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만들다.
드디어 평산과 봉산의 군사가 어수동에서 합세하여 출정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 어왔다. 토벌군의 소식을 듣고 본채로 집결을 시작한 임꺽정군은 본채수비병력 1개 부대를 뺀 9개 부대 25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평산 마산리방면으로 출격했다.
임꺽정군은 평등했기 때문에 대장인 임꺽정마저도 자신의 장비는 자신이 휴대하고 있었다. 어린 균도 병기는 없지만 비상식량과 조그마한 주머니를 가지고 열심히 뒤 를 따랐다.아무래도 산채에 있기 민망했는데 하늘이 도운 일이였다.
하얗고 고운 피부의 꼬마가 땀을 계속 흘리고 있지만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이십대 전후라서 막내동생내지는 아들뻘인 균이 걷는 게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물론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고 싶 지만 누가 감히 똥개도령을 만지겠는가?
그것은 핑계고 사실은 서유생이 건들면 임두령과 일대일 대면을 시켜준다는 말에 이 야기도 못해본 이가 태반이였다. 이미 조선팔도뿐만 아니라 임꺽정의 부대 내에서도 임꺽정을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어수동에 집결한 토벌군이 아직 재편성을 하느라 출정하기 않은 것이 확인되자 임꺽 정은 마산리에서 가장 가까운 마산산채로 병력을 이동시켜 병력을 쉬게 했다. 덕분 에 소규모 거점인 마산산채는 수백 명의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이라 균마저도 수 십 명의 사람들과 한방을 써야 했다.
균은 무서운 아저씨들이 우글거리는 것에 질겁했는지 낮에만 자고 밤에는 자주 사라 졌다. 당연히 균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서유생의 의심을 받아서 그의 방으로 불려갔 다.
"하성군마마, 요즘 밤에 자주 안 보이신다고 하던데, 밤에 돌아다니시는 것은 위험 합니다. "
"그래도 저 많은 아저씨들이랑 자는 것보다는 편한걸요?"
"정 그러면 저와 임두령의 방에서 주무시지요."
균은 고민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음~ 좋아요. 대신 회의하면 나도 보게 해주셔야 합니다."
"뭐 그 정도는 조용히만 하신다면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무서운 사람들이 많을 건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30명에게 귀여움 받는 것보다야 낮겠죠."
"하긴 그렇겠군요."
서유생은 그 마음 이해한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귀엽다고 한 번씩만 만져 도 30명의 거친 손이면 어린 피부는 다 달아버린다. 까딱하면 거의 미라가 될 정도 로 천를 두르고 다니는 균의 모습에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그날 저녁 임꺽정의 방에서 두목들이 모여 작전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균도 임꺽정 과 서유생사이에 끼어 두 눈알을 열심히 굴리며 두목들과 그들이 하는 말을 얌전히 들었다.
"토벌군이 이제 곧 출정준비를 마치고 이삼일 내로 출정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 전투는 이곳에서 약 5리(2Km)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벌어질 듯합니다. 아무래도 토 벌군이 구월산 본채로 가기 위해서는 가장 알려지고 산이 험하지 않은 이 지역을 꼭 지리에 어두운 관군은 택할 겁니다. "
"그럼 우리는 그 길목에서 기다리면 되겠구먼."
" 거기서 우리 두령님이 앞장서서 '내가 임꺽정이다.' 한마디만 하고 내달려도 그 오합지졸들은 다 도망칠 텐데 뭐 그렇게 임두령과 서유생은 울상이유?"
"맞아. 관군 놈들이야 우리가 고함만 질러도 도망가는 녀석들이 아닌가? 우리 임두 령만 봐도 바지에 오줌을 싸고 도망갈껄세."
"이번에는 이기고 나면 평주관아를 털까? 병사도 없을 것 아니여?"
"아예 황해도 감영을 털지. 한번 털면 1년은 가만히 있어도 될 건데.... "
"아서라. 거기 병력이 얼만데 우리가 1천이라도 되냐? 그냥 평주만 치자."
"아녀, 이번에는 한양으로 한번 가보자. 물건도 조선 땅에서 제일 많잔여."
"거긴 물건이 너무 많아서 다 못 가지고 와."
"중원이라는 곳에 재물이 많다던데 거긴 무슨 도냐?"
"무식한 놈. 거긴 언월도야. 내 동생이 남사당패를 하는데 중원에 관우인가 하는 놈 이 사는데 지는 죽어도 언월도에 산다고 했어. "
"어? 내 처형이 듣기로는 청룡도라던데..."
"근디 조선 팔도에 언월도와 청룡도가 있던 감?"
"...."
회의장에서 말이 없는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이다. 임꺽정은 어떻게 하면 적게 죽이고 끝낼가 고민중이고 서유생은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한숨만 쉰다. 균은 아예 사색이 다.
'최대한 적게 죽여라고 했는데 내 손은 스쳐도 사망인데 어쩌지?'
'이런 꼴통들. 어떻게 이겨야 우리에게 유리한지도 모르나? 또 물건 챙길 생각뿐이 니...'
'아이구 머리야~ 임꺽정 하나도 벅찬데. '
이번 토벌군 뒤에 대규모 토벌대가 있다는 말을 수차례 했지만 두목들은 원래하던 대로 어디 관아를 털지 열렬한 토의를 벌이고 있다. 한참을 혼자 고민하다가 균의 허리 찌르기에 정신을 차린 임꺽정이 결국에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조용! 이번에는 관군들 죽이면 안 되는 힘든 전투다. 또 앞으로 최대한 관아공격 도 안 된다. 그러다가 토벌대 일만이 오면 정말 큰일 난다. "
"... 우리도 알아요. 두령. 그냥 분위기나 띄울려고...."
"여긴 작전회의다. 떠드는 것은 나중에 하면 돼."
임꺽정은 역시나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그가 한 마디를 하자 난장판이던 회의장은 대번에 조용해졌다.
좀 무식하기는 하지만 한 조직의 장으로써는 부족함이 없는 모습의 소유자였다.
"이번 전투에서 우리는 관군에게 최대한 피해를 안주면서 격퇴해야 한다. 관군이 아 무리 오합지졸이지만 우리의 두 배나 되는 수다. 이들을 안 죽게 하고 이기려면 얼 마나 힘든지 아나? 그나마 우리 같은 돌대가리들이라면 며칠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 해야하는데 지금 그럴 틈이 있냐? 일단은 서유생. 자네가 짠 계획을 내보게. "
"에~ 관군은 오합지졸 잡색군입니다. 먼저 전군을 3개 부대로 나누어 세 갈래에서 기세 좋게 적을 향해 쳐들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산위에 진을 치고 있으므로 빠른 이동과 돌격시 유리합니다. 우리는 수가 적지만 정예병이므로 빠른 속도로 치고 들 어가 관군을 흩어버리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것도 괜찮겠군. 너희들 생각은 어떻냐?"
"뭐 머리 쓰는 일이야. 서유생이 하는 일이지 않수."
"나쁘지는 않게 들리는 것 같소만."
균은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조선을 3년간 흔들었는지 의심이 됐다. 그런데 이런 작 전이 그래도 토벌군에 잘 통했다. 역사상의 평산전투에서 200명의 임꺽정군은 산을 타고 빠르게 공격을 가해 산을 타고 올라오던 토벌군을 괴멸시켰다. 그리고 연천령 은 그제야 도착해서 토벌군을 무너뜨리고 산채로 돌아가는 임꺽정군을 막겠다고 종 자 하나랑 기웃거리다가 잡혀죽는다. 한 마디로 돌격 한 번만으로 이긴 것이다. 여 러가지 복합적인 요인도 있지만 당시 조선군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보여주는 이 야기다.
"저기요. 서유생아저씨."
그냥 구경만 하려던 균은 보다 못해서 조금 화려한 전술을 구사해보기로 했다. 패할 가능성도 적은데다가 만일 패하더라도 서유생에게 한 말과는 달리 그다지 문제는 없 었다. 최소한 봄은 되어야 토포사 남치근을 대장으로 한 수천 명의 대군이 이동할 수 있다.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지금 상태대로 돌격을 하면 패전의 우려가 크고 양측 모두 많 은 사상자가 나올 것을 걱정한 탓이다. 토벌군이라고 치열한 전투로 많은 병사들을 죽어도 나중엔 조선의 왕이 되는 균의 손실이 되기 때문에 피해야 했다.
균은 돈이던 무엇이던 간에 자신의 것에 욕심이 많은 아이다. 전생때 어머니를 일찍 잃어버린 것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자기 것은 끔찍이도 여겼다. 이기적이고 편협하 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과 관련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점도 있다. 이 고생을 하는 이유도 자신의 것인 조선과 그 백성들을 위한 행동이다.
"만약에 토벌대 후속부대가 있다면 어떻해요? 그들이 제대로 포진만 해도 돌격은 막 히잖아요?"
"후속부대요? 그건... 하...도련님께서 없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균과 임꺽정 ,서유생은 균의 호칭을 도련님으로 합의했었다. 1천명의 사람들 중에서 도 첩자가 있을 줄 모르는데 하성군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토벌군은 오천이 넘을 것 이다.
오죽하면 균이 없는 동안 삼식이가 말을 못하게 하느라 아예 동굴에 넣어두고 왔다.
같이 오려 했지만 비 전투원인 균이 따라온 것도 특례라서 거절되었다.
"또 모르는 일입니다. 다른 고을 수령이 공에 눈이 멀어 참가할 수도 있잖아요? 거 기에 병법의 기본은 만약의 사태도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예병 백 명만 있어도 우리의 돌격은 실패합니다. 단순히 돌격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
"그렇기는 하지만 도련님이 하신 말씀이나 우리의 정보나 일치합니다. 그렇게 신경 쓸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서유생이 입을 우물주물거리는 것이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역사는 이미 어긋나서 진행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임꺽정이 봉산군수 이흠 례를 죽이로 가려는 계획이 서림의 변절로 탈로나서 임꺽정군이 마산리에서 포위되 어 마산리계곡으로 몰린다. 여기서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림의 보고를 받은 이흠례가 선수를 치기 위해 출정하고 오히려 임 꺽정군이 그를 기다려 준비 중인 것이다. 명종이 연천령에게 정예병 몇 백기를 붙여 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행히도 정보망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공에 눈이 먼 자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가끔씩 포상에 미친 자들도 많지요. 일단은 소규모의 증원부대가 있다는 가정 하에 작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서유생은 말 그래도 일반유생이였다. 글 조금 알고 행정업무는 잘하지만 군사 쪽으 로는 영 미덥지 않았다. 원래 명장들은 적의 행동을 완전히 예상하고 그에 맞는 여 러가지 대비책을 준비한다고 한다. 균은 무재는 아니지만 최소한 적의 행동을 하나 로만 가정한다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럼 도련님께서는 다른 생각이 있습니까?"
임꺽정은 공석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정말 무섭게 생긴 얼굴 이다. 오리지날 균이라면 그 얼굴에 아마도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딱 절간의 사천 왕 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균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말했다.
"먼저 전군을 세 갈래로 나누어 좌, 우가 각 일백 명으로 그리고 중앙이 약 50명으 로 구성합니다. 단 중앙군은 최정예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민으로 분한 자들을 보내서 조금 산 위쪽으로 끌어들입니다. 전장을 옮기 면서 혹시나 매복하거나 구원 오는 적 군세는 그렇게만 해도 들어나거나 피하게 됩 니다.
거기에 추격을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로 적장들은 다툼이 일어나서 지휘력이 감소하 고 산을 급하게 올라야 하는 지라 체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이때 좌, 우군은 매복하 고 있다가 관군을 포위하고 전면에서는 임두령이 나타나서 겁 좀 주면됩니다. 그리 고 아무래도 저항할 관군의 장수와 그 호위병만 정예로 제압하면 오합지졸 잡색군들 은 알아서 도망갈 겁니다.
단 매복에 안 걸린다면 그만큼 적장이 신중하다는 소리이니 조금 후퇴해서 상대해야 합니다. 물론 그때는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하고요. "
서유생의 의견과 균의 의견은 장단점이 있다. 서유생은 정규훈련을 받지 않은 임꺽 정군의 특성에 맞춘 작전이고 균은 그 특성을 일부 포기한 대신 다른 이점을 취한 것이다. 효과는 서유생이 좋지만 안정성에서는 균이 좋다.
임꺽정은 2년간 수백 명의 정예병과 수천의 무리를 이끄는 장군이다. 아무리 무식한 백정이라해도 어느 정도 전투에 대한 감은 있는 장수이다. 일단은 자신의 군대가 돌 격에는 강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적은 예상보다 많을 수가 있고 돌격이 제지되면 방어력이 떨어지는 산적들은 괴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매복을 하기에는 정규훈련 을 받지 않은 산적들이 들통날 확률이 높다. 그렇게 임꺽정이 고민하는 가운데 회 의장은 조금씩 시끄러워졌다.