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만들다.
서기 1560년 명종 15년도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특히 황해도 구월산 일대 는 벌써 첫눈이 소복이 쌓여 온 세상이 하얀색으로 보였다. 무척이나 설경이 아름다 운 구월산의 중턱을 두 인영이 걷고 있었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데 작은 인영 이 더 잘 걷고 있었고 큰 인영은 가끔씩 눈 속에 빠지는 지 허우적거렸다.
"도련님 같이 가요. 어째 저렇게 잘 걸으세요?"
"이런. 그러니까 너도 설피(눈 위에 신는 신발)만들라고 했잖아. 그 시간에 낮잠을 자?"
균이 화를 내자 삼식이는 조용해 졌다. 그러나 잠시 후에.
"윽~ 삼식이 살려! 도련님 저 좀 꺼내주세요!"
"으~ 이걸 버리고 가던지 해야지..."
균은 다시 가던 길을 돌아와서 삼식이를 끌어 당겼다. 그러자 푸욱 소리와 함께 균 의 두 발목도 눈 속에 파묻혔다. 아무래도 어린 균이 큰 어른인 삼식이를 꺼내기는 무리였던 것 같았다.
"이런~!"
균의 비명소리가 구월산을 울렸다. 그 소리에 옆에 있던 소나무도 움찔했던지 가지 에 쌓인 눈을 내려놓았다. 그것도 두 사람의 머리위로 사뿐하게 내려놓아 이미 장딴 지까지 눈에 빠진 균을 허리까지 매장했다.
산의 하루는 무척 짧아서 해는 빨리 뜨고 빨리 진다. 어느덧 해가 지고 균과 삼식이 는 나무 밑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물론 산사태가 안 날만한 곳이다. 나뭇가지를 주어모아 특별히 준비한 불씨로 불을 피워 추위에 대비했다. 이제 잠잘 일만 남았 는데... 그런데...
"삼식이 너 침구는 어쨌어?"
"그게 아무래도 아까 눈에 빠질 때... 그만..."
"으악~~~~!"
아무래도 전생에 누나에게 눌려서 안 나온 성질이 다 나오는 하루였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고 해가 뜨면 지는 법이다. 다음날 구월산 계곡에서 유난히 삼식이 의 목소리가 크다.
"도련님 또에요?"
"애휴~ 이 계곡이 아닌가보다....."
균은 길치는 아니다. 하지만 어설픈 지도와 눈이 내려 안 보이는 길로는 목적지를 찾겠는가? 오랜만에 삼식이는 기세등등한 것이 혹시 밤새 지도를 바꿔치기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됐다. 그래서 슬그머니 삼식이를 바라보는데...
"도련님 뭘 보셔요?"
"아니다..."
오늘따라 삼식이는 과묵해졌고 눈도 커진 듯 부리부리하다. 왠지 삼식이 앞에서 작 아지는 균이다. 사실 임진왜란 전의 조선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신분차가 적은 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양반들의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낮은 신분을 박대한 것이 때문에 균이라도 잘못한 이상 눈치를 보는 것이다.
조선 세종대의 4군의 개척자이며 좌의정에 오른 장군 최윤덕은 어려서 무장인 아버 지가 바빠서 이웃집 백정의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조선 9대왕 성종은 암행 나갔다 가 만난 평민에게 바로 벼슬을 내리고 술자리를 같이 했다는 야사도 있다.
16세기 야사류 책의 하나인 기묘록보유를 보면 당당한 양반출신인 이장곤이 연산군 의 추적을 피하여 양수척의 집에 숨어들었다가 백정 딸과 혼인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신분격차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조선후기에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한 것도 이에 기인한다. 양대전란후 양반들의 숫 자가 급증하고 질이 떨어지면서 하층민을 압박한다. 그리고 그 양반의 대부분은 조 정에 돈을 주고 벼슬을 사서 양반이 된 자들이다. 거기에 하는 짓은 개차반이니 밑 의 사람들이 따르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신분차이가 나도 나이가 많은 이는 조금 우대하는 것이 정상이다. 늙 은 하인을 부를때도 '이서방, 이것 좀 하시게.' 라고 해주는 것이지 '야! 이놈아 일 빨리 안해!' 하는 것은 공명첩으로 벼슬을 산 가짜양반이다. 국왕도 마찬가지로 노신앞에서는 큰 소리는커녕 나이차이가 많으면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낮은 사람이라고 막 대한다는 자가 좋 은 통치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균은 아직은 어리지만 이미 30이 넘은 나이이 다. 그 정도는 알기에 조금 찜찜하지만 아랫사람들을 다룰때 막대하지는 않는다.
벌써 며칠째 인줄 모른다. 이틀이면 찾을 꺼라 생각했던 곳은 족히 5일은 지났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다행히 먹을 것에도 욕심 많은 균이 식량을 많이 챙겼기에 굶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6일째 되는 날도 둘은 다 꺼져가는 모닥불 옆에서 균이 가지고 온 작은 침구을 덮고 부둥켜 안고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귀가 간 지러웠다.
"두목, 웬 시체들이죠?"
"아무래도 우리 산채를 찾아오다가 얼어 죽은 것 같군."
"쯧쯧쯧 또 아랫마을 신씨 할아범이 노망이 나서 지도를 잘못준 것 아닌교. 올해만 벌써 세 번째인데. "
"그러게 그 할아범은 빨리 죽지도 않고. 아무튼 우리가 명색이 의적인데 시체는 묻 어줍시다."
"아무래도 그래야지. 그런데 저 어린 것은 양반집 아이 같은데?"
"그런 것 같은데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왜 와서 객귀가 됐을꼬? "
"낸들 아냐? 겨울이라서 땅도 안 파지는데 화장이나 해주자. 기름 좀 뿌려봐."
"비싼 건데... 촥~! 촥~!"
찬 기름이 피부에 와 닺자 균과 삼식이는 벌떡 일어났다. 균의 눈앞에는 사극에 나 오는 전형적인 산적아저씨들이 측은한 표정으로 기름을 뿌리다 말고 갑자기 일어난 시체들(?)에게 놀라서 황당한 표정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다가 기름을 뒤집어쓰고 일어난 균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께'였다. 황당한 그들 사이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한줄기 불어왔다.
"그러니까 우리 산채를 찾는다고 6일이나 산을 헤맸다고?"
"말도 마세요. 지도가 엉망이라서 구월산계곡은 이제 다 알 정도라니까요. "
이 곳은 바로 아까의 장소에서 고작 300미터 거리의 산채다. 그것도 첫 날 지나간 길에서 고작 120미터정도 떨어진 곳이란 점이다. 듣기로는 균이 가진 지도는 산채 지도가 아니라 산전체지도라고 했다. 다 노망 걸린 할아범 하나가 빚어낸 사건이다.
"우헤헤헤, 그러니까 피부가 꾀죄죄해서 시체인줄 알았지."
"웃지 마세요. 난 타죽거나 얼어 죽을 뻔했다고요."
"우헤헤헤, 우리 산채에 온 사람 중 너같이 독특하게 온 사람도 처음이다. 꼬마야 ~."
"우씨~."
일단 산채에 입채(?)한 균은 그 날 하루 종일 뜨거운 물으로 목욕을 해야 했다. 그 러나 기름 때문에 때도 잘 지워지지 않았고 물도 부족해서 아직도 꾀죄죄한 균이다.
하지만 요란하게 입채식을 치루어서인지 그들에 대한 소문은 금방 산채에 퍼졌다.
그래서인지 다음날에 균은 만나고 싶어 하던 이를 만날 수 있었다.
"꼬맹아. 내가 이곳의 두령 임꺽정이다. 왜 날 보자고 했지?"
과연 임꺽정은 거인 이였다. 삼식이가 소를 한 손에 잡았다고 했는데 잘 발달된 근 육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는다고 해도 믿어줄 정도다. 단지 얼굴이 드라마에서 보 던 것보다 더 산적같이 생겼다. 하지만 눈은 무척이나 선량했다. 조선 제일의 도적 이라는 말에 안 어울릴 정도로 맑지만 또한 강인한 기가 흘러나오는 눈이었다.
"두 번째 주머니는 열어보셨습니까? "
임꺽정의 그 거대한 육체의 근육이 움찔했다. 그리고는 균의 두 조그마한 두 어께를 잡았다. 하도 손이 커서 균의 목이 졸릴 정도였다.
"설마 두 주머니를 네가 보낸 거란 말이냐? "
아직 이초가 죽기 전 균은 삼식이를 통해 황해도 구월산근처의 백정인 가도치의 동
생 임꺽정에게 두개의 주머니를 보냈다. 하나는 1년안에 구월산에 가거든 펴보고 또 하나는 구월산에 간지 1년후에 펴보라고 했다.
혹시나 버리지나 않을까 제법 좋은 재질로 주머니를 만들어 준데다가 삼식이를 통해서 임꺽정의 불만사항을 알려주어 놀라게 했다. 당시 임꺽정은 관아로부터 백정이라 차별 을 당하여 불만에 차 있었다.
첫 번째 주머니는 임꺽정의 봉기와 가장 유용한 작전, 그리고 황해도내의 주요 곡식 창고등의 위치, 위험한 관군장수들을 알려준 것이었다. 덕분에 임꺽정의 난은 본래 역사보다 더욱 크게 일어났다. 어느 정도 역사의 진행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두 번째 주머니는 관군의 산채공격으로 임꺽정의 아내가 잡히고 산채에 가담하지 않 았던 형 가도치의 체포와 서림의 변절을 예견한 것이었다. 역사와는 많이 틀려진 면 도 있지만 실제로 관군의 빈집털이를 막아냈고 잡혀가던 형 가도치를 구출했으며 서 림은 관군에 투항하는 등 어긋난 역사라도 큰 흐름이 있는 듯이 비슷하게 이루어졌 다.
"콜록콜록, 이것 좀 놓으세요."
"아참 미안하다. 정말 그 주머니를 보낸 것이 너냐?"
"저 사람 기억 않나세요?"
"그래~! 저 말 많은 사람, 소 잡는데 와서는 주머니를 주고 갔었지. 그때 내가 공을 세우고도 아무런 대가없이 관아에서 내쫒긴 것도 알아주고 1년내에 구월산에 들어가 면 펴보라고 해서 왠 헛소리인가 했는데 내가 이리 될 것을 써둔 글이 있더구나. 맞 다 맞아. 네가 보낸 거구나? 하하하! 그래 집안 어른 중 누가 써 주신 거냐? 아무튼 고맙다. 큰 빚을 졌어. 하하하."
임꺽정은 감격에 겨운 듯 균을 들어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균을 들었다 놨다했다. 균도 이제 거의 50근(30Kg)에 나갈 정도로 무거운 아이인데 한 손 으로 들었다 놨다하니 정신이 없었다. 한참후에야 간신히 말을 했다.
"저기...그거 제가 쓴 건데요."
"하하하. 뭐라고 이런 네가 너무 좋은 나머지 들었다 놨다해서 정신이 없는 모양이 구나."
"그거 제가 쓴거 맞아요. 저희 집에는 돌아가신 아버님 외에 집안에 어른이 없는 걸 요. 제 큰 형도 올해 열세살인걸요."
"....."
임꺽정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하긴 균이라도 반대 입장이라면 믿기 힘들 것이다. 양반인 듯하니 무슨 구월산 아기동자같은 점쟁이도 아니고 역술을 다룬 주 역이라던 지하는 어려운 책을 읽고 써먹기에도 너무나 어렸다. 참고로 균의 또래가 배우는 것이 천자문이다. 천자문과 동몽선습(이 때는 아직 없다.)을 배우고 난후 사 서오경을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믿기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삼식아 이리 와서 이 임두령께 말씀 좀 드려. "
"예 도련님. 저의 셋째 도련님 말씀이 맞구만요. 저의 부모님도 노비셨는데 원래는 경기도 가평군에서 사시다가 눈이 맞아서 혼인을 하셨어요. 그런데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냐 하면.... 중얼 중얼 씨블 씨블 궁시렁 궁시렁 ...에 그래서 제가 도련님의 명을 완수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천릿길을 달려서 전달을 하게 된 거지요. "
장장 일각(15분)에 걸친 삼식이의 완벽하다 못해 지겨운 이야기가 끝나자 균과 임꺽 정은 삼식이를 같이 한 번 째려본 후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느덧 균의 신분을 안 임 꺽정은 반경어체로 말했다.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중 하나이지만 자신의 은인이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투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일단 못 믿어서 미안 하외다. 하성군이라고 하던데 그럼 현 주상전하의 친척이 아 니오. 설마 우리를 이용해서 반역을 일으키려고 오신 것이요?"
"아닙니다. 세 번째 주머니를 전달하기 위해섭니다."
균은 준비해온 주머니를 내밀었다. 임꺽정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받아 그 속에 든 종이를 읽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맞춘 신기한 주머니가 주는 긴장감에 임꺽정 이 약간은 몸을 떠는 듯하더니 방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를 불렀다.
"이봐 밖에서 있는 놈중 언문 읽을 줄 아는 놈 없나? 글이 세 줄이 넘어."
"......"
순간 균은 앞으로 어떻게 임꺽정을 교육시킬지 걱정이 됐다. 잠시 후 몰락한 양반인 듯이 쭈그러진 갓을 쓰고 있던 자가 들어왔다. 산채의 행정업무를 담당한다는 일명 서유생이란 자였다. 서씨지만은 그 전의 참모였던 서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 이다. 임꺽정은 서유생이 들어오기 무섭게 종이를 주어 읽게 했다.
"이번 봉서를 볼 때쯤 해서 선전관 정수익과 봉산군수 이흠례가 봉산군대를 이끌고 평산군 북면에 있는 어수동에 먼저 이르고 , 금교찰방 강려와 평산부사 장효범이 평 산군대를 이끌고 어수동에 와서 합류할 것이다. 이들 관군 500명이 평산마산리로 진 격해서 이길 수는 있지만 1년 내로 남치근이라는 토포사가 대군을 이끌고 파견되어 차례로 산채들이 함락되고 결국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
세 사람 사이의 공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임꺽정군의 몰락을 예견한 글인 것이다.
한 참후 임꺽정은 입을 열었다. 이미 그의 표정이 어두워서 산채의 작은 회의실안을 더욱 어둡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