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모으다.
덕흥군 이초가 죽은 후 잠시 우울해 하던 것 같던 균은 외숙부인 정인기를 찾아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역사바꾸기에 들어갈 예정이였다.
균은 선조의 실패원인을 강력한 왕권의 부재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선조는 명종의 조카로 간신히 낙점된 왕이라서 권력의 지지기반이 없었다. 거기에 세자도 태어나지 않아서 왕권은 불안했다. 그래서 사림세력을 이간해서 동서분당을 이르켜 신권을 약화시키려하다가 통제불능의 상황을 만들고 자멸한 것이다.
균은 강대한 왕권을 만들기 위해 세가지를 필수로 생각했다. 하나는 왕에게 절대충성하는 전문관료세력, 둘은 왕의 명령만 다르는 중앙상비군, 셋은 앞의 두세력을 받치주는 자금력이다. 그중에서도 자금력이 가장 중요하다. 조선의 수많은 개혁들의 실패요인이 자금부족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자금원을 획득하고자 한다.
외숙부 정인기는 작년에 혼인을 올리고 따로 살림을 살고 있었는데 이는 조금이라도 더 제 누이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만약에 본가에서 덕흥군의 집으로 그렇게 많이 다녔다면 윤원형이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오~ 우리 균이 아니냐?"
외숙부 정인기는 반가이 균을 맞아주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이 숙부의 집까지 다 오고."
"숙부님께 드릴 청이 있어 왔습니다."
정인기는 순간 균의 눈동자에서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균이에게서 나올 말은 진심이고 보통 말이 아닐 것이다. 정인기도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무리 어린 조카이지만 제 아버지인 이초보다 나은 아이이다.
"염전을 하고 싶사옵니다."
"염전을 ……?"
정인기는 내심 실망했다. 옛날부터 소금은 바다에서 나는 금이라 할 만큼 비싸고 필요한 상품이다. 현재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소금 2섬은 쌀1섬과 맞먹는 값어치를 지녔다. 그래서 고려조부터 왕실의 전매품으로 애용되었고 현재도 왕실종친에게만 염전경영이 허락되는 추세다.
하지만 소금생산시 연료비가 많이 들고 이미 한성부근처는 윤원형등 외척이 경영하는 염전이 포화상태였다. 비록 종친인데다가 최근 덕흥군이 죽어 염전경영이 허락될 가능성은 무척 높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정인기는 총명한 조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균이 너도 알겠지만 이미 염전은 한성부 근처에 포화상태이다. 거기다 거기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다. 그래도 하겠느냐?"
"저는 한성부에서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서 할 생각이냐?"
"전라도 나주 근처입니다."
정인기는 미칠 지경이였다. 전라도 나주는 신라 때부터 염전이 성한 곳이다. 오죽하면 그곳을 기반으로 후백제가 성립되어 세력을 떨치다가 왕건에게 빼앗긴 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했겠는가? 심지어는 소금상인의 딸인 오황후가 낳은 아이가 고려 2대 혜종이 될 만큼 그 영향력도 컸다. 당연히 유서 깊은 소금상인들의 가문이 많아 종친들도 피하는 지역이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할인마트바로 옆에서 노점상을 하겠다는 소리다.
"균이 너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
"신라 때부터 소금의 주산지이옵니다. 그래서 건국 초기부터 태종대왕께서 특별히 허가하신 소금상인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알기는 아는구나. 그럼 왜 그 호랑이 굴 같은 곳에 들어가려고 하느냐?"
"사내대장부가 고양이들을 무서워해서야 되겠습니까?"
"몇 백 년을 이어온 유서 깊은 소금상인들이 고양이라……."
당연히 고양이라 하기엔 문제가 있다. 나주소금상인들의 세력판도는 조선전체상계의 판도나 다름없었다. 아직 송상은 걸음마단계고 만상과 경상은 조선후기에나 생긴다. 비공식적인 상인인 역관들의 조공무역을 제외하고는 16세기 조선의 상업은 거의 소금상인들이 잡고 있다. 그러나 균은 여유 만만했다.
"숙부님은 소금을 만드는 법을 아십니까?"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다. 바닷물을 끓이면 되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려시대때부터 일단 염전을 만들어 진한 바닷물을 만들어 그것을 끓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냥 끓이는 것보다야 낳지만 나무 값이 많이 들고 또 그 질도 나쁜 편입니다. "
"……."
"숙부께선 중국 명나라의 소금을 보신 적이 계십니까?"
"그렇다. 확실히 우리 조선의 소금보다 맛이 좋지만 비싸고 구하기도 힘드니라."
"그 소금의 이름은 천일염이라 하옵고 실제 가격은 우리 조선의 소금보다 훨씬 쌉니다. 중간의 상인들이 농간을 부려 비싼 것이지요. 저는 그 천일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조선소금이던 중국의 천일염이던 제가 만들 소금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은 거짓이다. 고려이후 염전법의 개발로 조선의 소금도 많이 좋았다. 거기다 염도면 에서도 조선의 천일염이 낮다. 중국에서 일부 수입되는 소금은 암염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세계의 60%이상이 바로 이 암염을 사용하고 천일염은 암염이 나지 않는 곳에서나 생산된다. 그러나 이 거짓말에도 정인기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조선의 소금만 독점할 수 있다면 그 이익은 윤원형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대에서는 상당히 소금이 귀해서 북방의 오랑캐에게 잡힌 포로를 데리고 올 때 소금을 주면 두말없이 냉큼 돌려줄 정도였다. 만일 조카가 소금대상으로 성장한다면 그리고 조카의 능력이면 결코 윤원형에게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예상한 바로는 단 1결의 토지에서 1년에 4만근의 소금이 나옵니다. 약 200섬이지요. 이정도면 한성부에서 거래되는 쌀로 100섬입니다."
여기서 1결은 곡식 400말이 생산되는 토지면적이다. 고려 때는 약 300말의 곡식이 생산되면 1결이라 하였지만 고려 후기 농업의 진흥으로 조선 때는 약 400말의 곡식이 나야 1결이라 했다. 그리고 결의 크기도 달라서 비옥도에 따라 결의 크기는 4배의 차이를 보인다. 참고로 16세기의 1결은 약 3000평에서 12000평이다. 이것을 세종대왕때 비옥도에 따라서 6등분했고 이를 전분육등법이라 한다.
조선시대는 1말이 약 5~6리터였고 1섬이 15~20말이다. 이런 차이는 조선정부의 통제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수도 근처의 쌀 한 섬은 20말에 1말은 약 6리터로 보고 있다. 따라서 1섬은 약 120Kg. 1결당 곡식의 생산량은 약 20섬이다. 그리고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00냥이다.
한마디로 농사짓는 것에 비해 5 배의 이익이라는 소리다. 그나마 종친 같은 이들은 세금을 걷지않거나 명목상의 세금만 냈다. 물론 나주의 소금상인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므로 같은 면적을 가졌다면 원가면에서 먼저 경쟁이 힘들다.
"거기다 나주의 상인들은 판매수익의 칠 할을 인건비와 연료비에 넣으면서도 같은 면적에서 일년에 100석의 소금을 얻고 있습니다. 저는 단 삼 할이라도 남습니다. 여기에는 운송료와 인건비가 포함된 것입니다. 거의 쌀 70석이상은 남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초기 시설투자비도 상대적으로 안 들어 남해도서의 바닷가의 불모지만 사드리면 됩니다. 물론 차양막이나 창고, 배등은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단 10결만 해도 천석꾼, 100결이면 만석꾼이 부럽지 않을 겁니다. "
"……."
정인기는 순간 목이 탔다. 당시 쌀 1석의 시세는 현재의 10만원 정도였다. 단 농사의 풍작이나 흉작 때는 떨어지지만은 보통 만석꾼이면 1년수입이 10억원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경제력은 오늘날과 달리 형편없어서 조선조정의 1년 세수가 200만 냥 전후다. 만석꾼이면 5만 냥의 수입이니 엄청난 것이다.
1만 냥만 해도 정인기의 본가만한 집을 살고도 남는 거금이다. 10만 냥이면 윤원형의 수입도 겁나지 않는다. 만일 수십만 냥으로 군사를 기른다면 지금의 허수아비 조선군정도로는 결코 제압할 수 없는 군대를 기를 수도 있다. 조정에서 명에 청병한다면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을 몰아주십시오. 빌려주신 돈은 10배로 갚되 조정이나 윤원형에게 표시가 나지 않도록 몇 년 후에 갚겠습니다. "
"균아, 설마 주상전하께 누가 되는 일은 아니겠지?"
정인기는 그 엄청난 돈의 향방에 심히 걱정되는 눈치이다.
"천지신명께 맹세코 그런 일을 없을 겁니다. 어찌 종친으로써 주상전하께 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지도 않겠지만 외가의 안위를 위해 문서를 준비했습니다. "
균은 정인기의 우려에 피로 쓴 문서를 건넸다. 정인기는 균의 철저함에 다시금 감탄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외가에는 피해가 안가도록 쓴 글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균을 믿고 있던 정인기는 혈서를 받지 않았다.
"아니다. 그런 것은 필요 없느니라. 이 숙부가 최대한 힘써 볼 테니 너는 너의 일에만 최선을 다해라.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종친부로 찾아가 허락을 받자구나. 내 아버님이 안 계셔 아마 내일 당장 허가가 날 것이다."
"감사합니다. 숙부님. 그런데 또 부탁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그야 누님을 설득하는 일이겠지. 보나마나 반대하실께다."
"그래서 숙부님께서 저를 명으로 유학 보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이 숙부가 상투 뽑히는 게 보고 싶으냐?"
몇 번 말했지만 어머니 정씨는 그러고도 남는다. 이미 2살 때 열나게 맞아본 균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해결책도 있다.
"어차피 저와 같이 내려가실 것 아닙니까? 한 몇 달만 계셔도 별문제 없을 것이옵니다."
"하하하 이 숙부는 내년에 대과가 있느니라."
"어차피 짜고 치……."
순간 균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이 나올 뻔하여 한숨 드려 마시고 말을 했다.
"어차피 짜고 하는 시험입니다. 윤원형에게 뇌물로 1만 냥을 안 먹였으니 시험은 치나마나 일겁니다. 거기다 제가 내려가면 숙부께서 걱정하시어 밤잠을 못 이루실 것 아닙니까? "
"허허허. 그래 내 말이 옳구나. 너의 뜻대로 하거라."
숙부 정인기의 집을 나서자 이미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종친이지만 부유하지 못한 균은 혼자 털래 털래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요리렷다. 마침 닭을 잡아서 다행이지 까딱하면 진짜로 혈서 쓸 뻔했네.'
그래서 그런지 균의 발걸음이 가볍다.
균이 집으로 돌아오자 잠시 고향에 다녀왔던 삼식이가 돌아와 있었다. 고향이라고 해봤자 삼식이가 태어난 곳이 아닌 노비에서 해방된 부모가 사는 곳이지만 고향이라면 고향이다.
"셋째 도련님, 오셨습니까? 도련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요. 그런데 주인마님이……."
"네가 돌아가시게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피곤할 테니 쉬거라."
"네 도련님."
"그런데 삼식아, 갔던 일은 잘 처리 했느냐?"
"아 참, 이놈의 대가리가 돌빡이여서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구먼요. 가도치란 사람 동생이 참 장사더군요. 제 앞에서 소를 한방에……."
"전달은 했느냐?"
"헤헤헤, 아무렴 입쇼. 소 잡는 걸 보고 올해와 내년에 펴보라고 하고 주었습니다."
"잘했다. 그만 들어가 쉬거라."
균은 그대로 안방에 들어갔다. 어머니 정씨는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외가의 도움으로 먹고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어머니 정씨는 소일꺼리로 바느질을 하곤 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어머니 정씨는 무척이나 수척해보였다.
"어머님, 소자 균이옵니다."
"균이구나. 네 숙부에게 갔었다며?"
"예 어머님. 그런데……."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보니 할 말이 있는 게로구나. "
"예, 어머님. 숙부께 부탁드려 명으로 유학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뭐라고? 안된다. 내 나이 이제 7살이니라. "
'정신연령은 서른 살도 넘었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어머니마저 잃게 됩니다. 아버지는 어려서 어쩔 수 없었지만 어머니 당신만큼은 구하겠습니다.'
역사대로라면 어머니 정씨부인은 홀로 자녀들을 기르다가 선조가 즉위하기 45일전에 죽는다. 최소한 자신이 왕이 되어 조선을 호령하는 것을 보여야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죄책감마저도 얻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균은 어머니 정씨의 걱정스러운 눈동자를 보면서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비단 어머니뿐 많이 아니다. 7년여의 기간이면 임진왜란을 막고 사람들이 잘 살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시간이다.
"옛 말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습니다. 옛 성현들께서는 이미 제 나이를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옛날 신라의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으로 건너가 그 벼슬이 당상관에 이르렀으며 황소의 반란을 글로써 진압하는 대공을 세웠습니다. 저도 큰 곳에서 크게 자라고 싶습니다. "
어제 밤새도록 구상한 문구를 읊자 어머니 정씨는 한숨을 내쉬더니 균이를 걱정스러운 듯이 보면서 말했다.
"내가 아녀자라 학식이 짧아서 최치원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너의 뜻은 알겠다. 너라면 큰 곳에서 크게 자랄지도 모르지. 어차피 조선에서는 종친이라고 벼슬길에 오를 수도 없으니……. 그래 내 뜻대로 하거라."
균은 아무 말 없이 어머니 정씨에게 안겼다. 어머니 정씨도 아무 말 없이 셋째 아들을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