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28)

 돈을 모으다.

드디어 최초로 천일염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여름이 아니라 그 생산량은 적지 만 우리나라의 소금역사에 큰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거기다 비금도는 기후가 소금생산에 유리해 예상치보다 더 많은 소금이 생산되어 균과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염전은 더 건설해야했고 많은 일꾼이 필요했다. 거기에 올해 초부터 시작된 병기개발작업은 무척이나 더디게 진행되어 많은 신경을 써야했다.

균이 계획하고 있는 군사력은 즉위전까지 화승총으로 무장한 3천명의 정예부대였다. 이는 한성 부와 왕궁을 경계할 최소한의 병력이다. 일단은 수군의 판옥선과 천지현황의 대포들은 현재 충 분히 사용이 가능했기에 개발을 늦추기로했다. 문제는 지상군의 개인화기와 지원화기 그리고 야 전포의 개발이였다. 이중에서 가장 중시한 것이 당연히 개인화기였다.

정인기가 모아온 대장장이는 겨우 수십명이였기에 균은 염전에 동원할 일부 일꾼을 동원해서 무 기 공방을 열었다. 겨우 만들어진 무기공방에 먼저 지시한 것은 원시적인 공작기구들이였다. 가 장 간단한 정도의 기구만 빼고는 개념조차 잡지못한 공작 기구들이기에 균은 먼저 현재의 조선 의 기술로도 가능한 화승총을 만들도록했다. 총을 만들다보면 필요한 도구가 생기고 그것을 만 들게 되기 때문이다.

"잘 알겠지만 이것은 대포랑은 틀린 무기다. 내가 준 설계도를 보면 먼저 미끈하고 길쭉한 작은 구멍이 뚤린 곧은 쇠막대기를 만든다. 쇠막대기의 끝 부분에는 작은 접시가 달리고 매우 작은 구멍이 나서 내부와 통해야 한다. 그리고..."

전생에서도 안하던 밤새도록 공부하기를 해서 균은 백과사전과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조총 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그래서 대장장이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는데 비금도출신의 젊은이들은 열심히 듣는데 경험많은 육지출신의 아저씨는 마치 동원훈련나온 예비군같이 졸고있다.

조총은 가장 기본적인 총이라 할 수 있는 화승총이다. 그 명칭은 유럽에서는 아퀴버스라고 불 리고 아시아에서는 조총이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총답게 그 구조도 무척 간단했다. 총열을 만 들고 옆에 조그마한 구멍을 만든다. 그리고는 나무틀에 고정시키고 방아쇠와 화승을 연결해서 결합시키면 끝이다.

지금 생각하면 간단하다. 총을 만들어 본적이 없는 조선이 임진왜란때부터 왜조총을 복사해 개인화기로 보급할만큼 제작은 쉽다. 현대인이고 재료만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정 도였지만 그전의 핸드캐논에 비해서는 엄청난 발전을 보이는 장비이다. 본격적인 총의 시대를 만든 작품인것이다.

자는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한 균은 일부로 강의를 빨리 끝냈다. 그리고는 강의가 끝났는 데도 졸고있는 대장장이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가르쳐 준 것을 기초로 다음 달 이맘때까지 이 총을 만들어서 나에게 제출하도록하라.

이 총의 제조결과에 따라서 그대들의 직위와 대우가 달라질것이다. 이상. "

말은 최대한 위엄있게 한다고 했는데 한 달후 장인들이 만들어 온 것은 핸드캐논이였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 꼬마라서 그런지 장인들에게 균은 귀엽게만 보이는 듯했다. 아무리 균의 성 장이 빠르고 정신은 30살이 넘어도 겉보기는 10살 꼬마양반에 불과했다. 완성된 총을 균에게 주는 그들의 눈빛은 '너 같은 꼬마가 무엇을 알아?'라고 말하는 듯 오만했다.

최초의 총이라는 핸드캐논은 말 그대로 손대포다. 크기만 작을뿐 하는 짓은 대포와 같다. 주 사 용용도도 성에 설치해서 방어용으로 쓰는 것이다. 유럽의 활인 석궁이나 영국의 롱보우에 비해 서 소리가 커서 적을 놀라게 하는 점과 특별한 훈련이 필요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잇점이 없다 .

실제로도 승자총통이라는 병기가 임진왜란 10년 전에 개발되었는데 사거리나 화력 면에서 왜군 의 조총을 능가했지만 그 명중률에서 열세를 보인데다가 그 것을 만회할 만큼 화약의 생산도 넉 넉하지 않아 실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장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이 승자총통과 비슷한 핸드캐논이기에 균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균은 작정하고 염전을 정인기에게 맞긴 후 스스로 소수의 장인만 대리고 조총을 만들었다.

목표는 앞으로 10여년 후쯤에 일본에 완성되는 '다네가시마'와 비슷한 성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물론 이는 조선군이 쓰는 것이 아니다. 초기에는 조선군도 쓰겠지만 정확히는 수출용이다. 최 소한 일본에 포르투갈보다 먼저 수출해 일본 내의 세력을 조정할 수 있는 위치와 그 수익이 목 표였다.

그리하여 단 며칠 만에 초기형 조선-56식 소총이 한정 태어났다. 아직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서 대량양산은 안되지만 다른 장인이 만든 구식 소형포에 비하면 여러가지가 낳았다. 특히 강선을 파서 사정거리와 명중도를 높여서 기존의 총통과 더욱 더 비교되도록 했다.

균이 만든 총은 엄밀히는 '라이플'이 아니라 '건'에 가깝지만 이미 앞서기 시작한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붙이는 것은 자기마음이였다. 그래서 균은 자신이 만든 모든 총에 소총이라 는 이름을 붙인다.

조선-56식 소총이란 이름은 조선에서 1560년에 만든 소총이라는 뜻으로 단기와 서기, 조선 건국 력, 현 국왕 재위 년 중에서 일부러 서기를 선택해서 우리는 이때 이만한 소총을 만들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기 과시하기 위한 이름이다. 그리고 앞의 1과 뒤의 0을 떼고 56식이라고 했는데 만일 1567년에 다른 주력소총이 개발된다면 57식, 1603년에 개발되면 60식이라고 명명하기로 했 다. 주력소총이 바뀌는데 는 최소 10년은 소요되기 때문에 가능한 작명이다.

소총을 완성한 균은 자신의 통제를 안 따르는 다수의 장인들의 콧대를 꺽 위해 바람이 많은 날 을 골라 일꾼들이 만든 승자총통(이라 하겠다.)과 자신이 만든 56식 소총을 비교하게 했다. 장 인들은 대부분 그런 장난감으로 뭐를 하느냐는 분위기였고 이것을 감지한 균은 자신의 소총을 쏠 사람을 데려다가 PRI를 시켰다.

피알아이는 정식명칭은 사격술예비훈련이지만 비공식명칭은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는 훈련이다 . 재수없이 균에게 걸린 그는 자다가도 '백 사로 봤.' 하며 일어난다고 한다. 원래는 힘든 일 이라 삼식이를 시키려고 했는데 그랬다가는 1년만 지나도 함경도 두만강가에서도 56식 소총을 알 가능성이 커서 그냥 겨울이불만 잘 빨아두라는 말만 했다. 그래서 지금 삼식이는 몸살로 누 워있다.

어느정도 사수가 총에 익숙해지자 균은 무기공방의 장인들과 전투무예가등 군사분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성치산성(고려대 축조. 섬의 동쪽에 위치.)근처의 공터에 불러모았다. 정인기가 보면 곤란해서 그 동안 생산된 소금을 가지고 나주에 있는 경재명에게 넘기도록 하고 나주일대 에 거점을 건설해달라고 부탁한 뒤였다.

발사 시범은 약 150미터의 거리에 커다란 천을 두개 걸고 각기 열 발을 발사하게 했다. 이는 조 선-56식소총의 유효사거리가 약 200미터정도 이었으므로 충분한 효과를 보일 수 있는 거리였다.

반대로 승자총통은 유효사거리에서 아슬아슬한 거리다. 더불어 이는 '다네가시마'에 비해 두 배 나 되는 사정거리였다.

장인과 일부 무사들이 모인 가운데 먼저 승자총통이 발사됐다. 폭음이 한참의 간격을 두고 계속 울렸다. 바람도 세게 부는데다가 거리도 멀어 화약을 많이 넣은지라 폭음도 대포만했고 발사수 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사격이 끝나자 표적이 된 천을 가져왔다. 가로 세로 3미터나 되는 천은 깨끗했다.

그래도 장인들의 표정은 그렇수도 있다는 듯한 표정이였다. 무사들이야 활보다도 못한 것을 왜 만들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장인들은 꼬맹이가 만든 총이 터진다 안터진다는 내 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균은 한껏 비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그래 비웃고들 있거라. 저런 자들일수록 실적을 보여주면 다루기는 편하니까. '

곧 56식 소총이 발사되었다. 발사후 총열을 닦고 화약과 총알을 밀어넣는것은 별 차이 없으나 심지를 꼽아 불을 붙이는 대신 화승으로 불을 붙여서 그런지 열 발을 쏘는데 승자총통보다 훨씬 빨랐다.거기다 소리도 현저히 적었고 발사수의 몸도 안정적 이였다. 그리고 표적을 가져 왔는데 천에는 무려 7발의 탄환이 지나간 자리가 보였다.

승자총통은 화약을 많이 넣은 바람에 그 충격이 커서 많이 어긋난 반면 56식소총은 그 반동도 적은데다가 개머리판이 있어 그 충격마저도 완화시켰다. 거기에 소총발사수는 이미 바람이 불 때 사격해본 경험이 있는 반면 총통발사수는 그냥 장인중 하나였다. 거기에 승자총통은 고정시 켜서 지향사격하는 반면 56식 소총은 조준사격을 하니 상대가 되면 이상한 것이다.

"맙소사!"

"세상에!"

당연히 장인들의 입은 떡하고 벌어졌다. 열 살짜리 꼬맹이가 만든 총이 자신들이 만든 총보다 훨씬 뛰어나니 할 말이 없었다. 옆에 있던 무사들도 말로 만 듣던 화약무기의 위력에 혼이 반쯤 은 나간 상태였다. 저 정도라면 일반 활과 비교해서도 앞서는 무기였다. 실제로 1589년 대마도 주 종의지가 조선에 바친 조총은 그 사거리가 활에 비해 짧아서 조선이 방심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56식은 오히려 일반 활보다 긴 사정거리를 가진다.

"보았는가? 그대들이 만든 무기와 내가 말한 무기의 차이를? 겨우 대포를 줄인 것이라고 생각했 다면 큰 오산이다. 이미 왜놈들은 저런 무기로 무장하고 30만의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대들은 저런 고철이나 만들어 내나?

우리가 하는 일은 주상전하께서 을묘년의 왜변을 보시고 비밀리에 추진하는 일이다. 만일 이 번 의 큰 일이 그대들과 같은 자들 때문에 실패하면 결국엔 을묘년처럼 그대들의 가족과 친척들은 왜구에게 죽거나 강간당하고 또는 노예가 될 것이다.

앞으로 내말을 무시하는 자는 당장 염전으로 가라. 그런 폐물은 나에겐 필요없다. 아니 이 나라 조선에서 필요없다. 아예 왜로 가서 왜놈들의 더러운 발이나 핥아주어라. "

균의 말은 역시나 거짓말이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아직 왜군은 총을 제대로 도입하지 않았고 화약의 생산량과 성능은 조선이 앞선다. 그리고 이 일은 균이 서두르는 것이지 결코 명종의 명이 아니다. 물론 10년 후라면 모두 사실이 되는 일이다. 균은 단지 그 시기를 당겨썼을 뿐인 것 이다. (역시 균은 거짓말 안하는 착한 조선어린이다라고 하면 돌 날라 오겠지?)

균의 시기를 앞당긴 말은 일꾼들에게 상당한 동기부여를 주었다. 본시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 사 람들은 떼강도인 일본 왜구를 두려워하면서도 무시했다. 미개인, 야만인인 왜놈들에게 뒤쳐진다 면 그것은 문명대국 소중화 조선의 수치였고 또한 왜구의 흉폭함은 익히 들어 아는지라 임진왜 란 때 천민노비들도 의병에 가세했던 것이다.

균 휘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만일 왜구가 저런 병기로 무장한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었 다. 5년 전 왜구의 침입으로 쑥대밭이 된 전라도 남부 해안의 참상은 이미 조선전체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영명하신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어 온 균의 말에 따라 최선을 다해 더 좋은 무기를 만들어내는 길뿐 이였다.

거기에 균이 화를 낼 때쯤 해서 엄청날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균이 최영으로부터 받은 염왕인이 내뿜는 기운이다. 그렇게 기세등등한 균은 이제 장인들에게 있어서 고작 열 살 꼬맹이 가 아니라 작은 군주로 느껴졌다.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되자 무기 공방은 빠르게 그 기술을 축적해 나갔다. 최소한 임진왜란 전 까지는 후장식 단발소총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현재도 만들려면 만들 수는 있지만 빠른 발사속도로 나는 열을 총열이 버티지 못하고 흑색화약의 개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충분한 폭발력을 기대할 수 없고 총 구조에 의해 뒤쪽으로 가스가 새어나와 사수가 다칠 수도 있다.

총은 안정적이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전장환경은 바로 최악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K-2나 미국의 M-16보다 소련의 AK-47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서방의 소총은 성능 은 좋지만 며칠만 관리 안해도 고장나버린다. 오죽하면 총에 총열청소기구를 수납하는 공간이 있을 정도다. 반대로 소련제 AK-47는 성능은 떨어지지만 모래가 들어가도 고장이 안난다.

월남전에서 사용된 M-16은 총구가 자주 막혀 불발탄이 많았다. 미국 백악관 앞에서 M-16이 내 아들을 죽였다고 데모가 일어난 적도 있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는 M-16의 차세대 소총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2차대전 후에 나온 AK-47은 현재도 퇴역하지 않고 있다. 라덴과 무자헤딘들의 주력병기로 애용되며 어쩌면 22세기까지 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후장총을 만들지는 않고 관련기술만을 연구 개발하고 있었다. 거기에 아직은 56식 소총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시험사격후 총열에 약간의 금이 갔다. 그것도 섬이라서 좋은 화약을 쓰지도 않았는데 생긴 일이다.하지만 균은 비록 백과사전의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개념만 잡은 기술 들이지만 균이 투자하는 막대한 자금의 힘과 장인들의 열정만 있다면 언젠가는 가능하리라고 생각 했다.

염전과 무기 공방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균은 조직을 크게 삼등분하여 편성했다. 이미 일일이 균 혼자서 관장하기에는 그 덩치가 커졌던 것이다. 소금생산부, 무기생산부, 자치경비부 이렇게 3기관인데 소금생산부는 경재성 밑에서 일하다 옮겨온 황재훈이란 자가 부장이 되었고 무기생산 부는 조방장(지금의 공병같은 기술군인)을 지낸 나원호라는 자가 임명됐다. 그리고 자치경비부 는 이제 막 창단되어 소수의 무사를 중심으로 임시 편제했다.

그리고 균이 일명 비금도상회의 경영자로 나서는 체제를 확립하고 회계를 몇명두어 본단을 만들 었다. 그리고 본단과 자치경비부는 일부만 보수한 성치산성에 두고 무기생산부은 큰 항구가 있 는 북쪽해안에 소금생산부는 염전이 많은 섬의 남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아직은 규모가 작은 조 직들이나 궁극적으로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체로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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