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만들다.
"이번에도 사실이겠지요?"
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임꺽정의 눈에는 지난 2년간의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 가는 듯했다. 최초에 친구들과 함께 했던 봉기부터 인근 관아를 털어 사람들에게 나 누어 주었던 일, 탐관오리들이 살려 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던 모습과 쌀을 받고 기 뻐하던 산채식구들의 웃는 모습 등이 그의 눈을 스쳐갔다. 그의 분위기를 느낀 균은 믿음을 주기 위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는 임두령께서 여기 계신다면 생길 일들입니다. 만일 다른 곳으로 가신다면 피할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이오? 산채식구들은 살 수 있단 말이오? 아니 말씀이십니까?"
임꺽정의 말투가 더욱 공손해졌다. 임꺽정의 산채식구들은 대부분 구월산일대의 주 민들로 반란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먹고 살기 힘들어 이 곳에 들어온 자들로 몇몇 청년들을 빼고는 노약자들이다. 동시에 산채가 아닌 마을에 사 는 동조자들까지 합하면 최소한 수천이다. 임꺽정이 무너지면 이들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균의 말은 임꺽정에게 희망을 주었다. 오직 자신만을 믿고 따라준 착하고 순 박한 이들이 살 수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임꺽정의 심리변화를 눈치 챈 균의 말이 계속되었다.
"나중에 은율군에서 석도에 가장 가까운 해안으로 오시면 타고 갈 배들이 있을 겁니 다. 물론 몇 달 안으로만 있을 겁니다. 수천명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니 임두령의 산 채가 모두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동할 곳은 조선이나 조선이 아닌 곳이지 요. "
"조선이면서 조선이 아니라...."
임꺽정은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울창한 턱수염을 만졌다. 임꺽정이 바라던 곳 이 지금과는 다른 조선이다. 최소한 민초들의 삶이 보장받는 세상이 그가 바라는 세 상이다.
"임두령이 생각하는 곳과 비슷해지려는 곳입니다. 물론 반란의 무리는 아니지만 기 존의 조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군요."
점차 균의 말투는 어른스러워지고 자신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산채에 와서 보였던 아이같은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진중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 때 한 산적이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임두령님, 큰일났서요. 관군 수백기가 봉산에서 출발했는데...."
"봉산군수 이흠례가 어수동으로 오고 있다는 소리지? "
"얼랄라? 두령님 그걸 어찌 아시요? 난 열나게 뛰어왔는데... 복실이가 먼저 왔는 갑네?"
"임두령, 역시 하성군께서 하신 말씀은 틀린 게 없습니다. 만반의 대비를 갖추어야 될 것입니다."
주머니의 사실을 확인한 서유생이 균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균의 제안대 로 이주를 수락한 것은 아니였지만.....
균이 이때 구월산에 입산한 것은 정인기의 일도 있지만 실제로 1560년 말 전후로 예 상되는 시기에 500명의 토벌군이 임꺽정에게 괴멸되는 것을 백과사전에서 보았기 때 문이다. 시기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반군토벌을 위해 연천령이라는 장수가 한성부를 떠난다는 소리에 급히 입산한 것이다.
역사대로라면 곧 연천령의 500여 군사가 임꺽정의 200여명에게 대패하는 평산 전투 를 통해 임꺽정의 위명은 조선천지를 진동시킨다. 그러나 그 후에 조선군의 대단위 토벌작전으로 겨우 1년 후에는 임꺽정도 최후를 맞는다.
균이 노리는 것은 용장 임꺽정과 2년간 단련된 정예산적 200명 그리고 그들을 따르 는 수천여명의 유민이다. 그래서 자치경비부장자리를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 산적들 은 균이 가진 최초의 무력단체로 변모할 예정이고 유민들은 염전에서 일하게 될 예 정이다. 균에게는 부족한 일꾼의 확보와 정예한 사병확보라는 두 마리토끼를 함께 잡는 격이다.
임꺽정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용력으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30세 이전 로 추정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부 야사에 따라서 22세정도로 가정한다. 야사에는 임꺽정이 젊은 혈기에 관군을 도와 큰 공을 세웠으나 보답을 받지 못해 반란을 일으 켰다고 한다. 여기서의 나이가 20대 초반이다.
그리고 임꺽정은 처음에 의적은 아니였다가 나중에는 의적으로 변신했다는 것이 정 설이다.여기서 나온 만큼 영웅일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조선정부의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세금감면과 군역정지등의 조처를 보면 의적으로 완벽히 변신한 듯하다. 떼강 도가 날뛴다고 세금 감면에 징병금지조처를 취하는 정부는 없다. 또한 황해도가 적국의 형상이다라고 표현할만큼 임꺽정의 지지세력은 대단하였다. 명종실록에 이렇게 기록될 정도면 단순 도적떼로써는 불가능에 가까운 소리다.
임꺽정은 이제는 막내동생뻘인 균에게 깍듯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산채식구 들 그리고 임꺽정을 지지하는 주민들의 생명을 살리냐 죽이냐 하는 문제다. 그리고 그 패를 쥔 것이 꼬마 균이다.
"정말 배는 준비되는 겁니까? 그리고 이번 관군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대체 몇 명까지 이동할 수 있습니까? 그곳은 안전합니까? "
그렇게 큰 사람이 주먹만한(진짜 주먹 두 개면 균의 몸만 하다.) 꼬마에게 공손히 물어보는 모습은 엽기적이다. 직접 당하는 꼬마도 무섭겠지만 다행히도 균은 지금까 지의 성공으로 간덩이가 부은 편이다. 국왕앞에서도 거짓을 고하는데 이정도야 입에 침 바를 필요도 없다.
"이번에 대선만 20척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에 약 2천명정도가 이동 할 수 있어서 두 번정도로 나누어서 이동시킬 예정입니다. 그러니 최대 4천명까지 가능하지요. 그리고 그 곳은 이곳에서 명나라만큼 멀고 주변에는 조선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섬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면 여러분 모두가 합법적인 양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토벌대와는 양측 모두 피해가 적어야 합니다. 조정에서 임두령을 두려 워해서 빨리 다음 토벌대를 보낸다면 이동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이번에 토벌군을 최대한 겁을 주어서 쫓고 우리는 주상전하가 아닌 윤원형의 적이라는 사실을 부각시 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년 봄까지 시간을 벌어서 모두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습 니다. " 임꺽정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지만 서유생은 꼼꼼히 균이 한 말을 씹어보았다.
'저 꼬마의 말대로 하면 확실히 다음 토벌군은 강하지 않고 준비시간도 많이 걸리 겠군. 아마도 주상전하를 비록한 반윤원형세력이 토벌에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 뻔하 다. 그리고 어차피 이번 토벌군은 우리와 같은 황해도 농민들인 잡색군(지방예비군)
들이다. 다 죽일 필요는 없지. 다 죽여야 우리의 평판에 해가 되었지 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배를 그렇게나 많이 준비할 수 있다니 거기다 사면까지 가능하다고? 아무래 도 저 꼬마의 뒤에는 주상전하와 연계된 세력이 있는 듯하군. 이번 임두령의 거사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현 주상전하시니까.'
실제로 임꺽정의 난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명종이다. 명종은 이 때를 핑계 삼아 윤 원형의 세력을 꺾고 중전 심씨의 친척인 심통원과 이량을 지원해 본격적인 견제에 나선다. 일단 이 때를 기점으로 윤원형의 세도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하성군 이균은 명종이 조카들 중에서 가장 아낀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왕위를 거론할 정도는 아니다. 현 주상인 명종 이환은 아직 젊고 세자 부는 작년에 세자빈 윤씨와 혼례를 올렸다. 균은 아직 일개 종친에 불가하다. 하지 만 명종은 균의 외숙인 정인기에게 벼슬을 내리는 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해도 정세에 밝다는 자들은 하성군 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유생도 정치 가는 아니나 그 정도의 소문은 듣고 있었다.
그래서 서유생이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임꺽정이 공격한 관 아들은 모두 윤원형에게서 벼슬을 산 탐관오리였고 관아의 창고에는 나라에 바칠 조 세가 아니라 윤원형에게 줄 뇌물만 차 있었다. 명종으로서는 은근히 임꺽정에게 호 감을 가진다고 해도 틀린 말을 아니다. 거기에 아끼는 조카를 보내 관군의 동향을 알리고 도피처까지 제공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말은 아니다.
다만 걱정되는 곳은 저 꼬마가 소개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또 어떠한지도 모 른다. 거기에 이미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왕씨들을 좋은 섬에서 살게 한 다고 속인 후 배를 자침시켜 수천 명의 왕씨들이 수장된 예도 있어 완전히 믿을 수 는 없다. 그래서 조선에는 왕씨가 없어진다. 일부 살아남은 자들은 조선을 떠나거나 성씨를 바꾼다.
이런 비화를 잘 알고 있던 서유생은 균이 또 기름때를 벗기로 간 후 임꺽정에게 간 언했다. 아무래도 임꺽정은 자신의 형과 아내가 구원을 받은 지라 균에 대한 호감 이 컸다. 그래서 균의 의견을 따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모사로써 이를 잡아주어 야 했다.
"아무래도 하성군 뒤에는 주상전하가 계시는 듯하지만 완전히 우리의 우군이라 고하 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하성군의 제안을 보류하고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
"저 정도면 믿을 수 있지 않겠나? 이미 몇 년 전부터 내가 난을 일으킬 것을 알고 조언을 해준 사람이네. 내 처와 형님도 구하고 서림이 그 놈의 배신도 알려주지 않 았는가? 미끼치고는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었어."
"하지만 일국의 군주라면 그 정도의 손실정도는 우습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 상전하도 현재 왕권을 강화하는데 우리의 거사를 이용하는 상황입니다. 그 옛날 중 국 한나라의 한신처럼 토사구팽이라도 당한다면 어떻게 하실껍니까?."
"음? 토사구팽이 뭔가? 자네는 다 좋은데 너무 어려운 말만 하는 군. 서림이 그 놈 은 안 그랬는...으음~!... 일단은 두목들을 모아주게나. 나나 자네만이 결정한 문제 는 아닌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놈들이 생각해봤자 돌 가는 소리만 들리니 자네가 많이 좀 준비하게나. "
"예 임두령."
임꺽정의 산적군는 크게 10개의 소부대로 이루어진다. 각 부대당 수십 명의 인원이 있고 그 부대를 두목들이 지휘한다. 10명의 두목을 지휘하는 자가 바로 두령 임꺽정 이였다. 하지만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것은 아니다. 10명의 두목들은 모두 임꺽정의 오랜 친구들이며 거사를 일으킨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임꺽정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봉학, 박유복, 배돌석, 황천왕동이, 곽오주 ,길 막동이, 서림등이 있다. (소설 임꺽정전에 나오는 인물들로 사실일지는 확실치 않다 .) 이중 서림은 변절한 상태이다. 임꺽정의 부대는 원래 역사대로 라면 8개 부대 약 200명 정도라고는 하지만 균이 개입하여 많은 정보를 흘린 관계로 10개 부대 약 300 에 가까운 군세를 보유하고 있었다.
"임두령, 그럼 우리가 다 죽는다 이 말이오! 아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토벌군을 요 절을 냈는데 그런 헛소리를 믿는 단 말이오. "
"곽두목, 자네도 알지만 이미 임두령이 주머니를 보낸 자라고 확인했네. 자네도 요 술주머니라고 극찬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토벌군의 병력과 장수까지 알려주었다는구 먼."
"형님, 그럼 윤원형의 첩자가 아니겠소. 지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것 어찌 다 알겠소 ."
"그럼 윤원형이 우리 임두령이 거사를 일으킬걸 어떻게 알아? 그 정도면 지가 주상 해 먹겠다. "
"자자 조용히 좀 해. 여기가 시장바닥이냐? 곽두목 , 박두목 조용히 해봐. 여기 서 유생이 생각이 있다니까 한 번 들어보자."
각자 떠들던 두목들은 임꺽정의 한 마디에 조용해졌다. 잠시 귀를 막고 있던 서유생 이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일단 그 꼬맹이의 조건은 좋은 편입니다. 게다가 그 꼬마의 신분은 확실하게 확인 했습니다. 하지만 그 꼬마의 뒤에 있을 현 상감마마의 의중을 알 수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 하겠습니다. 조선의 건국왕이신 태조.... "
"이봐 서유생 빨리 말해봐. 나 속 터져."
"그려그려 자네 먹물든 건 잘 아니까 빨리 말해보셔."
"에~ 일단은 그 의견을 따르데 대신 그 꼬마를 인질로 잡는 겁니다. 어차피 한성부 의 오위도총부소속 정예군이 파견되면 우리의 힘으로는 막아내기 힘듭니다. 저희로 서는 선택의 폭이 없습니다.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도 가지고 믿어 보는 수밖에는....
"
"사내가 한번 죽지 두 번 죽냐? 한번 싸우다 죽으면 되지. 뭘 고민해? 언제는 우리 가 힘들 걸 알면서도 일어난 것이여? 꺽정이 형님 우리 한번 싸웁시다. 사내란 멋지 게 살다 죽어야 되는 게 아니요?"
"강두목 말이 지당하오. 까짓것 한 번 싸워봅시다. 우리는 한번도 진적도 없지 않소 ? "
"동생, 그것도 좋다만 우리의 가족과 우리를 따르는 수천여명의 백성들은 우리가 죽 고 나면 관군 놈들이 가만히 둘꺼 같아? 우리는 우리만의 목숨이 아니여. 설마 그걸 잊은 것 인감. "
"......"
"박두목의 말이 옮다. 우리만 보고사는 가족들과 백성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지방군들이야 다 우리 황해도 사람이라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지만 중앙군이라면 역적의 씨를 제거한다고 구월산일대를 싹쓸어 버릴거야. 그럼 우리가 먼저 저승에 가서 자리나 잡아 두자는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