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28)

 군대를 만들다.

임꺽정의 세력은 거의 5도에 미쳐 평안, 황해, 함경, 강원, 경기도에 이르는 대 세 력이다. 의적활동으로 인기가 좋아서 조정에서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세금을 깎아주 는 인기관리정책을 취할 정도로 지지세력이 컸다. 하지만 임꺽정이 무너진다면 그 일대는 관군의 반군색출이라는 미명하에 수탈을 당할 것이고 그 동안 밀린 세금을 보충하기 위해 중과세가 부과될 것은 못 배운 두목들이라도 알고 있었다.

이 때 제의한 균의 제안은 매력적이다. 자신들과 일부 주민들이 사라진다면 조선조 정는 당혹하게 여기겠지만 대규모 토벌군을 파견할 이유가 없어진다. 거기에 제안대 로라면 자신들과 많은 사람들은 안전해진다. 그 뒤에 비록 중과세는 부여되겠지만 많은 주민들이 자신들로 오해받아 죽는 것을 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천 명의 목 숨을 맡기기에는 10살짜리 꼬맹이와 그 뒤의 주상 명종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는 것을 임꺽정과 그 휘하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때를 빡빡 밀어 어느 정도 원상태로 돌아간 균은 곧 서유생의 방문을 받았다.

"험험험. 하성군 나으리, 안에 계십니까? "

"네, 어서 들어오세요."

서유생은 자리에 앉은 후에 고작 10살정도의 실제나이 8살의 어린 꼬마를 인질로 해야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이번에 산채를 대표하는 두목들과 회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못 믿겠으니 확실한 보증이 되어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 그... 그게 아니라...."

서유생의 표정에는 당황함이 가득했다. 하긴 균 자신도 이 정도로 생각해낸 것이 용 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서유생이 하루만 빨리 왔어도 이 생각까지는 안 났을 것이다 . 그리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안 그래도 내 뜻이 받아드려진다면 임두령과 같이 행동할 계획입니다. 그 정도야 각오한 일이니 그렇게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

"....."

"대신 나의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길도 몰라서 도망도 못 가니까요.

그리고 약속대로 두목들에게 제 신분은 알리지 않으셨겠지요? "

"....물론입니다. "

'정말 애 늙은이다.'

서유생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그랬다는 말이지. 호오~ 보기보다 마음에 드는 녀석인걸. 눈빛도 마음에 들었 는데 하는 짓도 사내대장부이군."

임꺽정은 균이 마음에 드는 듯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띄웠다. 하긴 저 어린 나이에 눈 내린 험한 산 중턱의 산채까지 온다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 력은 얼마나 강해야 할지 자라나면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 궁금했다.

"일단 그 문제는 믿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토벌군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겠습니다. "

"한양에서 내려온 장수 하나에 평산과 봉산의 군사가 5백이라... 그다지 대단한 전 력은 아니군 그래."

"그래도 중앙군의 장수가 파견되었다는 것은 한양에 있는 오위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이긴다면 필경 중앙군이 대거 파견될 것입니다. 중앙군 이라면 최소 수천의 대병에 그 훈련과 장비도 충실해서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녀석이 하자는 데로 하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전력과 지형 그리고 날씨가 유리한터라 우리의 승리가 확실하 지만 주민들을 이주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중앙군의 토벌대를 최대한 지연시켜 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정내의 반윤원형파를 자극시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그래, 자네가 하는 말이고 또 점쟁이 꼬마가 하는 말이니 믿어보지. "

"그런데, 임두령...."

"또 무엇인가 식량은 충분하다며? "

"하성군이 전투에 따라오겠답니다."

"정말인가? 하하하 정말 좋은 기회군. 그 꼬마를 알기에는 정말 좋은 기회야. 점쟁 이 꼬마의 진가를 알 수 있겠군."

임꺽정의 구월산 본채는 남향계곡에 위치해 겨울에도 따뜻했다. 원만한 마을보다도 큰 산채에는 산적들의 가족들만 약 천여 명이나 살고 있어 번화한 마을을 보는 것 같았다. 단지 보통마을보다 집들이 작은 편인데 산비탈이 있어 집터를 잡기 힘들기 때문인 듯했다. 각 집들은 조금씩 떨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텃밭들이 곳곳에 있 으며 콩을 심었던 밭인지 콩깍지가 보였다.

계곡은 넓고 길어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는데 좌우 쪽은 험한 산세가 버티고 있고 산 위쪽에는 저수지가 있어 식수원이 되었으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개울이 계곡 을 타고 흘렀다. 계곡의 아래쪽은 울창한 숲이 있어 나무를 공급하고 산채를 숨겨주 는 역할을 해주었다.

균과 삼식이가 배정받은 집은 부엌 한 칸없는 방 한 칸의 작은 집이나 비교적 깨끗 했다. 어차피 산채에서는 식사를 배식해서 타먹어야 하기 때문에 부엌은 필요없다.

균은 즉시 대청소를 시작해서 구석구석의 먼지까지 다 제거했다. 못해도 앞으로 몇 달은 묵을 집이였다.

이미 산채에는 균의 소문이 퍼져서 '기름을 뒤집어쓰고 입산한 최초의 양반도령' 일 명 '기름도령'으로 알려져 있어서 삼식이랑 같이 청소하는 모습에 모두 혀를 내둘렀 다.

'어째, 기름도령이 하인보다 더 청소 잘 하는데? '

'글쎄, 우리 마누라보다 낮구먼.'

'자네 집은 저기 비하면 돼지우리 제. 어디 사람 사는 집인감.'

'그래도 네 놈 집보다 식구는 적어'

'자네는 자식 놈이 셋이고 난 둘인데 어째 내가 식구가 많어? '

'자네 집은 이, 벼룩, 빈대랑 같이 살잖아. 식구만 수천은 될 거여.'

청소 후에 걸레를 빨고 이불을 말리고 털자 엄청난 수의 기생충들이 튀어나왔다. 저 런 것들과 같이 살면 미이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균이다. 균은 먼저 이 불을 일광소독하였고 청소후 마늘을 곳곳에 뿌려서 전 산채에서 가장 깨끗한 집을 만들었다. 청소가 끝날 때쯤 되자 저녁식사 배식을 알리는 징소리가 들려왔다.

산채 본영이라고 불리는 좀 큰 집 옆의 부엌에서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식구수에 맞게 나누어 주었다. 균은 삼식이에게 마저 정리를 시키고는 밥을 타로 본영으로 갔 다. 거기에 모여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물론 식사를 타 가거나 오던 사람들의 시선 은 고운 피부를 가진 양반꼬마 일명 기름도령에게 쏠렸다.

그런데 살이 찐 개 한 마리가 균에게 달려와서 혀로 손과 얼굴을 핥으며 재롱을 부 렸다. 개의 거칠거칠한 혀가 주는 간지로움에 균은 잠시 개의 등을 손으로 만져주며 개의 재롱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유생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서 개를 쫒 아냈다. 그리고는 균에게 뜬금없이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균은 개가 재롱 부린 것이 왜 미안한지 의아하게 여겼지 만 주변의 사람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꼬마들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 리둥절하게 서있던 균은 다시 배식줄로 가서 밥을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잠시 줄을 서서 받은 이인분의 식사는 조와 콩이 대부분인 주먹밥 두덩이. 고기 조 각은 안 보이는 우거지국. 그리고 나물 몇 점으로 무척이나 부실했다.

'쌀을 접착제로 사용한 잡곡주먹밥. 고기가 목욕하다만 소금국. 그리고 쉰 냄새가 나려고 하는 콩나물 비슷한 것 몇 점. '

솔직히 균은 이보다는 나을지 알았다. 그동안 임꺽정이 털어간 것이 몇 십만 냥은 되는 듯한데……. 그나마 옆에서 주먹밥을 한 입에 털어넣고 맛있다는 듯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꼭꼭 씹어먹는 임꺽정을 볼 때 매일 이런 식사인 듯했다. 아무리 의 적이라지만 백성들에게 너무 많이 나누어준 것 같았다. 아니 그만큼 백성들의 삶이 힘들지도 몰랐다.

형편없는 식사지만 이들을 회유하려면 먹어야한다. 균은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겉으 로는 맛있게 먹었다. 삼식이보다도 잘 먹어치울정도니 역시 연기자 정인기의 조카라 는 것이 여실히 들어나는 순간이다. 여기서 연기자는 균이 지은 정인기의 호이다.

그 날 저녁 거친 밥을 처음으로 먹은 균은 배가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 아니 텃밭으로 갔다. 변소가 있는 지방도 있지만 텃밭이 변소의 역할을 하는 지방도 있다. 임꺽정의 산채도 변소는 없었는데 변소에 일을 보아도 어차피 밭 에 다시 가져다 뿌려야 할 것이니까 미리 뿌려 놓자는 생각을 가진 듯했다.

손에는 잘 챙겨둔 종이를 가지고 왔는데 조선시대에도 보통의 양반이면 폐종이를 이 용해서 뒷처리를 했다. 하지만 붓글씨 연습한 종이를 써서 먹물로 인해 치질이 걸리 는 경우가 많았다. 국왕이나 부자들은 비단을 사용했다는 소리도 있는데 확인된 봐 는 없다.

평민 등은 주로 볏짚이나 나무잎또는 새끼줄을 사용해서 처리했다고 하며 물로 씻는 경우도 있지만 많지는 않았다. 특히 새끼줄은 연약한 항문에 상처를 내서 평민치질 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아라비아에서는 모래와 돌로 처리했다고 하며 동아시아에서 는 주걱으로 처리한 나라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최고위층인 경우 화장실 갈 때마다 옷을 갈아입었다. 그 때문에 화장실 에는 몇 명의 시녀들이 24시간대기를 했으며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성은을 입어 태어 난 황제도 있었다. 그런데 무엇으로 뒷처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한번 벗은 옷 은 다시는 입지 않았다고 하니까 옷으로 처리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많은 뒷처리 방법에서도 균이 오늘 저녁 뒷처리한 방법은 가장 엽기적이면서도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균은 자리를 잡아 바지를 벗고 속의 고의까지 내리고 준비를 완료했다. 사방이 보이 는 밭이라고 하나 이미 어둠이 깔린 뒤라 누가 볼 염려는 없었기에 균의 마음은 편 안했다. 그리고 힘을 주고는 시원하게 내보냈다. 겨울철새벽이라서 시리던 엉덩이는 어딘가에서 나오는 열기로 잠시 따뜻해졌다가 다시 서늘해졌다. 동시에 균의 앞쪽으 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조그마한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바로 그때였다. 엉덩이 쪽에서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뒤에서 작지만 쩝쩝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엉덩이 사이로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핥고 지나갔 다. 부드럽지만 꺼끄러운 마치 개혓바닥 같은... 놀란 균은 즉시 일어서서 뒤를 돌 아보았다.

균의 두 눈은 어둠 속에서도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저녁 식사 전에 자신을 핥아주 던 바로 그 살찐 개를... 그 순간 경직되는 균을 향해서 다시 꼬리를 흔들던 개가 달려들어 얼굴을 열심히 핥아주었다. 꼭 맛있는 밥을 주어 고맙다는 듯한 표정이었 다. 그제서야 균은 그 개가 살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 식사시간때의 서유생의 말과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사람들의 피하는 듯한 표정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그리고 오랫만에 머리가 하예졌다. 그리곤 뒤로 조 용히 넘어갔다.

"철퍼덕~!"

방금 전 무엇인가에 잠시 녹았고 축축해졌던 땅은 균을 받아드렸다.

"할짝할짝~."

개는 자신을 쫒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좋은지 계속 꼬리를 흔들며 균의 손, 머리, 다리등을 열심히 핥아주었다. 그리고는 배가 불러서 기분 좋은 한껏 소리쳤다.

"아우~~~~"

개가 지르는 소리가 밤이 깊어가는 구월산에 울린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 지가 늑대 인양 울어대는데 그 소리가 우렁차다.

변에는 그다지 영양분이 없다고는 하지만 변에는 상당수 소화되지 않은 영양소가 있 다. 특히 육식동물이나 잡식동물은 소화기관의 길이가 짧아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일단 소화과정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소화도 잘 된다. 그래서 변을 먹는 개 가 존재하지만 주식은 아니고 별식정도라서 균같은 일은 가끔씩 일어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어죽지는 않고 순찰을 돌던 산적들에게 발견된 균은 이미 당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전후사정이 단 반경(1시간)만에 전 산채로 알려졌다.

정말 놀라운 정보전달능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뒤로는 균의 산채내의 공식호 칭은 '똥개도령'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치질만큼은 안 걸릴듯하다.(피부병이라면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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