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모으다.
균을 맞은 것은 승전선전관 심성태였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 이였지만 서두르는 듯한 균의 재촉에 길을 서둘렀다. 그리고 그가 안내한 곳은 역시나 경회루의 연못가였다. 그리고 명종 이환은 겉늙은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하성군 이균이 당금 주상전하를 뵙사옵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하던 일은 잘 되었느냐?"
명종 이환은 1년 새 더욱더 늙어진 듯 하였다. 잦은 변란에다가 농사도 몇 년째 대흉년이고 거기에 세도가들의 전횡이 겹쳐 조선전체가 뒤숭숭한데 대비 윤씨의 간섭으로 뜻을 펴지도 못하고 있으니 젊은 왕으로써는 마음에 병이 생길지경이였다.
거기에 작년에 혼인을 한 외동아들인 부 역시 아파 눕는 날이 많아서 아비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저 상태로 대나 이을 수 있지 걱정 이였고 급한 마음에 중전 심씨 이외에도 몇몇 궁녀를 건드려 보았으나 아이를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황해도 일대에는 임꺽정이란 자의 도적패가 관아를 습격하고 있지만 토벌대는 번번이 실패를 하고 돌아왔고 심지어는 거짓으로 임꺽정을 잡았다고 하다가 파직된 자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겨우 임꺽정 못 잡는다고 화내는 것이 다였다.
"소신 주상전하의 하혜와 같은 성은에 힘입어 좋은 결과를 올릴 수 있었나이다. "
"오~ 그런가? 잘 되었구나 잘 되었어."
명종은 진심으로 균의 성공을 기뻐하는 듯했다. 대부분의 일을 속이고 있는 균은 내심 미안함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명종과 균 둘에게 모두 좋은 일이기에 정색을 하고 선전관을 불러 커다란 상자를 들고 오게 하고 그를 멀리 보냈다.
"왜 선전관을 보내었느냐?"
"소신 전하께 보여 드릴 물건이 있사옵니다."
"보여주다니……. 내가 만든 소금이라도 들고 왔느냐?"
명종의 물음에 균은 상자의 뚜껑을 열면서 대답했다.
"소금은 소금이지만 너무 양이 많아서 조금 줄여왔습니다."
균이 열어둔 상자에는 금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은은 부피가 커서 눈에 안 띄게 궁내로 반입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금으로 준비한 것이다. 명종은 놀랐다. 척 보아도 5만 냥 어치는 될 듯한 금이 상자에서 빛나고 있었다.
"작년에 소금가마를 빌려줄 때 태풍이 불어 더 많은 돈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소신의 일은 저희 식구의 호구만 해결하면 되는 일이라 남는 돈을 가지고 온 것이옵니다."
"쉽게 말해서 뇌물이라는 것이냐?"
명종은 불쾌한 듯했다. 순진한 아이가 돈에 찌든 듯해서 명종은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균은 동요함이 없이 답했다.
"뇌물이라면 서원군의 집에 주면되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뭐라!"
명종은 매우 격해졌다. 아무리 윤원형의 세도가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드린다고 한다지만 이제는 대 놓고 자신보다 윤원형의 위세가 강하다고 하니 명종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균의 표정은 변화가 없이 담담했다. 이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였다.
"전하, 소신은 전하의 신하이자 이 나라 조선의 종친이옵니다. 어찌 서원군에게 빌붙어 나라에 해가 되겠습니까? 돌아가신 선친께서는 언제나 나라를 걱정하시었고 또 전하를 걱정하시었사옵니다. 자식 된 자로써 그런 짓을 한다면 죽어서 선친을 볼 낮이 없사옵니다. "
"……."
균의 말에 어느 정도 화가 식은 명종은 말이 없었다. 균의 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계속되었다.
"이 돈은 다 전하께서 내려주신 것이옵니다. 전하께서 내려주신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뇌물이라고 할 수 없사옵니다. 다만 소신은 이 돈을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전하께서 올바른 일에 써주셨으면 하고 가져온 것을 뿐이옵니다. "
균이 가져온 금은 명종이 허가한 소금가마를 대여한 돈이다. 따라서 명종이 하사한 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기사 뇌물이라면 서원군 윤원형에게 주면된다. 균은 종친이라 안 되겠지만 균의 외숙부 정인기는 당상관자리도 차지할 수 있는 거금이다. 거기에 덕흥군 이초가 죽은 이유도 윤원형일파에 대한 화병이라는 소문도 들은 봐 있다. 명종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이 금을 어디다 썼으면 하느냐? 너 정도라면 그 정도의 생각은 있을 듯하구나."
"소신이 전라도로 가면서 많은 유민과 밥을 못 먹는 백성들을 보았나이다.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먹였으면 하였습니다. 차마 그 돈이 전하의 돈인지라 건들지 못하였지만 제대로 어미가 먹지 못해 안 나오는 젖을 빠는 아기를 보았을 때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사옵니다. 그나마 제가 지난 곳은 조선의 곡창이라는 전라도였는데도 곳곳에 그런 이들이……. "
균이 감정이입을 한 것은 바로 실제로 그 비슷한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내년 보릿고개가 되면 충분히 벌어질 일이다. 전라도등 평야지역이 많은 곳에는 한양의 세도가들이 만든 농장이 많았다. 그리고 그 농장을 경작하는 많은 소작인들은 하루에 한 끼를 먹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자작농들은 좀 낮지만 세금을 안내는 양반들의 농토가 넒어져 줄어든 세금만큼 더 세금을 내야 하였기에 그 고충이 못지않았다. 인구의 10%도 안 되는 양반을 위해 90%의 백성들은 죽어라 고생하고 있었다. 물론 그 양반층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농장을 경영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전생에도 그 비슷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북한이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북한 다큐멘터리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엄마가 갑자기 구토를 하는데 그 토사물에는 잡초 조금이 다였고 나중에는 물밖에 안 올리는 상황을 유지하다가 결국 쓰러져 죽고 아기는 죽은 엄마의 품에서 꿈틀거리며 마른 젖을 빨다가 우는 바로 그 장면을 균이 떠올린 것이다.
그 생생한 장면이 떠오르자 균의 눈가는 어느 덧 촉촉해졌다. 조선은 그보다는 낮지만 흉년이 든다면 그런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특히 균이 치르게 될 임진왜란 때는 더욱 그랬다. 균의 특기 감정이입과 낮게 깔려오는 어둠에 넘어간 명종은 순수한 어린조카에게 너무 화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는 무척이나 미안해 졌다.
균은 비록 울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분위기를 잡았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차례로 자신이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비참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묘사했다. 북한동포들의 일이라던지 소말리아, 에디오피아, 방글라데시, 아프카니스탄, 쿠르드 족 등이 현재 조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로 둔갑했다.
"그게 정말 이 나라 조선에서 일어나는 일이냐?"
국왕 명종은 자신의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많이 과장된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그나마 자신의 주변에서 나라의 현실을 알려준 이는 하성군밖에 없었기에 명종은 하성군이 마음에 들었다. 거기엔 내탕금(국왕의 개인재산)이 바닥을 보이는 시점에 받은 뜻하지 않은 돈도 한 몫을 했다. 국왕도 돈이 있어야 유리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상도에 흉년이 들었는데 국왕이 내탕금 5만냥을 내어놓고 신하들에게 성의좀 보여라 하는 것과 그냥 돈 좀 내라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국왕이 많이 내면 신하들도 최소한 직급과 명성에 맞게 내게 되므로 그만큼 모금액은 많아진다. 특히나 흉년과 변란으로 돈이 마른 조선조정의 상황을 볼때 균이 준 돈의 가치는 10만냥에 필적하는 것이다.
"며칠 후에 다시 부를 터이니, 내려가지 말고 한양에 남아있거라. "
그래서인지 모르나 균에 대한 명종의 말투가 마치 자식을 대하는 듯 따스했다. 균의 뇌물작전은 성공을 거둔 듯했다.
다음다음날 균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통해서 입궐했다. 이번에는 가족들과 함께였다. 아울러 여러 종친들도 함께 입궐했는데 균만 만나기에는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아서 명종이 한번 다 입궐하라고 어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복궁에 들어서면 흥례문이 나온다. 흥례문은 옆에 전각이 없는 문인데 이는 국왕의 궁에는 대문이 많아야 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구중궁궐이란 말도 9개의 문을 통과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조선은 천자국이 아니라 국왕의 침소인 강녕전에서 밖에 나가려면 5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밖에 없는 흥례문을 지나면 영제교를 거쳐 근정문에 이른다. 영제교는 인공하천위에 놓은 작은 다리인데 진이가 물놀이하고 싶다고 해서 가족들 모두 사색이 됐다. 만일 진이가 명종 앞에서 '와 수염 이쁘게 생겼다.'라고 하면 명종은 참아도 대비 윤씨가 가만히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균에게도 처리방법이 있었다.
"진아 이제부터 한 마디도 안하면 내일 하루 종일 말태워줄께."
"음~!"
영악한 진이는 말도 하지 않고 소리로 답했다. 정씨부인과 세 형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균은 자기가 탈 말을 꼭 잡고 따라오는 진이를 데리고 근정문의 동문인 일화문으로 들어섰다.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은 왕이나 출입하는 곳이고 동문인 일화문은 문관이 서문인 월화문은 무관이 출입한다.
근정전은 조선의 정전으로 일제침략기때 근정전에 일장기를 걸어 조선의 멸망을 알릴만큼 조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궁내에서 제일 큰 2층높이의 근정전이 내려다보는데 문무백관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은 일대의 장관이지만 당연히 균의 상상일 뿐 지금은 균의 일가와 몇몇 내시와 궁녀들 정도가 전부이다.
동쪽회랑을 따라서 가다보니 옆에는 자선당이 보인다. 현 세자인 이부와 세자빈 윤씨의 거처로 일명 동궁이다. 한참을 걸어서 (네 남매 다 아직 꼬맹이다.) 들어선 곳은 앞으로 균이 직장생활을 할 곳인 사정전이다. 이름이 요상하지만 뜻은 생각 잘해서 정치해라는 것으로 조선의 최고 권력이 나오는 곳이다. 신하와 왕이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하는 그 곳인 것이다. 근정전이 상징적인 조선의 중심이면 사정전은 실질적인 조선의 중심이다.
그 다음 전각이 바로 강녕전이다. 향오문을 통해서 들어서는 강녕전은 국왕의 개인 공간이자 침소지만 경복궁의 중심이고 자주 대신들이 와서 추가근무를 강요하고 가끔은 후궁들이 나타나서 시간 좀 내서 찾아오라고 앙탈부리며 심심하면 왕의 눈에 뛰고 싶은 궁녀들이 별 이유없이 방황하는 경복궁에서도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중 하나다.
명종 이환은 1534년 중종의 두 번째 적자로 태어나 12살 때 형인 인종이 이유 없이 온 몸에 반점이 생겨 마치 독살당한 것처럼 죽어 조선 13대 왕이 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윤씨의 영향력에 휩싸여 현재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다지 건강하지도 못해서인지 후궁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고 중전 심씨와 사이에 올해 9살의 세자 부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일단 명종은 종친들과 그 가족들을 데리고 강녕전에서 간단한 연회를 베풀었다. 나라의 사정도 나쁘거니와 보는 눈이 있어 경회루에서 대연회를 베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복형제들과 이런저런 별 뜻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늘 연회에 참가한 왕손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중종은 무려 9명의 아들과 11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중에서 왕자중 살아있는 이는 6명이였고 그들의 자손을 모두 합해도 왕손들은 고작 12명 정도였다. 그것도 균의 삼형제와 세자 부를 포함한 수치다. 그나마 대부분 몸이 약했다. 오죽하면 둘째 인이 건강한 편이니 말 다했다. 당연히 오늘 모인 왕손 중에 균이 가장 눈에 뛰는 존재였다. 일단은 그 엄청난 덩치에 같은 또래의 왕손 심지어는 한 살위의 세자도 균이 형인줄 알아서 은근히 겁을 냈었다.
'우리 세자도 하성군만큼만 건강했다면…….'
세자 이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문정왕후 윤씨는 불교에 무척이나 심취했는데 최근에는 하나분인 손자의 병약함에 많은 불공을 드려 명종의 내탕금을 거의 바닥낼 지경이었다. 특히 보우라는 승려에게 많은 돈과 벼슬을 내려 세자의 건강을 기원했다. 하지만 세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약해졌다. 특히 요 1년새에 혼인을 하고 난 후에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하여 안 좋은 소문이 떠돌았다.
거기에 세자의 성품도 유약하여 제대로 왕권이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특히 중전 심씨의 외척인 심통원과 이량은 윤원형을 이을 차세대 외척으로써 주목받는 상황이다. 세자가 보위에 오르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선의 내정은 바로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했다. 그에 반해 하성군 이균은 아직은 어린 꼬마이지만 벌써부터 생각하는 것은 남달라서 부와 비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