘아대는 왜군을 학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희열에 몸이 다 떨렸다.

그래서 균은 왕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역사대로가 아닌 강력한 왕이 되어 조선을 새로운 국가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은 너무 어렸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 때까지는 역사가 흐르는 대로 따라야했다. 그 기간은 조선의 현실을 파악하는 소중한 기간이 될 터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라 균은 어제 밤잠을 설쳐 늦잠을 잤다. 그러다가 아버지 이초의 부름을 듣지 못하고 회초리로 머리를 맞았다.

"아야!"

"이놈 균아! 아비가 열 번을 불렀는데 무엇을 하고 있던 거냐?"

"소자 어제 늦잠을 자서……."

"그래 아비의 물음은 들었느냐? "

"못 들었습니다."

만 세살치고는 균이 말은 제법 뚜렷했다. 하긴 이미 제 형인 둘째 인보다 큰 덩치를 자랑하는데 보통의 또래들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두 살 때부터 알아서 수저질을 하더니 지금은 제 형이 먹는 양의 두 배를 순식간에 해치운다. 밥을 떠주면 조절이라도 할 텐데 제형들보다 더 수저질을 잘하니 그렇다고 밥을 적게 주면 반찬이 전멸이다. 최소한 5살의 발육을 보이는 것이다.

"올해 오월에 왜구가 전라도로 올라와 큰 피해를 입혔다. 이에 조정은 토벌군으로 왜구를 격파하고 대마도에 쌀을 지원하기로 했느니라. 이 조치에 대한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균이의 대답은 곧장 나왔다.

"단기적으로는 잘한 일이나 장기적으로는 못한 일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현재 왜국은 수십 명의 제후들이 정권을 놓고 다투는 전국시대이옵니다. 하지만 통일이 되면 잉여군사력을 소모해야하는데 그 대상이 일개 제후에게 조공을 바치는 듯한 만만한 조선이 될 것입니다. 이는 차라리 군대를 일으켜 대마도를 정벌한 것만 못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왜국의 제후중 특별히 강대한 제후는 없으니 한동안은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이초는 또 다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초가 아는 바로는 이제껏 알려진 신동들도 균의 나이 또래에는 기껏해야 유교적인 대의명분이나 따지는 수준이다.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것은 알지만 이건 조정의 예조판서도 비교가 않되지 않는가? 하긴 요즘 조정이 조정이 아니기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듯 했다.

'이 아이는 설마 왕재인가? '

셋째 아들의 문제로 한참을 고민하던 다음날 이초는 정씨부인에게 물어서 균이를 데리고 한성부에서 가장 용하다는 관상쟁이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아이의 관상을 보았다.

"장군감이군. 영감소리는 듣겠어."

내시 같은 관상쟁이의 말은 지방군영의 절도사정도의 군인이 된다는 소리였다. 절도사는 크게 지상군의 병마절도사(종2품)와 해군의 수군절도사(정3품)가 있다. 외관직이고 무관이기는 하지만 병사 1만을 거느리는 당상관이다.

내심 이초는 아쉬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자기 아들이 왕이 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지만 그에게는 아들을 밀어줄 세력이 없다. 세력이 없는 왕재는 살아남기 힘들다. 이복동생 봉성군은 왕재가 아닌데도 조금 총명하다고 사사되었다. 이초는 그냥 아들의 총기를 감추기로 마음먹었다.

'균이를 숨기는 길만이 균이가 사는 길이다. 그래 그게 최선이다. 어차피 당상관도 될 수 없는 종친이니 숨겨야한다.'

당상관은 조정에서 정사를 볼 때 대청에 올라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를 가리키는 데서 나온 용어로, 왕과 같은 자리에서 정치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정치적 책임이 있는 관서의 장관을 맡을 자격을 지닌 품계에 오른 사람들을 가리킨다. 현재의 인구 1400만의 조선에서도 단 이백명정도로 조선의 핵심권력자들이다. 정3품 일부에서 종6품까지를 당하관, 정7품 이하를 참하관이라 한다.

그렇게 이초가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갓을 쓴 이를 만났다. 그는 희한하게도 구멍뚤린 가마솥을 갓 대신 쓰고 다녔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은 쳐다보았지만 그는 그 시선에 무관심했다.

아직 젊어보이기에 노망은 아니 것 같지만 괴인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그 괴인이 이초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이초는 그냥 그 괴인이 지나치기를 바랐지만 그는 이초에게 정중히 말을 꺼내어 왔다.

"혹시 종친이십니까? "

"내가 덕흥군이외다. 무슨 일이요. "

이초의 퉁명스러운 말에도 그는 공손했다.

"옆에 계신 아드님을 보니 감히 인사를 아니 드릴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이요? "

그는 이초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이초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드님의 걸음새는 범의 것입니다. 잠시 아드님께 말을 걸어도 되겠습니까?"

괴인은 이초에게 양해를 구하고 균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 균은 큰 갓을 쓰고 있었다. 고인은 허리를 굽히고 종이를 꺼내 급히 몇 자를 썼다.

"이중에서 좋아하는 글자는 무엇입니까?"

균이 고른 한자는 출(出)이였다. 괴인은 이초에게 붙어서 손바닥에 한자를 섰다 "지금이 신시(저녁 6시반부터 7시반)니 음양이 뒤바뀌는 시간입니다. 출이 뒤집어지고 그 위에 관을 써 다리만 보이는 아이가 서면..."

"제(帝)....."

이초의 입에서는 신음소리와 같은 말이 나왔다. 하나 괴인의 풀이는 계속됐다.

"이곳은 한성부의 오부중 서부 황화방(皇華坊)올시다. 황화방에서 출자를 밟고 있는 갓을 쓴 아이라면... "

"화... 황제(皇帝)!"

놀란 이초는 아랑곳없이 괴인은 손에 쓴 글자를 지우며 말했다.

"걸음새는 범이라 장수처럼 보이나 얼굴은 용의 것이니 이는 태조대왕과 같습니다. 종친이니 자연스레 동방의 주인이 될 터... "

"하지만 현 주상전하께는 원자가 계시오."

"일년에 반을 고뿔을 달고 사시지요. 결코 10년을 못 넘기실껍니다. 그럼 이만..."

놀라서 떨고있는 이초를 대신해 떠나는 괴인에게 균이 말했다.

"형백으로 불리는 게 좋으십니까? 형중으로 불리는 게 좋으십니까?"

균의 말에 괴인은 뒤돌아서서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냥 토정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럼 ..."

떠나는 괴인을 뒤로 한해 이초가 균에게 말했다.

"토정이라니 설마……. "

"화담선생의 제자인 토정선생이 맞습니다. 그분이 아니면 주역에 능하고 조선 천지에 저런 갓을 쓸 선비가 없지요."

두 부자는 곧 인달방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초는 균에게 물었다.

"아까 토정선생앞에 왜 출자를 골라주었느냐?"

"저녁인데다가 오래 걸어서 배가 몹시 출출해서 그랬습니다."

이초는 왠지 토정 이지함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토정 이지함은 그 유명한 토정비결의 저자로 화담 서경덕의 제자이다. 북인의 영수인 이산해의 숙부가 되므로 상당히 유력한 가문 출신이나 젊어서는 전국을 일주했고 늙어서 잠시 현감직을 수행하나 무척이나 궁핍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무쇠솥을 갓 대신 쓰고 다녔으며 남사고와 더불어 당대의 기인중 하나였다.

한편 스승인 화담 서경덕이 죽은 후 전국을 일주하다 마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천에 놓인 다리를 지나던 이지함은…….

"아이고 귀 아파라. 누가 내 이야기하나? 어어어~"

귀를 만진다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기울이다가 무쇠갓때문에 그만 하천에 빠졌다. 다행히 수영을 잘해서 곧 빠져나왔는데 무쇠 갓을 빠뜨려 다시 건지기 위해 몇 번이나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강과 그 지류를 연구하게 되서 토정이라는 호 이외에 수산이라는 호가 생겼다는 헛소리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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