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28)

 돈을 모으다.

정인기는 조카 균의 부탁으로 나주로 갔다. 거기서 영향력을 행사해서 비금도나 도초도 일대로 귀양오는 사람들을 막도록 관부에 공작을 하고 유통망인 경재명에게 초기 생산소금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그와 동시에 비금도와 나주를 잇는 거점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경재명의 집은 거상답게 큰 편이지만 대부분이 창고나 일꾼들의 숙소라서 실 거주공간은 무척이나 작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재명은 정신없을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름철이라서 소금이 한창 생산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바쁜시기에 정인기가 방문을 해왔다.

"아이구 오셨습니까? 나으리."

경재명은 연기인지도 모르지만 제법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인기도 육지에 나온 것이 좋았는지라 무척이나 기분 좋게 답했다.

"별일 없었는가? 올해 생산된 소금을 가지고 왔네. 일단 포구로 가보세."

육지로 나온다고 피곤 할 텐데도 정인기는 바로 경재명을 끌고 포구로 향했다. 그리고 포구 옆의 창고로 들어갔다. 거기서 경재명이 본 것은 소금의 산이었다. 원래는 1결당 약 200섬의 소금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수확이 좋아 250섬씩 생산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들려는 계절인데도 무려 2만 섬 무게 64만관. 요즘의 무게로는 2400톤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소금이 나온 것이다. 경재명의 일년 생산량이 10만 섬 안팎인 것을 보면 경재명의 입이 벌어지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2만 섬이면 0.25냥씩만 남아도 그 차익이 5천 냥이나 된다. 세금은 소금가마 즉 염좌에만 붙는 것이기때문에 특별히 더 낼 필요도 없다. 전에 정인기가 세금조로 쌀 한 말씩 더 주겠다는 말이 너무 적어서 이익이 안 날 테니 조금 수고비 더 주마가 아니라 우리 것 팔려면 유통망을 증설해야 하니 그 증설비 대주마라는 사실로 경재명의 머리에 다시 입력됐다.

"이건 일차분이네 두 달 내로 또 이만큼 보낼걸세. "

"......"

올해 소금 작황이 좋은데다가 정인기등에게 산 소금가마가 늘어 경재명은 약 12만 섬의 소금을 생산했다. 총액은 무려 30만 냥이지만 세금으로 3만 냥, 생산비가 21만 냥으로 남는 건 6만 냥이다. 그런데이 사람들은 올해 2만 냥의 수입을 경재성에게 안겨주었다. 경재명의 정신은 한 동안 놀러간 상태였다.

사실 옆에서 웃고 있는 정인기도 마찬가지였었다. 균은 1차 소금대금은 정인기가 가지고 집과 창고를 사서 비금도의 물류를 담당해달라고 했다. 그 대금이 4만 냥이다. 그 많은 돈을 그냥 정인기에게 맡기고 적당히 거점을 만들어 두라고 하고 나머지 돈의 사용도 마음대로 하도록 한 것이다. 정인기의 아버지 정세호대감의 전 재산도 고작 3만 냥이다. 그나마 1만 냥은 애들 같은 막내아들이 반쯤은 들고 나른 상태고…….

한편 경재명은 정인기의 능력에 감탄하고 그의 배포에 경악했다. 그리고 의문점도 생겼다.

'저렇게 많은 량을 생산해 내다니 정말 대상이 될 기질이다. 저런 자랑 손잡다니……. 내가 지안소를 따라잡을 일도 꿈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금가마 하나에서 저렇게 많은 것을 생산하지? 염좌기술자는 모두 관소속이라서 혼자서 만들 수도 없는데……. 특수한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 어디 알아볼까? '

이때 정인기의 일침이 떨어졌다. 안 그래도 균이 경재명이 생각하는 듯하면 일침을 가하라고 했던 말을 한 것이다. 최소한 균이 왕위에 오를때까지 모든 기술은 누설되서는 안된다.

단순히 경쟁자를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목을 받는 것이 문제였다. 조금 고생해서 유통망을 만드는 것이 돈이 많이 남는 일인데도 비싼 경재명의 유통망을 이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잘 알겠지만 우리는 일염좌 만으로도 많은 소금을 생산 할 수 있네. 하지만 이는 한성부의 높으신 분만 아시는 일이니 발설하면 곤란하네. 물론 그대가 말이지. 안 그래도 우리와 손잡아도 이익이 상당해 지안소를 따를 수 있는데 어설픈 짓은 멸문지화는 기본이요 삼족이 망할 수 있다네. 알겠는가? "

아닌 게 아니라 지안소의 일년 수입이 20만 냥인데 조선 최고의 부자인 만큼 뇌물 주는 것도 많아 실수입은 15만 냥 남짓이다. 그동안 경재명은 지안소의 33%정도의 수익을 올렸는데 이제는 거의 47%에 달하는 이익을 기록하면서 나주상계, 더 나가서는 조선상계에서 둘째가는 위치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지안소 독주체제에서 지안소, 경재명의 이강체제로 바뀐다.

물론 정인기가 말한 비법을 알아내면 지안소를 능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 뒤의 높은 분이라면 특히 종친보다 높다라면 바로 현 주상 명종이 있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은 정인기는 정세호을 두고 한 말이다. 명색이 당상관이 아니던가? 정인기는 아버지 정세호를 존경하는 인물이다.)이 때 비법을 알아낸다면 문자 그대도 가문은 박살나고 오히려 다른 소금상인들만 좋은 일시키는 길이다.

하지만 이들이 시키는 일만 잘해도 큰 이익을 보며 나중에 국왕의 특혜를 받을 수도 있었다. 만일 소금가마를 천개쯤 더 내려 준다면……. 아니 아예 세금을 면제해준다면.... 지안소을 앞질러 조선상계의 거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재명의 머리에 이런 장밋빛 미래가 그려질 때 정인기의 머리도 복잡했다. 처음에 셋째 조카가 신동인 것은 알았다. 그리고 제 아비가 죽은 후 가정을 이끌어갈려는 노력에 약간의 가능성을 두고 도와주기로 했는데 이건 기대치이상도 보통이상이 아니다. 정인기의 뇌리에는 생전에 이초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균이는 그냥 종친의 자리에 있지는 않을 게야... 콜록~ 콜록~ 하~하~ 무슨 역모를 꾀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오른다고 하더군. 콜록~ 콜록~ 몇 년 안으로 자네는 충분한 보답을 받게 될 걸세. 그러니 우리 균이가 하는 일을 잘 도와주게나."

아직은 어려서 그다지 위엄을 가추고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유약하기로 소문난 현 세자보다는 곤룡포와 익선관이 잘 어울리는 듯한 조카 하성군 이균. 거기에 이초의 당부와 두 눈에 보이는 실적. 가끔씩 화 낼때나 보이기는 하지만 위압감(사실은 염왕인의 기운)과 일반 백성들도 웃으면서 잘 대해주는 인덕. 정인기는 조카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었다.

' 매형이 말한 그자리가 용상이 아닐까? 하지만 세자저하가 계시는데……. 하지만 세자자하의 건강이 나쁘다는 소문도 있다. 그렇다면 세자저하가 죽은 후 주상전하의 조카중 가장 뛰어난 균이가 보위를 잇는 것은 아닐까? 참 나도 소설 쓰고 있군.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든 일이야. 당장 종친만 수십명이 아닌가? 물론 그중에서 균이 제일 낮지만..... 게다가 주상전하의 보령이 아직 젊으시니 다시 왕손을 보실수도 있고... '

옆에서 세금감면시 이익을 계산하면서 웃고 있는 경재명의 옆에서 정인기는 요즘들어 자주하는 균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느 정도 비금도의 사업장들이 제자리를 잡고 균이 일일이 지도할 필요가 없어지자 균은 2차 판매소금들과 함께 나주로 향했다. 정인기와 함께 한성부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균은 자신의 대리로 김호진이란 몰락양반을 임명하고 본단과 자치경비부의 사무를 맡겼다.

정인기는 포구근처에 집과 창고를 마련해두고 있었는데 그래도 2만 냥이 남았다. 거기에 균이 오면서 경재성에게 받은 4만 냥까지 합하니 6만 냥의 거금 이였다. 하지만 초기자금 11만 냥도 아직 많이 남아있는 상태임으로 완전한 여유자금이였다. 6만 냥을 다 쌀로 가지고 가기에는 눈에 뛰고 또 운송비도 많이 들어 모두 금과 은으로 바꾼 후 이번에는 10여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한성부로 향했다. 최대한 군대주둔지나 관아가 있는 길을 따라서다.

"균아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들고 가는 게냐?"

정인기가 불안한 듯 균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균은 태평했다.

"저희 집과 숙부님 댁의 생활자금입니다."

"아니 저 정도면 생활자금으로는 너무 과한 게 아니냐? 한 일만냥만해도 우리 두집안이 몇 년은 풍족하게 살고도 남는데……. "

정인기의 말에 균은 더욱 빙그레 웃었다. 일 만 냥이면 쌀이 이천 섬이다. 두 집안이 아무리 잘 먹고 잘살아 하루에 한 섬씩 쓴다고 해도 3년은 쓸 물량이다. 그것도 각자 한 섬씩 사용해야 그 정도다.

"일단 생활비는 각각 5천 냥씩 주어 남은 가족들이 풍족하게 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5만 냥은 다른데 쓸 곳이 있습니다. 다행이도 숙부님이 돈을 많이 남겨주셔서 더 쓸모가 있어졌습니다."

원래는 2차 판매대금 4만 냥도 정인기와 균의 본가를 살찌우는데 쓸 생각 이였지만 쓸데없이 이목이 집중되는 점과 더 중요한 사용처를 생각해내는 바람에 이렇게 은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올라가는 길은 이미 단풍이 지는 정도라서 그다지 아름답지는 못했다. 하지만 농사가 끝난 후라서 퇴비의 냄새는 풍기지 않았고 공기는 차가워 상쾌했다. 비금도의 짠 바람과 물고기 썩는 냄새에 비하면 정말 상쾌한 것이었다.

한성부에 도착하니 이미 늦가을인지라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균과 정인기는 바로 정인기의 집으로 갔다. 그 곳에는 시집온지 얼마 안되어 독수공방하던 균의 외숙모 김씨가 외로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일단 균은 대문 밖에서 대기했고 정인기만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예상했던 정인기의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소리가 아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외숙모는 천사라서 신혼때 집을 비운 숙부를 용서했는 가보다. 야 숙부 장가는 잘 갔구나. 나도 저런 착한 색시랑 결혼해야 할텐데 진이 같은 말괄량이나 비금도의 괴물처녀, 최악의 우리 누나라면 차라리 총각왕으로 살고 만다. 암~ '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정인기가 안고 나온 것은 아기였다. 외숙모는 1년간 균의 사촌동생을 낳아서 길렀던 것이다. 정인기의 얼굴은 기쁨 반에 미안함 반이 썪인 표정이다. 외숙모가 홀로 얼마나 힘들었을 지는 균도 대충은 안다. 그 원흉인 균은 무척이나 미안해서 차마 외숙모를 보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곧 인달방의 집에 돌아온 균은 1년 만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부러 저녁시간을 맞추었는데 아기를 보느라 늦어 저녁을 먹고 난 후였다.

"균이 오라버니~!"

역시 가장 반기는 것은 여동생 진이였다. 가장 만만한 놀이감의 등장이니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 열렬한 환대에 균은 허리가 아파왔다. 보나마나 또 말 타기 놀이 하자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균이 왔구나!"

"와 균이다!"

큰 형 정과 작은 형 인도 웃으며 반겼다. 어머니 정씨는 뒤에서 눈물짓고 있었다. 정집사나 나머지 하인들도 반가운 듯이 셋째 도련님의 귀향을 반기는 듯했다. 하긴 그동안 이초의 사망과 이균의 유학(?)등으로 무척 집안 분위기가 우울했다.

잠지 진이와 두 형을 달랜 균은 어머니가 계신 안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특별히 정집사를 불렀다. 원래는 규방에는 친족이 아닌 남자는 들어가면 안 되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기에 한 일이다. 물론 다른 남매들과 하인들은 방에서 못 나오게 했다.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삼식아 아까 말한 상자를 들고 오너라."

정집사가 들어오자 균은 삼식이이게 상자하나를 들고 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정집사에게 열개했다. 그 상자에는 은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정집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어머니 정씨의 표정도 크게 동요하는 듯했다. 하지만 균은 믿음을 주기위해서 담담히 이야기를 했다.

"어머님도 소문을 들어 아시겠지만 소자는 명으로 유학을 간것이아니라 주상전하의 명으로 전라도로 내려갔습니다."

"그건 대충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단다. 그런데 주상전하의 명이라고?"

"그렇습니다."

어머니를 속이고 있는 균은 입에 침이나 바르라는 속담을 이해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것이다. 연기자 정인기라면 모르지만 아직도 자신의 연기는 멀었다. 하지만 완전한 거짓말도 아니다. 차기 주상전하의 명이니까. 균은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고 당당하게 말했다.

"현재 조정의 상황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윤원형의 전횡에 각지의 반란은 주상전하의 최대 근심거리이옵니다. 하지만 주상께서 하고 싶은 일을 하시기 에는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목되어 주상전하의 밀명을 받들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두 분만 아셔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 가문은 멸문 당할지도 모릅니다. "

방안의 공기는 싸늘해졌다. 염왕인덕분에 강화된 균의 기운이 온 방안을 무겁게 했다.

"이 돈은 소자의 녹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5천 냥이니 3년은 풍족히 쓰실 겁니다. 두 형님들도 좋은 옷을 입고 다녀도 되고 진이가 사달라는 것은 다 사주고도 남을 돈입니다. 정집사는 이 돈을 잘 간수해두게나. 그리고 돈이 부족하면 어제든지 내게 말하고. 이제 숙부님께 손을 벌릴 필요는 없다네."

하지만 쫌생원 정집사마저도 그 인상이 좋지 못했다. 먼저 저 어린 도련님이 구해온 돈인데다가 위험한 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 주상인 명종이라도 윤원형과 대비 윤씨의 세력에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균은 웃으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제가 하는 일을 알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단은 주상전하의 비호도 있고 이중삼중의 보호막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사람만 이 사실을 아신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단 제 형제들이나 친척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다짐을 받은 균은 정집사에게 은을 간수하게 하고 그날 밤에는 어머니 정씨와 같이 잤다. 꼭 안겨 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살내음이 무척이나 좋았고 집을 떠나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 잘 넘어가서 더욱 더 좋았다. 그래서 그 날은 무척이나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다음날 낮에 궁으로 연락을 하고 저녁엔 저번처럼 해가 지고 나서 궁으로 입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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