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이 태어나다.
덕흥군 이초는 태조대왕같은 큰 인물들은 어렸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전설도 대다수 조작으로 생각했으나 최근 들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축소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균이의 나이 이제 4살이다. 물론 사서오경을 줄줄 외는 것은 아니나 천자문은 다 배웠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는 아비인 자신보다도 밝았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주상의 원자로 태어났다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을꺼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군주가 되기 전에 낮은 자리에 있는 것도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자신의 할아버지인 성종대왕도 암행을 무척이나 많이 하시어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잘 보살폈다고 어린 자신에게 돌아가신 아버지 중종대왕이 말하시곤 했다.
나라의 꼴은 점차 어려워졌다. 당시 서원군 윤원형의 세도가 극에 달해있었다.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을 이용해 반대세력을 숙청한 윤원형은 덕흥군의 바로 아랫이복동생인 봉성군을 사사할 만큼 대비 윤씨를 등에 업고 그 위세를 떨쳤다.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트릴 만큼의 권세를 누리는 그의 집에는 벼슬을 사려는 자가 많아서 그를 만나려면 최소한 삼일은 기다려야하고 그나마 돈 1만냥 이상의 뇌물이 아니면 받지도 않았다. 윤원형의 재산이 왕실재산을 능가한지는 이미 옛날이였다.
명종 대에는 외척의 발호와 외적의 침입으로 밥을 굶는 백성도 많았는데 윤원형의 첩 정난정은 큰솥에 쌀밥을 지어 고기밥으로 강에다 뿌려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문제는 윤원형은 심통원, 이량 과 더불어 조선 삼흉의 하나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우유부단하지만 젊은 덕흥군 이초은 울화가 치밀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배다른 동생이지만 봉성군의 죽음은 종친의 위신을 떨어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아버지 중종대왕이 반정공신들의 권세를 꺾고 왕권을 재확립한지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승하하시고 형인 인종대왕이 겨우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동생인 현 주상이 즉위하여 다시금 중종반정이래 왕권은 땅에 떨어졌다.
결국 이초는 원래 건강하지도 않는데다가 화병까지 겹쳐 자리에 눕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런 병은 백약이 무효였고 그렇게 약을 써댈만큼 살림도 풍족하지 않았다.
균도 손을 쓰고는 싶었다. 비록 역사대로라면 삼년 뒤에 죽는 게 정상이지만 이왕 바뀐 거 다 바꾸면 된다. 하지만 외숙부 정인기가 백방으로 구한 의원들도 이초의 병세를 호전시키는 못했고 자기가 아는 명의인 허준은 소설대로라면 지금쯤 평안도 의주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갓 의술에 입문한 약초꾼 이였다.
그나마 정확한 위치도 모른다. 유의태가 허준 백년 뒤의 인물인데 의주나 산청에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도 없다. 그리고 자신은 의술의 의짜도 모른다. 설사 조금 안다고 해도 서양의학이고 의약품이나 장비도 없고 화병을 치료하는 법도 모른다. 유일한 방법은 지금의 정국을 싹 정리하는 건데 현재의 균은 고작 5살이 다된 어린 아이일 뿐이다.
명종이 어의라도 보내준다면 다르겠지만 녹봉도 지급해주지 않는 왕에게 바라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설사 명종이 원한다고 해도 대비 문정왕후 윤씨가 제동을 걸 일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중종의 자식이란 잠재적 왕위찬탈자였고 권력의 적이었다.
아직 균은 무기력했다. 아는 거라고는 역사의 흐름과 약간의 선진지식.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세력은 아직 없다. 그리고 그나마 가진 지식을 지금의 상황에 맞게 접목시키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어느덧 균의 나이도 여섯 살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열 살의 큰 형과 비슷한 덩치를 가졌다. 손위의 두 형은 이제 서당에 다녔고 균은 병간호하는 어머니 정씨를 대신해 여동생인 진이를 돌보며 외숙부 정인기가 구해준 잡서와 아버지가 가진 책들을 읽으며 지식을 쌓아나갔다.
균이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역사대로라면 아버지는 다음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몇 년 후에는 세상을 떠나고 자신은 자기보다 한살 많은 순회세자의 뒤를 이어 차기 조선국왕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도 없는데 국왕이 된다고 해도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오라버니~."
균이 사색에 잠겨있는사이 전생의 누나와 동급인 지상최강의 생명체. 여동생 진이가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균이의 가슴은 내려앉았다.
'지지리도 복도 없지. 전생에서는 누나, 현생에서는 동생이라니...'
균이 전생에 있을 때 일이다.
아버지는 친어머니를 균이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잃었다. 혼자서 어린 균을 기르시던 아버지는 무려 10여년 만에 같은 음식점에서 일하시던 분(정확히는 사장님이다.)과 재혼을 해서 새엄마와 누나를 가족으로 받아드렸다. 새엄마는 참 좋은 분이였다. 그러나 누나는 드래곤의 폴리모프형이라고 생각..아니 폴리모프형이였다.
소문에 따르면 누나는 여고시절 흑장미 파에 몸담았다고 했다. 물론 얼굴만 보면 미녀는 아니래도 착하고 순하게 보이지만 완벽한 가면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균은 자다가 파출소로 가야했다. 누나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술을 많이 마시는데 옆에서 시비 걸면 무척이나 좋아했다. 누나는 정당방위로 풀려나지만 상대는 치료비 한 푼 못 받고 바로 병원신세다.
누나가 때리는 것은 예술이었다. 처음에 누나의 속옷 못 빨겠다고 버티다가 누나가 갑자기 깡소주를 마시자 속상한가보다는 순진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누나는 술을 마시면 표시 안 나게 한마디로 속멍이 들게 잘 패는 특수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속멍은 한달을 갔고 그 뒤로 가장 무서운 날이 누나가 술에 밥 말아먹는 날이 됐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균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술이라면 질색이었다. 누나의 긍정적인 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요즘에는 누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도 했다. 물론 만난다면 당장 시집보내기 대작전을 펼쳐야겠지만……. 몇 대라면 맞아줄 용의도 있다. 물론 수십 대라면 생명활동영위에 문제가 생기므로 도망쳐야한다. 하지만 벌써 6년의 세월이 흐르고 누나와 부모님의 얼굴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볼 수 없다면 빨리 잊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고 슬픈 일이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도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손끝에 술밖에 뭍여본적없는 누나는 지금쯤 세탁기나 빨래판과 씨름하고 있을 텐데…….
상념에 빠져있던 균은 엄청난 충격에 그 상념에서 벗어났다. 바로 옆에는 동생 진이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보나마나 정신없는 균의 귀에다가 자그마한 두 손을 모아 소프라노 못지않은 가성을 지른 것이 분명했다. 머리가 다 흔들렸다.
"또 진이 너야. 오빠 고막 터지겠다."
"오빠 놀아죠. 근데 고막이 뭐야?"
"응? 몰라도 되는 거야. 한자로 된 책 이만큼 봐야 알 수 있는 거야. "
"응 그래, 그럼 우리 공기돌놀이하자. 응?"
"그래. 놀아줄 거니까 보채지 마렴."
균이 가장 후회한 것은 자신이 알던 놀이를 형제자매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형들이랑 같이하는 오징어달구지야 재미라도 있다. 하지만 진이에게 잡혀서 하는 공기돌놀이는 정말 재미없다. 가끔씩 어머니가 동생 잘 돌본다고 칭찬해 주실 때만 빼고. 특히 말타기는 ... 전생의 아버지께 미안할 따름이다.
'아버지 죄송해요.'
하긴 조그만 악마 진이도 막내 오빠가 아니면 놀 상대가 없다. 원래라면 어머니 정씨부인과 함께 정원을 걸어다던지 간단한 자수를 배우고 약간의 한자도 배우는 게 정상적인 양반집 규수의 일상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병간호에 여념이 없고 두 오빠는 서당에 가고 놀 사람이 없다고 하인들이랑 놀 수도 없고 그나마 다 어른이다.
하나 어린애도 있지만 그렇다고 오월이의 딸 유월이랑 놀 수도 없었다. 이제 겨우 7개월짜리 아기인 것이다. 역시 가장 만만한 것은 어머니만큼이나 눈에 많이 익고 (진이가 아기일 때 괴롭힌대가를 받는 거라고 정씨부인 말한바 있다.) 재미난 놀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며 언제나 집에 있는 막내오빠 균이다. 거기다 덩치도 제법 되어 요즘 진이가 즐기는 말타기 놀이에 제격이다.
집안에 어른인 부모님이 투병과 간호로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사이, 균이나 진이는 여염집 아이들처럼 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균이가 있기에 진이는 최소한의 교양은 갖추고 있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옛날이야기하면서 같이 한자도 간단히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자 진아, 이게 무슨 자게?"
"옮길 이(移)"
"그럼 이건 뭐게?"
" 뫼 산(山)."
"앞에 두 자는 아직 모르지."
"응~."
"오빠가 이야기 해줄게. 이건 어리석을 우(愚), 이건 공변될 공(公). 합쳐서 우공이산이라고 한단다. 오빠가 이 말에 관련된 이야기해줄께."
"우응!"
"옛날에 나이 90먹은 우공이란 이가 아들, 손자까지 거느리고 살았는데 어느 날 장를 보러 가는데 장과 우공의 집사이에 태행산과 왕옥산라는 산이 있었데. 그런데 그 산이 이만큼~~~ 보다도 더 커서 장보러 가기가 불편하더래. 그래서 우공은 가족들을 모아서 산을 옮기기로 했지. 그리고 거기서 나온 흙과 돌은 바다에 가져다 버렸데. 이를 본 지수라는 자가 그 큰 산을 언제 다 옮기냐고 하자 이 우공은 내대에는 이룰 수 없지만 내 자손대대로하면 언젠가는 옮길 수 있다고 하더래. 그러자 태행산과 왕옥산 산신령이 언젠가는 산이 없어질 거라고 놀라서 천제께 부탁해서 산을 옮겨버렸데……. "
"피~ 거짓말. 재미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 말타기 할래. "
"..."
대체로 이렇게 끝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동화들은 그럭저럭 잘 먹혔다. 은혜를 갚은 두꺼비라던지, 콩쥐팥쥐, 장화홍련,춘향전, 놀부 흥부전등. 물론 춘향전등 앞으로 200년은 지나야 생기는 이야기지만 뭐 균이 마음대로다. 이로서 역사에 균이나 진이가 최고의 만담가로 남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특히 진이가 좋아하는 것은 콩쥐팥쥐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등 왕자가 나오는 내용이었다. 유명하고 멋진 남자와 사랑은 아무리 재탕해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아무리 꼬맹이라도 여자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네 남매가 오징어 달구지나 술래잡기할 때였다. 언제나 진이와 균이 한편이고 정과 인이 한편이다. 그만큼 숙달되고 건강한 균은 막강함을 자랑했다. 아기 때의 성장속도보다는 덜하지만 틈틈이 운동을 한편이라 연약한 형제들보다는 압도적일 정도의 체력을 보여주었다.
정과 인이 균을 밀어내려고 해도 균은 잘 버틸 정도였다. 물론 땅을 슬쩍 판다던지 신발에 장난을(신에 홈을 만들다가 어머니 정씨에게 걸려서 아작 난적도 있지만…….)쳐서 버티는 거지만 정과 인는 균을 어린동생으로만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균은 진이랑 형제들이랑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가장 많이 한 일은 산책이다. 당시 한성부는 인구 20만의 대도시였다. 그 덕분에 균은 멀리가기는 커녕 서부를 벗어나지를 못했다.
마음먹고 한성 전체를 둘러보다가 외숙 정인기에게 걸린 뒤로는 말이다.
한성부는 크게 5부로 나누어지며 이는 오늘날의 구와 같다. 이 5부는 각기 10여개의 방를 거느리는 형태로 행정망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달방은 서부의 방중 하나로 지금의 종로구 필운동이다.
집 근처인 인달방에는 제법 관아가 많았다. 경복궁이 서울의 정중앙에서 서쪽에 치우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앞으로 육조거리등 관청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성 일대를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도성인 한성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거기에 쓸데없는 궁궐이나 대저택 때문에 특히 좁게 느껴졌다.
남부 일대는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집들이 작고 초가집도 많은 반면 북쪽에는 경복궁이 있어서 그런지 주요 대신들의 저택이 으리으리하게 지어져있어 빈부의 차이가 확실하게 들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숭례문 밖으로 나가보고 싶지만 아직 균은 호패(주민등록증)를 받으려면 10년은 있어야 했다.
그 유명한 육의전도 찾아봤지만 물건값이 무척이나 비싼 듯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골목에서 거래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고 그러다 포졸에게 걸려 끌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벌써 보부상들이 생겨나는 듯했다.
남산은 봉화대 때문에 가끔 산불이 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산불이 나면 봉화로 착각하는 일이 있어 벌이 엄하다고 했다. 문득 전생에서 보았던 드라마 상도에서 정치수가 했던 봉화사건이 기억났다. 하지만 아직 만상은 생길 수도 없고 송상은 태동단계에 불과했다.
전체적으로 남쪽에 초가집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한성부는 기와집이 많은 깔끔하게 정리된 계획도시로 전생의 신도시 못지않게 멋진 도시였다. 다만 오물냄새가 많이 나서 코가 마비될 정도라서 위생에는 조금 신경 써야 될 듯했다. 그래도 동시대의 유럽도시에 비해서는 무척이나 양호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나마 보이지는 않으니까.
동시대 유럽에서는 길가에 널려진 오물을 피해서 여성들의 하이힐이 등장했고, 양산은 필수품이였는데 이는 창문을 열고 오물을 버렸기 때문이다. 길 중앙에는 말똥으로 가득했고 길가에는 사람똥이 가득한 곳이 유럽의 도시다. 당연히 전염병이 없을리 없다. 이런 도시환경에서 흑사병이 번져 몇천만의 사람들이 죽었던 것이다.그에 비하면 조선의 수도 한양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깨끗한 선진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